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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글쟁이노예 님의 서재입니다.

혈겁수선전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화산파가주
작품등록일 :
2024.01.01 18:03
최근연재일 :
2024.05.12 19:13
연재수 :
4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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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19
추천수 :
485
글자수 :
203,166

작성
24.03.1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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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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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유적

DUMMY

호군문과 파수종 두 문파의 접경지대.



"죽여!"



"아아악! 내 팔, 내 팔이!"



"물러난다! 다들 후방으로 물러나야...!"



두 문파 사이에 있는 비무장 접경지대는 서로의 분란을 막는, 밥솥의 뚜껑과도 같았던 곳.


피가 흘러서는 아니 될 곳에 피가 흐르니, 경계선은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 그들을 억제해주는 것에 큰 축을 담당했다.


그렇기에 그 여파 또한 억눌린 만큼 강대할 수 밖에.



앙숙과도 같은 두 종문은 지금껏 어떻게 참았나 싶을 정도로 사람을 가리지 않고 무식할 정도로 갈아 넣고 있었다.


문파의 촉망 받던 인재.

장로의 자식들과 손주들.

오늘 내일 죽을 날 만을 기다리고 있는 허약한 노인네들까지.


무식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의 피가 강이 되어 흐르다 못해 산처럼 쌓인다.


총력전이란 단어가 이토록 어울리기도 힘들 것이다.



다만 이 살육극을 멀리서 그러니까 하늘 위에서 판도를 올려본다면 제법 재미있는 그림이 나온다.


접경지대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인파들.


곳곳에서 보이는 축기,결단기 수도자들까지.


말 그대로 두 문파의 전력이 모두 이곳에 모여있다.



의아하지 않은가?


내가 전쟁에 대해 잘 모르긴 해도 이렇게 모든 전력을 싹 다 긁어 모아서 꽝! 부딪히고 한 번에 끝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 쯤은 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모으면 안된다는 기본적인 원칙.


이 비정상적인 전쟁은 그 간단한 원칙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어디보자. 대충 느껴지는 결단기의 숫자는...여섯 명. 정말 싹싹 긁어 모았구나 뒤를 생각하지 않는 전형적인 도박쟁이의 행보구나.'



철수의 몸을 빌린 도녕이 전장을 대충 가늠해본다.



이 정도의 인력을 유적의 조사에 진척이 붙을 때 쯤 움직였다라.


일개 수색조원인 그조차 유적의 발굴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았었으니 그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정보를 쥐고 있는 양 문파의 수뇌부는 오죽할까.


매 분 매 초마다 피가 터지는 전장에서 도녕이 눈을 반짝인다.



"확실한 단서를 쥐었구나 그것도 양 쪽 모두. 서로 물러나지 않음을 알고 있기에 계란을 한 바구니에 넣는 위험을 감수했구나."



서로의 목적지가 같다면 괜한 전선에 인력을 쪼개느니 한 곳에 모아 죄다 도박판에 털어 넣다니.


퇴로가 없기에 울며 겨자먹기로 생각 없이 질렀구나!


이 지경까지 오니 그 보물이란 놈의 정체가 더더욱 궁금해졌다.



백 년은 족히 넘게 살았을 여우 같은 양 문파의 수뇌부의 눈을 뒤집어 놓다니.


도녕이 껄껄 웃으며 손을 내려다보았다.


뭔지 모를 금속으로 이루어진, 강철의 팔.



사실 그도 내심 흔들리고 있었다.


이번 일에 본체를 들고 오느냐 마느냐.


하지만, 저 살육극을 구경하자니 보물에 대한 열망이 팍 식었다.





나중에 올 도패월이야 정 안되면 결단기들 사이에서 도망칠 수단이야 있겠지만 나는 그딴 게 없었다.


결단기 수사의 손짓 한 번에 핏물로 변할 몸.


분신을 너무 오래 쓴 탓에 현실감각이 무뎌졌던 건가.


도박에는 돈을 걸어야지 나 자신을 매물로 내놔서는 안되는 것인데.



속으로 혀를 끌끌 차던 도녕은 이내 도령곡에서 받아온 은신용 부적과 법기를 잔뜩 둘렀다.


두 문파가 꽁꽁 숨기고 있을 유적을 찾아서.



-----------------------






유적을 찾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대충 접경지대 안에 있는 것은 확실하고 또한 양 측의 수색조가 한 번 살펴보고 간 곳.


또한 내가 들르지 않은 곳.


수색 구역이 아니라 확인하지 못한 곳 중 한 곳에 그들이 찾는 유적의 '입구'혹은 무언가가 있다.



또한 수상할 정도로 축기기 수사가 많이 몰렸거나 전혀 중요하지 않은 곳에 무언가를 찾듯이 방황만 하는 축기기 수사를 찾는다면 언젠가는 찾을 수 있겠지.


진정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람 그 자체였다.


여긴 사람이 그냥 많았다.



아군이 아니면 무조건 죽여야 할 적인 전장 속에서 그 누구의 편도 아닌 도녕이 철수마저 잃고 싶지 않다면 은밀히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었다.



결단기 급 은신 부적은 내 목숨줄인데다 한 장 밖에 없으니 결국 축기기 은신 부적을 줘야 하는데 그것도 정도가 있다.


아무리 우리 어머니가 나를 사랑하셔도 축기기 급 부적이란게 워낙 비싸서 막 찍어낼 수 있는 놈이 아니다.


부적을 살 바에 그냥 경지를 올려라.


세간에 널리 알려진 부적의 보편적인 인식.



이 상황에서 도녕은 어떻게 축기기 수사들의 기척을 피하고 움직이느냐...





정답은 땅 파기다.


체내의 내단에 금제를 걸어 두어 모든 영기를 감추고 아득한 육체 능력으로 두더지처럼 땅을 파서 이동한다.


땅의 미세한 진동까지 모조리 의식으로 읽어내는 결단기 급이 아닌 이상에야 축기기들은 오로지 적의 여부를 영기가 있느냐 없느냐로 따지는 편이니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이다.


다행히 철수의 몸에는 온갖 단단한 요수의 신체 부위가 덕지덕지 붙어 있어서 땅을 파고 나아가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또한 핏물이 스며들어 저절로 부드러워진 지면도 한 몫을 할 것이다.



'어차피 어머니가 오시기 전까지 내가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그냥 열심히 돌아다니기만 하면 되겠지.'






그렇게 무서운 속도로 땅을 파내리며 전장의 지하를 종횡무진하기 나흘.


슬슬 질린다.


근데 이걸 하지 않을 수도 없으니 그냥 땅을 팠다.



속으로 대략 인근의 지도를 떠올려본다.



"슬슬 반 쯤 돌아본 것 같은데..."


지금까지 돌아다닌 곳은 오로지 축기기 수사들 정도만 있는 전장 이였다.


결단기 급이 버티고 선 전장에 가면 무조건 잡혀 죽는 미래밖에 없었으니.



"유적이 있는 장소를 망가트리고 싶어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정말 그놈들이 지키고 있는 곳 중 하나인가?"


결단기의 실력자들은 서로 충돌하는 것 만으로도 지형지물이 박살나기에 자연스레 순위에서 제외했는데 그 반대로 진짜 중요해서 그들을 세워 놨을지도.



아, 근데 알아도 내가 뭘 할 수 없지.


나 같은 허접은 열심히 땅이나 파야지 뭐.



그렇게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팔을 휘둘렀을 때였다.


주변에 느껴지는 기척이 없어 잠시 밖으로 나왔다.


철수가 강시이긴 한데 반은 살아있는 수도자라서 밥도 먹고 영기도 보충해줘야 한다.




그런데, 나오자마자 이럴줄은 몰랐지.



"...?"



주변에서 나뒹굴고 있는 수많은 시체.


그리고 그 중심에 서서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치매 늙은이의 손자 놈.


그놈이 넌 뭐냐는 듯이 황당한 얼굴로 나를 노려봤다.



나 역시 얘가 여기 있었을 줄은 몰라서 어색하게 팔짱을 꼈다.



"..."


"..."



잠깐의 대치가 이어진다.


도유인은 엉망인 몰골로 보건데 방금까지 치열한 전투를 치르느라 지친 상태.


그리고 그 동안 치매 노인으로부터 부적등을 공급 받지 못했다면 소모품 역시 모르긴 몰라도 확 줄었을 터.


저놈 성격에 나를 곧바로 죽이려 들지 않았다는 점에서 방금 발언에 신뢰가 올라간다.



그런데 도망치지 않은 걸 보면 또 엄청 지친 건 또 아닌 듯 한데.



여기서 철수를 잃어서 저놈을 죽여봤자, 이곳에 와있다는 치매 늙은이 분신이 남아있다.


솔직히 말해서 저놈은 어머니가 손짓 한 번으로 치울 수 있는 놈이니까.


한마디로 여기서 유일한 정찰용 드론인 철수를 잃어버리면 이후가 골치아파진다.



다행히 철수는 이전에 비해 힘도 늘었고 여러 마개조를 걸쳤기에 도유인은 이전에 보았던 철수를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르르-."


짐승 괴물이 입가에 시체를 문 체로 낮게 울었다.


저놈을 깜빡했네, 이러면 내가 무조건 진다.



안 그래도 내단에 금제를 걸어 놓았다.


들키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걸었다 한들 금제를 풀 최소한의 시간은 필요하고 놈들은 그 찰나를 놓치지 않으리라.


도유인 하나쯤은 철수에게 들려 보낸 부적을 터뜨려 그 찰나를 벌 생각이였는데 두 명은...무리다.



"하..."



눈을 감았다.


조종하고 있는 철수 뿐만이 아니라 '나'또한 망연자실하게 눈을 감았다.


역시, 도박은 참 위험한 놀이다.


판돈을 올린 지 얼마나 되었다고 몽땅 잃게 생겼다.




이렇게 된다면 방법은 하나다.


최대한 그럴싸하게 폼을 잡고 저번처럼 약간의 정보라도 긁어낸다.


대충 이곳 근처에 유적 혹은 놈들의 은신처가 있는 걸 알고 있다는 늬앙스를 풍긴다던가.


혹은 품에 숨기고 있는 부적을 터뜨려 지친 도유인에게 획실한 부상을 입히는 것도 방법 중 하나겠지.




철수의 몸에는 도령곡의 강시 제련소에서 쓰이는 강화 시술등이 덕지덕지 발라져 있었다.


겉모습은 알 수 없어도 이 몸을 잡아 뜯어본다면 내 정체를 유추해내는 것도...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닐테지.



그런 면에서는 지금 당장 허세를 부리고, 놈들을 기만하고, 내 정체를 유추할 단서 하나 남기지 못하게 몸을 터뜨려 한 줌 핏물 만을 남겨주어야 한다.



그래야 했다.



"살려주십시요."



그래야 할 터인데...지금 내 꼴은 무엇인가.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릎을 꿇고 머리 위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탄식한다.



이것은 나인가 아니면 철수의 심장 그 안에서 맥동하고 있는 태아의 발버둥인가.


이미 수 년은 산 만큼 태아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시술을 받은 탓에 철수는, 철수의 심장은 외견적으로는 조금도 성장하지 않았다.


최소한의 이지만을 남기는 수술을 받았기에, 명령을 수행하는데 불필요한 생존 본능 따위는 밑바닥부터 긁어낸 지 오래.




...어쩌면 나는 고작 물건 따위에 정을 줘버린 걸지도.


마치 애착 인형이 부숴지는 것이 싫어 떼를 쓰는 어린아이를 닮았구나.


아차 하는 사이에 내 몸은 이미 밧줄 형태의 법기에 꽁꽁 묶인 상태였고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다.



만약 5초 아니, 3초만 있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을.


인형에 대한 애착을 지우는 것은 그 정도면 충분했는데...!


어차피 이래도 철수는 구할 길이 없는데 왜 이리도 멍청한 짓을 저질렀지?


나는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몸이 비정상적으로 튼튼하고 기형적이군. 요수의 혼혈인가? 마침 딱 좋은 놈이 걸렸어 이놈은 죽이지 말고 옮기자."



"...예."



푹!


목에 바늘 같은 것이 찔리고 시야가 암전된다.


그래도 다행인가.


아직 내게는, 아니 정정한다 철수에게는 기회가 남아 있었다.



어쩌면 유적에 대해 가장 많은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도윤라가 쪽에 눈을 심을 수 있다면 나쁘지 만은 않은 일 일지도.


철수의 몸이 땅에 엎어지기 직전, 나는 스스로에게 되뇌였다.




"인형은 인형답게."



인형은 결코 애정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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