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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승화
작품등록일 :
2023.05.11 23:06
최근연재일 :
2023.06.25 13:04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334
추천수 :
4
글자수 :
78,389

작성
23.05.22 22:37
조회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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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과거는 굴레가 되어선 안 된다.

DUMMY

밤이 깊어지자 커다란 한옥 고택은 짙은 적막감이 감돌았다.


잠자리에 누운 이영자는 쉬이 잠들지 못하고 계속해서 뒤척였다. 낮에 들은 아영이의 말이 아직도 그녀의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영자는 결국 잠드는 것을 포기하고 달이 밝게 비추는 마당으로 걸어 나왔다.


이제 보름 후면 추석이다.


아영은 레스토랑에서 받은 돈으로 추석 선물을 준비해 휘린과 함께 보육원에 방문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신생 보육원이라 후원이 많지 않아 명절이 쓸쓸할 것을 걱정한 거였다.


“정말 작은 부탁 하나도 헛으로 하는 분이 아니야.”


그런 큰 보살님의 말씀이니 휘린에 관한 이야기도 가볍게 넘기면 안 되는 것이다.


[휘린은 훌륭해요. 자기 잘못이 아닌 짐도 다 짊어지는 것이 옳다고 믿어요. 아마도 그런 분을 보면서 자랐기 때문인 거 같아요. 어머님은 철없다 하셨지만 저는 휘린이 조금 더 철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어머님에게 화를 내야 할 거 같아요.]


아영의 흑진주처럼 까만 눈이 진한 빛을 내뿜어 이영자의 심장으로 파고드는 거 같았다.


[어머님이 휘린이의 아픔을 아셨으면 좋겠어요. 많이 반성하셔야 해요. 그리고 휘린이도 마음대로 하게 두세요. 잘못해도 되고 실수해도 되고 이기적이어도 괜찮다고 말해주세요. 아직 휘린이가 짊어지기에는 어머님의 길은 무겁잖아요.]


오십 인생을 신념으로 살았던 이영자는 반성하라는 아영의 질책에 심장이 쿵하고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주아영은 바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을 남기고 뒤돌아 걸어갔다. 이영자는 도저히 그녀를 붙잡을 수 없었다.


“왜 그렇게 화가 나셨을까? 어차피 나와 같은 길을 걸어가야 할 아이인데.”


자신은 그렇게 살았다. 약한 영혼을 보듬고 위로하고 보호하기 위해 피가 터지도록 자신을 단련하며 살아왔다.


그것은 자신 같은 이들에게 쥐어진 업이었다. 가엽은 영혼들을 구제하자. 언제나 그런 마음으로 자신을 채찍질했다.


하지만 그런 신념을 어린 딸에게까지 강요한 적은 없었는데···.


“아! 그러지 말라고 말 한 적도 없네. ···”


그 어린 마음에 부담스러웠겠구나! 그걸 큰 보살님이 보셨고···. 무시하고 지냈던 껄끄러운 가시가 이제야 보이는 것 같았다, 이영자는 저도 모르게 제 가슴을 쥐었다.


“매정한 년, 제 자식의 상처에는 약 한 번 발라 준적 없었구나!”


큰 보살님이 자신을 책망한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이영자는 무거운 한숨을 삼킨 후 환한 달빛을 마주보며 크게 합장한 뒤 자신의 방으로 되돌아갔다.


휘린이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무당이라 소문이 났으니 어쩔 수 없는 수순이라고 생각했다.


수습하기 위해 학교에도 여러 번 들락거렸다. 문제를 일으킨 아이들의 속마음은 다 비슷했다.


‘모두 다 그러잖아. 저애는 그래도 돼.’


이영자도 피눈물을 흘리며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학교와 동네에는 더욱 나쁜 소문이 퍼졌다.


그래서 먼 곳으로 전학을 보내려고 했다. 그랬더니 휘린이 거부했다.


딸은 별 일 아니라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어린 마음이 안타까웠지만 휘린이 단단하게 잘 자라고 있는 중이라고 속 편하게 믿어버렸다.


“힘들었겠지. 내가 무심 했어. 잘 이겨낼 거라 믿고 모르는 척 해버린 못 된 어미잖아. 큰 보살님께 욕먹어도 할 말 없네.”


다시 잠자리에 누우며 휘린과 내일은 이야기라도 해봐야겠다, 생각하는데 갑자기 커다란 신이 든 것처럼 온몸이 뻣뻣해졌다.


“허억억!”


이영자는 경기를 일으키듯 몸을 탈탈 털었다. 수없이 신을 받았지만 이토록 커다란 충격은 처음이었다.


숨이 막혀 입을 크게 벌린 그녀의 눈에서 순간 검은 눈동자가 사라졌다.





[휘린은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때 사고를 당했다. 좋아하던 오빠가 섞인 집단 강간이었다.


꽤 어려서부터 좋아하던 오빠였다. 어머니를 따라 점사를 보러 자주 들렀던 그는 휘린의 집안 사정을 알았고 휘린이 신 내림을 받아 무당이 될 거라는 사실도 알았다.


그러나 그는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 언제나 휘린에게 친절하고 다정했다.


휘린은 귀엽다며 쓰다듬어 주는 그의 손길이 좋았다. 움트는 꽃봉오리처럼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첫사랑이었다.


하지만 그 마음은 휘린 혼자만의 것이었다.


상대는 그 예쁜 마음을 이용해 나쁜 호기심을 충족하려 했다. 사춘기의 호기심은 무책임하고 단순했으며 이기적이고 사악했다


더러운 짓거리에는 나이가 중요하지 않았다. 착하고 순수하게 웃던 첫사랑 오빠는 그날 휘린의 기억 속에 악마가 되어 박제 되었다.


혀를 깨물고 싶을 만큼 끔찍한 경험이었다. 발정 나기 시작한 어린 짐승들은 그렇게 인성을 버린 후 휘린을 유린했다.


사정없이 찢겨진 첫 경험은 집 주인의 부모가 돌아오면서 끝이 났다.


단지 혼나는 것이 두려운 당황한 어린놈들은 사색이 된 얼굴로 휘린이 옷을 챙겨 입도록 하고 자신의 옷으로 그녀를 가렸다.


그들은 합동작전을 수행하듯 부모 몰래 휘린을 집 밖으로 끌어냈다.


소리를 지르고 난동을 부릴 수도 있었지만 눈물범벅이 된 휘린은 독한 얼굴로 입술을 깨물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스타킹을 입에 물리며 “떠들면 죽이겠다.” 어설프게 협박하는 그들이 무서워 조용히 나온 건 아니었다.


그 순간이 끔찍했다. 그들이 끔찍했다. 그 장소가 끔찍했다.


그들에게 얽혀 지저분한 추문으로 남기 싫었다. 몇 해도 살지 못하고 죽을 운명들과 이어진 악연으로 세상에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


휘린은 더러운 영혼들에게서 보았다, 그들의 마지막을.


막아 줄 수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길 바랐다. 다시는 그들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일주일이 안 지난 어느 날, 휘린에게 못된 짓을 했던 그들은 함께 다니던 학원의 화재 사고로 모두 세상에서 사라졌다.


소식을 전해들은 휘린은 처음엔 허탈하게 웃었다. 그들에게 천벌이 내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마음은 오래 유지 되지 않았다.


휘린은 점점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살릴 수 있었는데···, 마치 그들의 죽음이 자신 때문인 거 같았다. 수 없이 갈등하다 무시 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들의 집 앞에서 서성인 것도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끝내 그러지 않았다. 나쁜 놈들이었지만 살리도록 신이 보여준 기회를 일부로 외면했던 거였다.


길을 잃는 영혼을 위해 살아가는 엄마의 신념을 통째로 배신한 것과 같았다.


그 후, 휘린의 생활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태도부터 달라졌다.


왜 그런 소문이 돌았는지 휘린이 아무 남자나 꾀고 다니는 어장녀, 문어녀라는 말이 돌았다.


아마도 화재로 죽은 녀석들이 자랑으로 떠든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 몸집을 부풀인 거 같았다.


질 나쁜 남자아이들이 휘린을 찾아다니며 집요하게 추행했다.


예쁜 외모만 보고 호기심에 친한 척 접근 했던 여자아이들은 휘린을 이용하려 했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그녀가 무당이라는 사실에 벌레를 보듯 진저리를 쳤다.


휘린은 그 모든 고통을 감내 했다. 변명하지도 반항하지도 않았다.


그런 괴롭힘을 죄업이라고 생각했다. 생명을 구하려 노력하지 않은 더러운 자신은 그렇게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여겼다.


그때부터 온갖 잡신이 붙어 그녀를 휘둘렀다.


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갑자기 정신을 놓은 미친 사람처럼 입에 붙는 대로 떠들었다.


아이들은 휘린의 입에서 나오는 비밀들을 숨기려 괴롭히고, 무섭게 퍼붓는 말들을 누르려 때리고, 저주 같은 걸로 복수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더 잔인해졌다.


예쁘고 화려했지만 공공의 괴롭힘 대상으로 전락한 휘린은, 어리석고 사악한 호기심과 같잖은 우월주의에 빠진 미숙한 아이들의 장난감이 되었다.]





정신이 돌아온 이영자의 양 볼에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자신이 본 것을 제대로 인지하기도 전에 목안에서는 이미 불길이 올라왔다.


어린 휘린의 가슴에 대못이 박히는 장면들을 되새기며 이영자는 제 입을 틀어막았다. 구토감이 밀려왔다. 화장실로 달려가려던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소리를 삼키는 울음이 입을 가린 손가락 사이를 비집고 새어나왔다.


“미친년 제 새끼 상처가 터져서 썩은 것도 모르고. 흐으흐윽크억크윽.”


울음소리는 걷잡을 수 없는 울분을 담고 크기를 키워 퍼져나갔다. 모든 장기가 끊어질 거 같이 아팠다.


“흐억억 흐윽흐윽 억어엌···.”


건너편 방에서 잠을 자던 휘린이 엄마의 울음소리에 놀라 깨어나 잠옷 바람으로 뛰어왔다.


“엄마? 왜 그래?”


이영자는 달려드는 딸을 보듬으며 울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이 아이 앞에서 눈물을 흘리나, 끄윽끄윽··· 그녀는 억지로 울음을 삼키고 또 삼켰다.


그러나 놀라 어쩔 줄 모르는 휘린을 다독이는 손은 멈출 줄 모르 체 부들부들 떨리기만 했다.


엄마의 아픔에 놀란 휘린의 얼굴도 울음이 터질 것처럼 일그러졌다.


“···꾸, 꿈을, 아주 지독한 꿈을 꾸었어. 내 손으로 죽였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원통한 놈들 꿈을 꿔서···. 미안해. 엄마 때문에 놀라서 깼구나?”


“엄마가 누굴 죽여? 무슨 개꿈을 다 꿨데?”


휘린이 말도 안 되는 말을 들은 것처럼 눈썹을 추켜세웠다. 세상에, 엄마가? 멸망이 다가왔나?


믿지 못하는 딸에게 이영자는 고개를 흔들었다.


“나도 사람이야. 때리면 아프고 억울하면 화를 내. 죽이고 싶은 사람은 절대 도와주지 않아. 원수를 사랑하라? 다 헛소리야.”


“정말? 엄마가 사람을 가려?”


상상도 해 본적 없는 말이라 휘린은 계속 같은 의문문을 입에 담았다.


“그래. 우리도 사람이야. 그저 사람일 뿐인데 사람인 걸 포기 할 필요는 없지. 모든 영혼을 다 가엽다고 보듬을 필요도 없고···, 모든 것의 기본은 나를 사랑하는 게 먼저야. 나를 죽이면서 남을 구하겠다하는 건, 자기기만이야.”


“엄마가 그렇게 말하니까. 이상해. 엄마가 사람들 구하느라 피를 토 한 게 몇 번인데. 안 믿겨.”


의심스러운 눈길을 거두지 않는 휘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영자는 부드러운 미소를 입에 걸었다.


“엄마는 오랜 시간 경험하고 깨달았잖아. 그런 마음은 스스로 터득하는 거야. 누구를 따라하는 것도, 자신을 속이는 거잖아. 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으로 충실히 행하는 것이 중요해. 너를 먼저 사랑해. 과거의 나를 후회하느라 스스로에게 굴레를 채울 필요도 없고···. 사람이길 포기하면서 살 필요도 없어. 절대.”


그러니 제발 과거에 묶이지 마. 휘린아. 네 잘못이 아니야. 넌 잘못하지 않았어.


이영자는 정작하고 싶은 말은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자신이 본 것을 말해 딸의 가슴을 또 후벼 팔 수는 없었다.


“엄마도 처음부터 지금처럼 살았던 거 아니야. 어린 것은 어린 거답게 가볍게 살아야지. 그 귀한 시간이 얼마나 짧은데···. 엄마처럼 살려고 하지 말고 너는 너답게 살아.”


휘린의 입이 커다랗게 벌어졌다. 엄마에게 이런 말을 듣다니 한 밤중에 무슨 일이가 싶었다. 나 지금 꿈꾸나?


이영자는 휘린을 다독여 제 이불에 뉘었다. 오랜만에 한 이불 속에 누운 두 모녀는 가슴 한 쪽이 간질거리고 묵직했지만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의 토닥임에 휘린은 금방 잠이 들었다. 그런 휘린을 바라보던 이영자의 눈이 시큼함에 일그러졌다.


‘내 자식은 지옥 불에 밀어 넣고, 나는 미련하게 위령제까지 올려 그 더러운 놈들 극락왕생하라고 빌었네. 내 자식 심장을 찌른 썩을 놈들인 줄도 모르고··· 썩을 년.’


숨이 막히도록 가슴 속이 들끓어 이영자는 입술을 앙 물었다. 이불을 움켜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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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런 거, 낯설다. 23.05.13 19 0 11쪽
3 세상을 왕따 시키려 했는데. +1 23.05.12 24 1 11쪽
2 어린 외톨이 떠돌이 23.05.12 31 1 10쪽
1 내 이름은 아영이에요. 23.05.11 66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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