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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글쟁이노예 님의 서재입니다.

혈겁수선전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화산파가주
작품등록일 :
2024.01.01 18:03
최근연재일 :
2024.05.12 19:13
연재수 :
41 회
조회수 :
14,121
추천수 :
485
글자수 :
203,166

작성
24.03.16 12:00
조회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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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
11쪽

전쟁

DUMMY

깜깜하다.


앞이 보이질 않으나 그 외의 기척은 느껴진다.



부스럭거리며 도포를 펄럭이는 소리 짐승의 옅은 숨소리 천장에 고인 이슬이 종유석을 타고 떨어지는 소리까지.


이상한 일은 아니다.


기절한 것은 철수의 의식이지 철수를 조종하는 도녕의 의식이 아니기에.


다만 온 몸의 근육이 풀리고 모든 혈맥을 제압 당해 숨을 쉬기 힘들었다.


수도자가 아닌 범인들이였다면 필히 질식했을 정도로.




머지않아 무언가가 몸을 찌르더니 이내 몸이 제한적인 자유를 찾는다.



기절이 풀린 것이다.


이것 참 기절 당했을 때의 감각을 고스란히 느끼는 날이 올 줄이야.


정신을 잃었을 때의 감각을 느끼려면 정신을 잃으면 안된다는 모순.


그 모순을 고작 몸을 하나 더 두는 것으로 해결하다니, 의외로 진리는 가까이에 있었다.



시답잖은 생각은 여기까지 하고.



눈을 아주아주 옅게 떠본다.


들키지 않도록 근육을 천천히 움직이며.


가까이서 관찰하지 않으면 절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눈을 작게 떴다.



그리고 보인 것은, 도녕의 예상을 한참이나 벗어나는 광경이였다.


'...번쩍거리네.'



벽 바닥 천장.


그리고 바닥과 천장을 지탱하는 굵직한 기둥들.


그 모든 것들이 번쩍거렸다.



그것들은 모두 새하얀 빛을 머금은 채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으며 저 하늘에 뜬 구름과도 같이 푸근해 보인다.


구름을 짜낸 실로 비단을 만든다면 어찌나 푹신할까.


그 답이 이곳에 있었다.

내가 누워있는 바닥은 전생에 누워 보았던 수십 억 원 짜리 매트릭스 따위랑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기분이 좋았다.

푹신한 듯 하면서도 그와는 다름 감촉이 손 끝에 맴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감각이다.


마치 매운 것을 처음 먹어본 이에게 맛을 설명하라 하면 아픈 맛이라고 밖에 설명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저 푹신했다.


이 이상으로 지금의 쾌감을 설명하긴 힘들다.


폭신함과는 분명히 다른, 기묘한 감각을 즐기다 보니 주변에 널린 핏덩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꺾이고 베이고 으깨진 것들.


하지만 분명 살아있었고 자세히 보면 치명상이라고 할만한 중상은 없었다.



마치 생명을 붙여 놓고는 느긋하게 괴롭히려는 것처럼.



불쾌했다.



저기서 바스락거리는 이들에 대한 동정이 아닌, 저들이 흘린 더러운 피가 한폭의 그림과도 같은 예술을 침범하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우리는 하얀 도화지 위에 나있는 이물질.



눈치 없게 튀어나온 뾰족한 모서리이자 가시와도 같다.



우리는 검은 점으로서 존재하며 이 하얀 공간의 순백을 망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점들 중에서도 가장 크고 더러운 점이 있었다.



"대충 준비되었나?"



"그르, 예."



"그 더러운 목소리를...아니 아니다. 오늘 만큼은 허락할테니 최대한 더럽게 울도록."



"그르르."



순백과 그나마 비슷한 회백색을 띄고 있음에도 오히려 제일 더럽다.


더러운 오물에 백색과 비슷할 뿐인 껍질을 뒤집어 씌운들 그것이 어찌 같을까?


저것들은 감히 이곳을 더럽힐 자격조차 없는...



'내가 왜 이러지?'



순간적으로 든 파괴적인 충동에 머리를 흔들었다.


방금 생각은, 나 답지 못했다.


저놈들이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이 아니라면 분명 그 원인은...



도녕이 기겁하며 최대한 맨살을 바닥에 닿지 않도록 팔다리를 슬쩍 들어 올렸다.


무조건적으로 안전할 것이라 믿었던 본체가 영향을 받자마자 곧바로 온몸의 솜털을 곤두세웠다.



아니, 이 미친 세상은 뭐 안심할 수가 없네 이 먼 거리를 무시하고 정신을 헤집어 놓는 미친 방법이 있었다니.



속으로 욕지꺼리를 내뱉고는 진정하며 다시 한 번 눈을 뜬다.



하얗다.



너무 하얘서 약간은 귀여운 것 같은데.


약간 솜뭉치 강아지나 고양이를 보는 것만 같은...


아니 시발.



그냥 눈을 감았다.


도저히 눈을 뜨고 긴 시간 이성을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래도 다행인 점이라면 눈을 감으니 좀 낫다는 것.



바닥이 선물해준 푹신한 감각은 그대로지만 눈을 닫으니 홀려버릴 정도는 아니였다.



뭐 이런 무시무시한 공간이 다 있나.


가만, 도유인과 짐승 놈은 제법 평범해 보이는데 분명 방법이 있는 거겠지?


그것만 깨부순다면 놈들을 꽤 곤란한 처지로 만들 수 있을 텐데.



그러다 갑자기 올라오는 짜증.



아, 진짜 내가 서러워서 결단기는 어떻게든 찍고 만다.


힘이 있었다면 이렇게 인형을 보내며 간을 볼 필요도 없었을텐데.


너무나도 적은 무력이 항상 발목을 잡았다.




힘이 없어서 죽을 뻔했고 늙은이를 경계해 동부 안에만 틀어박혀 있었으며 이딴 놈들에게도 막 잡히는 것 아니겠는가.


철수도 일단 축기기 정도로는 개조 시켜야 심부름이라도 시키지.


일단 나가면 사비를 좀 털어서 강화를 시켜야...



씁, 개소리.



철수는 여기서 버려야 한다.


죽기 그 직전까지 놈들에게서 정보를 뽑고 이들을 뽑아야 한다.


겨우 판이 만들어졌는데 작금 상황에서 회수까지 하려다가는 다 망치는 수가 있다.



미련을 버린다.



줄 건 줘야지.


철수가 제법 쓸모 있는 패라는 것은 인정하나 그 뿐이다.


결국 손아귀에 잡힌 패는 언젠간 승리를 위해 소모되는 법.


카드가 생긴 게 예쁘다 해서 내지 않는 놈은 그냥 바보다.


애착이 심하거나 특이한 성격을 가진 게 아니라 눈 앞에서 칩을 딸 기회를 내던진 머저리.




본체의 머리를 쥐어 박았다.


이거, 진짜 돌겠군.


사람의 정신을 흐트러뜨리는 술법이라도 되나?



아무리 그래도 내가 이 정도로 물러지진 않았다.


적어도 이런 한시가 급한 일에 혼자서 궁상이나 떨 놈은 아니란 말이다.




'차라리 연결을 좀 느슨하게 하면 영향이 덜 하려나.'



조종이 힘들다는 큰 단점이 있었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무언가 큰 일이 날 것만 같아 철수와 연결된 의식의 끈을 늘어뜨리려는 그때.



'시발?'



나는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연결이, 연결이 풀리지 않는다?'



무언가가!


무언가가 실을 잡고 놓질 않고 있었다!


내 의식에서 뻗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회수는 커녕 실을 더 연결 시키거나 느슨하게 조절하는 것조차 불가능.


내 것이나 동시에 남의 것이 된듯한 감각이란, 불쾌를 넘어 작은 공포마저 일으켰다.



'아 진짜. 의식이 부숴지면 백치가 된다던데 이거 어쩌지?'



철수에게 뻗어있는 의식은 오롯한 나의 것.


의식이 부숴진다는 것은 뇌가 파괴 당한다는 것과 다름 없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담아 작게 한탄했다.



아니 진짜 왜 이러지?


나한테 뭔 액이라도 꼈나?



항상 도망갈 구멍을 터 두고 몇 번이고 조심했음에도 항상 위기가 찾아온다.


두 번이다.


외출이 잦았던 것도 아니요 항상 충돌을 피하려 힘썼는데 벌써 두 번이나.



그러자 이런 생각이 든다.


혹시 내가 너무 밍기적거렸나?


차라리 퇴로를 없애면 좀 나아지려나?




뒤로 물러날 곳이 없다면 인간은 때때로 한계를 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고는 했다.



"어쩔 수 없지."



도녕이 몸을 일으켰다.


캄캄한 동굴 속에서 정좌하던 본체가 일어났다.



'원래는 결단기 정도는 찍어야 동부를 벗어날 것이라 생각했는데...'



축기기도 아닌 연단기 대원만 상태로 둥지를 나왔다.


이는 깃털도 돋아나지 못한 새끼 새가 둥지에서 나온 아니, 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



하지만, 혼자 간다고 누가 그랬냐?


당장 어머니에게로 달려갔다.



설득할 것이고 뭐고 없었다.



나 위험 도움


그러자마자 어머니는 휘하의 부대를 이끌고 출정을 나갈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부모의 의무를 짊어져야 할 사람은 비단 한 명 뿐이 아니니.



"...이해했다."



"당장 애들 데리고 갈 준비 해요 여보."



"알겠소. 아악! 알겠다고 하지 않았소 등, 등 좀 그만 때리고!"



실로 오랜만에 얼굴을 본 아버지도 집법당의 인원을 싹 긁어모았다.



명분은 대도령곡의 자식을 해하려 한 죄.


내 존재도 모르는 파수종과 호군문들은 억울하겠지만 뭐 어쩌겠나.


도령곡의 전투 부대를 이끌고 파수종이고 호군문이고 싹 쓸어버린다.



그 많은 결단기 고수를 어떻게 이기내고?


이번 원정에 참여한 결단기 수사들의 수만 열 명이 넘는다.



심지어 이들 하나하나가 두 중소문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상승의 공법과 질 좋은 법보로 무장했다고 치면 혼자서 동급 수사 둘을 상대하는 것도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리라.



물론 그 대가로 두 문파가 노리고 있는 유적의 보물에 대한 유출은 필수적이였지만...그런 것을 따지기엔 내 목에 칼이 들어 와있다.


안 그래도 그 미친 늙은이가 무섭기도 했고.


설마 결단기 수사 열 명이 나가는데 생까고 나를 죽이지는 않을 것 아닌가?




대군의 행렬에 합류한 내 등을 쓰다듬는 도패월.


"걱정하지 말고 어미를 믿으세요."



"믿습니다."



"..."



"아버지도 믿습니다."



"어, 어? 그래, 고맙다."


아버지는 이 상황에서도 어딘가 멍해 보였다.



설마 호군문과 파수종이 두려운 것은 아닐테고 필시 도윤라가의 존재 때문이리라.


나 같아도 원영기 수사랑 척을 질 바에야 차라리 아들이 죽든 말든 방관할 테니까.


아니지, 차라리 내 손으로 잡아 바쳤겠지, 확실하게 결자해지 하는 방식으로 은원을 끊을 수 있을 테니까.




'좀 미안한데.'



물론 갚을 생각은 없었다.


내가 뭘 갚기엔 너무 어리고 허약해서.



머지않아 저 멀리서 두 개의 거대한 탑이 솟은 것이 보였다.



파수종과 호군문이 설치한 이동식 거점.



그 자체로 결단기 수사가 조종하는 요새이기도 하다.



하지만 고작 탑 따위에 쫄아 버리는 사람은 없었다.


겁이 없는 것이 아니다.


너무나 가소로워서.



저딴 것을 거점이랍시고 세워 놓은 것이 우스운 것이다.


선두에 서 있던 장로들이 킬킬 웃으며 등에 매고 있던 거대한 석탑을 들어 올렸다.


결단기 수사는 법보를 머리카락보다도 얇게 수축해 체내에 저장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저 정도의 크기라면...과연 어떨까?



"흣차!"


근육질의 거한이 투창 선수처럼 탑을 던질 준비를 마쳤다.


곧이어 준비를 마친 장로들도 하나 둘씩 자세를 잡아가고, 던진다.



쐐애액!



가히 미사일을 연상시킬 정도로 뻗어나가는 열 개의 기둥.



그 압도적인 존재감에 전장의 모두가 잠시 넋을 잃었다.



기둥은 팽창한다.


사람 만했던 것이 어느새 집채만하게, 작은 언덕 만하게, 작은 산 정도의 크기로.


욕심쟁이처럼 커지던 그것들은 제각기 전선의 한가운데로 박혔다.



쿵!



땅이 울린다.


단순한 무게 하나로 바닥에 쌓여 있던 낙엽이 하늘로 치솟아 오른다.



위이이잉!



거대한 산만큼 커진 탑의 지붕이 꽃처럼 만개하고 씨를 흩뿌렸다.



그 씨앗의 이름은 강시.



"끼에에에에엑!!!"



또는 생체괴뢰, 혈육괴뢰하고도 불리는 것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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