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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글쟁이노예 님의 서재입니다.

혈겁수선전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화산파가주
작품등록일 :
2024.01.01 18:03
최근연재일 :
2024.05.12 19:13
연재수 :
4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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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20
추천수 :
485
글자수 :
203,166

작성
24.03.1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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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유적

DUMMY

도박이 성공했다.


어차피 이대로면 잃을 몸이라 미련 없이 올인 했는데 역배가 터진 꼴이랄까.


약간은 얼떨떨한데 어쨌든 좋은 게 좋은 거라 일단은 기뻤다.



하지만 도유인은 아닌 모양이였다.


그는 나처럼 희색을 드러내면서도 혼란스럽다는 듯 격하게 내 멱살을 잡아 올렸다.




"뭐냐. 네놈은 그걸 어찌 알고 있는 거지? 바른대로 고하라."



"아하하, 저기 이거 좀 내려 놓고 말씀해주시면 안될까요?"



"지금 네놈의 처지를 몰라서 그리 오만방자하게 구는 건가? 본 공자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라."



네 처지는 내가 아주 잘 알고 있다.

이대로 뻗대다 죽어도 딱히 미련이 없으니 막 나가는 것 아닌가.



하지만 나머지 정보도 얻어야 했기에 일단 장단 정도는 맞춰 줘야겠지.


가능한 한 나를 떠올리지 못하도록 말투도 살짝 바꿔보자.



"자, 잘못했습니다."



"비석에 대해 고하라 명했다. 네놈의 사과 따위가 아니라."



"히익! 그, 그게 말이죠...저번에 호군문 놈들과 싸우다 저를 제외한 모두가 죽어버린 것 아니겠습니까? 일단 제가 이기기는 했어도 부상이 너무 심한지라 그 자리에서 요양을 할 겸 안전한 자리를 찾고 있었는데 그 비석이 보인 겁니다."



"그래서?"



"그런데...그 비석이 전투의 여파에 휩쓸린 것인지 자 부숴지려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일단 빠르게 보이는 글자만 필사하고 나중에 번역을 맡겨 보니 그런 제목이 나와서요..."



"그것 말고 다른 것은 없느냐? 그 비석이 쪼개지기 직전이라면 내가 감지하지 못 했을 리 없다. 감히 본 공자를 우롱하려는 건가?"



하나 더 좋은 정보를 얻었다.


비석을 부수면 어떤 방식으로든 눈에 띄는 현상을 일으키나 보다.



만약 도령곡 내부에서 비석을 부수려 하다가 도윤라가에게 들켰다면...가까스로 돌린 노친네의 시선이 다시 내게 집중될 수 있었다.


그 자연 재해 같은 늙은이의 눈에 안 띄려고 조용히 수련만 했는데 또 주목을 받는 것은 꽤나 고달팠을 테지.


비석을 부순다 해도 꼭 멀리 떨어진 곳에서 부숴야겠어.



"아, 아닙니다! 정말로 그랬단 말입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자면 비석이 부숴진 것이 아니라 금이 많이 간 정도고 그조차도 윗분들이 회수하셨단 말입니다!"



"정말?"



"정말입니다!"



"정말로?"



도유인의 눈동자에서 은은한 안광이 빛났다.


거짓을 가려내는 종류의 술법인 모양.



법술도, 뭣도 할 수 없는 이런 몸으로 하는 거짓말은 들키기 쉽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대답이 아닌 질문으로 응수하는 것이 맞으리라.



"아! 그러고 보니까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뭐라 하던가?"



"이것만 있다면 그 비경에 들어갈 때 아주 유용할거라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아, 그러냐."



"예!"



이는 거짓이라 하기에는 애매한 거짓말 이였다.



나는 실제로 비석의 도움을 받아 어디 대단한 곳의 위치를 알 수 있거나 무슨 통행증 비슷한 것이라 가정을 했으니까.


이 말은 실제로 내가 한 것이니 엄밀히 말해 거짓은 아니다.



물론 이 말 자체는 도유인을 속이려 한 말이기에 어떻게 들렸는지는 모르겠다.



잠깐 턱을 괴고 고민을 하던 놈은 이내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럼 그렇지 눈앞에 절세의 보물이 있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머저리들 같으니라고. 부수지도 않은 것 같으니 들킬 일은 없겠어."


거짓말 비스무리한 것을 알아챌 정도로 이쪽 법술에 파고들지는 않았던 모양.



그것보다 저놈이 뭐라고 했지?

아무래도 비석을 부수는 것이 맞는 모양이다.



아무리 다 잡은 목숨이라지만 너무 안일하게 정보를 풀었어.


이제 한 가지만 더 알면 뽑을 건 다 뽑는 셈이다.



이목구비도 없는 주제에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놈에게 슬그머니 운을 띄웠다.



"아, 그런데 이런 말도 있더군요."



"음? 뭐지?"



"문파의 어느 어르신이 비석을 부수면 안에 절세의 신공이 있을 거라고. 그리고 이 신공을 도령곡의 태상장로가 노리고 있다는 것도 말입니다."



"뭐라? 아니, 어떻게?"



"뜬소문 비슷한 거라 정설로는 취급 받지는 않습니다만...정말 도령곡의 태상장로가 이 먼 곳까지 행차한 걸까요? 하하, 그럴리가 없겠죠 정말 그랬다면 그 무거운 엉덩이를 옮기는 게 아니라 휘하의 군대를 이끌어 호군문이고 파수종이고 싹 다 멸문시키면 될 것을..."



"하하하..."



도유인이 메마른 탄성을 내뱉었다.


골치 아프다는 듯 미간을 꾹 누르던 그가 이내 다시 한 번 확인하려는 듯 내 멱살을 또 움켜잡았다.



"정말인가?"



"예.예. 태상장로가 이 근처에 있다는 소문이..."



"그분이 이리도 뻔하게 움직이실 분이 아닌데? 아무리 분신이라지만 어찌 그분의 행적이 이딴 잡것조차 알아차릴 정도로 퍼졌단 말인가!"



이젠 본인이 도령곡 사람이라는 것을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고 소리친다.


그와 동시에 깨달았다.


이 몸은 이제 끝이라는 것을.




아쉽기는 하지만 반 쯤 버린 몸이 이 정도의 성과를 거두다니.


도윤라가 그 늙은이가 분신만을 이곳에 보냈고 또 비석을 부수는 것이 정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안에 신공이 있는지 법보가 있는지는 갈라보면 알 테고 가능한 한 도령곡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시도해야 함을 알았다.



분신이라 하기에도 뭐한 몸뚱이 하나를 잃는 대가로는 차고 넘치지 않은가?



도유인의 손에서 회색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나는 일단 치워버리기로 결정한 모양.


하나 걸리는 점이 있다면 이렇게 많은 수사들을 죽이지 않고 굳이 살려 놓고 있느냐 인데.



"그런데 저희는 왜 죽이지 않고 살려주신 건가여?"



"네놈은 영원히 알 일 없다."



아쉽게도 답은 들을 수 없었다.


나는 마지막 순간에도 필사적으로 눈알을 굴렸다.



주변에 단서가 될만한 것들을 찾으려.


이 은신처의 위치를 특정할 만한 단서들을 눈에 새기며.



콰직!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붉은 핏물 뿐 이였다.


--------------------------------



















"...이건 좀 의외네."



"뭔가요 도녕?"



"중요한 건 아니고 일단 가시죠 어머니."



비석을 부수는 일에는 어머니 또한 함께할 예정이다.


당주 그놈이랑 둘이서 비석을 부쉈다간 안에 있는 물건을 빼앗길 수도 있으니까.


그놈이 아무리 강해도 그 근본은 방에 틀어박혀 붓이나 놀리는 먹물쟁이.


살육을 업으로 삼는 어머니와 비하면 그 직위도, 실력도 딸린다.



견진당 당주는 그런 내 어머니를 꺼리는 듯 했다.


도패월이 꾸며진 미소를 지었다.



"어머, 융 당주 어찌 그리 눈치를 보십니까? 본녀가 무언가 실례를 저질렀는지?"


"큼, 아닙니다."



이제보니 성이 융씨였구나.


자기소개도 안하고 냅다 비석에 대한 이야기만 해서 몰랐다.



"그것보다, 비석을 부수려면 최대한 도령곡에서 먼 곳에서 해야 한다 말했더냐?"



"예."



"그래, 이해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먼 촌 동네 까지 온 셈이고."



이 아저씨가 자꾸 툴툴거리네.


삼일을 꼬박 날아온 게 이직도 불만인 모양이다.


하지만 잘못하다 걸리면 어쩌려고.


마음 같아서는 일주일 동안 거리를 벌리고 싶은데 이게 그나마 타협한 거라니까?



"이제 이놈을 까봐도 상관 없는 것이겠지? 그렇지?"


"예. 최대한 안의 내용물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해 주세요."


"걱정말거라. 이런 일에는 도가 튼 전문가들만 모아왔으니. 시작하게."



"예."



짝!


융 당주의 신호와 함께 그의 뒤에서 고개를 숙인 체 대기하던 인원들이 사탕을 둘러 싼 개미 때처럼 일사불란하게 달라붙기 시작한다.



서로 뭐라뭐라 하며 이해하기 힘든 온갖 전문 용어를 쓰면서 비석에 뭔가를 자꾸 묻히고 긁어내고 붓 같은 법기로 살살 훑는데 그 과정이 군더더기 없고 정확하다.


융 당주 말대로 그들은 이런 일에 관해서는 프로였다.



수정 형태의 법기가 비석을 비추고, 붓 형태의 법기가 비석을 훑으면 그 위로 무언가 가지각색의 시약을 떨어뜨려 변화를 관찰하고 사람보다 큰, 차라리 건물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거대한 무언가를 꺼내 조작한다.



그 사이에 도패월과 융 당주는 주변에 결계를 두르고 있었다.


혹시나 무언가 들킬 여지를 남기고 싶지 않은 도녕이 떼를 쓴 탓에 결정된 이중 안전장치였다.


이것으로 뭔 일이 터져도 결계가 우리를 그 늙은이의 마수에서 빗겨나가게 해주겠지.



이제야 조금 안심이 되네.


목숨이 달린 문제에서는 준비가 아무리 과해도 모자라지 않으니.


별 일 없을 것이라 여겼던 곳에서 도유인을 만나 크게 데인 후로 도녕의 경계심은 임게점을 한참이나 초과한 후였다.


그 사건이 벌어지고 난 후 동부에 칩거해 수련만 하고 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사실 이번 일도 분신을 보낼까 싶었는데 그건 예의가 아니라며 어머니께 꾸중을 들은 후에나 겨우 본체를 보낸 거다.


너무 오랜만에 동부에서 벗어난 터라 햇빛이 거슬린다.


어둠...어둠이 필요해...


조용하고 캄캄한 곳에서 수련만 천 년 만 년 할 수 있다면 소원이 없을 텐데 세상이 이 몸을 그냥 놔두지를 않아...




그나마 햇빛이 적은 그늘에 몸을 숨긴 뒤 은신 법술과 주변을 어둡게 만드는 소형 결계를 펼치고서야 겨우 숨이 트였다.



"도녕..."



도패월은 그 모습을 안타깝게 여기는 듯 했으나 그 시선은 그냥 무시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결과가 나왔다.



"융 당주님. 여기 견적을 내보았습니다."



"오호, 어디 보세나. 그래 수고했네 여기 적힌대로 하면 안의 내용물은 문제가 없는 것이겠지?"



"이론은 완벽합니다. 다만 안의 술법을 해제하는 술법사들의 역량에 달렸다고 할 수 있겠네요."



요컨데 우리들의 계획은 완벽하니 뭐가 잘못되면 술법사들 탓이라는 거다.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술법사들의 눈초리가 매서워졌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의 미움을 받더라도 윗분의 눈초리를 받고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애초에 마도 문파인 도령곡의 흉흉함에 비하면 책임 떠넘기기 정도는 사소한 장난 축에도 끼지 못한다.



융 당주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손을 비볐다.



"자, 이제 술법사들 차례군. 차례대로 술법을 해제하게나 설마 못 한다고 는 하지 않겠지?"


"...물론입니다 당주님!"



잠깐 너 왜 대답이 늦냐.



얘네들에게 맡겨도 괜찮은 걸까 싶었지만 이미 작업이 시작된 터라 그냥 입을 다물었다.


괜히 여기서 뭐라 했다가 집중력이 흐트러져서 술법을 잘못 건드리면 그건 내 탓이 되니까.



우우웅!!!



술법사들이 비석을 건드리기 무섭게 발광한다.


하지만 그들은 전문가.


당황하지 않고 비석에 사슬을 묶고 주문을 외우는 것으로 진정시킨다.



우우우우우웅!!!!!



...진정 시키는 거 맞지?



"...다들 침착해. 현무조가 삼 번 진으로 억누르는 사이에 주작조와 백호조가 일 번 진을 자극해 결계를 벌린다. 나머지는 황룡조가 나를 도와 중심으로 파고드는 거다."



"역시!"



잠깐 그들을 의심했던 과거의 나를 반성한다.



파바바밧!


비석을 빼곡하게 덮고도 남을 양의 부적이 덕지덕지 붙었다.


부적의 파도에 휩쓸린 비석은 최후의 발악을 펼쳤으나 이 역시 역부족.


비석은 이내 회전하다가 밑부분에서 전생에 보았던 로켓의 추진 장치 비슷한 것을 꺼내더니 이내 불을 뿜으며 발진을...엥?



비석이 탈출한다!


당황한 내가 뭐라도 하려 손을 뻗으려 했으나 소용 없었다.



"얍!"



꽝!


콰드득!



도패월이 꺼낸 거대한 방망이에 재대로 후려진 비석은 이내 단말마를 내뱉듯 산산이 조각나 허공에 뜬 상태로 그 육신을 흩뿌렸다.


아니, 저거 저래도 되는 거 맞아?


우리가 저 꼴을 안 나게 하려고 전문가들을 불러와서 생 쇼를 한 건데...?



하지만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그녀의 팔에 들린 주택 만한 크기의 도깨비 방망이를 본다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삼켜야 했다.





후두둑 툭



그렇게 망연자실히 비석이였던 것의 잔해를 맞던 내 머리 위로 큼지막한 무언가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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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바다 24.04.10 139 5 11쪽
37 지옥에 다다르는 길 24.04.09 145 6 11쪽
36 지옥에 다다르는 길 +1 24.04.08 134 7 11쪽
35 지옥에 다다르는 길 24.04.07 142 7 16쪽
34 지옥에 다다르는 길 24.04.06 151 6 11쪽
33 지옥에 다다르는 길 +3 24.03.31 184 9 11쪽
32 지옥에 다다르는 길 +1 24.03.24 204 10 10쪽
31 지옥에 다다르는 길 +1 24.03.20 221 8 11쪽
30 전쟁 +1 24.03.17 205 10 10쪽
29 전쟁 +3 24.03.16 210 9 11쪽
28 유적 24.03.13 218 7 11쪽
» 유적 +3 24.03.12 215 9 12쪽
26 유적 +1 24.03.11 205 9 10쪽
25 유적 +1 24.03.10 223 9 10쪽
24 유적 +3 24.03.09 233 8 10쪽
23 유적 +2 24.02.19 266 11 11쪽
22 수색조 +1 24.02.16 257 9 12쪽
21 수색조 +2 24.02.14 258 10 10쪽
20 수색조 +2 24.02.07 327 10 9쪽
19 파수종 24.02.05 297 8 11쪽
18 파수종 24.02.04 327 12 11쪽
17 혈괴뢰 +1 24.02.03 339 14 11쪽
16 혈괴뢰 +3 24.02.01 349 12 12쪽
15 재활 +2 24.01.28 373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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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입문시험 24.01.21 380 1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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