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단디단 서재입니다.

내 맘대로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해승화
작품등록일 :
2023.05.11 23:06
최근연재일 :
2023.06.25 13:04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330
추천수 :
4
글자수 :
78,389

작성
23.06.19 11:47
조회
12
추천
0
글자
10쪽

어리광 부리다.

DUMMY

보육원 앞에 진을 치던 무속인들이 거짓말처럼 물러갔다. 휘린의 어머니가 제대로 힘을 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원장어머니는 오랜 시간 여러 사람들을 만나야 했고 여러 조사와 보육원 현황점검을 받아야 했다.


시간이 걸렸지만 모든 문제는 별다른 이의 없이 통과 되었다.


어머니는 그 와중에도 주눅 든 나를 틈틈이 다독였다.


정신없이 바빴던 어른들과 눈치를 보며 불안해하던 동생들도 내 탓이 아니라고, 별일 아니라고 나를 위로했다.


그들의 걱정을 느낀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평소처럼 행동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갈라진 마른 논에 단비를 받은 나는 작은 행동도 더욱 조심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진심으로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다. 들려오는 진실도 무시했다.


아주 어릴 적 사람들에게 거부당하지 않으려 노력했던 것보다 더 많은 노력을 했다.


내가 받아드린 몇몇의 사람 외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모든 감각을 망가트리기 위해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안 보인다. 안 들린다. 나는 모른다.]






지자체기관에서 뜬금없이 모범 보육원 표창장을 받게 되었다.


워낙 작아 눈에 뜨이지 않던 보육원이 조사, 감찰로 인해 언론의 시선을 받은 것이다. 모든 것이 깔끔하고 완벽했던 보육원은 방송을 통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갑자기 후원하겠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하룻밤 새에 보육원은 다른 분위기로 소란스러워졌다.





#





고등학생이 되었다. 찰떡같아진 휘린과 나는 당연하게 고등학교에도 같이 진학했다.


우린 단지 교복이 예뻐서 결정한 학교였는데 주변에서는 명문이라고 말했다.


학교생활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나에게 친구라고 불리는 사람은 휘린뿐이었다.


휘린은 많이 변했다. 그녀는 밝음이 지나쳐서 조금은 제멋대로에 지랄 맞은 성격이 되었다. 하지만 보기 좋았다.


그녀는 예쁜 것을 좋아하고 지나치게 솔직하고 잘 웃는 발랄한 아이었다.


나는 이제까지처럼 꾸준히 공부 잘하고 차분한 모범생이 되려고 노력했다. 오로지 평범함이 목표였다.


같은 반 아이들은 휘린과 나에게 별 관심이 없는 듯했다. 나를 마주칠 때마다 움찔 굳지도 휘린의 뒷담화로 우월감을 갖지도 않는 거 같았다.


내 주변은 평화로웠다. 제법 만족스러웠다. 표면적으로는.




보육원은 여전히 작았지만 더욱 더 복작복작해졌다. 그 사이 보육교사 두 명과 동생들 여섯 명이 늘어났다.


나는 아직도 꼬맹이들의 대장이었고 내게 충성을 받치는 이준영에게는 다섯 명의 단짝이 생겼다.


보육원을 해코지 하려했던 아이들의 부모들은 모르는 척 시침을 떼고 더 이상 자식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김민수는 여전히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돈 잘 쓰는 도련님이었고 거짓말쟁이 엄마를 둔 강윤표는 보육원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사기를 치려다 실패한 윤표의 엄마는 마치 홍길동처럼 살았다. 그렇다고 아이를 시설에 위탁할 수 있도록 방임하는 것도 아니었다.


임대한 집은 그대로 두었고 번개처럼 빠르게 들락거려 용돈과 음식으로 아이를 방치 한 것이 아니라는 티를 남기고 갔다.


버려진 것도 제대로 돌봄을 받는 것도 아닌 강윤표는 의지 할 곳이 필요 했기에 보육원의 객식구가 되었다.





***





반에는 유난히 키가 크고 덩치가 큰 아이가 있었다. 배구 특기생이라고 했다.


박수미라는 그 아이는 가끔 교실에 올 때마다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러나 그것이 다였다.


아이는 늘 바빴고 친한 친구가 없는지 반에서 겉돌았다. 운동부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교실에 있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나에게 역시 그 아이는 그저 별개로 움직이는 상관없는 아이들 중 하나였다.


다만 가끔 지나가다 마주하는 눈빛이 슬프다고 생각했다. 무언가를 볼 거 같아 얼른 시선을 거두었지만 조금씩 젖어들 듯 그 눈빛이 신경 쓰였다.


나는 창문을 내다보다 운동장을 혼자 달리거나 운동장 한쪽에 엎드려 있는 수미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운동부는 엄한가?”


흘리듯 던지는 질문에도 휘린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엄하지. 운동부는 다 엄할 걸? 신체조건 좋으면 반항도 셀 테니까.”


휘린이 내가 바라보는 방향에 함께 시선을 두었다.


“억누르려면 상하관계가 더 엄격할 거야. 우리 학교는 배구 명문이라서 더 할 걸?”


“그렇겠지?”


수미는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나는 일부러 눈을 휘린에게로 돌렸다.


누구나 다 사는 건 힘들다. 나는 의도치 않게 힘들게 살아가는 많은 사람의 현실을 읽는다. 그러나 그뿐이다.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아니다. ···.


나는 수미에게 읽게 된 괴로움을 모르는 척 하기로 했다. 귀찮은 문제에 얽히면 안 된다.


그러나 결국 사건은 터지고 말았다.





계단 난간으로 떨어진 배구부 선배가 구급차에 실려 가고 하얗게 질린 수미가 부들부들 떨며 내가 서 있던 쪽으로 다가왔다.


잠시 주춤하며 눈치를 보던 수미는 고개를 푹 숙이고 내 옆을 지나쳤다. 그러나 다리에 힘이 풀리는지 얼마 지나지 못하고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엉겁결에 수미의 손을 잡았다. 그 손끝으로 수미의 두려움, 분노, 슬픔이 흘러 들어왔다. 가슴이 술렁거린 나는 질끈 눈을 감았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다시 일어서 걸어가는 수미의 손을 붙잡지 않았다. 내가 해 줄 것이 없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


수미의 학폭위가 열렸다. 방송국에서 취재를 왔고, 지역 전체가 들썩일 정도로 큰 사건이라고 했다.


들려오는 소문에 수미는 소년원에 수감 될 거라고 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내가 상관 할 일 아닌데, 다시는 남 일에 나서지 않기로 했는데···.


결심을 마음에 새길수록 왠지 무기력해졌다. 몸 안에서 끓어오르는 무언가가 짜증스러웠다.


‘왜 이렇게 답답하지? 왜, 쓸데없이 감정 소모가 이는 거야?’





“그 선배 평생 침대에서 살아야 한다더라. 배구부 망했네.”


하교 길, 남의 사연을 읊조리듯 한휘린의 표정이 무심했다. 그녀도 타인의 불행에 공감하던 마음이 많이 무뎌진 거 같았다.


다른 사람의 불행도 자기 탓으로 여기고 죄책감으로 절절매던 휘린은 더 이상 없었다.


“수미가 잘못 한 거 아니야.”


내가 흘리듯 말하자 나를 멀뚱히 바라보던 휘린이 한숨을 내쉬었다.


“알아. 그 선배들이 먼저 수미를 괴롭혔겠지. 아마 다친 것도 선배들 잘못일걸?”


“너도 알아? 맞지? 수미가 억울한 거 맞지? 그럼 수미를 도와줘야 하는 건가?”


나처럼 진실을 안다는 휘린이 반가웠다. 그녀와 머리를 맞대면 억울한 수미를 도울 방법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감이 들었다.


그러나 나와 마주한 휘린의 표정은 차가웠다.


본적 없는 휘린의 표정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뒤따른 그녀의 말에 또 한 번 놀랐다.


“어떻게 하려고? 내가 무당인데 내 눈엔 진실이 다 보입니다. 박수미는 억울하니 다시 조사하세요. 라고 경찰서가서 떠들게?”


왜 이렇게 극단적으로 말하지? 조금만 거들면 사람들이 시선을 돌려 줄 텐데.


“그냥 사실을 흘려줄 수도 있잖아. 그게 힘들면, 같이 있던 선배들을 압박해도 되지 않나? 그들이 거짓말을 하는 거니까···.”


그때 휘린의 짜증난 목소리가 내 생각을 막았다.


“그래 그럼 고맙다는 말 한마디는 듣겠지. 그리고 어떻게 될 거 같아? 그 이후엔 어쩌려고? 무당이라고 소문나면 우리는 다시 괴물이 되는 거야. 학교 다니는 내내 그런 시선을 다시 견뎌야 한다고.”


휘린은 또 다시 무당이라 불리며 멸시 당하게 되는 과정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수미는 입이 없니? 보호자가 없어? 변호해줄 사람 하나 없는 혈혈단신이야?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알아서 할 거야. 왜 우리가 설쳐야 하는데?”


휘린이 어깨까지 들썩이며 씩씩거렸다. 짜증난 마음을 주체 할 수 없는 거 같았다.


“어···.”


할 말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휘린의 말이 맞다. 내가 구태여 나설 이유는 없다. 그들은 최선을 다해 스스로를 변호 할 것이다.


입을 달싹이던 나는 이내 시무룩 입을 다물었다.


“학교는 제발 평범하게 다니자. 내가 나서서 내 팔자 꼴 필요는 없잖아. 나 이제 곧 신내림 받아. 그때까지라도 평범하고 싶어. 내 말 이해하지?”


나는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누구나 문제를 짊어지고 산다. 사람이 사는 일은 늘 힘들다. 누구도 그 고통을 모두 덜어 줄 수 없다. 다만 최선을 다해 도울 뿐.]


그들을 도와야 하는 무당의 숙명은 어린 휘린에게 버거웠다. 버거운 짐이라는 걸 엄마가 인정해준 순간, 그녀는 어리광이 생겨버렸다.


어리광은 비빌 곳이 있어야만 가능 했다. 휘린은 그동안의 서러움을 보상 받고 싶어 조금 과하게 어리광을 부리는 중이었다. 스스로 자각은 못했지만···.


그렇다고 운명을 벗어나거나 달아나겠다는 생각 따윈 없었다. 무당의 삶이 자신의 숙명이라는 건 인정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아직은 이 짧은 평화를 깨트리고 싶지 않다.





휘린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휘린의 고통은 항상 내게도 전해져 왔으니까.


그리고 사실 나도 겁이 났다. 또 소문이 나서 나를 신 제자로 받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시달리는 건 이제 사양이었다.


그리고 떠나야 할 그날까지 보육원의 평화를 간절하게 지키고 싶었다.


성인이 될 때까지 얌전히 살자. 이젠 몇 년 남지 않았다. 나는 마음을 접었다. 그동안 꾸준히 노력한 습관이라 관심을 버리는 건 어렵지 않을 거 같았다.





***





아영은 평소처럼 보였다. 수미가 떠나는 날에도 아영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휘린은 조용히 가슴을 쓸어 내렸다. 수미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조금만 더 모르는 척 살자. 휘린은 깔끄러운 자갈을 삼키듯 침을 꿀꺽 삼켰다.


1학년 생활도 얼마 남지 않았고 수미가 떠난 후 학교는 다시 잠잠해졌다. 그렇게 휘린은 잔잔한 평화를 계속 유지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은 덧없는 바람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지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내 맘대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6 마음에 안 들어. 23.06.25 8 0 10쪽
15 다 이유가 있다. 23.06.21 10 0 11쪽
» 어리광 부리다. 23.06.19 13 0 10쪽
13 이런, 들켰다! 23.06.18 13 0 12쪽
12 갑작스런 손님 23.05.25 16 0 12쪽
11 아직 너무 어리다. 23.05.24 16 0 11쪽
10 과거는 굴레가 되어선 안 된다. 23.05.22 18 0 12쪽
9 내 마음대로 23.05.21 20 0 11쪽
8 사람이 아니야. 23.05.18 20 0 11쪽
7 이런 거구나! 23.05.17 19 0 11쪽
6 내 안에 강한 것 23.05.14 20 0 11쪽
5 친구가 되어볼까? 23.05.13 19 0 9쪽
4 이런 거, 낯설다. 23.05.13 19 0 11쪽
3 세상을 왕따 시키려 했는데. +1 23.05.12 24 1 11쪽
2 어린 외톨이 떠돌이 23.05.12 30 1 10쪽
1 내 이름은 아영이에요. 23.05.11 66 2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