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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설란 님의 서재입니다.

족쇄를 벗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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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설란
작품등록일 :
2018.05.04 23:33
최근연재일 :
2018.08.08 19:00
연재수 :
70 회
조회수 :
10,433
추천수 :
74
글자수 :
395,495

작성
18.05.07 23:55
조회
207
추천
2
글자
9쪽

달밤에

DUMMY

술을 그렇게 마시고 나니 밤에 잠이 오질 않았다. 어쩌면 그것 때문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침대에서 일어나 무심코 책상 위에 놓인 액자를 보았다. 뒤엎어진 액자. 나도 모르게 액자를 바로 세웠다.

액자에 찍힌 건 소피의 가족사진. 분명 마도사의 마도구로 비싸지만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했던가. 리제는 검은 장발에 검은 눈이었다. 이렇게 보니 소피가 리제를 많이 닮았다. 코와 입은 빼닮았고.

액자 옆에 놓인 책은 약초에 관한 책이었다. 그 외에 따로 공부한 흔적이 보이는 노트. 그것들을 적당히 보다가 왠지 마음이 싱숭생숭해져서 방문을 열고 나왔다.

거실로 나오자 스벤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앞에 있는 맥주를 보니 가볍게 한잔하시나 보네.


“어디 나가나?”

“아, 예. 바람 좀 쐴 겸.”

“너무 늦지 않도록 하게.”

“네. 다녀올게요.”


밖으로 나와 무작정 걸었다. 찬 바람을 쐬니 머리가 좀 식혀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걷고 있었더니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노래라고 해야 할지 가사가 없는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거였지만, 잘 때 종종 귓가에 희미하게 들려오던 소리기도 했다.

멜로디를 향해 발이 절로 움직였다. 도착한 곳은 스벤의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벤치. 그곳에 에밀이 앉아있었다.

방해하긴 싫어서 살며시 지나치고 있는데 갑자기 노랫소리가 끊겼다. 고개를 돌리다 에밀과 눈이 마주쳤다. 무표정한 게 살짝 무서웠다.


“안녕......?”


그제야 만족한 듯 다시 노래를 부르는 에밀. 그걸 잠시 쳐다보다가 슬슬 돌아갈까 생각해 발을 돌렸더니 노래가 또 멈췄다. 어쩌라구.

뒤돌아보자 에밀이 자기 옆자리를 살포시 두드렸다. 지시받은 대로 얌전히 옆자리에 가서 앉았다.

조용히 눈을 감고 에밀의 노래를 감상했다. 발랄한 노래. 흥겨운 노래. 서글픈 노래. 듣다 보면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느낌이 들었다.

실컷 노래를 부른 에밀은 개운해졌는지 노래를 멈췄다. 감았던 눈을 뜨고 에밀을 쳐다보자 에밀 또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잘 들었어.”

“-- --”


굉장히 능숙하게 말하는 에밀. 다만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는 아니었다.

이해를 못 한 내 표정을 본 에밀은 가만히 있다가 이내 말을 내뱉었다.


“고마워.”


처음 듣는 감사 인사. 놀란 내 표정을 봤는지 에밀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무슨 노래였어?”


내 말을 들은 에밀은 고개를 들어 달을 쳐다보았다.


“.......어머니.”


어머니에 대한 노래일까. 아니면 어머니가 가르쳐준 노래일까. 난 에밀의 표정을 보다가 늘 했던 말을 또 입에 담았다.


“그렇구나.”


에밀이 쳐다본 달을 나도 쳐다보았다.

그렇게 잠시간 달을 쳐다보던 에밀은 고개를 까닥이곤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 에밀의 뒷모습을 보던 나도 집으로 돌아갔다.

집 문을 열자 나갔었을 때 그대로 스벤이 앉아있었다. 늘어난 것은 액자 하나.


“자네도 한잔할 텐가?”


아무 말 없이 날 보던 스벤은 술을 권했다. 솔직히 술기운이 남아있긴 했지만 거절할 분위기는 아닌 듯싶어 조용히 자리에 앉아 스벤이 내미는 맥주를 받았다.


“달이 참 밝군.”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던 스벤은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네요.”


보름인지 활짝 만개한 달은 환하게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운치 있는 달은 그것만으로 훌륭한 안주였다.

한동안 우리 둘은 말없이 술을 마셨다. 스벤의 한쪽 손은 탁자에 놓인 액자를 만지고 있었다.


“자네가 머무는 방. 실은 내 아내의 방이었네.”

“그렇군요.”


담담히 수긍하는 날 보며 스벤은 쓴웃음 지었다.


“알고 있었던 모양이군.”

“네, 우연찮게.”


그 말을 하고 스벤은 또 한동안 달을 보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러던 스벤은 눈길을 액자로 돌리며 말을 꺼냈다.


“내 아내, 리제는 약사였네. 소피도 종종 아내를 도와주곤 했지.”


스벤의 눈이 우수에 잠겼다.


“그런데 아내한텐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병이 있었네. 마나 희소증이었지. 마법사 말로는 체내에 있는 마나가 남들보다 적다더군.”

“거기까진 문제가 되지 않았네. 문제는 마나 희소증 때문에 유발되는 합병증이었지. 마나 고갈.”

“아내의 몸은 날이 갈수록 나무처럼 딱딱하게 굳어갔네. 점점 눈을 뜨고 있는 시간이 적어졌고, 나중 가선 말도 못 하더군.”

“나도 나름 돈은 꽤 있었네. 근데 그게 무슨 소용이겠나? 그 희귀하다는 마법사도 못 고치는 병인 것을.”

“결국 리제의 바람으로 마지막은 한적한 시골에서 살기로 했네. 그게 이 마을이었지.”


스벤은 그저 담담히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그는 내게 그가 평소에 마음속에 담아두던 얘기를 쏟아내었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런 아내의 흔적을 남겨놓은 것은 일종의 아집이었네. 소피는 그런 날 보며 힘들어했지.”


그 말을 한 스벤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더니 말을 이었다.


“어쩌면, 이제는 보내줄 때인지도 모르겠어.”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결심으로 그 말을 꺼냈는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알 수 있는 건, 내가 끼어들 일은 아니라는 것.

돌연 묵묵히 얘기를 듣던 나에게 스벤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건넸다. 어떤 문양이 새겨진 패였다.


“시답잖은 얘기를 들어줘서 고맙군. 그건 보답일세.”

“이건.......?”

“내 친구 중에 마법사가 있지. 그 친구가 나한테 빚이 있네. 그걸 보여주면 무슨 일이든 한번 도와주기로 했지.”

“아저씨, 이걸 왜 저한테.......?”

“그냥 받아두게. 난 쓸데도 없으니. 그 친구 이름은 알마. 그 친구는 데쿠스 왕국에 있네.”


그 말을 끝으로 스벤은 탁자를 치우더니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복잡한 문양이 새겨진 패를 쳐다보다가 주머니에 넣었다.


* * *


조만간 온다던 상단은 아직까지 오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조만간과 나탈리의 조만간이 다를지도 모른다.

오늘도 기지에서 나탈리와 대치하고 있었다. 요즘 들어 나탈리의 움직임을 쫓을 수 있게 되었다. 매일 단련하는 보람이 있었다. 오늘은 이길 수 있지 않을까?

나탈리는 목검을 들고 자세를 잡고 있었다. 나는 팔꿈치까지 오는 가죽 건틀릿을 차고 있었다. 룰은 목검이 건틀릿 외의 부분에 닿으면 죽는 걸로 친다.

빈틈을 찾으려고 해봤지만 틈 하나 없는 나탈리. 탐색은 포기했다.

서로 쳐다만 보다 나탈리가 먼저 달려들었다. 가볍게 검을 찌르는 나탈리.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피한다.

나탈리는 내가 피한 걸 보자마자 날을 세워 횡으로 휘둘렀다. 왼팔로 검을 막고, 맞는 순간에 왼팔을 살짝 비틀어 충격을 줄인다. 그 뒤 있는 힘껏 왼팔로 검을 쳐낸다.

살짝 떠오른 나탈리의 오른팔을 보며 나탈리의 품으로 파고들어 나탈리의 턱을 노리고 주먹을 내지른다.

그러자 나탈리는 검을 놓고 허리를 숙여 내 주먹을 피한다. 그리고 내 배를 주먹으로 가격한다.

윽.

묵직한 한방에 내가 물러서자 땅에 떨어진 검을 줍는 나탈리. 그리고 다시 대치한다.

잠시 쳐다보다 이번엔 내가 먼저 달려들었다. 그러자 나탈리는 피하기 힘들게 사선으로 검을 휘둘렀다. 달려가다 말고 왼쪽으로 굴러 검을 피한 뒤 바로 자세를 잡고 오른팔로 다가올 추가타를 방어한다.

오른팔로 횡으로 휘둘러진 검을 막음과 동시에 왼팔로 드러난 나탈리의 복부를 가격한다. 그 뒤 왼팔로 나탈리의 오른 손목을 잡고 꺾으며 자유로워진 오른손으로 나탈리의 목을 붙잡았다.


“항복!”


이겼다. 얼떨떨한데.


“대단한데?”

“고마워, 대장.”

“이제 안 쓰면 못 이기겠네.”

“아, 그건 좀.......”


나탈리는 오른 손목을 한, 두 번 돌리더니 다시 자세를 잡았다.


“다시 하자.”

“진짜?”

“그럼.”


한숨을 쉬었다.

내가 자세를 잡은 걸 보자마자 나탈리가 외쳤다.


“간다.”


-퍽!


“악!”


눈 깜짝할 새에 접근해 검을 휘두른 나탈리. 나탈리랑 첫 대련을 했을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려졌다. 몸으로.


“다시 간다.”

“악!”

“한 번 더.”

“으악!”


나탈리는 오러 유저였다.


* * *


내가 목욕탕에서 몸을 씻고 나오고 나서 얼마 뒤, 나탈리도 몸을 씻고 나왔다. 살짝 발갛게 달아오른 피부. 촉촉한 머리카락은 햇빛을 받아 붉게 빛났다. 무심코 숨을 집어삼켰다.


“왜 그래, 한스?”

“.......아니야.”


잠시 열기도 식힐 겸 둘이서 걷고 있자 탑에 있던 마르코가 외쳤다.


“상단이다!”


작가의말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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