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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큼버터바 님의 서재입니다.

라르곤 사가 - 은색의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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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큼버터바
작품등록일 :
2023.05.19 10:09
최근연재일 :
2024.03.05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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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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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4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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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013화 - 라딘 라르곤 5세의 서찰(2)

DUMMY

[만약 이 글이 읽히고 있다면 반란이 성공한 것이겠지. 어떻게, 이 몸은 죽었으려나? 하하하, 라르곤의 이름을 이어받을 때부터 각오는 한 일이니 너무 우울해하지는 말게나.

자, 누가 누가 지금 같이 있을까? 클레이 자네가 알아서 잘 선택했을 거라고 믿고 있네. 다들 들을 수 있도록 크게 읽어 주게나.]


담담하게 자기 죽음을 예견하고 있는 라딘의 편지에 집무실이 숙연해졌다. 그때, 갑자기 클레이가 품속에서 얇은 단검을 꺼내더니 집무실 천장으로 던졌다.


께륵 께륵.


분명 아무것도 없던 천장에서 검은색 덩어리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것은 커다란 눈알에 박쥐 같은 날개가 달려 있었는데, 가운데에 클레이가 던진 단검이 꽂혀 있었다.


“이것이 뭡니까?”


제드는 제법 놀랐지만, 짐짓 태연한 척 물었다. 성주의 위엄을 지키려는 것이었다. 그에 반해 칼리반은 솔직했다.


“어우 씨! 징그러워! 이거 뭐야!”


클레이가 꿈틀거리고 있는 그것에게 다가가서 발로 꾹 밟더니 단검을 뽑아냈다. 그러자 괴생물체는 검은색 액체로 변하며 녹아내렸다.


“와처(Watcher)입니다. 레지스단이 심어 놓은 것 같군요. 그리고···.”


와처에게서 뽑아 든 단검을 다시 집무실 문을 향해 날리는 클레이. 단검은 너무 쉽게, 소리 없이 문을 뚫고 나갔다.


“꺄악···!”


난데없는 비명에 칼리반이 문을 열어젖히자 40대 초반의 시녀가 어깨에 단검이 박힌 채 주저앉아 있었다.


“사람도 심어 놓았고요.”


시녀의 얼굴을 확인한 칼리반은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클레이에게 버럭 화를 냈다.


“뭐야! 안나는 에드란 성에서 오래전부터 일하고 있는 시녀라고! 얼른 사과해! 어이쿠, 안나··· 이를 어쩌나.”


칼리반이 단검에 맞은 시녀를 일으키려고 가까이 다가가서는 팔을 잡았다.


슈욱.


“어이쿠!”


칼리반의 손에서 빠져나온 시녀의 손에 구불구불한 날의 단검이 들려있었다. 그녀는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클레이를 노려 보더니 이내 검을 역수로 쥐고 자신의 배를 찔렀다.


치이익.


순식간에 그녀의 몸이 검게 썩어들어 가 검은 덩어리로 변해 버렸고 그녀가 들고 있던 단검은 하얀 가루가 되어 바닥에 흩어졌다.


“오래 있었다고 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죠.”


클레이의 말에 칼리반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엘람이 몰래 키득거리면서 웃다가 칼리반과 눈이 마주치자 슬며시 클레이 뒤로 몸을 숨겼다.


에드란의 성주 제드가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지금까지 편안했던 에드란 성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제드가 제대로 몰랐기 때문에 편안하게 느꼈을 뿐이었다.


클레이 손에 소멸한 와처도 충분히 충격적이었지만 안나가 세작이었다는 사실은 그와 비교할 수조차 없이 큰 충격이었다.


그녀는 제드가 어릴 때부터 그의 아버지를 모셔 왔던 시녀였다. 언제부터 그녀가 카이작의 세작이 된 걸까? 처음부터였을까? 제드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제드가 허탈한 표정으로 물었다.


“클레이 경, 그렇다면 이 성안에··· 레지스단의 세작이 더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겠죠?”


클레이는 다시 라딘의 서찰 앞에 서서 엘람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클레이 자체가 말을 길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다 보니 그는 대부분의 설명을 엘람에게 맡겼다.


“아, 네. 그래서 주작단원들이 지금 성내에 있는 세작들을 색출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아까 저기 칼리반 님께서 흠모하시던 안나라는 시녀도 몰려서 여기까지 왔던 거 아닐까 싶어요.”


“너 죽는다!”


칼리반이 엘람을 잡으려고 우당탕거리며 뛰어 들어왔고 엘람은 ‘잘못했습니다!’를 연발하며 도망쳤다.


클레이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제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제드는 여전히 허탈한 표정으로 자신의 책상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런 제드를 향해 클레이가 높낮이 없는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곧, 에드란 내에 있는 귀족 중에 레지스단의 입김이 들어간 이들이 항의하러 들어올 겁니다. 우리 셋은 몰래 들어왔지만, 이미 소식은 퍼져 나갔겠죠.”


“흠, 그럴 수도 있겠군요.”


에드란 성으로 들어올 때, 당연히 클레이 일행들은 눈에 띄지 않게 몰래 들어왔다. 미르 방방곡곡에 역적 1, 2, 3으로 방이 붙어 있는 이들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카이작의 수하들이 여기저기 국왕 시해자 삼 인의 에드란 입성 사실을 퍼나르고 있었다.


“그리고 개중에는 공명심에, 혹은 지령을 받아 사병을 이끌고 오는 귀족도 있을 겁니다.”


“가능한 이야기군요. 그렇다면 수비대에게 미리 명령을 내려놓아야···.”


클레이가 고개를 저었다.


“귀족의 사병이든, 수비대의 병사든 다 에드란의 시민들입니다. 둘이 붙도록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클레이의 말에 제드의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 사병과 수비대가 맞붙게 되고, 유혈 사태로 번지게 된다면 에드란이라는 도시 자체에 너무 큰 상처로 남게 될 수도 있다.


몇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들일 텐데 그들끼리 찌르고 베는 싸움을 한다는 것은 주요 국경을 지키고 있는 에드란에 있어서는 피해야 할 일이었다.


“헥··· 헥··· 칼리반 님! 제가 잘못했으니까··· 그만합시다!”


엘람은 발이 엄청 빨랐지만 좁은 실내에서는 큰 의미가 없었다. 쫓기는 엘람도, 쫓는 칼리반도 모두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주··· 죽··· 헉··· 헉··· 죽인다!··· 헉··· 헉.”


제드가 칼리반을 향해 눈을 흘겼다.


“칼리반 경, 잠시 자중해 주세요.”


칼리반은 '쳇'하고 혀를 차더니 소파에 거의 드러눕다시피 앉았다. 엘람도 멀찌감치 바닥에 퍼질러 앉아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헥··· 그래서 이때를 위해··· 헥··· 클레이가 오르크 오크들을··· 헥··· 데리고 들어온 거죠.”


*


몇 시간 전.


거우란 병사들의 시체가 가득 널려 있는 녹색의 숲. 이미 한바탕 전투가 끝났지만, 또 새로운 전투가 벌어질 듯 두 무리 사이에 긴장감이 팽팽하게 달아 있었다.


“감히 에드란에 발을 디디다니! 더러운 야만족 오크 새끼들!”


칼리반이 걸걸한 음성으로 외치자 우레케도 지지않고 으르렁거렸다.


“흥, 네놈들은 오히려 우리 우르크에게 감사해야 하지 않나! 우리가 너희 땅에 있던 야만인들을 처리해 줬으니! 우릌!”


칼리반과 우레케가 신경전을 펼치는 중이었다. 그 뒤에서 대기 중인 제1기사단, 그리고 오르크 전사들 역시 새로운 싸움을 준비하며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에드란에 불법으로 침입한 거우란의 병사들을 처리해 준 것은 당연히 고마워해야 할 일이지만, 하필 그 처리해 준 것이 마찬가지로 불법으로 침입한, 심지어 오크라는 것이 문제였다.


흥분한 칼리반을 진정시키고 제드가 앞으로 나섰다.


“처음 뵙겠습니다. 에드란 성의 성주 제드 로우라고 합니다. 존함을 여쭈어 봐도 괜찮겠습니까?”


“흠, 흠. 이거 인간 중에도 예의를 아는 친구가 계셨구먼. 안녕하시오! 이 몸은 오르크 오크의 대전사 우레케 훙이라고 하오.”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보이는 제드에게 우레케도 가슴에 주먹을 대며 예의를 표했다. 사실상 우레케가 에드란에 온 이후로 처음 들어 보는 존대어였다.


“이거, 오르크의 대전사님을 생전에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는 칼리반이다!”


칼리반이 자기소개를 하며 튀어나오다가 부관들에게 잡혀 끌려 들어갔다. 제드는 파드에게 대충 상황들을 전해 들은 터라 다른 것들은 크게 걱정이 없었다. 유일한 걱정은 ‘이 오크들을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것이었다.


“우리 오르크는 주작단과 동맹이오. 우릌.”


“네?”


“우리 오르크, 주작단의 백발귀신··· 아니 은발귀신에게 큰 도움을 받았소. 은혜는 갚는 종족이오. 오르크는. 우릌.”


제드는 클레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는 엘람과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오르크의 대전사 우레케가 클레이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국왕 직속 암살단인 주작단. 그 은밀한 집단의 단장이 자신의 동생 파드와 고작 한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클레이에게 상당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클레이는 어떻게 했는지 몰라도 그 자존심 높은 오르크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라고 인정하게 했다. 제드는 클레이에게 더 많은 흥미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우레케, 잠깐 대화 좀.”


클레이의 부름에 우레케가 또 쭐레쭐레 걸어간다. 그 모습은 다른 오르크 전사들도 놀라는 부분이었다. 우레케는 자존심 빼면 시체인 오르크의 대전사인데 고작 인간의 한마디에 저렇게 움직이다니 놀랄 노 자였다.


클레이와 엘람, 그리고 우레케가 심각하게 대화를 나눴다. 우레케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뭔가를 설명하기도 하면서 클레이의 말에 열심히 반응해 주고 있었다.


결국, 오르크들은 그들과 함께 에드란 성으로 입성했다. 다만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제드와 제1기사단이 정문으로 요란하게 입성하는 동안 오르크와 클레이 일행은 칼리반의 안내를 따라 강을 끼고 있는 서문(西門)으로 입성했다.


*


엘람은 아직 열이 가시지 않았는지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이제 좀 살겠네요. 에휴, 힘들어. 일단 귀족들이 들고일어나면 그것으로 인해 피아 구분이 될 거예요. 그러니 그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그냥 기다리시죠. 귀족들이 진짜 소란을 일으키면 그때 오르크 전사들이 해결하는 거죠. 물론, 칼리반 아저씨가 앞장서야겠지만.”


“아저씨··· 끙···.”


칼리반이 발끈했으나, 이내 포기하고 아예 소파에 드러누워 버렸다.


헤라클이 반쯤 잠긴 목소리로 정중하게 말했다.


“클레이 경. 그럼 계속 라딘 폐하의 서찰을 읽어 주시겠소?”


라딘을 가장 가까이서 보필해 왔던 그였다. 자신의 가족보다 라딘을 더 사랑하고, 존경했던 그였기에 그 슬픔은 더 깊었고, 분노는 더 뜨거웠다.


클레이가 서찰의 말려 올라간 부분을 펴더니 단검으로 눌러놓았다.


[남서쪽 우제즈 섬에 가면 ‘독단의 신전’이 있네. 그곳에서 사원장을 만나게. 내가 맡겨 놓은 물건을 전해 줄 걸세. 자네들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도 전해주겠지.


아, 암호를 말해야 해. <미르가 잠에서 깨어났다>. 반드시 주작단장인 클레이가 해야 하네.


이 편지를 읽을 정도의 상황이라면, 그 위협은 미르의 위험뿐만 아니라 아에로크 대륙 공존의 문제일세. 나를 지켜보는 눈(Watcher) 때문에 길게 설명을 못 하겠지만··· 신전에 도착하면 모든 것을 알게 될 걸세.


클레이 자네도 알다시피 주작단이라는 조직은 이때를 위해 만들었다네. 지금까지 시시콜콜한 일들을 맡겨서 미안하구먼··· 이제 본업을 할 때가 된 거지.


이 글을 읽는 즉시 지체 말고 떠나 주게. 에드란에 일어나고 있는 거우란의 도발은 너무 걱정하지 말고. 그들이 대규모로 공격해 오는 일은 없을 걸세.


그들은 미르라는 나라를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수호신인 미르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이니 말일세.


왕성이 무너지지 않는 한 그들은 절대로 쳐들어오지 않을 것이고, 설령 쳐들어온다 하더라도 에드란의 성주와 두 용장(勇將)이면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나는 믿네.


미르의 가호가 함께하길.


- 라딘 라르곤 5세]


“아, 밑에 추신도 있군요.”


[나의 절친 칼리반, 나의 아끼는 동생 헤라클이 이 글을 읽을 때 같이 있었으면 좋겠군. 짐이 위에 이야기한 두 용장(勇將)이란 그 두 사람이니까.]


클레이가 편지 읽기를 마치자 다시 집무실에는 침묵이 가라앉았다.


훌쩍.


드러누워 있던 칼리반이 훌쩍이며 손등으로 눈을 비볐다. 헤라클도 두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다.


제드가 가만히 손을 들고 클레이에게 물었다.


“클레이 경. 주작단은 라딘 폐하가 왕위에 오르면서부터 만드신 것 아니었던가요?”


"맞습니다."


제드의 말대로 주작단은 라딘의 즉위 연도에 설립이 되었다. 그렇기에 제드는 더 이상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라딘 폐하가 18세에 즉위를 하셨는데··· 그렇다면 그때부터 이런 상황이 올 것이라고 예상하셨다는 겁니까?”


집무실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클레이에게 쏠렸다.


“제가 알기로는, 그렇습니다.”


클레이가 건조한 음성으로 대답하고는 창가로 걸음을 옮겼다. 멀리서 주작단원들의 호각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궁금하신 것들이 많이 있으시겠지만, 오늘은 밤이 길 것 같으니 지금이라도 좀 눈을 붙이시죠.”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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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016화 – 반역자 색출 작전(3) 23.05.27 83 1 13쪽
16 015화 – 반역자 색출 작전(2) 23.05.25 80 1 14쪽
15 014화 - 반역자 색출 작전(1) 23.05.25 85 1 14쪽
» 013화 - 라딘 라르곤 5세의 서찰(2) 23.05.24 88 1 13쪽
13 012화 - 라딘 라르곤 5세의 서찰(1) 23.05.24 96 1 13쪽
12 011화 – 에드란으로(8) (주작단과 오르크의 합동 작전) 23.05.23 97 1 15쪽
11 010화 - 에드란으로(7) (거우란군(軍) vs 오르크 오크) +1 23.05.22 110 1 14쪽
10 009화 - 에드란으로(6) (오르크 오크, 우르크 오크) 23.05.22 138 1 15쪽
9 008화 - 에드란으로(5) (눈의 여제 유키) 23.05.21 148 1 14쪽
8 007화 - 에드란으로(4) (엘람, 격추되다) +1 23.05.21 180 2 14쪽
7 006화 – 에드란으로(3) 23.05.20 204 1 15쪽
6 005화 - 에드란으로(2) (블래커 용병단과의 격돌) 23.05.20 237 2 13쪽
5 004화 – 에드란으로(1)(거짓 영웅) 23.05.19 274 2 13쪽
4 003화 - 작은 싸움을 이기고, 큰 싸움을 지다. 23.05.19 292 3 14쪽
3 002화 - 등장! 왕실직속암살단 +1 23.05.19 351 4 15쪽
2 001화 - 레지스단의 난 23.05.19 597 5 15쪽
1 000화 - 은색의 사내, 그리고 아주 오래된 기록 : 드래곤의 마법 +2 23.05.19 1,159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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