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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설란 님의 서재입니다.

족쇄를 벗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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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설란
작품등록일 :
2018.05.04 23:33
최근연재일 :
2018.08.08 19:00
연재수 :
70 회
조회수 :
10,481
추천수 :
74
글자수 :
395,495

작성
18.05.13 02:23
조회
205
추천
2
글자
12쪽

이별

DUMMY

눈을 뜨자 땅이 보였다. 사지를 지진 것 때문에 의식을 잃은 모양이다.


“리타님, 어떻게 합니까?”

“서둘러 흔적을 쫓아갑시다.”


희미한 듯 또렷하게 들리는 목소리. 들킬까 봐 숨을 죽였다.

이내 말발굽 소리가 들리더니 점차 멀어져갔다. 소리가 아예 들리지 않게 되자 몸을 뒤집었다.

비릿한 피 냄새. 벌써부터 파리가 꼬여 들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자 아까 있던 사람들은 급해서 그런지 몇 명만 대충 살펴본 모양이었다. 덕분에 안 걸렸던 거겠지.

그래, 소피는? 대피한 마을 사람들은?

일어서려 하다가 사지가 잘렸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빌어먹을.

대충 적당한 게 없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빌어먹을. 방법이 이것밖에 없나?

머리로 열심히 땅을 긁으며 시체가 있는 곳까지 기어갔다. 도달한 곳에는 시체에 꽂혀 있는 검 한 자루.

후. 후. 해야 한다. 그놈들한테 복수하기 위해서는 해야만 한다.

머리로 시체에 기대며 어떻게든 일어섰다.


“끅.”


지진 곳으로부터 통증이 왔다. 후. 후.

겨우 일어선 뒤 조금씩 비틀거리며 각도를 맞췄다. 그리고 체중을 이용해서 검을 향해 목을 들이밀었다.


“커...”


[부활하셨습니다.]


방금 전까지 튀어나오려던 비명은 부활함과 동시에 들어갔다. 부활하는 순간 모든 통증이 날아갔다.

떨어져 나간 내 발에 가서 주머니를 뒤졌다. 편지는 두 동강이 나 있었다. 내 마음처럼.

발길을 돌려 여관으로 향했다. 마을 주민들은 위급상황에서 여관으로 대피한다고 나탈리가 말해줬으니까.


“...”


하지만 여관 문을 열자 내 모든 기대가 박살이 났다. 하나같이 목이 베인 시체. 비릿한 피 냄새가 한층 진해졌다.

우리 마을의 유일한 아이였던 폴과 헬레나, 우리 마을의 약사였던 소피, 소피 옆에 있는 한스. 우리 마을에서 농사를 지었던 여성들, 가축을 길렀던 여성들, 모두가 목이 베여있었다.


“하, 하하.”


울고 싶었다. 울고 싶었는데, 눈물이 나오질 않았다. 왜 이럴까.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아까 있었던 사람들이 누군진 모르겠지만 그 단장이라는 놈을 쫓아갈 테니 다시 여기 오기까진 시간이 걸리리라.

도구를 챙기고 마을에 있던 수레에 마을 사람들의 시체를 조심스레 실었다. 그리고 숲속 무덤까지 운반했다. 양이 많아 몇 번을 왕복해야 했다.

그리고 무작정 땅을 팠다. 마을의 무덤은 모두가 묻히고도 남을 만큼 공간이 많았으니까, 난 그저 적당히 땅을 파면 됐다.

파다 보니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파졌다. 어이가 없었다. 이리도 마음이 아픈데, 누군 몇 날 며칠을 식음을 전폐한다던데 나는 고작 땅 조금 팠다고 벌써 음식을 원했다.

나에 대한 혐오감이 가득 올라왔다. 난 어차피 죽지를 않는데, 차라리 내가 미끼가 되었으면 조금은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내가 참을 수 없어 허리춤에 찼던 단검을 목에 쑤셔 박았다.


“꺽. 억.”


[부활하셨습니다.]


몸에 활력이 솟았다. 다시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살을 몇 번쯤 하자 모두가 들어갈 무덤이 생겨났다.

비록 관은 없었지만 나는 한 명씩, 한 명씩 조심스레 묻어주었다. 물론 한 마리도. 그렇게 묻어주자 어느새 나와 친하던 인물만이 남았다. 무의식적으로 피했던 걸까.


폴, 차였었지만 그래도 넌 용기 있는 놈이야. 난 고백조차 안 했거든.

헬레나, 씩씩하던 아이. 편히 쉬어라.

리노, 당신의 음식 솜씨는 최고였어요. 당신은 최고의 신랑감이었어요.

스벤, 여태 우리를 이끌어줘서 감사했어요.

소피, 너 내 이름 가지고 너무 많이 놀렸어.

마르코, 당신은 정말 좋은 친구였어요.

카를로, 너의 무용담은 정말 대단했어. 넌 정말 대단한 놈이야.

에밀, 네 노래는 내 마음을 쓰다듬어줬어. 정말 고마워.

대장. ........


그들을 묻어주려고 삽을 들었다.


-툭. 툭.


그때, 흐르지 않았던 눈물이 흘렀다.


.......


얘들아, 아저씨라고 불러도 되니까 눈 좀 떠봐.

리노, 애인 구하고 싶다는 푸념 많이 들어줄 테니까 말 좀 해봐요.

스벤, 같이 밥 한번만 더 먹어요.

소피, 내 이름 가지고 놀려도 되니까 한 번만 더 놀려줘.

마르코, 플로라한테 다른 비상금 숨겨둔 거 말하기 전에 일어나요.

카를로, 목욕 좋아했잖아. 목욕하러 가자.

에밀, 내 웃긴 노랫소리 듣고 싶지 않아? 얼마든지 해줄 테니까 빨리 비웃어줘.

대장, 같이 대련하자. 같이 순찰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자, 응? 그 당당한 미소 한 번만 더 보여줘. 대장, 나탈리. 널 사랑해. 나 고백할 테니까 눈 한 번만 떠줘. 제발. 제발.


“제발....... 끅. 윽. 흑. 흑.”


* * *


그저 한참을 울었다. 결국 눈물은 멈췄다. 하지만 내 마음은 개운한 게 아니라 허전했다. 그들을 잃고 나서야 나는 그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실감했다.

남은 사람들도 다시 묻어주었다. 나탈리는 디에고의 옆에 묻어주었다. 서로 화해는 했겠지.

모든 정리를 다 하고 칼로 적당히 큰 돌에 이름을 새겨 묘비를 다 만들어주었다. 물론 중간에 밤이 되었지만, 횃불을 켜서 작업을 계속했다. 나는 지치지 않으니까.

몇 번 더 죽고 나서야 모든 묘비를 다 세워줄 수 있었다. 편지는 나탈리의 묘비 앞에다가 두었다. 답장을 받고 싶었는데.

어느새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풀에 맺힌 이슬을 맞으며 마을로 돌아왔다.

우선 스벤의 집에 가서 내 옷과 모포 몇 장을 챙겼다. 그리고 여관으로 가서 저장식품과 물을 챙기고 나왔다. 마지막으로 좀 전까진 스벤이 사용했던 디에고의 집으로 갔다.

문을 열어 탁자로 가자 여러 문서가 보였다. 주로 세금과 관련된 것들. 좀 읽어보니 데쿠스 왕국으로 보내는 세금이었다.

의아함을 느끼다가 지도를 보자 이해할 수 있었다. 마르코는 우리의 마을이 세 나라의 경계에 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데쿠스 왕국의 영토였다. 아슬아슬하게 걸쳐있긴 했지만.

좀 더 찾아봤지만 다른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지도와 돈만을 챙기며 밖으로 나왔다.

비록 그들을 떠나보냈지만, 기억할 수 있는 물품 하나씩은 챙기기로 했다. 카를로에게서 반지를. 에밀은 항상 읽던 동화책을. 나탈리는 내가 줬던 초승달 머리핀을.

그리고 건틀렛을 다시 끼고는 마을을 나섰다. 목적지는 카를로가 말해줬던 테네벨. 데쿠스 왕국 변두리에 있는 테네벨의 지부였다.


* * *


마을에서야 신분증 없이도 잘 살았지만, 마을에 들어가려면 신분증이 필수였다. 때문에 나는 브로커부터 찾아야 할 판이었다. 우선 이 산맥을 넘고 나서.

며칠이 지났을까. 야영을 하려고 대충 불을 피우려고 해봤는데 못 피웠다. 빌어먹을. 그냥 대충 나뭇잎을 모아서 몸에 덮었다. 동사하더라도 살아나니까 상관없겠지.


......


“헉! 헉. 헉. 헉.”


빌어먹을. 심장이 터질 듯이 뛴다. 꿈에서 또 한 번 나탈리의 목이 날아갔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하아. 잠을 자기는 글렀다.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다시 걸었다.


* * *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뜨며 걸었다.


-부스럭.


그때 옆쪽에서 들리는 소리에 잠이 확 깼다. 나는 긴장하며 배낭을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크아!


풀을 헤치며 튀어나온 것은 내 1.5배는 되어 보이는 키에 우람한 근육, 그리고 그것을 덮고 있는 새하얀 털을 가진 마수였다.


-쾅!


마수가 나를 향해 찍어 내린 주먹을 피했는데도 땅에 울린 충격 때문에 비틀거릴 정도였다. 무릎을 차려고 했지만 너무 높아서 빠르게 마수의 발을 찍었다.

마수는 아주 멀쩡한 듯 오른 주먹을 휘둘렀다. 몸을 숙여 그것을 피했다. 위에서 들려오는 공기를 가르는 소리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마수의 복부에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별로 반응은 없었다.

마수가 다시 주먹을 내리찍었다. 그것을 옆으로 몸을 날려 피했다. 재빨리 자세를 바로잡고 다시 달려가 마수의 사타구니를 가격했다.


-크어어!


아파하는 마수가 발광했다. 그러다 마수의 눈먼 발길질에 채였다.


“컥!”


내 몸은 부웅 떠서 날아가다 나무에 부딪혀 떨어졌다. 덕분에 갈비뼈랑 허리가 동시에 나간 것 같았다.

마수는 잔뜩 흥분한 듯 그 몸을 쿵쿵거리며 나에게 달려와 나를 움켜쥐었다.


“크헉!”


폐에 있는 산소가 쥐어짜지며 밖으로 튀어나왔다. 엄청난 통증에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부활했습니다.]


희미해졌던 의식이 다시 또렷해졌다. 날 붙잡고 있는 마수의 손을 있는 힘껏 내리쳤다.


-크아아!


아픈 듯 손을 놓는 마수. 또다. 잠깐 사라졌었던 힘이 다시 생겨난다. 지금이라면 될 것 같아 마수의 발을 짓밟았다.


-콰직.


마수의 발이 납작해지며 내 발에 피가 묻었다. 아픈 발을 붙잡는 마수의 손을 밟으며 내려온 마수의 관자놀이를 가격했다.

비틀대는 마수. 살짝 내려간 마수의 무릎을 돌려차기로 꺾은 뒤 쓰러지는 마수의 턱을 오른 주먹으로 친다.

마수의 날카로운 어금니가 몇 개 떨어져 나갔다. 쓰러진 마수의 목을 깔고 앉아 눈에 손을 찔러 넣어 터트린다. 그 뒤에 마수의 턱에 손을 집어넣어 위아래로 찢어놓았다.


“헉. 헉. 헉.”


그 일련의 과정이 끝나자 다시 몸에서 힘이 빠졌다. 혹시나 싶어 마수를 내려다보았다. 거의 다 뜯어져 덜렁거리는 마수의 턱. 터진 두 눈알.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흉부.

건틀렛을 마수의 가슴에 박아넣었다. 굉장히 질긴 가죽 때문에 잘 들어가진 않았지만 부술 듯 내려찍으니 몸이 뭉개지며 손이 들어갔다.

그렇게 찔러넣어 심장 부위를 대충 휘적이니 딱딱한 게 걸렸다.

어둡게 빛나는 돌. 이게 마석. 조용히 그것을 집어서 대충 피를 닦고 배낭에 집어넣었다. 가죽을 벗길 도구가 없으니 이 정도만 챙겨야지.

배낭에서 헝겊을 꺼내 대강 피를 닦은 뒤 다시 걸었다. 슬슬 숲을 벗어나고 있었다.

어느 정도 더 걷자 사람이 많이 걸은 흔적이 남아있는 길이 나왔다. 그 길을 따라 걸으니 돌담에 둘러싸인 마을이 보였다.

돌담에 나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 카를로의 말대로 마을에 있는 집 중 한 곳에 일정한 리듬으로 노크를 했다. 잠시 후 문을 열리고 그 안에 있던 수염이 가득 난 사내가 말했다.


“빨리 들어오쇼.”


사내의 말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가자 사내는 재빨리 문을 닫았다.


“형씨, 용건은?”

“라스 성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반말을 하는 이유는 별거 없었다. 그저 존댓말을 하면 사내가 호구 잡듯이 돈을 더 요구한다고 카를로가 얘기했기 때문이다.


“아, 그쪽이요? 성 안으로 가는 건 좀 비싼데 잘 알고 계시지?”


아무 말 않고 카를로에게 들었던 가격에 맞춰 돈을 주었다.


“켁. 겨우 요거? 우린 뭐 먹고 살라고? 이건 거의 3년 전 가격이구만. 좀 더 주셔야겠는데.”


3년 전 가격? 카를로가 은퇴한 지 3년이 된 건가?

적당히 가격을 더 얹어주자 그제야 사내가 만족한 듯이 웃었다.


“흐흐. 고맙습니다, 손님. 따라오시죠.”


사내를 따라가자 탁자 위에 여러 종이가 흩어져있었다.


“음, 이건 안 되고, 이것도 지났고. 오, 이거 좋네.”


사내는 종이를 몇 개 뒤적거리더니 이내 적당한 걸 찾은 듯 읽더니 내게 말했다.


“우리랑 계약한 토마스 상단이 3일 뒤에 오니까 그때 저한테 오시면 됩니다.”


사내는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에서 패를 하나 꺼냈다.


“이건 일종의 보증이니까 들고 계십시오. 아, 그리고 꼭 씻고 오시고. 꼴이 말이 아니시네.”


사내의 말대로 내 몸은 피가 때처럼 묻어 매우 더러웠다. 조용히 패를 받고 집 밖으로 나왔다. 숙소에 대해선 물어보지 않았다. 어차피 잘 수 없을 테니까.

적당히 걸어 돌담 쪽에 자리를 펴고 돌담에 몸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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