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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설란 님의 서재입니다.

족쇄를 벗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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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설란
작품등록일 :
2018.05.04 23:33
최근연재일 :
2018.08.08 19:00
연재수 :
70 회
조회수 :
10,465
추천수 :
74
글자수 :
395,495

작성
18.05.09 00:33
조회
194
추천
2
글자
8쪽

떠나는 이

DUMMY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눈을 떴다. 어느덧 이 마을에 온 지도 두 달째. 매일 들리는 새소리가 오늘은 어째 구슬프게 들렸다.

옆에 놓인 탁자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날 이후 스벤은 리제의 흔적을 하나 둘 지워갔다. 다만, 소피와 대화를 나눈 뒤로 액자 하나만은 남겨두었다.

적당히 아침을 먹고 기지로 가서 나탈리와 대련을 한다. 그 뒤 늘 하던 순찰을 한다. 나탈리는 대련 때 잠시 빼놨던 머리핀을 다시 머리에 꽂았다. 고맙게도 나탈리는 늘 머리핀을 해주었다.

그렇게 마을을 걷던 우리 앞에 디에고가 보였다. 디에고를 발견했는지 표정이 약간 굳는 나탈리. 그런 나탈리를 보면 절로 쓴웃음이 지어졌다.

그래도 인사라도 하려고 살짝 속도를 높인 찰나, 디에고의 발걸음이 불안정해졌다. 불안한데.

위태위태하게 비틀대던 디에고는 결국 쓰러져버렸다. 그런 디에고를 살피러 뛰어가는 나보다 더 빨리 디에고에게 달려가는 사람이 있었다.


“할아버지!!”


* * *


재빨리 디에고를 집으로 옮긴 우리는 소피를 데려왔다.


“몸이 전체적으로 많이 약해지셨어요.”


그 이상은 소피도 알기 어려운지 약간의 약만을 지어줬다. 소피는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말을 전하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는지 돌아갔다.

나탈리는 굳은 표정으로 디에고를 보더니, 나에게 잠시만 디에고를 봐달라고 하며 밖으로 나갔다. 그녀의 발걸음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다.


“한스.”

“정신이 드십니까, 디에고?”

“사실 좀 전부터 깨어있었네.”

“그러셨군요.”


담담한 내 표정을 보던 디에고는 이내 목이 마른지 말을 꺼냈다.


“물 좀 가져다주겠나?”


그의 요청대로 물잔에 물을 부어 가져다주었다. 물을 마신 디에고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나 또한 조용히 수건으로 그의 얼굴에 있는 땀을 닦아주었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그저 그렇네.”


그렇게 묵묵히 땀을 닦아주고 있는데 돌연 문이 열렸다. 피에르였다.


“자리 좀 피해 주겠나?”


여태 들어본 적 없던 오연한 목소리에 담겨 있는 강압적인 태도.


“자리 좀 피해 주게, 한스.”


잠시 피에르를 쳐다보고 있던 내게 디에고가 축객령을 내렸다. 묵묵히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밖에 서서 기다린 지 5분쯤, 어딘가로 갔던 나탈리가 돌아왔다.


“한스? 왜 나와 있어? 촌장님은 어쩌고?”

“피에르가 찾아왔어.”


그 말을 들은 나탈리의 표정이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 나탈리는 그대로 디에고의 집으로 들어갔다. 성난 나탈리의 소리와 그에 맞서는 피에르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들리지 않게 디에고의 집에서 조금 더 떨어졌다.

하늘 위로 지나가던 구름을 몇 개나 세었을까.

문이 열리며 피에르가 나왔다. 그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날 쳐다보지도 않고 어딘가로 가버렸다.

잠시 뒤 나탈리가 나왔다.


“.......촌장님을 부탁해.”


나탈리 또한 그 말만을 내뱉은 채 어딘가로 가버렸다. 나탈리의 부탁대로 디에고의 집으로 들어갔다.

불과 몇십분밖에 지나지 않았을텐데, 디에고의 얼굴은 그전에 비해 매우 피곤해져 있었다.

살며시 그의 옆에 앉아 그의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었다.


“고맙네.”

“아닙니다.”

“한스.”


전에 없던 강렬한 목소리를 내는 디에고. 그의 녹색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나탈리의 머리에 있던 머리핀, 자네가 준 건가?”

“그렇습니다.”

“그런가....... 평생 치장 하나 않던 아이였는데.”


잠시 망설이던 디에고는 이내 말을 내뱉었다.


“나탈리는 내 손녀일세.”

“그랬군요.”


너무 평범한 내 대답에 디에고가 헛웃음을 지었다.


“한스, 자넨 정말....... 아닐세. 마저 얘기하지.”


디에고는 잠시 물로 목을 축인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처음부터 그 아이와 사이가 나빴던 건 아닐세. 오히려 좋은 편이었지. 그 짓만 하지 않았더라도.”

“모르겠네. 나로선 옳다고 생각하던 일을 행했는데. 그게 왜 이렇게 되어버렸는지는 모르겠네.”

“어느 순간 난 사람을 그저 톱니바퀴로만 생각하더군. 당연히 그 아이는 나를 경멸하겠지.”

“늦었지만 나도 이런 일에 환멸을 느꼈네. 그래서 다 그만두고 이곳에 자리 잡았지.”

“그 짓만, 그 짓만 하지 않았더라면.”


처음엔 나를 향해 얘기하던 디에고는 어느 순간, 더 이상 나에게 얘기하지 않았다. 비록 그는 사과의 말은 단 한마디도 내뱉지 않았지만, 나는 그가 그 누구보다 간절하게 용서를 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쉬십시오, 디에고.”

“그래, 그래.”


허공을 향해 횡설수설하던 디에고에게 말했다. 이내 디에고의 숨결이 안정된 것을 느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늘의 구름이 내 마음처럼 흔들렸다.


* * *


그날 저녁, 나탈리는 마을 밖에서 의사를 데려왔다. 하지만 별 방도는 없었다.


“노쇠하셔서 그런 겁니다. 별도리가 없습니다.”


디에고는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가 하던 일은 스벤이 맡게 되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일상을 살아야 했기에, 주어진 일을 계속해나갔다. 다만 나탈리는 생각에 잠겨 멍해져 있는 순간이 많아졌다.

항상 즐겁던 그녀와의 순찰도, 그녀의 말이 줄어듦에 따라 놀랍도록 차갑게 식어버렸다. 덕분에 나는 어릴 적 먹었던 군것질거리까지 낑낑대며 기억해내서 나탈리에게 말해주었다. 어느새 말을 하는 사람은 나탈리에게서 나로 바뀌어있었다.


“어릴 때 젤리를 먹어봤었는데.......”

“어.”

“이런 아이스크림은 먹어봤어?”

“응.”


이런 식이었다. 그녀의 혼이 어딘가로 빠져나가 있는 듯한 느낌.

그녀는 어떤 생각을 할까.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이런 얘기를 꺼내도 되는 걸까. 안다. 분명 이건 주제넘은 짓이겠지. 하지만 가끔은 주제넘은 행동이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다.

더 이상 무의미한 대화는 그만하기로 했다. 살포시 나탈리의 양어깨를 붙잡았다.


“한스......?”

“대장.”

“왜, 왜 그래?”


내가 무슨 표정을 하고 있을까.


“디에고. 병문안 가지 않을래?”

“.......”


살짝 돌아왔던 나탈리의 표정이 다시 굳는다.


“내가 왜 촌장님을.......”

“촌장님이니까.”


그녀는 무슨 말을 하려다 입을 닫았다.


“마을의 일원으로서 가봐야 하지 않겠어?”

“.......”

“내가 가고 싶어. 같이 가줘.”

“.......”


나탈리는 요지부동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어쩌면 사이가 틀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필요하리라. 분명.


“나탈리.”


나탈리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 그녀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녹색 눈을.


“디에고의 손녀.”

“너......!”

“안가면 분명 후회할 거야.”


나탈리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고민에 잠겼다. 나는 그녀가 생각을 정리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알았어. 가자.”


조용히 걷는 나탈리의 뒤를 따라 걸었다. 문을 열고 디에고의 집에 들어가자, 매우 수척해진 디에고가 보였다.


“누군가......?”


모기만 한 목소리. 그게 그의 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디에고는 나탈리를 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나는 살며시 나탈리의 등을 밀어주었다.


“갔다 와. 대장.”


그 말을 끝으로 디에고의 집을 나왔다. 잘한 걸까? 모르겠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나탈리가 문을 열고 나왔다. 그녀의 얼굴은 매우 무표정했다.


“사람들을 불러줘, 한스.”


매우 굳은 목소리.


“대장?”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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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생활 18.05.06 291 3 9쪽
6 정보 확인 18.05.06 263 3 7쪽
5 대련 18.05.06 271 5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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