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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설란 님의 서재입니다.

족쇄를 벗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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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설란
작품등록일 :
2018.05.04 23:33
최근연재일 :
2018.08.08 19:00
연재수 :
70 회
조회수 :
10,519
추천수 :
74
글자수 :
395,495

작성
18.05.10 23:55
조회
188
추천
3
글자
7쪽

평화로운 일상

DUMMY

“흐아아~.”


카를로의 늘어진 소리가 들린다.


“목욕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야.”

“그래?”

“그럼. 유적 하나 발굴하려고 하면 수개월은 기본으로 유적에서 노숙해야 하는데, 당연히 물자 아끼려고 목욕도 거의 못 하지. 너도 그 짓을 한번 해보면 목욕이란 행위에 감사하게 될걸?”


하루 중 한번은 씻을 수 있는 우리들에게 목욕탕은 일종의 사교장의 역할을 했다. 덕분에 카를로의 온갖 흥미진진한 모험담을 다 들을 수 있었다.


“한스, 너도 뭔가 좀 말해봐.”

“뭘?”

“과거 얘기라던가.”


과거라.


.......

.......


“숲속에서 살았다고 얘기해 줬잖아?”


당연히 엉뚱한 얘기를 할 순 없었으니, 대충 숲속의 오두막에서 할아버지랑 같이 살다가 할아버지가 타계해서 다른 마을을 떠도는 청년이라는 적당한 설정 하나를 모두에게 말해줬다.


“그런 것 치고는 사냥도 뭐도 못 하잖아.”

“할아버지가 워낙 날 아끼셨거든. 손에 물도 못 묻히게 하셨어.”

“그래?”


다 안다는 듯 끄덕이는 카를로. 그는 지금까지 그랬듯이 나의 서툰 거짓말을 넘어가 주겠지.


“한스.”


유쾌한 카를로에게서 보기 드문 진지한 눈.


“...왜?”

“넌 신기한 놈이야.”

“그거 칭찬이야, 욕이야?”

“칭찬.”


그 말을 끝으로 카를로는 목욕을 다시 즐겼다. 그걸 보고 나도 목까지 물에 담그며 다시 목욕을 즐겼다.


“한스, 하나 물어봐도 될까?”

“그래.”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뭘까?”


갑자기 철학적인 질문이라니. 정말로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이라면. 당연히.


“인연.”

“그런가.”


그 말을 들은 카를로의 얼굴은 무척이나 쓸쓸해 보였다. 순간 내 말문이 막힐 정도로.


“슬슬 나갈까?”


이내 그는 다시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조금 전의 카를로의 표정을 봐서일까, 여태 보이지 않았던 어색함이 느껴졌다.


“그래.”


먼저 나가는 카를로의 등에 보이는 많은 흉터가 눈에 밟혔다. 가만히 그것을 보다 나도 밖으로 나갔다.


* * *


밖으로 나오자 카를로가 잠시 집에 들렀다 오겠다며 기다려달라고 했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기다렸다.

혼자 있게 되자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늘 들었던 생각이지만, 난 언제까지 여기 있게 될까. 여긴 대체 뭘까. 여긴.......


.......

.......


그래, 불안한 생각만 해봤자 좋을 것 없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 그래.

다시 마음을 다잡고 있으니 목욕탕에서 에밀이 나왔다.


“빠르네.”


가만히 날 쳐다보는 에밀. 여전히 무표정했다.


“노래.”

“윽. 꼭 지금 해야 돼?”


단호히 고개를 끄덕이는 에밀. 그날 밤 이후로 종종 에밀을 밤에 마주치며 여러 흥얼거림을 들었고, 에밀은 그중 몇 개를 가르쳐주었다.

머뭇거리며 그때의 그 멜로디를 최대한 따라 했다. 내가 듣기에도 그다지 좋지 못한 실력.

아니나 다를까 에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살짝 경련하는 에밀의 얼굴 근육.

매번 이랬다. 비웃는 건 아닌데, 웃기는 한다.

노래를 멈추며 한숨을 쉬었다.


“계속.”

“어?”


언제 웃었냐는 듯 얼굴을 굳히고 단호하게 얘기하는 에밀.


“계속.”


그래놓고 노래를 다시 시작하면 또 웃는다. 그래, 실컷 웃어라. 평소에 안 웃으니까 이런 거로라도 웃어야지.

한 일곱 곡쯤 불렀을 때, 드디어 나탈리가 나왔다.

드디어 끝이다. 에밀의 표정이 묘하게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카를로는?”

“잠시 집에 들렀다 온다는데?”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저 멀리서 카를로가 오고 있었다.


“가자.”

“응.”


먼저 가는 나탈리의 물기를 머금은 붉은 머리칼이 밝게 빛나는 걸 보며 따라갔다.


* * *


여관으로 가자 마르코가 먼저 와있었다.

적당히 인사하고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오늘은 마르코가 자신이 한 이벤트를 말해줬다.


“그날 밤에 아껴뒀던 포도주를 꺼내서 둘이서 조용히 마셨지. 적당히 때를 봐서 한스 네가 알려준 대로 한쪽 무릎 꿇고 반지를 척 건네주니까, 플로라 눈시울이 붉어지더라고. 난 플로라가 우는 건 처음 봤어.”


마르코의 이벤트는 성공적이었다. 참고로 폴은 어땠냐면.

슬쩍 헬레나를 보자 목에는 아무것도 걸려있지 않았다. 그녀가 말하길 이런 건 너무 부담스럽다나? 친구로 남자고 했단다.

풀이 죽은 모습의 폴을 보며 폴의 실연에 대한 애도의 의미로 한 모금 더 삼켰다. 씁쓸하네.


“한스.”

“어? 왜?”


나탈리가 잠시 화장실을 가자 카를로가 말을 걸었다.


“넌 나탈리한테 언제 고백할 거야?”

“어...?”


하마터면 뿜을 뻔했다.


“갑자기 왜 그래?”

“슬슬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해서.”

“조금 더 있다가.”


지금 나와 나탈리의 관계는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이었다. 하지만 난 좀 더 이 거리감을 유지하고 싶었다. 내가 그녀에게 느끼는 이 감정이 빠르게 식을까봐. 조금만 더 천천히 다가가고, 이 감정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싶었다.


“한스, 그랬다간 늦을걸.”


옆에서 잠자코 듣고만 있던 마르코가 첨언했다.


“너무 질질 끌다간 늦을 거야.”

“알았어요. 그럼 준비해볼게요.”

“그래.”


그때 나탈리가 돌아와 다시 우리는 술잔을 기울였다.


* * *


술자리를 파하고 다들 집으로 돌아가는데, 카를로가 잠시 나를 따로 불렀다.


“무슨 일이야?”

“자.”


카를로가 품에서 건넨 것은 카드였다. 조커 그림이 그려진 카드.


“이게 뭐야?”

“추천장.”

“무슨 추천장?”

“내가 있던 길드의 추천장이야.”


예전에 스벤도 그렇고, 왜 이렇게 뭘 못 주려고 해서 안달이 난 걸까. 그런 내 표정을 봤는지 카를로가 말했다.


“넌 평생 이 마을에 있을 거야?”

“음, 모르겠어.”

“예전이었다면 모를까, 지금이라면 아마 나탈리는 곧 마을을 떠날 거야.”

“그래? 역시 그럴까?”

“응.”


나탈리에게 많은 비밀이 있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녀가 말해준 많은 이야기들은 평민이라면 상상도 못 할 경험이 담겨있었으니 당연히 싫어도 알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가 디에고가 죽고 난 뒤에 그의 흔적이 가득한 이곳에서 계속 마음이 흔들리는 것도, 그녀의 과거가 조금씩 찾아올 것이란 사실도 알고 있었다. 모른 척하고 싶었지만.


“그래서 주는 거야. 도움이 될 테니까.”


그러면서 카를로는 길드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정보 길드 테네벨. 오직 추천으로만 회원을 받는 곳. 세상의 웬만한 정보는 테네벨을 거쳐 간다.

그는 그런 테네벨의 접촉 방법과 암호문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고마워.”

“아냐. 응원해주고 싶어서.”


카를로의 눈이 우수에 잠겼다. 그가 무슨 마음에서 이것을 주었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아 조심히 카드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카를로는 다른 말은 하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다가 나도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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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정보 확인 18.05.06 263 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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