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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글쟁이노예 님의 서재입니다.

혈겁수선전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화산파가주
작품등록일 :
2024.01.01 18:03
최근연재일 :
2024.05.12 19:13
연재수 :
41 회
조회수 :
13,405
추천수 :
443
글자수 :
203,166

작성
24.03.24 17:57
조회
189
추천
9
글자
10쪽

지옥에 다다르는 길

DUMMY

"오오..."



누군가의 나지막한 탄성이 흘러 넘쳤다.


기쁨.


순수한 기쁨만으로 가득 찬 희열의 목소리.



평소에 도윤라가라는 인간을 수 없이 겪어봤던 도유인이 작게 숨을 죽였다.



혈관에 피 대신 강철이 흐를 것만 같았던 인간도 저런 얼굴을 다 하는구나.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피를 머금은 구름은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갔다.



슬쩍 고개를 내밀어 아래를 보면 그 깊이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새카만 지하로.


소리 한 점 바람 한 가닥 불어오지 않는 무저갱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공포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거대한 동공에 압도당한 도유인이 침을 꿀꺽 삼키며 도윤라가에게 물었다.



"저, 할아버님?"


"흐흐...음? 왜 그러느냐."



다행히 도윤라가는 아직도 희열에서 빠져나가지 못해 너그러운 상태였다.


평소엔 물어보고 싶어도 눈치가 보여 묻지 못했던 것들도 물어볼 수 있을 정도로.


용기를 쥐어 짜낸 도유인이 슬며시 운을 띄웠다.



"저 아래에 대체 무어가 있을까요? 구름에게 수많은 수사들의 정혈과 피륙을 삼켜야만 가라앉는 구름이라니,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혹여 저 아래에 무슨 일이라도..."



"오, 그것이 궁금했더냐?'



도윤라가가 제 턱을 메만졌다.


어차피 볼 것도 다 봤고 이 정도는 알려줘도 되겠지?


내심 자신이 이룬 위업이 얼마나 대단한지 자랑도 할 겸 이젠 좀 풀어줘도 어긋날 일은 없을터다.



"흐흐, 이곳의 이름은 알고나 있느냐?"



"네? 그야...개천문인가 하는 곳의 유적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개천(開天) 이라 함은 하늘은 여는 문파라는 의미지. 하지만, 좀 더 단순하게 해석해 본다면 개천문은 집단의 이름이자 말 그대로 하늘을 여는 문(開天門)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하늘, 하늘이라면...역시 비승에 관련된 일 이겠군요!"



그리 말하며 도유인은 자신의 지성에 찬사를 보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역시 화신기에 필요한 무언가가 있었구나! 하면서.


하지만 직후 도윤라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도유인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하늘을 열고자 하였다. 하늘을 열어 꺾였던 날개를 다시 한 번 피기 위해 발버둥 쳤던 날개 꺾인 까마귀요 유일한 반역자였지."



"예?"



"욕심이 과했던 것이지. 자기들 식구만 챙겼으면 좁아터진 감옥에서 통째로 승천할 수 있을 것을 굳이 쇠창살을 우그러트려 옆방의 놈들까지 꺼내려 했으니 과유불급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니겠느냐? 하지만 나로서는 오히려 잘된 일이지. 한 때 거대한 판 자체를 부수고 나가려 했던 그들의 유산을 먹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복된 일 이겠느냐?"



그 말을 끝으로 도윤라가는 도유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더 이상 알려줄 것은 없다는 듯.


하지만 오히려 궁금증만 늘어버린 도유인이 슬그머니 말꼬리를 흐렸다.


이것 하나 만큼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저, 그래서 저희 지금 어디를 가는..."



그 말에 도윤라가는 단 한 마디를 남길 뿐.



"죄수들의 무덤."


그 말을 끝으로 한동안의 정적이 맴돌았다.


피를 머금은 구름은 그대로 쭉 내려갈 뿐이다.


바닥 없는 무저갱 속으로.


핏물을 뚝뚝 흘리며 기약 없는 하강을.


침묵에 잠겨서였을까?


아니면 끝없는 어둠이 그들의 귀와 눈마저 가린 탓일까.



둘은 알지 못했다.


구름에 돋아난 두 쌍의 눈이 꿈뻑이고 있다는 사실을.


--------------------




인생은 새옹의 말과 같다고.


결과가 확정되기 전까진 무엇이 복이고 화가 될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지금 우리가 그러했다.



도장이 허공을 찍어내 만들어낸 균열 속에는 족히 수백 개를 넘는 누각의 산이 솟아 있었다.


아무리 작은 누각이라 해도 오 층을 넘겼고 중앙에 솟은 것들은 그 크기가 너무 커 여려 개의 산을 엮은 산맥처럼 보이기도 했다.


잠시 동안 벙쩌있던 우리 가족은 이내 주변의 안전을 확인한 후 우선 가장 큰 중앙의 누각으로 향했다.



사람이 살았던 곳으로 보이니 뭐라도 뒤져보면 나올 것이라 생각해서.


그리고 머지않아 가장 큰 누각에 도착한 우리는 거대한 대문에 새겨진 글씨를 보고는 몸을 흠칫 떨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이곳에 당도한 분들이 누구인지는 모르나 천통옥인(天通玉印)을 지녔다는 것 만으로도 환영하오. 적어도 그것을 지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더러운 들개들과 연이 없다는 것 하나 만큼은 확실하니 그대들은 지금부터 개천문의 귀빈이오 동지이니 이곳에서 무얼 하든 자유에 맡기오.-



그 아래에는 정보를 얻고 싶다면 금색 누각을, 법기나 단약을 원한다면 옥색 누각에, 공법같은 수선 관련 서적을 원한다면 검은 붉은 누각에 들리길 바란다는 내용까지 친절히 적혀 있었다.



물론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이중에 없었지만.


도령곡에서 온갖 인간상을 만나본 가족들은 먼저 의심부터 했다.



"수상하오."


"너무 수상해서 상대가 무얼 원하는지 모르겠어요."


"우리를 죽이고 싶었다면 이런 곳이 아니라 살인 진법이 가득한 곳으로 던져 놨을 텐데요."



하지만, 늘 그렇듯 부족한 것은 정보.


우리는 상대가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는 지 모른다.


아니, 애초에 대체 무엇을 적대해야 할지도 몰랐다.



애초에 적이라고 할만한 존재가 이곳에 있는가?


있었어도 진즉에 죽어 흙으로 돌아갔을 터인데.


결국 남은 것은 하나 뿐.



"일단, 대문에 적힌 누각들에 들려 볼까요?"


"뭐가 있을 줄 알고 말하는 것이요. 너무 위험하오 부인."


"반대로 이런 생각을 역 이용해서 그곳들 말고 다른 곳에 함정이든 뭐든 있다면요?"


"..."



대문에 적힌 말은 찜찜하기 그지 없으나 너무 수상해 오히려 상대의 심리를 이용하려는 수작.


꽤 그럴듯했다.


결국 여기서 나올 수 있는 결론은 하나 뿐.



"일단, 가봅시다."



대문에서 보여준 친절함이 가식이 아님을 바라는 수 밖에 없는 건가.



우선 금색 누각에 먼저 들르기로 했다.


이곳에 대한 정보가 있기를 바라며.



"열게요."



누각의 크기가 크기라 대문도 장난 아니게 컸다.


우리 중에서 가장 힘이 센 도패령이 팔을 걷어 붙이며 나섰으나 대문에 세 발자국 나아가자 각오한 사람 무안하게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드르륵-



고대라는 수식이 붙을 만큼 오래된 유적의 대문 치고는 제법 깔끔하게 열리는 문.


아까 누각들도 그렇고, 무슨 술법을 부린 것인지 나름대로의 관리가 돼 있었다.



"음.."


"어."


"들어가, 봐야겠죠?"



슬쩍 고개를 돌려 보니 두 결단기 수사들의 의심이 짙어진 것이 보인다.



문이 제멋대로 열릴 때 그 어떤 영기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이는 결단기 수사도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의 은밀성을 지닌 무언가가 일개 대문에 내장되어 있다는 뜻.


저 기술이 일개 대문이 아니라 함정 따위에 설치되어 있다면?



전조 증상을 알아차리지도 못한 체 기습에 노출되고 만다.



저 문이 정말 자동문이라면 꽤 웃긴 꼴일 것 같다고, 나도 모르게 속으로 생각했다.


정말 사람의 편의를 위해 설치된 것이라면 우린 지금 동네 마트 자동문에 놀란 원숭이 같은 꼴을 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오히려 경계심이 높아져 어물쩍거리는 두 분을 보니 내가 먼저 나서야겠구나.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디서 뭐가 일어날 지도 모르는데 여기까지 와서 지체하는 것은 신중한 것이 아니라 우둔한 것.



"도녕? 위험하니 조금만 더 살펴보고..."



"저희에게 해를 끼칠 목적이라면 좀 더 확실한 방법을 썼겠죠."



"..."



"시간이 없습니다. 이 시간에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해했답니다 도녕."



도패월이 나를 자신의 뒤로 물렸다.


동시에 도패월과 나를 수호하듯 떠오른 원반형의 법보들.



한 손에 거대한 대검을 쥔 그녀가 앞으로 성큼성큼 내딛으며 아직도 뒤에서 간을 보고 있는 남자에게 소리쳤다.



"빨리 와요!"



"그, 위험, 알겠소 부인."



아버지는 지금 상황이 그닥 내키지 않는 모양새지만 어쩌겠나.


꽤나 잡혀 사시는 분 인지라 예전에도, 지금도 항상 승자는 도패월 이였다.



"이곳은..."



나는 나지막하게 탄성을 뱉었다.


이곳에는 책이 없었다.



대신 아직도 영기를 띄며 번쩍거리는 옥간들만 가득할 뿐.


옥간들은 어린아이의 손바닥 만한 크기였는데 나는 저것들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안에 영기를 주입하면 바로 정보를 머릿속에 박아주는 물건들이다.


제작이 까다롭고 영기를 잃는 순간 안에 들어있는 지식 또한 사라지기에 매년 유지비로 영석을 넣어줘야 한다는 사치품의 극치.


그런 것들이 누각 안을 별처럼 수놓고 있었다.



"유지비는?"



이 정도 양의 옥간을 만든 것은 그렇다 치고 어떻게 지금까지 유지된 거지?


어째 갈수록 수상해지기만 하는 곳이야.


하지만 결국 나는 의심하면서도 옥간을 읽는 수 밖에는 없었으니.



누가 봐도 먼저 읽으라는 듯 화살표로 친절하게 표시까지 해둔 옥간을 제일 먼저 집어 들었다.



"..."



찰나가 지나갔다.


과연 비싼 값은 하는지 순식간에 정보가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올바른 정보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이드북이자, 우리의 원초적인 의문을 풀어줄 물건이라는 것을.



다른 둘도 나와 같은 것을 읽었는지 안색이 파리하다.


이 정보가 진짜냐는 듯 옥간을 손톱으로 긁는 모습은 어딘가 초조해 보였다.




"..."


"..."


"..."




숨이 막힐 수준의 정적이 흐르고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나였다.



이런 일에 당황해 하기에는 내 코가 석자라 미래를 걱정할 여유가 없었으니까.



"우선, 이 정보는 사실일 가능성도 있지만 가짜일수도 있으니 참고만 하고, 나머지 옥간들도 다 확인해 봐요."



고개를 끄덕인 둘은 빠르게 옥간을 훑어나가기 시작했다.


별빛처럼 반짝이던 옥간들이 전부 털리는 데에 걸린 시간은 고작 한 시진이 지난 후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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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적수림 24.05.10 67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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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바다 24.04.10 123 4 11쪽
37 지옥에 다다르는 길 24.04.09 129 5 11쪽
36 지옥에 다다르는 길 +1 24.04.08 118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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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지옥에 다다르는 길 24.04.06 137 5 11쪽
33 지옥에 다다르는 길 +3 24.03.31 171 8 11쪽
» 지옥에 다다르는 길 +1 24.03.24 190 9 10쪽
31 지옥에 다다르는 길 +1 24.03.20 206 7 11쪽
30 전쟁 +1 24.03.17 192 8 10쪽
29 전쟁 +3 24.03.16 196 8 11쪽
28 유적 24.03.13 204 6 11쪽
27 유적 +3 24.03.12 202 8 12쪽
26 유적 +1 24.03.11 194 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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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유적 +2 24.02.19 256 10 11쪽
22 수색조 +1 24.02.16 245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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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수색조 +2 24.02.07 315 9 9쪽
19 파수종 24.02.05 284 7 11쪽
18 파수종 24.02.04 315 11 11쪽
17 혈괴뢰 +1 24.02.03 325 13 11쪽
16 혈괴뢰 +3 24.02.01 335 11 12쪽
15 재활 +2 24.01.28 357 10 12쪽
14 재활 +1 24.01.24 390 11 13쪽
13 입문시험 24.01.23 375 12 13쪽
12 입문시험 24.01.21 366 1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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