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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KaHaL 님의 서재입니다.

극랑전(極狼傳)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KaHaL
작품등록일 :
2023.10.09 20:25
최근연재일 :
2024.05.29 18:00
연재수 :
2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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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1,531

작성
24.03.0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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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7쪽

61화. 징조: 해(日) (2)

DUMMY

“도 대협께 직접적으로 말씀드린 적은 없었어요. 하나··· 대협께서도 이미 짐작하시는 바는 있으실 거예요.”

“짐작하는바? 한 소협의··· 눈에 관해서?”


제갈민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종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간 득구를 보면서 줄곧 기묘하다 느껴온 바가 있긴 하다. 하나, 그 기묘함은 천검과는 결이 달랐다.


“그는··· 천검은 한 소협과는 다르네. 내가 아는 천검은 다른 이의 무공을 보는 것만으로 자유자재로 구사하진 않았···.”


말을 하다 말고 도종인의 입이 굳었다. 생각해보면, 천검의 무패 신화는 그의 초월적인 수읽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천검은 마치 다음에 어떤 수법을 쓸지 미리 아는 것처럼, 손쉽게 상대방의 무공을 파훼했다. 그리고 그것이 단운이란 강호 초출의 애송이를 ‘하늘이 내린 검(天劍)’이란 이름으로 불릴 수 있도록 만들어준 것이다.


지금까지 도종인은─ 아니 천검을 아는 모든 강호인은 단지, 그것이 그가 매우 뛰어난 직감과 천부적인 무재(武才)를 타고났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달리,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그러나, 만약 그것이··· ‘탐랑(貪狼)’이라는 ‘인령(因靈)’이 그에게 빙의했기 때문이라면? 보통의 평범한 인간은 갖지 못한, 아주 특별한 ‘눈’을 가졌기 때문이라면?


“···설마, 설마.”


애초에 무공을 파훼한다는 행위는, 말하자면 투로와 허실을 모조리 파악했다는 것을 뜻한다. 투로는 초식의 결이며, 허실은 기의 흐름이다. 만약, 단지 한 차례 본 것만으로도 초식의 결과 기의 흐름을 모두 깨칠 수만 있다면 무공을 아예 훔치는 것조차,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아니, 도리어 쉬운 일이지. 단지 보이는 대로 흉내를 내는 것과 본 것을 바탕으로 그보다 더 나은 것을 만들어내는 것. 둘 중 어느 것이 더 어렵겠는가?


“한 소협은 무공의 투로와 기의 흐름을 맨눈으로 볼 수 있어요. 그런 ‘능력’을 타고났다고 하더군요.”

“매번 되는 건 아니지만, 뭐···. 그게 되는 건 맞수.”


득구는 약간 볼멘소리로 말했다.


“전엔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더니.”

“상황이 달라졌잖아요. 이젠··· 달라졌어요.”


평소와는 완전히 달라진 제갈민을 보면서 득구는 완전히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이 소저가 대체 갑자기 왜 이러지? 이렇게까지 침울하고, 기운 없고, 우울해보이는 제갈민은 처음 본다.


“이제야··· 이제야 성채 아가씨가 남긴 말들, 그리고 약왕전주에게서 나왔다는 이야기들의 진의를 깨달았어요. 제길, 제가, 제가···! 조금만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제갈민은 작은 주먹을 꼭 그러쥐었다. 그 주먹이 바르르, 떨리고 그 위로 한 방울씩,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당신들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운명에 얽매여 있었던 거라고요···!”


제갈민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아니라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득구는 답답하고 황망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드러냈다.


“아니, 그니까 대체 무슨 이야긴지 따라갈 수 있게, 설명을 좀 해주라고요! 혼자만 이해하고, 혼자만 깨닫지 말고!”

“아직도 모르겠어요?”

“나도 노력하고 있다니까! 애초에 머리가 나쁜데 뭐 어쩝니까!”


도종인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제갈민에게 말했다.


“한 소협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고, 그것이 천검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까지는 이해했네. 허나, 방금 이야기는 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제갈민은 잠시 숨을 고르며 격해진 감정을 가다듬었다. 생각해 보면 그 스스로도 한 소협의 이야기를 몇 번이나 듣고 또 들으며, 또 봐도 봐도 믿기지 않는 일들을 목격한 후에야 이해하고 깨닫게 된 일이다. 그것도 조금 전에야 말이다. 천하에서 가장 지혜롭다는 평가를 듣는 담하가 공인한 천재인 그녀 자신도 말이다.


“미안해요. 소협, 그리고 대협께도 죄송해요.”

“아닐세.”

“사과는 됐으니까··· 대체 무슨 이야긴지나 알려 달라구요.”


제갈민은 오랜만에 올라온 가련한 마음을 여지없이 박살 내는 득구에게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지만, 깊은 한숨으로 털어냈다.


“생각해보면 저도 방금, 소협에게 설명해주려고 되짚어 보다가 깨달았어요.”

“갑자기요?”

“예, 갑자기.”


제갈민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을 이었다.


“저번에 이야기를 정리하려 했을 때, 목적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했었지요. 백련교의 목적에 관해서. 두 머리, 즉 두 가지 종류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부분에서 이야기를 끝맺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거기서 끝내선 안 됐던 거예요. 조금만 더 생각하면 알 수 있는 문제였는데, 이미 근거는 전부 다 가지고 있었는데···! 대체 왜 아무 생각을 떠올리지 못했지? 아니, 그 이전에 성채 아가씨가 잡혀가기 전에, 한 번이라도 이 부분을 짚고 넘어갔더라면···!”


점점 격해지는 제갈민의 자책을 보다 못한 도종인이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진정하게! 지금까지 자네는 잘해왔어!”

“하지만··· 하지만 아가씨를 납치해 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수 있었단 말예요! 조금만 더 일찍 놈들의 목적을, 더 빨리 이해했더라면···!”


도종인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이를 악물었다.


“제갈민! 내 말을 똑똑히 듣게!”

“···?”

“자네는 신이 아닐세!”

“!”

“자네는 혹, 스스로를 완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뇨.”

“자네는 혹, 신기천성의 신산에게 실수란 용납되어선 안 된다고 믿는가?”

“···아뇨.”

“자네는 혹, 스스로가 신산이란 이름에 걸맞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도종인의 마지막 질문에 제갈민은 흠칫, 어깨를 떨었다. 처음 신산의 별호를 물려받은 날부터 지금까지, 제갈민은 단 한 번도 그 별호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 탓에 연화를 대신했다 여겼을 뿐이다.


아마 그랬기 때문일 것이다. 실수와 실패를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은, 사랑하고 존경하는 연화 언니의 이름을 더럽힐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자네는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도 그 이름에 어울리는 사람일세.”

“그건 아녜요. 대협께서는 연화 언니를 모르시기 때문에···.”

“그건 자네가 가진 열등감이 하는 거짓말일세.”

“···!”

“내 말을 믿게. 자네는 충분한, 아니 그 이상의 자격을 가지고 있네.”

“대협···.”

“화산제일검, 화검의 안목이 그렇다고 말하는데, 그것을 부정할 셈인가?”


그 말에 제갈민은 입을 꾹 다물었다. 도종인은 씩,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한 번 강하게 움켜쥐고 말했다.


“누가 뭐라 하거든, 화검이 보증한다 말하게. 그게 설령 자네 내면에서 나오는 소리라고 하더라도 말일세. 화검이 인정하는 신산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제갈민, 자네일세. 자네는 그만큼 지금까지 잘해왔어. 그러니,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자네가 잘하는 걸 하게. 그럼 반드시 이뤄낼 수 있을 걸세. 한현보의 작은 아가씨를 구해내는 일도, 백련교를 격퇴하는 일도 말일세.”

“···예, 대협.”


도종인의 말에, 좀처럼 진정되지 않던 제갈민의 가슴의 고동도 차차 잦아들기 시작했다. 한결 가라앉은 제갈민은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우선, 아까 이야기하다 끊겼던 부분부터 다시 짚어보지요.”

“음, 그래. 천검과 한 소협이 ‘백련교의 영(靈)’에 빙의(憑依)되어 그 능력을 얻은 것이라면··· 어째서 그 둘은 백련교의 적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을 대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백련교의 목적은 「문」을 여는 것이다’. 이 문장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문(門)]


제갈민은 바닥에 써놓은 글자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을 이어 갔다.


“약왕전주와 아가씨의 말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이 문이 가리키는 것은 세 가지예요. 하나는 한 소협이 약왕전에서 환상을 통해 보았다는 그 「문」. 마치 마경(魔境)의 입구와도 같은 모습이라 했으니, 이 문을 ‘마경문’이라고 호칭하도록 하지요.”


제갈민은 문이란 글자 옆에 [마경문(魔境門)] 세 글자를 썼다. 그리고 그녀는 그 바로 아래에 세 글자를 더 써넣었다. [무생문(無生門)]이란 글자였다.


“그리고 또 하나는 무생계(無生界). 더 정확히 따져보면, 무생계는 문이 열리면 도래한다고 하였으니 「문」 그 자체를 가리키는 말은 아닐 거예요. 하나, 백련교의 궁극적 목적이 무생계의 도래라고 한다면 상치(相値)되는 거라 봐야겠지요. 이건 무생문이라 호칭하겠어요.”


제갈민은 그 아래로 마지막 세 번째를 써넣으려다 잠시 득구의 얼굴을 흘깃, 쳐다보았다. 득구는 그녀의 시선에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마지막은 나 아닙니까?”

“맞아요. 이전까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는데··· 조금 전에 이해가 됐어요.”


다시 혼란스러워지려는 마음을 다잡고, 제갈민은 무생문의 세 글자 밑에 네 글자를 더 써넣었다. [득구(得求)], 그리고 [탐랑(貪狼)]. 한 획, 한 획을 꾹꾹 눌러 바닥에 새긴 제갈민은 눈을 가늘게 뜨고 글자들을 노려보며 설명을 시작했다.


“모든 조각을 손에 넣은 건, 사실 한참 전의 일이에요. 하지만, 그 조각들을 전부 끼워맞출 수 있게 된 건, 바로 조금 전의 일이에요. 그전에는 그것만큼은 도무지 확신할 수가 없었는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게 이해가 됐어요. 마치, 제 머릿속에 어떤 자물쇠가 잠겨있었는데, 갑자기 풀려버린 것처럼요. 다시 말하지만, 그 부분만큼은 저도 왜 그런지를 도무지 모르겠으니까 일단은 넘어갈게요.”


득구와 도종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제갈민은 설명을 이어 나갔다.


“단서는 두 가지예요. 하나는 백련성화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호법들로부터도 인정받은 성채 아가씨 그 자신.”


도종인이 손을 들었다.


“‘빙의’라는 특수한 수단을 가진 백련교의 입장에서, 혈연이란 게 의미가 있을 수 있겠는가?”

“저도 그 부분이 막혀 있었는데··· 거기에도 단서가 있었어요. 하나는 ‘발(魃)의 후예’란 호칭. 또 하나는 ‘단설(段雪)’이란 이름.”

“어··· 그건, 서동천이 놈이 울 아가씨를 불렀던 이름이잖아요.”

“눈송이(段雪)란 이름에 무슨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단 말인가?”


제갈민은 고개를 저었다.


“저도 단지 그렇게만 생각했었는데··· 앞의 글자는 이름이 아녜요. 성씨지.”

“성···?”


도종인의 눈이 확, 커졌다.


“천검, 단운(段雲)···!”

“분명 약왕전주는 우리에게 그녀가 천검의 딸이란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던 거예요. 그것도 백련성화의 혈통을 이어받은···!”

“그놈이, 그걸··· 알려주려 했던 거라고요?”


득구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물었다. 제갈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맞아요, 소협. 만약 소협이 기억하지 못했더라면 아무 의미 없이 지나가는 말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지금까지 그 세세한 내용을 전부 기억하고 있었기에 의미 있는 정보가 될 수 있었던 거예요!”


그게, 그런 의미였던가? 득구는 팔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확실히, 서동천이란 놈은 자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의도가 담겨 있다는 식으로 말을 하긴 했었다. 더군다나 지금 이해를 못 하겠다면 우선은 듣고 있으라며, 세세한 이야기까지 기억해둘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마치, 언젠가 제갈민에게 ‘자신의 말’을 전달할 날이 올 줄 미리 알았던 것처럼.


‘···설마.’


제갈민은 진지한 표정으로 숙고하는 득구의 얼굴을 흘깃, 쳐다보고서 말을 이었다.


“성채 아가씨는 자신을 ‘열쇠’라고 불렀다고 했지요? 그렇다는 것은, 그 열쇠로 열 문이 있다는 것이고─ 여기서 말하는 「문」이란 건 바로 그 서동천이란 작자가 지키려고 하는 「문」, 곧 ‘마경문’일 가능성이 높지요. 그리고 아마 그 문이 ‘열리면’ 곧 그것이 무생계로 통하는 문, ‘무생문’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매우 높다고 생각해요. 다시 말해, 마경문과 무생문은 사실상 같은 「문」이라는 뜻이지요. 다만···.”

“다만?”

“문의 이쪽과 저쪽에서 부르는 이름이 서로 다르다─ 이렇게 설명할 수 있겠네요.”


제갈민의 그 말에 도종인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문의 이쪽과 저쪽의 이름이 다르다···! 문의 이쪽과 저쪽이 서로 다르다? 잠깐, 그렇다는 것은··· 천검과 한 소협─ 아니, 탐랑이 「문」이란 것은···!”

“맞아요, 도 대협. 그게 제가 말하려던 것이었어요.”


득구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지만, 그의 태도는 전과 달랐다.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도종인과 제갈민이 하는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기억해두겠다는 표정으로, 진지하게 두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제갈민은 속으로 살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마도 백련교의 다른 ‘인령(因靈)’들은, 저 문 너머에 속한 존재들이겠지요. 거기서 넘어온 것인지, 아니면 이쪽에서 넘어간 자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현재로선 「문」의 이쪽이 아니라 저쪽에 속한 존재라고 보는 게 맞을 거예요. 하지만, 만약 ‘탐랑’이 이쪽 문과 저쪽 문을 서로 이어주는 문─ 아니, 일종의 「통로」라면···.”


꿀꺽, 득구는 목울대를 크게 움직이며 침을 삼켰다.


“‘탐랑’은 어떤 의미에서 이쪽에도, 그리고 저쪽에도 속하지만, 동시에 아무 데도 속하지 않는 존재라고도 볼 수 있겠죠.”


도종인은 확실히 깨달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동시에 ‘탐랑’이 이쪽과 저쪽을 연결해주는 문이자, 통로라면··· 당연히 그들이 가진 능력─ 곧 ‘문’의 저 너머로부터 흘러들어오는 ‘힘’의 수혜를 입을 수밖에 없는 존재겠지. 마치 백련교의 대호법들이 ‘삼제진경’을 통해 미지의 힘을 얻는 것처럼, 한 소협 또한 그동안 순간순간마다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힘을 얻어왔던 것이고.”


도종인의 직접적인 설명에 득구는 그제야 무언가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 말대로였다. 어느 순간마다, 득구는 자신에게 없었던 힘이 갑자기 솟아나는 경험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건 ‘열쇠’인 백련성화─ 곧 성채 아가씨가 곁에 있었던 순간일 테죠.”

“···아!”


득구는 깨달음의 탄성과 함께 주먹을 손바닥 위에 탁, 내리쳤다.


“···그렇군. 그 부분은 확실히 이해했다네. 허나 말일세.”


도종인은 미간을 잔뜩 웅크린 채 관자놀이를 짚었다. 표정이 그의 심경을 대변하고 있었다.


“자네 말이 다 맞다 치더라도, 아직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이 있다네. 천검이 한 소협 이전의··· 그래, ‘탐랑’이었을 것이라는 점을 포함해서, 왜 그 ‘탐랑’이란 존재가 백련교도들이 그토록 열고자 하는 ‘문’과 동일시되는가 하는 문제 말일세.”

“대협 말씀이 맞아요. 그 부분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긴 하죠. 사실, 약왕전주란 자도 그렇고, 아가씨를 포함해서 백련교도에 관한 가장 중요한 정보들은 여전히 수면 아래에 있죠. 애당초 수백 년짜리의 서사가 오가는 중이라고요! 누구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봐야죠. 작금의 상황에 우리가 계속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생각해요. 과정에 대해선 전혀 확인할 수 없고, 오직 결과만이 눈앞에 던져지는 상황의 연속 말예요.”


제갈민은 잠시 숨을 고르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니, 여기서 우리가 앞질러 가려면 다른 수가 없어요. 지금까지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가끔은 가능성에 목숨을 걸 배짱이 필요한 것 같아요.”


염천호가 처음 제갈민의 방식을 애송이의 방식이라 지적했을 때, 그녀는 그 지적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란 옛말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돌다리를 계속 두드리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그것 때문에 무너지는 일도 있는 법이다.


“상황이나 조건이 아니라··· 욕망. 그들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바라는가. 여기에 집중해야 해요.”

“욕망.”


두 사람이 제갈민의 말을 곱씹는 그때였다.


“대, 대협! 도 대협!”

“제갈 소저!”


멀리서부터 도종인과 제갈민을 부르며 달려오는 이들이 있었다. 사독파에 대한 정보를 얻으러 개방과 창영회에 갔던 발가락과 진채염이 돌아온 것이다. 두 사람은 뭐가 그리 급한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달려왔다.


“대, 대협! 헉, 보셨습니까?”

“제갈 소저도! 봤어요?!”

“뭘 본단 말인가?”


도종인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자, 두 사람은 숨을 헐떡이며 답답함을 감추지 못했다.


“저, 정말 못 봤단 말입니까? 정말요?!”

“헉, 어떻게··· 어떻게 그걸 못 봐요?”

“뭘 못 보는지 그냥 말을 해!”


답답해진 득구가 왈칵, 성을 내자 두 사람은 동시에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위에 뭐?”


고개를 쳐든 득구는 말을 잃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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