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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글쟁이노예 님의 서재입니다.

혈겁수선전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화산파가주
작품등록일 :
2024.01.01 18:03
최근연재일 :
2024.05.12 19:13
연재수 :
4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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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56
추천수 :
443
글자수 :
203,166

작성
24.03.20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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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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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지옥에 다다르는 길

DUMMY

싸늘한 적막이 가라 앉았다.



입이 열리지 않았다.



내 몸의 통제권은 입가의 근육 한 올마저 모조리 빼앗겼다.



결국 입을 여는 것을 포기한 나는 속으로 작게 심호흡 했다.


입을 연 장본인이 누구인지 어렴풋이 추측이 갔기 때문.



'...철수냐?'



그가 처음에 나를 주인이라 한 점.


또한 이 몸에 들어있을 만한 또 다른 영혼이라면 뻔하지 않나.


애초에 철수는 강아지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 엄연한 생물.



그런 내 말을 긍정하듯 철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 순간 도녕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내가 얘한테 잘못한 게 있었나.


만약 나를 적대한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이며 무엇을 걸고 어떻게 그를 설득할지 등.


하지만 그런 고민은 하등 의미 없는 것이였다.



철수가 무언가 초탈하기라도 한 듯 작게 웃었다.



"하하하하...저의 주인께서, 는 언제,나 똑같으십니다."



말을 더듬는 것을 빼면 상당히 고급적인 어휘가 섞여 있었다.


가르친 적이 없으니 그동안 내가 철수의 몸에 빙의했을 때 스스로 독학한 것이렸다.


아니 잠깐, 그전에 내 생각을?



"제 머리로 생각하시는 데, 못 읽는,것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아,



익숙하지 않다는 듯 그는 자신의 목울대를 몇 번 두드렸다.


"발성을 목적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라서 말에 조금 문제가, 있네요. 그래도 잠깐, 흠 되었습니다."



꽤나 오래전에 언어를 익혔구나?



"그렇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속으로 문장을 가다듬었다.


여기서 실수를 해서는 안되니까.




어째서 알리지 않았니?


오늘 같은 날을 기다리고 있었니? 내가 네게 서운한 짓을 좀 하긴 했지.


하지만 철수야 들어봐라. 나를 여기서 어떻게 한들 변하는 것은 없단다.


내가 죽어도 나의 부모는 여전히 도령곡의 결단기 장로이고 내게 문제가 생긴다면 그분들은 너를 가만히 두지 않을 거란다.


한순간의 충동에 사로잡혀 몸에 불을 붙이는 나방 같은 최후는 너도, 나도 원하지 않을 터, 그러니 나와 거래하자 이번 일에 협조만 해준다면 나는 너를 자유롭게 해주겠다.



내 신분을 잊지는 않았겠지? 철수 너의 빈자리는 어떻게든 채울 재력이 나에게는 있어.


내 생각과 말을 오래토록 읽어온 너라면 내 성격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목숨을 걸고 하는 도박은 자살의 또 다른 이름이요.



"누군가와의 충돌은 필연적으로 서로에게 손해를 강요 시킨다. 설령 내가 이긴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라고, 입이 닳도록 말씀 하셨죠."



이해했구나!


하지만 그런 기쁨도 오래 가지는 않았다.




"탈출을 원하시고 계신가요? 하지만 그것은 들어 드릴 수 없겠습니다 나의 주인님."


뭐?


"나의, 나의 주인님. 철수는 오랫동안 주인님을 곁에서 모셨습니다. 심지어 스스로 이 미천한 몸에 빙의하셔서는 당신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 또한 여러 번 말씀하셨지요. 철수는 도녕이라는 소년을 알고 있고 주인님을 압니다. 나의 주인께선 자신의 안보에 대해서는 한없이 차가운 분이라는 것을 압니다."



...



"주인께서는 스스로를 얼리는 얼음입니다. 아무리 밖에서 따뜻한 인연과 정으로 녹이려 애를 써도 그 온기가 가장 깊숙한 곳까지 침투하려 하면 단호하게 모닥불과 난로를 꺼트리시는 분입니다. 그렇기에 이 천것은 감히 무례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점, 그저 사과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바깥으로 튀어나오려는 생각을 꾸역꾸역 집어 넣었다.


일단, 생각을 읽는 것부터 막아야 했다.



다행히 그 방법은 의식의 실을 고치처럼 만들어 그 안에서 사고하는 것으로 막을 수 있었지만 그조차 완벽하지는 않았다.



꽤 오랫동안 고치를 만들려 애를 쓴 터라 어느새 철수는 바닥에 한가득 쌓인 시체를 죽이고 흡수하며 경지를 올리고 있었다.


슬쩍 보니 벌써 열 구가 넘는 시체가 빼빼 말라있었다.



푹.


이름 모를 시체에 팔을 박아 넣은 철수가 반갑게 인사한다.



"이제 좀 괜찮으십니까? 주인님?"


한없이 밝은 목소리.



그 걸걸한 성대 너머로도 알 수 있을 만큼 그는 내게 호의를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리 좋게 대해준 적이 없는데.



험하게 부리면서 그 어떤 대가도 챙겨준 적 없는 가혹한 주인에게 이토록 살갑게 대할 수 있는 건 성격이 좋은 게 아니라 정신 상태가 멀쩡하지 않음을 말한다.


나는 나사 빠진 인간을 상대로 협상하는 법을 모른다.


하지만 그것조차 기쁜 것일까.


철수가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긁었다.




"나를 모자란 시종 취급해주시다니, 너무 기쁩니다."



나는, 대체 네가 뭐에 좋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저를 모자라지만 그래도 시종으로 봐주고 있음이 기쁩니다."



또 네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널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있니?



"많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뭔데?



그의 얼굴에 미안하다는 듯 침울해졌다.



"말할 수 없습니다."



너...



"그래도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이 상황을 해결합니다."



마침내 안에 있는 시체를 모두 흡수한 철수는 어느새 연단기 대원만을 건너 뛰고 축기기에 도달해 있었다.


그 많은 축기기 수사를 다 먹었다고는 해도 이게 가능한가?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할 여유 따위는 없다는 것을 증명하듯 철수는 어느새 바닥을 쓰다듬고 있었다.


이 방에 깔린 기묘한 술법이 통하지 않는 걸까?


철수의 손길을 받아들인 구름은 강아지처럼 작게 몸을 떨더니 이내 자신의 등에 철수를 태운 체로 떠올랐다.



그에 내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철수는 구름을 쓰다듬으며 작게 속삭였다.



"구름아, 나를 가장 높은 곳에 데려다주련?"



대답은 필요 없었다.


구름은 둘을 데리고 가장 높은 곳으로 상승한다.


하늘로.



천장을 이루고 있는 하얀 구름을 뚫고 가르며.


그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늘어진 하얀 구름 천장이 모세의 기적을 연상시키듯 갈라졌다.



그리고 그 갈라진 선으로 표표히 사라지는 구름 한 점과 그 위에 신선처럼 선 두 인영이 잔영을 남기며 사라졌다.



---------------------------------------






"크하아악-!"



"드디어 잡았군 이놈."



호군문의 마지막 결단기 수사, 구강수가 거대한 귀조에 맞아 땅바닥에 처박혔다.


그는 귀조에 몸이 짓눌리면서도 눈을 부라리며 기운을 줄기차게 뿜어냈다.



창백한 얼굴의 도령곡 장로가 낄낄 웃었다.



"대체, 왜 이러는 것이냐! 어째서 우리 둘의 싸움에 도령곡이 끼어드는 것이야!"



구강수는 바보가 아니였다.


여기서 얌전히 무릎 꿇어 복종해도 죽어 강시가 될 것이요 도망친다 한들 수십이 넘는 결단기 강시들의 합공에 금방 사로잡힐 것이다.



호군문은 멸문이다.


그들의 오래된 숙적인 파수종과 함께 둘의 이름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다.


그렇기에 구강수는 이 상황에서도 목을 뻣뻣하게 세울 수 있었다.



이왕 죽는다면, 그 이유나 좀 겸사겸사 듣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발악하기 위해서.


창백한 장로는 그 말을 듣고는 잠시 생각에 빠진 듯 턱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나온 답은 그의 상상을 초월했다.



"음, 뭐더라...누가 잡혔다고 들었는데? 그거 때문일걸?"



"뭐라?"



구강수는 어이가 없어 소리쳤다.



"우리가 대체 누구를 잡았다는 말이냐! 도령곡 인물과는 만난 적도, 해한 적도 없다! 애초에 네놈들이 이리도 우르르 몰려올 정도의 신분을 가진 놈을 대체 누가 건들겠냐는 말이다!"



"나도 몰라."



"뭐?"



"누가 잡혔는지 내가 알 바야? 부끄럽게도 너희 따위에게 잡힌 걸 보면 허약한 후배 놈이겠지 뭐,그걸 내가 알아야 하나?"



"네놈은 이 전쟁의 목적이 뭔지도 모른다는 말이냐?"



"내가 전쟁의 목적까지 알아야 해? 내가 아는 건 두 개야. 죽이고 찢는 거. 마침 찢어 죽일 수 있는 놈들이 많다고 양 수사가 꼬시길래 따라온 건데? 애초에 여기 온 놈들 대부분이 피가 고파서 달려온 건데 말이야."



죽이는데 이유까지 필요하냐는 듯한 말투.


자신이 사랑하는 종문을 그저 심심풀이 땅콩으로 대하는 그 모습에 구강수는 마음을 다질 수 있었다.



"...좋다 네놈들이 우리를 그리도 마음껏 휘두르고 버리겠다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저항해 주마."



그저 난폭하게 터져나오기만 하던 그의 기세가 순식간에 다듬어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한 수를 준비하듯 금단에서 불길한 소음이 들려왔다.



드득. 득.



결단기 수사가 자신의 금단을 소모하면서 펼치는 마지막 일격!


동급 수사가 삶을 포기해 펼치는 일격은 방심할 수 없었다.



창백한 안색의 장로가 방어 법술을 펼치면서 뒤로 물러났던 순간이였다.



"각오해라! 호군문의 태상장로는 네놈이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 아님을 내 똑똑히 새겨주겠...!"



"이런, 목숨은 소중한 것이니 잘 챙겨야 하지 않겠느냐."



"다...아...."



어느새 구강수는 회색 안개에 전신이 뒤덮힌 상태였고 결의로 다져졌던 총기 넘치는 안광은 탁한 회색 안개가 껴 있었다.



그 정체를 알아차린 창백한 장로가 예를 갖추었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을까?



그가 고개를 숙인 방향에 있는 것은 수풀만 무성한 언덕이며 이미 그 또한 구강수와 다를 바 없이 지독한 악몽에 빠진 것이라고.



회색빛으로 물든 그는 이내 나무에 더더욱 고개를 숙이며 진중한 목소리로 아무도 묻지 않은 답을 답했다.



"예 어르신! 저는 양 수사에게 권유를 받아 이곳에 왔으며..."



계속, 하염없이.



-------------






"찾았다!"



드디어 도녕은 철수와 분신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에 발을 들였다.


더 이상 작동되지 않는 진법을 넘고 복도로 보이는 그곳을 지나 마침내 신비한 장소에 도착했다.



"구름?"



그것은 하얬다.


너무 하얘서 홀릴 것만 같은...



"정신 차리려무나."



"아."



나는 빠르게 눈을 감았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나보다는 덜한 것 같지만 그분들도 최대한 눈가를 좁히며 조심스레 탐색 용 법기를 꺼내 주변을 살폈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그저 무한이 뻗어진 햐얀 방.


바닥에 내평겨쳐진 시체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야?


애초에 이 방의 용도는 뭐길래?



다행히도 도녕의 의문을 풀어주려는 듯 그의 소매가 빛나기 시작했다.



비석을 부수자 튀어나온 손바닥 크기의 도장.


도장이 옥색 광채를 뿜으며 허공을 찍었다.



"무슨?"


"뒤로 물러나세요 도녕."


어머니가 감싸주시지 않았다면 일단 도망치고 보았을 압박감.


어마어마한 영기가 그 안에서 터져 나왔고 무얼 하기에는 늦었다.



우우웅!



블랙홀처럼 공명하는 그것은 순식간에 우리를 삼켰다.





.....그리고 도녕 일가가 사라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



이번엔 도윤라가와 도유인이 방에 입장했다.



잠시 방을 둘러보던 도윤라가는 손자를 호되게 꾸짖었고 이내 자신의 허리에 걸린 저물법기를 툭툭 두드렸다.



푸화악!



그러자 터져나오는 시체와 핏물들.


산처럼 쌓인 시체와 바다처럼 넘실거리는 핏물들.


구름이 붉게 물들었다.



포근했던 인상은 사라지고 오히려 가시까지 돋은 구름이 가라앉는다.


자신의 등 위에 진 무수한 시체들에 짓눌리며.


붉게 물든 구름이 땅 밑으로 도윤라가와 도유인을 태운 체 저 밑바닥으로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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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지옥에 다다르는 길 +3 24.03.31 175 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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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유적 +2 24.02.19 258 1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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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파수종 24.02.05 286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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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혈괴뢰 +3 24.02.01 337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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