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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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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승화
작품등록일 :
2023.05.11 23:06
최근연재일 :
2023.06.25 13:04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335
추천수 :
4
글자수 :
78,389

작성
23.05.2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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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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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아직 너무 어리다.

DUMMY

아침 햇살에 눈을 뜬 휘린은 머릿속이 깨끗해진 기분이었다.


그냥 평범한 아침이었고 특별히 다른 점도 없었지만 왠지 자신이 깨끗하게 씻긴 그릇처럼 느껴졌다.


“잘 잤어?”


옆에 누워 있던 이영자가 다정한 눈으로 휘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와! 엄마다! 휘린이 엄마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 동안은 그냥 불편하고 짜증나던 엄마가 오늘따라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엄마가 곁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하고 너무 너무 행복했다. 휘린이 엄마를 끌어안고 볼을 비벼댔다.


“엄마, 기도 안 갔네? 엄마가 옆에 있으니까 너무 좋다.”


이영자는 대답 없이 가만가만 휘린의 머리를 쓸어 내렸다. 자꾸만 눈가에 고이는 눈물을 딸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고개도 살짝 돌렸다.


“엄마 졸려 더 자고 싶어.”


“응, 더 자. 오늘 토요일이야.”


“엄마도 같이 자?”


“그래.”


엄마에게 꼭 붙어 떨어질 줄 모르던 휘린이 어느새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이 들었다.





이영자가 딸이 잠든 방을 조심스럽게 빠져 나와 미닫이문을 닫았다. 의연하게 걸으려 했지만 자꾸만 다리가 휘청거렸다. 그녀는 결국 대청마루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한손으로 입을 가리고 소리 없이 흐느꼈다. 딸의 바뀐 말투와 표정이 심장에 끈적끈적하게 들러붙는 거 같았다.


제 말 한마디에 휘린의 얽힌 마음이 풀어졌다는 사실에 가슴이 또 무너졌다.


오랜 시간 허우적대던 고통에서 이제 겨우 풀려난 딸이 고마워서 또 한 번 울음을 쏟아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큰 보살님.”


모든 것이 주아영의 능력이리라. 이영자는 끝없이 손을 합장하며 감사의 말을 읊조렸다.






#






아무변화 없이 시간이 흘렀다.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거 같아 한껏 들떴지만 혼자 버스를 타고 보육원에 돌아오는 동안 생각했더니 걸리는 것이 많았다.


중학교 1학년, 지금 당장 무당 일을 할 수 있나? 보육원은? 학교는? 그럼 휘린이 집으로 들어가야 하나? 아니야. 그건 싫다.


지금 무당이 되겠다고 나서면 보육원 가족들에게는 민폐일 것이고 어설프게 설치다 보육원을 아예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


‘싫어. 그런 건···.’


휘린의 어머니에게 부탁해 알바무당을 할까 생각 해봤지만 그녀의 반응과 나에 대한 태도가 너무 부담스러워 쉬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역시 지금 같은 방법이 제일 나아.’


결국 나는 이영자가 부르면 알바로 액을 물려주고 이번처럼 보육원 후원을 하는 방식으로 값을 받기로 했다.


추석날, 보육원에 방문한 이영자의 선물을 보며 기뻐하던 아이들을 생각하니 절로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녀는 생각 이상으로 손이 컸다.


명절 음식과 새 옷, 장난감들이 트럭에 실려 보육원에 도착했다. 절로 입이 떡 벌어졌다. 그 돈이 이렇게 큰 액수였나? 짭짤한데!


아이들의 환호성을 뒤로하고 나와 따로 대화를 부탁한 이영자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다짜고짜 머리부터 조아렸다.


내 몸이 펄쩍 뛰어 오를 만큼 민망했지만 글썽이는 그녀의 감사 눈물에 모든 것이 잘 마무리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약한 영혼의 아픔을 보듬겠다, 설치면서 제 자식 하나 다독이지 못했습니다. 그저 운명에 지쳐 휘청 일 때 보듬으면 된다, 미련하게 생각했습니다. 죄 많은 어미의 삶을 이어 받은 불쌍한 딸의 업보라고만 생각했으니까요.”


얼마나 울었는지 그녀의 가슴은 소금으로 가득 찬 것처럼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그동안 가슴에 쌓인 그녀의 눈물자국을 보며 나는 지그시 입술을 말아 물었다.


“이제 휘린이는 자유롭게 둘 겁니다. 운명의 무게를 받아드릴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어리석은 아집을 깨우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큰 보살님.”


“아니에요, 어머님. 저는 아무것도 안 했어요. 어, 저는 배가 고파서, 전이 맛있겠던데···.”


나는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고개만 끔벅 숙여 인사한 후 종종 걸음으로 도망쳐버렸다.


뒤를 쫓으며 송구스러워하는 어머님의 목소리와 멀찍이서 우리들의 눈치를 살피다 짜증을 내며 나를 따라 뛰는 휘린의 괴성이 뒤엉켰다.


마치 말썽부리고 도망치는 꾸러기처럼 보였는지 보육원 어른들이 소리를 높여 웃었다.


‘으아악! 부끄러워 미치겠다.’


솔직히 내가 뭘 했다는 거지 모르겠다. 그냥 보이는 걸 보고, 하고 싶은 말을 했을 뿐인데···.


스스로 느끼고 깨달은 건 이영자 본인이었다. 그래놓고 무조건 내 덕이라고 엎드리니 손발이 오그라드는 거 같았다.


그래도 모두가 잘 풀리고 즐거운 거 같아 기분은 좋았다.


이영자의 말처럼 [어린 것은 어린 거답게 가볍게 살아야지.]가 가장 옳은 답일 것이다.


앞으로 휘린은 조금씩 가벼워질 것이다. 그 옆에서 나도 가벼워지겠지?





***





쉬는 시간 화장실에 다녀온 휘린이 내 귓가에 속삭였다.


“고민정이 전학 간데.”


“고민정? 그래?”


고민정은 휘린을 괴롭히던 무리의 대장격인 아이였다.


거친 말투와 행동, 직설적인 성격이 또래들을 주눅 들게 만들어 그것을 이용해 제 입맛대로 휘두르기를 좋아했었는데 친구의 남자친구를 꼬셨다는 내 폭로로 상황이 역전 되어 버렸다.


휘린을 괴롭힐 수 없게 된 아이들은 고민정을 배제시키고 저희들끼리 뭉쳤다.


‘그래서 제 오빠를 끌어들여 휘린을 다시 괴롭히려 했지.’


휘린에게 칼 장난을 치던 남학생들은 고민정의 오빠가 몰고 다니던 무리였다. 나와 오래 눈을 맞추며 내 충고에 귀 기울인 가능성을 보인 그 녀석 말이다.


오빠의 주도로 새로운 도시에서 다시 시작하려는 그들이 앞으로는 부디 바르게 살아가길 바란다. 아직 어린 나이니 반성하고 정신 차리면 같은 실수는 하지 않겠지.


고민정은 잔뜩 기가 눌려 주변 아이들을 힐끗거리다가 조심조심 가방을 집어 들었다. 그녀에게 어느 누구도 잘 가라는 인사말을 건네지 않았다.


그녀는 어깨를 축 늘어트린 체 나와 휘린을 힐끔거리다 교실 문을 나섰다. 아이들의 피식거리는 비웃음 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휘린이 그런 아이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나와 눈을 맞췄다.


“쫓아가고 싶으면 쫓아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휘린이 고민정의 뒤를 쫓아 교실을 빠져나갔다.


수 십분 후 휘린이 눈가가 붉어진 얼굴로 교실로 돌아왔다. 나는 휘린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이 밝은 것으로 충분했다.






2학년이 되었다. 내 일상은 제법 평범하고 잔잔했다.


휘린과는 같은 반이 되었고 내 기운이 많이 누그러진 탓인지 아이들의 과도한 눈치도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친한 친구는 휘린 뿐이었다. 나는 아직 그것이 편했다.





하교하는 길에 지나치게 되는 초등학교 길은 늘 시끄럽고 산만했다.


오늘은 싸움이 났는지 유난히 더 시끄러웠다. 그들 속에 이젠 초등학생이 된 보육원 밤톨 꼬맹이가 보였다.


아는 얼굴이라 지나칠 수 없어서 가까이로 다가가는데 가까이 있던 아이가 냅다 밤톨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나는 본능적으로 팔을 뻗어 상대편 꼬맹이의 팔을 막아 밤톨 꼬맹이를 보호했다.


예기치 않은 나의 개입에 아이들은 모두 정지 화면처럼 멈추었다.


밤톨 꼬맹이는 나를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서러운 표정으로 울먹거렸다. 아이가 흘리는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씨, 싸웠다고 엄마에게 이르면 어떡하지. 내 잘못 아닌데···. 날 나쁜 아이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나 미워하면 어떡해. 내 잘못 아닌데.]


끝없이 걱정하는 녀석의 머릿속이 귀여웠다. 이 녀석 이름이 준영이라고 했었지. 8살 밤톨.


“준영이랑 친구들은 노는 것도 터프하구나.”


아이가 놀란 표정으로 뻐끔 거리다가 주위 아이들을 둘러보며 변명했다.


“누, 누나. 그게 그러니까. 친구 아니야, 나는 무시하려 했는데···.”


쉽게 꺼내지 못하는 준영이의 뒷말이 들렸다. 이 녀석들이 그동안 계속 고아라고 놀렸다고. 오늘은 원장 어머니 욕했다 이거지!


나는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내 눈빛 한번으로도 아이들은 새하얗게 굳었다. 오줌이 마려운 듯 몸을 움츠렸다.


다섯 명의 아이들을 쭉 훑어 본 나는 피식 비웃음을 날렸다.


“준영아. 배고프지? 빨리 가자. 어머니가 네 생일 케이크 연습하느라 빵 많이 만들어 두셨을 거야.”


준영이의 얼굴이 대번에 환해졌다.


“맞아! 엄마가 케이크 만들어 준다고 했어. 재민 형아랑 두리 누나도 내 선물 준다고 했고, 아! 비밀 이랬는데.”


들뜬 준영의 말에 아이들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그 표정을 바라보던 내 미간이 삐끗 일그러졌다.


어린 나이임에도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행동에 익숙했던 아이들은 지금 그렇게 비웃었던 고아 준영이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그동안 다른 사람을 괴롭혀서 제 불행을 보편화 시키려던 아이들이라 되갚아주면 시원 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이들의 마음을 읽은 나는 기분이 영 찝찝하고 짜증이 났다.


어린 아이들에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 창피해진 난,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린 체 목소리만 높였다.


“준영이 생일 날 놀러 올 거지? 다 와도 돼. 맛있는 음식 많이 할 거니까. 놀러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올려보던 아이들이, 눈치를 보다 꾸벅 인사를 하고는 쭈뼛거리며 도망쳤다. 준영도 달아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내 눈치를 보았다.


“정말 애들 오라고 그래? 나 괴롭히던 애들인데?”


“싫어? 그래도 친구잖아. 아니야?”


준영은 입을 꾹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결연하게 고개를 들었다.


“친구 아니라니까. ···그래도 오고 싶으면 오라고 할게.”


“그래, 그날 아이들에게 너는 가진 게 많은 아이란 걸 보여 줘. 형도 있고 누나도 있고 동생도 많다고.”


준영이 맑은 눈으로 나를 올려 보았다.


“맞아. 그리고 엄마랑 할아버지, 할머니, 선생님, 짱 세고 멋있는 대빵 누나도 있어.”


나? 훅치고 들어오는 밤톨 꼬맹이의 고백 같은 말에 살짝 얼굴에 열이 올랐다.


“넌 내가 안 무서워?”


내가 불퉁한 목소리로 묻자 아이가 볼을 붉히며 애먼 땅 바닥을 발끝으로 툭툭 두드렸다.


“무서워. 누나는 늘 화난 거 같고, 말도 없고···. 그래도 누나는 우리 편이잖아. 짱 쎄고 멋있는.”


“우리 편?”


그 말이 우스우면서도 싫지 않았다. 꼭 원장 어머니가 의도 없이 한 번씩 톡톡 던지는 칭찬 같았다.


이상한 사람이 애들을 키우니까 애들도 이상하게 자라는 것 같다. 쑥스럽게 웃는 준영이가 원장 어머니와 많이 닮아보였다. 이 보육원에 사는 사람들은 다 그랬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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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내 마음대로 23.05.21 20 0 11쪽
8 사람이 아니야. 23.05.18 20 0 11쪽
7 이런 거구나! 23.05.17 19 0 11쪽
6 내 안에 강한 것 23.05.14 20 0 11쪽
5 친구가 되어볼까? 23.05.13 19 0 9쪽
4 이런 거, 낯설다. 23.05.13 19 0 11쪽
3 세상을 왕따 시키려 했는데. +1 23.05.12 24 1 11쪽
2 어린 외톨이 떠돌이 23.05.12 31 1 10쪽
1 내 이름은 아영이에요. 23.05.11 66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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