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화. YMCA 대면식
<이름: 우한진>
소속: 없음, 나이: 26세
[타자]
정확도: B, 힘: B-, 선구안: B, 주루: C, 수비: A, 번트: B, 정신력: S
1루적성: A, 외야적성: A-, 포구: A, 송구: D, 어깨: E, 반응속도: A+
[투수] 비활성화
역시 본업이 투수다 보니 타자 스텟이 준수하긴 해도, 미터기를 뚫는다거나 하지는 않네···. 조금은 아쉬운 부분? 근데 송구 D, 어깨 E? 이게 무슨 소리지? 최고 구속 160km를 넘기는 우진한인데 스텟이 왜 저러지? 투수 비활성화는 뭐고?
스카우터가 잘못된 건가, 아니면 진한 선수가 어디 잘못된 건가?
“저기 진한 선수··· 아니 이제 한진 선수라고 부르겠습니다. 한진 선수, 혹시 어디 아픈 곳이라도 있으신가요?”
그 말을 듣자, 한진의 얼굴빛이 급격히 어두워지는 게 느껴졌다.
“네. 사실 마지막 경기에서 다쳤던 어깨가 여전합니다.”
콰광-.
머리 위로 날벼락이 떨어진 기분이다. 그래, 나도 거의 그대로 건너왔는데 한진도 마찬가지일 가능성 정도는 예측했어야지. 내가 잘못 했네.
야신이 왜 한진을 애지중지하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그래도 준수한 타자 스텟을 생각하면 큰 힘이 될 것은 분명하다.
“아~ 그러셨겠구나. 그래도 너무 걱정은 마세요. 고칠 방법이 있을 겁니다. 일단 들어가시죠.”
이는 단순히 위로나 희망 고문을 하려고 건넨 말은 아니었다. 분명 야신이 험난한 만큼 기연을 만날 것이고 충분한 보상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했었다. 괜한 말을 할 양반은 아닌 거 같으니, 지금은 거기에 희망을 걸 수밖에···.
문을 열고 들어가니 훤칠한 키의 외국인 두 명과 기품이 넘쳐흐르는 아름다운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내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외국인만으로도 울렁증이 심한데 저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있다니··· X됐다···.’
그래도 정신 차리고 우선 외국인에게 말을 붙여봤다.
“헤··· 헬로우 나이스투 미트유···? 렛미 인트로듀스 마이셀프. 마이 네임이즈 영준 채, 아이 워너 플레이 베이스볼 오케이?”
이것이 바로 10년간의 정규 교육과정에서 배워온 주입식 교육의 결정체! 근데 이게 맞나···? 막상 말을 꺼냈지만, 얼굴이 달아오르고 자괴감이 넘쳐흘렀다. 제발 나에게 쥐구멍을 다오··· 너무 숨고 싶구나···.
이때 설상가상으로 옆에 있던 여인이 말을 걸어왔다.
“어머, 영어를 능숙하게 잘하시네요? 혹시 외국어 학교라도 다니셨나요? 신기해라!”
오잉? 나보고 영어를 잘한다고? 예상외의 칭찬에 스턴을 맞고 있는 찰나, 외국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더한 충격을 줬다.
“안녕하세요. 저는 필립 질레트 선교사라고 합니다. 편하게 길례태라고 불러주세요. 잉글리쉬 할 줄 아셔서 놀랐는데, 저에게는 굳이 잉글리쉬 쓰실 필요 없습니다. 조선에 왔으면 조선법을 따라야 하는 법. 저 한글 잘합니다.”
자신을 길례태라고 소개하는 이 외국인, 많이 놀라웠다. 내가 알기로 조선은 본격적으로 서구문물을 받아들인 지 얼마 안 됐을 텐데 이렇게 한국말을 잘 쓰고 한국식 이름까지 있는 외국인이 있을 줄이야···.
“그리고 이쪽은 제이슨 스미스 선교사입니다. 이쪽은 아직 한글이 서투르니 이해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제이슨 스미스, 제이손이라고 부르면 됩니다. 저 한글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솔직히 이 정도만 해도 놀라운데? 길례태라는 사람이 워낙 규격 외의 한국말을 구사해서 그렇지.
“아, 반갑습니다. 저는 채영준이고 옆에 이 친구는 우한진이라고 합니다. 저희는 베이스볼을 하고 싶었는데 마침 YMCA에서 베이스볼 팀을 만든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가입할 수 있을까요?”
“오우, 되고말고요! 베이스볼 사람 많이 필요합니다.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오호라, 이거 너무 쉬운데? 1단계 성공!
한 건 해냈다면서 뿌듯해하는 나와 달리 한진은 그냥 뭔가가 됐나보다 하는 표정이다.
이어서 옆에 있던 여인이 말을 걸어왔다.
“축하드려요. 저는 황성 YMCA 베이스볼 팀을 후원자이자, 팀장과 통역 및 여러 잡다한 업무를 맡고 있는 민혜림이라고 해요. 잘 부탁해요!”
아까는 당황스러워서 눈도 제대로 못 마주쳤지만, 찬찬히 살펴보니 기품있게 아름다운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여성이었다.
165cm쯤으로 추정되는 현대를 기준으로도 꽤 큰 편에 속하는 키, 자신감이 넘치는 눈빛, 시원시원한 표정, 당당한 태도 등등 그야말로 신여성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그런 여인이었다.
그리고··· 왠지 이분에게 빠져버린 것 같다. 아니지, 정신 차리자! 너 여기 그러려고 온 거 아니다 영준아!
“두 분 다 풍채가 좋으시네요! 특히 한진씨라고 하셨나요? 이렇게 크신 분은 아메리카에 갔을 때도 많이 못 본 것 같은데 대단하세요!”
‘하하... 내가 이 시대 평균으로는 작은 편은 아니지만 풍채가 좋다니... 그냥 살찐 건데 이걸 포장을 해주네. 그것보다 아메리카? 유학파였어?’
내 놀라움을 뒤로 한 채, 한진을 흥미롭게 관찰하는 혜림이었다. 하지만 정작 관심을 받고 있는 한진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형식적으로 대답했다.
“칭찬 감사합니다. 그런데 베이스볼은 어디서 하는 겁니까?”
역시 야미새. 음지에서 한진을 부르는 별명이었는데 정말 찰떡이다. 주변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야구를 할 수 있다면 뭐라도 할 야구에 미친 새끼···.
“이리로 오시면 돼요!”
혜림을 따라가니 마당이라기에는 꽤 넓은 공간에서 대체로 어려 보이는, 많아도 딱 나와 한진 또래의 청년들이 방망이를 휘두르고 캐치볼을 하는 등 훈련에 열중이었다. 근데 열심히는 하는데 뭔가 참 어설프다.
가끔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사회인 야구를 볼 수 있지 않은가? 평소에 보던 프로야구와 비교해서 참 어설퍼 보였지만, 여기 사람들에 비하면 오히려 그들이 프로 수준이다. 야알못인 내가 봐도 이 사람들은 공을 던지는 폼, 스윙 자세, 수비 모두 엉망이다.
한진 역시 눈살을 조금 찌푸리면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 보고 있었다.
그래 내 눈으로만 봐서는 뭘 알겠냐. 나는 일단 선수들을 스캔해보기로 했다.
일단 포수부터 살펴볼까?
<이름: 허영수>
소속: 황성YMCA 야구단, 나이: 14세
[타자]
정확도: D, 힘: D+, 선구안: D+, 주루: D+, 수비: C-, 번트: F, 정신력: A
포수적성: C, 포구: C, 송구: C-, 어깨: C, 반응속도: C-
[투수]
체력: C, 구속: C, 구위: D, 제구: D+, 변화: F, 수비: E, 정신력: B
뭐지? 한진이나 기웅과 달리 투수 능력치까지 보이네? 투수 적성이 있어야 활성화되는 건가? 뭐가 되었든 이 선수도 능력치가 좋지는 않네··· 근데 나이가 매우 어렸다! 14세니 높은 성장 가능성을 기대할만하지 않을까?
이어서 다른 선수를 쭉 살펴봤지만 대체로 허영수 정도 수준이거나 그 이하였다. 아까 봤던 이기웅이 이곳에서는 최고의 선수인 것이다.
그나마 괜찮은 게 1루수라니······. 잠깐 한진이 1루를 봐야 하지 않나?
“한진 선수 지금 상태면 1루를 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어깨가 이런 상태니 그게 최선의 방법이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팀의 결정을 따라야죠.”
아니 그건 내가 용납 못 하겠다. 한진아 네가 어떤 몸인데 함부로 다루겠느냔 말이다. 어떻게든 양보를 받아내야지.
그렇게 속으로 다짐하고 훈련하는 것을 마저 구경하려고 팔짱을 끼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 어깨 위로 묵직한 손이 느껴졌다.
“영준 씨? 이제 훈련 시작하시죠.”
“네? 아 한진씨 오해가 있으신가 본데, 저는 선수로 뛰는 게 아니라 야구단장을 하려는데...”
“야구단장도 야구를 직접 해보면 더 잘할 수 있겠죠? 참고로 호크스 단장님도 선수 출신이십니다. 그리고 흠··· 운동 좀 하셔야겠는데 기왕 하는 거 야구를 하시죠.”
···할 말이 없네. 근데 한진아 예시를 우리 팀 단장으로 드는 건 설득력이 없지 않을까? 호크스라는 팀 꼬라지를 보면 일단 단장부터 자르고 시작하고 싶은데···.
그리고 운동이라···. 그래 운동 꼭 해야지. 내가 봐도 이 두툼함은 답이 없다. 근데 아직 나에게는 할 일이 많아. 절대 운동이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일단 팀 상황 파악부터 해보죠.”
한진의 손길을 회피하려고 핑계를 대던 그때, 마침 길례태 선교사가 다가왔다.
“우선 팀원들과 인사 나누실까요? 자자! 모두 주목! 새롭게 팀에 합류하게 될 채영준 씨와 우한진 씨입니다.”
순식간에 우리에게 이목이 쏠렸다.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한진이 먼저 말을 꺼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우한진이라고 합니다. YMCA를 최강의 팀으로 만들려고 왔습니다. 포지션은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최고의 선수다운 자부심이 느껴지는 멘트였다. 이제 내 차례다.
“안녕하십니까. 채준영이라고 합니다. 베이스볼은 처음이지만 팀을 위해 뭐든 해보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색한 자기소개가 끝나자, 기존 팀원들도 인사를 건네왔다.
“반갑소. 아까도 봤었지만, 난 1루수를 맡은 이기웅이요. 한번 잘 배워보시오.”
아까도 느낀 거지만 말투에서부터 양반 자제의 거만함이 풍긴다. 뭔가 쌔하다는 느낌이 자꾸 든다.
“난 허영수요. 포수를 주로 하고 있고, 투수도 연습하고 있소. 나이 어리다고 무시하지 마시오.”
아까 그나마 눈에 띄었던 선수다. 선수단 중 최단신 축에 속해서 위아래로 잠깐 훑었는데 그걸 그새 눈치챘는지 불쾌함을 살짝 내비쳤다. 아무래도 그 부분이 콤플렉스인 모양이다.
“저희는 김영복, 김만복 형제고 2루수와 유격수입니다. 베이스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저희 둘 다 발 하나만큼은 자신 있습니다.”
<이름: 김영복>
소속: 황성YMCA 야구단, 나이: 16세
[타자]
정확도: D+, 힘: E, 선구안: D+, 주루: B-, 수비: C-, 번트: D, 정신력: C+
유격수적성: C, 포구: D+, 송구: D+, 어깨: C, 반응속도: C
<이름: 김만복>
소속: 황성YMCA 야구단, 나이: 16세
[타자]
정확도: D, 힘: F, 선구안: D, 주루: B, 수비: C, 번트: C, 정신력: C-
2루적성: C, 포구: C, 송구: C-, 어깨: D+, 반응속도: C
쌍둥이 키스톤 콤비라··· 낭만은 있는데 주력을 제외한다면 아직은 그런 중요한 자리를 맡기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허영수처럼 이들도 나이가 어린만큼 성장 가능성은 높을지도?
“반갑습니다. 현정훈입니다. 3루수를 맡고 있고, 선수 중에는 나이가 제일 많습니다. 우하하하!”
<이름: 현정훈>
소속: 황성YMCA 야구단, 나이: 27세
[타자]
정확도: F, 힘: B+, 선구안: D, 주루: F, 수비: D, 번트: F, 정신력: C
3루적성: D, 포구: D-, 송구: C-, 어깨: D+, 반응속도: D+
호쾌한 웃음을 짓는 곰 같은 느낌을 주는 팀 내 최고의 거한이 인사를 건네왔다. 덩치값을 하는지 힘 하나는 한진 이상이지만 아직은 그게 다였다. 근데 정확도 F면 맞추기가 불가능하다는 거 아닌가···? 벌써 심각하게 걱정되는데?
“전 김산입니다. 중견수를 맡고 있고, 이곳 생활에 모르는 게 있으면 괘념치 마시고 저에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이름: 김산>
소속: 황성YMCA 야구단, 나이: 20세
[타자]
정확도: D+, 힘: C, 선구안: C, 주루: C, 수비: C-, 번트: D, 정신력: C+
외야적성: C, 포구: C-, 송구: D+, 어깨: C, 반응속도: C
상당히 젠틀하고 훈훈함이 느껴지는 청년이다. 눈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건네는데 여자 꽤나 울리고 다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작은 육각형이었지만 잘 성장한다면 올라운더의 자질이 느껴질 법한 스텟이다.
이후에도 여러 선수와 인사를 나누며 다시 한번 체크를 했으나, 내야 쪽은 그림이라도 그려지지, 외야 쪽은 중견수인 김산을 제외하면 참담한 수준이었다.
그나마 센터라인이 틀은 잡혀 있으니 다행인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중에 한진의 1루수 자리가 생각나서 기웅에게 다가가 물었다.
“기웅선수 혹시 1루수를 양보해주실 수 있을까요?”
하지만 기웅에게서 돌아온 답은 냉정했다.
“내가 왜 그래야 하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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