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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글쟁이노예 님의 서재입니다.

혈겁수선전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화산파가주
작품등록일 :
2024.01.01 18:03
최근연재일 :
2024.05.12 19:13
연재수 :
41 회
조회수 :
13,401
추천수 :
443
글자수 :
203,166

작성
24.01.01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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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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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글자
9쪽

수선계

DUMMY

"이보게 성연씨, 자네는 대체 왜 살아가는가?"


"예? 그야, 일단 살아있으니 살아있는 대로 거기서 의미를 찾아간다고 저는...생각합니,다?"



저 인간이 갑자기 왜 이런 질문을 던지는 걸까.

라는 의문이 담긴 눈초리로 나를 흘겨보는 조교수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중간중간 말을 더듬다 이내 '아, 좀 더 그럴듯하게 말할걸' 이라며 후회한다.



나름 감정을 감춘다고 감춘 티는 나지만 그 감정이 어찌나 절절하게 드러나는지 모른 척 하기도 힘들 지경.



뭐, 이건 저 친구가 연기를 못했다기보다는 그냥 내가 눈치가 빠른거다.


그 웃긴 꼴을 느긋이 감상하다 나는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죽지 않기 위해 살아간다네."


"그야 아무도 죽고 싶어하지는 않으니까요?"



이 친구는 아직 이해를 못했군.




"아니, 그게 아니야. 그런 알량한 마음가짐이 아니야. 단지 죽을 수는 없어서, 죽지 못해 살아가는 것도 아니고 균형잡힌 식단과 아침 조깅을 병행해서 1년이라도 더 아득바득 살아보겠다고 버러지 같은 짓거리를 하는 것도 아니지. 1년을 더 살고 싶으면 차라리 생명유지 장치를 몸에 덕지덕지 붙이고 매일매일 병원에서 실시간으로 진료를 받으면 3년은 더 우습게 살 듯 싶은데."



"..."



조교수는 입을 다물고 멀뚱히 그를 바라보았다.



'어쩌라고?'


딱 그 표정이였다.



그래서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이제 슬슬 60을 바라보는 늙은 교수가 이제와서 뭘 할 수 있는데?



조교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내가 그렇게 느꼈다.

그렇게 생각하니 눈 앞의 이새끼가 굉장히 꼽게 보였다.

그래서 괜히 심술히 나서 좀 더 목소리를 높여본다.



"나는, 나는 달라. 나 성가인, 9세의 나이부터 죽을을 두려워하기 시작했고 10살이 되던 해에 미친듯이 생명공학에 전념. 어린나이의 혈기를 억누르고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했다."



"그렇군요."



"친구와의 연을 끊었다. 그들과 어울려 논다는 것은 그 시간만큼 내가 늙어간다는 것이기에. 가족과의 대화가 단절되었고 그들에 대한 애정이 식었다. 나보다 늙은 부모들은 결국 나보다 먼저 죽어 세상을 뜰 것이 자명했고 내 눈에 그들은 언젠가 죽어버릴 시체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군,요."



"그러자...하! 세상 모든 것들이 시체로 보이기 시작하더군! 결국 언젠가 죽어 나자빠져 흙으로 돌아갈 인생인데, 지금 웃고 떠드는 순간에도 본인들이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걸까? 저 하늘의 태양이 지고 뜰 때마다 실시간으로 본인이 죽어나간다는 것을 왜 모르는 걸까? 응?"



"그렇군요..."



"나는...나는 권력자들을, 자본가들을 혐오한다. 그치들이 손에 쥐고 있는 권력과 돈은 결국 100년짜리 유통기한이 걸린 썩어가는 치즈나 다를 바가 없어! 그런데! 그런데 어째서 놓을 줄을 모르는 거냐! 정녕 관짝에 처박히기 직전까지 결코 순순히 협조하는 법이 없지! 니새끼들이 가진 것들을 절반만 포기하고 투자했다면! 그랬다면 조금이나마 불로불사에 대한 희망이 보였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어느새 붉어진 눈가를 슥 훔쳤다.


연구는 내가 다 해준다고. 그냥 후원만 해주면 된다니까?


어차피 뒤질 거 복권 긁는 셈 치고 내게 투자하면 안됐던 거냐?



"살아간다는 것은...죽어간다는 거다...우리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세상에 꺼내어졌을 때부터 이미 죽어가고 있던 거야.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너무 늦은 것이고."



억울하고 좆같아서 눈물이 다 나온다.



어느새 성연이는 은근슬쩍 내 앞에서 사라져 있었고 나는 쓸쓸히 쭈글한 손으로 그가 있었던 탁자를 쓸었다.




어릴 적 죽기 싫다는 공포에 쫓겨 여기까지 달려왔다.


하늘에 대고 선언컨데 단 한 번도 게을리 살았던 적이 없었다.



불로불사를 연구하다 겸사겸사 암 치료제를 개발해버렸다.

치매를 찢어 없애는 수술을 만들었고 정신병도 예외는 없다.

인류는 100세 시대를 넘어 기어코 150세 시대에 닿았다.


생명분야 만으로는 답이 안보여서 로봇공학으로 2차 전직까지 했다.



그런데 씨발 안되는 건 안되는 건가?



나는 너무 일찍 태어나버린 건가?



가장 개같은 현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급속도로 죽어가고 있다는 것.


더 이상은 미룰 수가 없다.


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달달 떨리는 손으로 펜을 집어 탁자 구석에 던져진 서류에 싸인했다.




{귀하 성가인 고객께서는 위에 표기된 모든 냉동수면 절차에 동의하십니까? [ v ] }



까딱 잘못하면 그대로 뒈져버릴 수도 있어서 가능한 한 사용하지 않으려 했지만...



지금은 방도가 없으니.



"미스터 성. 걱정 마십시오 당신의 신변은 우리 아메리카가 목숨 걸고 지킬 터이니."


"믿습니다."


나는 흡사 관짝을 닮은 수면 장치에 몸을 뉘였다.



왜 부정타게 모양을 이따구로 만들었냐며 꼽을 주고 싶었지만 그냥 참았다.



"선생님을 위해 마련한 특수 수면장치입니다. 99%안전하다 자신합니다.



'그럼 시발 백 번 중에 한 번은 뒤진다는 소리 아니냐?'



갑자기 일어나고 싶어졌다.



치이익---



근데 내 처절한 몸부림이 벌어지기도 전에 내 입에 박히듯 입혀진 마스크에서 가스가 새어나왔다.



'아 시발.'



"그동안 인류에게 공헌하느라 정말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인류의 기술은 한 층 더 진보했습니다. 설령 선생님이 잠들어 500년이 지나더라도 인류와 저희 아메리카는 선생님을 여전히 환영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주세요."



'아.'



몸에서 힘이 빠진다.


동시에 나는 무언가 단단히 잘못됐음을 깨달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면 500년 뒤에 뵙도록 하죠. 좋은 꿈 꾸시길."



----------------




















500년이 지나면 깬다 했었나?



허허 시발 500년 쯤 지나니 인류가 꽤나 친환경적으로 변한 모양이다.



"끄아아아아앙!"


"보세요 여보. 힘차 보이지 않나요?"


"좋군. 아주 우렁차."



그러지 않고서야 어떤 미친 부모가 자기 아기를 수술실도 아닌 웬 동양풍 테마카페에서 출산했겠는가.

그 와중에 쓸데없이 차 향이 좋고 인테리어도 좋아서 열 받는다.



"이름은 점괘로 보도록 하죠."



"좋지. 어서 주사위를 굴려 보시게 부인."



데구르르---



주사위가 굴려졌다.


동물의 뼈로 만든 새하얀 주사위들이 마찬가지로 깨끗하게 다듬어진 백골 탁자위를 나뒹굴다 바닥으로 떨어졌고 이내 탁자에는 두 개의 주사위만이 남아있었다.




안녕-安寧


그것을 본 두 부부의 표정이 묘해졌다.


"두 글자 모두 편안하다, 편안해지다 라는 뜻이 담겨있다니..."


"음, 저희의 자식이라면 좀 더 패도적인 이름이 뽑힐 줄 알았는데요."



잠시 고민하던 부부가 서로 짠 듯이 고개를 돌려 서로를 마주보았고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없겠죠."


"다만 종문의 율법에 따라 편안 안(安) 자는 빼고 우리의 성씨를 넣어줍시다."


두 부모가 아이를 둥둥 띄우며 미소지었다.



"네 이름은 이제부터 도녕-(饕寧)이다. 무럭무럭 자라고 다 좋으니 아비 등에 칼만 박지 말아다오."


"여보! 벌써부터 그런 소리를 하면 어떡해욧!"


"아, 미안하오 부인."



잽싸게 아기를 낚아챈 부인이 아이의 머리를 살포시 쓰다듬는다.

그러고는 상냥한 목소리로 다독이듯 속삭인다.



"우리 아가. 강시로 부려먹든 단약으로 달여먹든 이 어미는 상관 없답니다. 다만 그것은 이 어미와 아비가 세월을 못 넘기고 죽어 버렸을 때에만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것만 약속 해준다면 우리는 행복한 가족이 될 수 있을 거랍니다. 알겠죠 도녕?"



"뿌으아아아!!!"



"후후, 기운도 좋지."


하지만 이제 막 세상에서 나온 아기는 두려움을 못 이기고 한없이 울어 댈 뿐이다.

그 가엾은 몰골에 어머니의 눈에 자상함이 감돈다.

다만 아이의 울음이 비명과 같이 느껴지는 것은 자신의 착각일까?



자신이 낳은 아기에게는 한없이 상냥해진 그녀가 후후 웃으면서 작은 핏덩이에게 볼을 부볐다.


"참으로 따뜻하구나 아가..."


안심하라는 듯 등에서 뽑아낸 한 쌍의 팔과 날개로 아이를 덮으며.



"끄아아아아!"

'살려줘!'



정작 나는 그 순간에 미친듯이 발광했지만.



그렇게 나는.


자기 자식의 이름을 주사위로 정하고 등에 수납형 날개와 팔을 달고 있는 기이한 부모의 사랑 아래에서 태어났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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