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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설란 님의 서재입니다.

족쇄를 벗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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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설란
작품등록일 :
2018.05.04 23:33
최근연재일 :
2018.08.08 19:00
연재수 :
70 회
조회수 :
10,444
추천수 :
74
글자수 :
395,495

작성
18.05.09 23:55
조회
223
추천
2
글자
8쪽

떠나보내는 이

DUMMY

디에고의 임종은 오직 나탈리만이 지켜보았다. 그 둘 사이에서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는 모른다. 다만 떠날 때의 디에고의 얼굴은 은은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미리 지어놓은 관에 담긴 디에고는 숲속의 무덤에 묻혔다.

나탈리는 그의 유언 중 일부로서 그가 원한 묘비명을 말해주었다. 유언에 따라 그의 묘비엔 다음과 같은 묘비명이 새겨졌다.


[어리석음이 뭔지 몰랐던 자. 삶의 끝에서 비로소 어리석음을 깨닫다.]


디에고의 장례는 잠시 시간을 두고 치러졌다.

그의 별세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가 땅에 묻히는 것을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았다.

고풍스러운 사람. 행색이 남루한 사람. 몸에 흉터가 많은 사람. 공부 꽤나 했을 것 같은 사람. 성질 더러울 것 같은 사람.

한 공간에 있으면 필시 싸움이 벌어질 것 같은 성향의 사람들이 모였지만, 그의 장례에서만큼은 그저 침묵을 지켰다.

그가 죽었음을 많은 사람이 슬퍼했으며, 애도했다. 하지만 나탈리만은 울지 않았다.

장례가 끝난 뒤, 찾아왔던 많은 사람들은 다시 떠나갔다. 그 중엔 피에르도 있었다.


“본가에서 불러서 가봐야 할 것 같아.”


그 말을 끝으로 피에르는 떠났다.


* * *


디에고가 떠난 빈자리는 곧바로 남은 나에게 느껴졌다. 경비대 보고로 하루에 못 해도 한 번씩은 꼭 디에고를 만났기 때문이리라.

그의 빈자리를 느낀 건 나만이 아니었는지, 주민들은 절로 여관으로 모였다. 우리들만의 끝맺음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이 터전을 주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곤란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명쾌한 답안을 제시해 주었으며, 우리 중 누구보다도 우리를 생각해주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평소에 좋아하던 이 포도주를 그에게 바칩니다.”


스벤의 말을 들으며 우리는 우리의 앞에 놓인 포도주를 조용히 삼켰다. 달콤해야할 포도주는 어째서인지 씁쓸했다.

스벤의 말이 끝나자 우리는 제각각 디에고와의 일화를 서로에게 털어놓았다.

장례가 떠난 자가 아닌 남겨진 자를 위한 것이듯,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주었다.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갈 쯤,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나탈리가 보이지 않았다.


“카를로, 대장은?”

“방금 밖으로 나가던데?”


그 말을 듣고 슬쩍 여관 밖으로 나왔다. 깜깜해진 하늘을 달이 희미하게 밝히고 있었다.

나탈리를 찾아 얼마나 걸었을까. 마을 구석진 곳에 있는 벤치에 나탈리가 앉아서 달을 보고 있었다.

무작정 찾아오긴 했는데 막상 다가가려니 망설여졌다. 그녀도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겠지. 그 생각에 등을 돌렸다.


“한스?”


그런데 하필 눈에 띈 모양이다. 다시 뒤돌아서 멋쩍게 웃었다.


“안녕, 대장.”

“여기서 뭐해?”

“달이 예뻐서 걷고 있었어.”


그게 아님을 나도 알고 그녀도 알지만, 그녀는 내 거짓말을 넘어가 줄 생각인 것 같았다.


“그 예쁜 달, 같이 봐.”


나탈리의 말에 나탈리의 옆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러고 보면 나탈리는 디에고의 사후에 한 번도 술을 마시지 않았다.

즐거울 때면 항상 술을 찾던 그녀는, 역설적이게도 제일 술이 필요할 때에는 술을 찾지 않았다.

잠시 그녀와 하늘의 달을 바라봤다.


“한스, 고마워.”

“뭐가?”

“덕분에 임종을 지킬 수 있었어.”


담담한 목소리. 그 말에 그녀를 쳐다봤다. 그녀의 눈가엔 다크서클이 내려앉아있었고, 그녀의 눈동자는 힘없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까 전,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깊은 상처를 입었을 그녀의 상처는 누가 어루만져줄까.

이래도 될까? 난 지금 명백히 그녀의 울타리를 침범하려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애써 피해왔던 그 행위를 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 짧은 순간에 많은 고민을 했지만, 결국 나는 그녀에게 해주고 싶었다.

그녀의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내가 밝디밝은 그녀를 보며 느꼈던 감정의 보답을 해주고 싶었다.


“대장.”

“응......?”


힘없이 묻는 나탈리. 그런 그녀를 살며시 끌어안았다.


“한스?”

“울어도 돼.”


얼떨떨한 목소리를 내던 나탈리는 이내 힘을 빼고 나에게 기댔다. 그녀의 붉은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끅. ...끅, 끅. 끅.”


가슴이 젖어왔다. 그녀의 작은 어깨가 떨렸다. 평소에는 그리도 거대해 보이던 나탈리였지만 지금은 그저 연약한 사람일 뿐이었다.

원래 그녀가 받쳐주고 내가 기댔었다면, 지금은 내가 그녀를 받쳐주고 있었다.

약간 쌀쌀한 밤이어서 그런지 그녀의 온기가 잘 느껴졌다. 그녀도 내 온기를 느끼고 있을까.


* * *


한참을 울던 나탈리는 이내 진정됐는지 내 품에서 빠져나왔다. 살짝은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한스, 고마워. 덕분에 개운해졌어.”

“응.”

“할아버지랑 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어?”

“딱 그 정도만 알고 있어.”

“어?”

“할아버지랑 손녀 관계라는 거.”

“그래?”


나탈리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

“대장은 그 얘기를 하고 싶어?”

“.......아니.”

“그럼 됐어.”


분명 가만히 묻어만 두면 곯아서 썩을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굳이 꺼내고 싶지 않은 얘기 또한 있으리라.

그런 내 대답이 어딘가 납득이 가지 않는지 인상을 약간 찌푸리는 나탈리.

그래, 기왕 울타리를 넘어선 거 오늘은 솔직해지기로 했다.


“대장.”

“응?”

“대장은 날 믿어?”

“어?”


뭔 엉뚱한 소리를 하냐는 표정을 짓는 나탈리. 하지만 난 진지했다.


“날 신뢰하고 있어?”


내 진지한 표정을 본 나탈리는 잠시 생각하더니 마찬가지로 진지하게 대답해줬다.


“응. 믿고 있어.”

“고마워, 나도 대장을 믿고 있어.”

“고마워.”

“그거면 된 거 아닐까?”

“어?”


이 정도면 된 거 아냐? 나탈리는 꼭 내가 그 말을 내뱉어야 받아들일 작정인가 보다.


“서로 믿고 의지하는 관계잖아. 이것만으로도 괜찮지 않을까? 그 얘기는 나중에 마음의 정리가 끝나면 해줘.”

“......알았어. 고마워.”


말을 끝마친 우리는 가만히 달을 올려다봤다. 옆에 있는 나탈리의 체온이 은은하게 느껴졌다.


* * *


그다음 날. 우연찮게 기지로 가던 도중에 나탈리랑 마주쳤다.


“안녕, 대장.”

“안녕, 한스.”


인사를 한 뒤 우리는 그저 웃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하는 느낌이었다. 그녀도 같은 걸 느끼고 있을까?

그런 즐거움을 만끽하며 기지의 문을 열었다.


“마르코, 날 믿어?”

“난 믿어, 카를로. 넌 날 믿어?”


시발. 설마?


“당연하지. 우린 서로 믿고 의지하는 관계잖아?”


마르코의 수염 안쪽에서 묘하게 나탈리의 표정이 보이는 게 기분이 더러웠다.

한바탕 연극을 끝내고 우리를 짓궂게 쳐다보는 마르코와 카를로. 심지어 에밀마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푸하하핫! 한스 저 녀석 얼굴 좀 봐! 저놈 얼굴이 저렇게 빨개지는 건 처음 본다!”

“풉. 크흐흡. 만약 마도구가 있었다면 네 사진을 찍어서 대대손손 가보로 물려줬을 텐데!”


얼굴이 약간 빨개졌던 나탈리는 그런 두 사람의 말을 듣더니 내 얼굴을 쳐다봤다. 살짝 웃고 있는 나탈리의 얼굴. 설마?


“믿는다구, 파트너.”


짓궂게 웃으며 팔꿈치로 툭툭 치는 나탈리. 오, 나탈리 너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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