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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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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승화
작품등록일 :
2023.05.11 23:06
최근연재일 :
2023.06.25 13:04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329
추천수 :
4
글자수 :
78,389

작성
23.05.17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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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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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이런 거구나!

DUMMY

휘린의 집으로 걸어가다 교복점에 들러 새 교복치마를 사고, 실없는 농담도 주고받으며 평범한 중학생 아이들처럼 장난도 쳤다.


나도 휘린도 생소한 이 느낌이 즐거워 가슴이 콩닥거렸다.


‘와! 친구랑 같이 하교를 하네! 우리 보통 사람 같아.’


별 거 아닌 이야기도 유별나게 재미있었다. 걸어가는 길이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는 거야?


그런데 문득 기분 나쁜 시선이 느껴졌다.


낯선 경험이 신나 발랄하게 겅중거리던 휘린이 갑자기 멈칫 굳었다. 그녀를 따라 같이 겅중거리던 나도 휘린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아! 저 새끼들이구나!


편의점 앞에 앉아 있던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네 명의 남학생들이 껄렁한 표정으로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휘린의 몸이 가는 풀잎처럼 떨렸다.


나는 대번에 그들이 휘린을 괴롭혔던 아침의 그 악당들이라는 걸 알아보았다. 너희들 다 죽었어! 나는 더벅더벅 그들에게로 발길을 옮겼다.


휘린의 하교 길을 알고 일부러 기다리는 것이 분명했다. 나쁜 짓은 꼭 한 번으로 안 끝나더라고.


날 선 내 눈과 마주친 그들의 몸이 움찔 굳었다. 주머니 안에서 딸깍 거리던 쇠붙이를 만지던 손이 조심스럽게 주머니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들은 우리를 해칠 수 없다. 예전 보육원 원장들이 그러했듯 그들은 내 앞에서 나쁜 짓을 할 수 없다. 그럼 내가 괴롭혀 줘야지.


나는 그들을 노려보며 복잡하게 머리를 굴렸다.


‘보이는 대로 떠들어서 지들끼리 싸우게 할까? 아님 경찰을 부르고 올 때까지 붙잡아 둘까? 뭐, 그래봤자 별 처벌은 안 받을 거 같지만···.’


떠오르는 방법들이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은 이렇게 넘어가도 다른 날은 어쩌지? 이 놈들은 앞으로도 계속 나쁜 짓을 할 텐데. 막을 방법이 없나?’


내가 옆에 있으면 해코지는 당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계속 휘린의 곁에 있을 수 없다. 휘린이를 제대로 지켜 줄 방법이 없나?


나는 남학생의 얼굴을 훑듯 바라보다 한 아이와 오래 눈을 마주쳤다.


“스스로 반성하면 참 좋을 텐데. 그렇게 쓰레기로 살면 다가올 미래는 결국 쓰레기통이잖아.”


읊조리듯 말하며 시선을 다른 아이들에게 옮겼다. 나와 눈이 부딪힌 아이들이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한 명씩 살핀 내 시선은 처음 마주한 아이에게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 아이는 눈을 피하지 않고 계속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빠져나올 수 있을 때 빠져나와. 기회는 오래 기다리지 않아. 바로 잡을 수 있지?”


아이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를 바라보던 내 눈도 커졌다가 다시 가늘어졌다.


‘어! 이게 되네!’


아이의 미래가 바뀌었다. 그 아이에게 보이는 미래에 내 심장이 흥분으로 쿵쾅거렸다. 내 말에 영향을 받는 사람이 있구나!


많은 사람들이 내 말에 죄책감을 느끼고 움츠러들었지만 미래가 바뀌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그때 내 뒤에서 휘린의 팔이 내 팔을 감싸 안았다.


“아영아, 가자.”


돌아본 휘린이 간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고 있었다.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않길 바라는 거 같았다. 그래 뭐, 내가 더 나설 필요는 없을 거 같다.


가벼운 한숨을 내쉰 나는 눈동자가 흔들리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휘린의 손을 꼭 잡은 채 가던 길로 다시 걸었다.


종종 걸음으로 나를 따라오던 휘린이 그제야 피식 웃었다.


“너, 무슨 방패 같아. 너랑 있으면 실드가 막 내 주위에 생기는 거 같아.”


별 거 아닌 듯 말하는 그녀의 말투에 조금 짜증이 났다.


“재밌냐? 그 애들 또 너 괴롭히려고 기다리던 거야. 안 무서워?”


둔탁한 내 말투에 휘린이 입술을 삐죽거렸다.


“인연도 악연도 신의 뜻이고 고통도 내 업보에 의한 거잖아. 괴롭힘 당하는 것도 너에게 도움을 받은 것도 나에 의한 거니, 모든 것이 내 탓이야.”


뭔 개뼈다귀 같은 소리야? 휘린의 말도 안 되는 괴변에 나는 어이없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





휘린은 오늘 자신의 선택을 원망했다.


주아영과 함께 집안에 들어서는 순간, 그녀가 뿜어내는 기운과 자신이 알던 신이 얼마나 다른지 그 차이를 극명하게 느꼈다.


모를 수가 없었다, 아영이 품은 신의 크기를.


아영과 함께 솟을대문을 넘는 순간 늘 영의 기운으로 가득 차 있던 집은 숨을 멈춘 듯 고요해졌다.


공기의 흐름까지 길을 잃은 듯 적막했다. 그것은 공포가 아닌 경건함이었다.


그 커다란 기운에 놀란 휘린의 엄마가 버선발로 달려와 주아영에게 큰절을 했다.


“아이고 큰 보살님 어서 오십시오. 이런 누추한 곳에 이리 방문해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광영입니다. 어서 드십시오. 부디.”


엄마는 아영을 신주처럼 받들어 상석에 모셨다.


휘린은 저도 모르게 손바닥으로 제 이마를 내리쳤다. 자신이 너무나 큰 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섣부르게 움직일 일이 아니었는데.


거칠고 막말에 욕도 거침없던 엄마가 아영이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 마냥 조신했다. 너무 낯선 모습이라 휘린은 엄마가 무섭기까지 했다.


아영은 조금 놀란 듯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곳에 방문한 목적이 분명해서인지 곧 본연의 표정으로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저에게 무언가를 보신 거지요? 그래서 왔어요. 제 안에 신이 있는지 알고 싶어서.”


아영의 질문에 엄마가 감격한 표정으로 울먹이다가 크게 머리를 조아렸다.


“그럼요. 큰 보살님. 계십니다. 아주 크게 계시지요. 잘 오셨습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제가 보살님을 모시고 그 뜻을 따르겠습니다.”


정말 엄마가 미친 것이 분명했다. 모시긴 뭘 모셔?


“저를 왜 모셔요? 전 휘린이 친구인데.”


아영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한 거 같아 떨리는 가슴이 조금 진정 되었다.


“신은 늘 받들고 공양해야 합니다. 큰 신을 느낀 종년이 본분을 잃고 방관하면 큰일 납니다.”


이번엔 아영이도 당황한 듯 했다. 휘린은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경솔한 자신을 원망했다. 지금 엄마는 아영을 사람으로 보고 있지 않았다.


“제가 휘린이와 어머님하고 다른가요?”


엄마의 눈이 아영에게로 향하다 죄스러운 듯 바로 고개를 조아렸다.


“네, 다르십니다. 큰 보살님은 살아 있는 것이나 죽은 것이나 관계없이 모든 것을 무릎 꿇릴 수 있으십니다. 그것이 순리입니다. 그런 신을 품으셨습니다. 그러니 부디 노여워 마시고 쇤네의 섬김을 받으시옵소서. 더불어 휘린이 저년 버릇없다 내치지 마시고 어여삐 여기시어 늘 곁에 두고 부려주시옵소서!”


미쳤다. 정말 엄마가 미쳤다. 납작 엎드린 그 태도는 도저히 정상으로 봐줄 수가 없었다. 휘린은 당황해서 눈이 커다래진 아영의 손을 잡고 이대로 도망치고 싶었다.


“그럼 저도 무당이 맞나요? 어머니와 같은 일을 해야 하나요?”


“어찌 저 같은 것과 비교하십니까? 큰 보살님의 그릇은 다릅니다.”


“그럼 전 어떻게 해야 하나요?”


“큰 보살님이 원하는 대로 하셔도 됩니다. 하고자 하시는 그것이 신의 뜻입니다.”


아영이 멍한 표정으로 휘린을 넘겨보았다. 도와달라는 건가? 그러나 이렇게 과격하고 열성적인 엄마에겐 휘린도 방법이 없었다.


시선을 거둔 아영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무엇 때문인지 알겠네.”


아영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 생각에 잠기듯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이 저는 닿을 수 없이 멀게만 느껴져 휘린은 초조하게 제 입술을 짓씹었다.


이 상황은 휘린이 원하던 그림이 아니었다.


머리가 복잡하고 깨질 듯 아파왔다. 가슴이 답답했다. 숨이 가쁘게 차올랐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이 낯선 상황을 받아들이기 위해 나름 노력했다.


이 곳을 찾은 성과는 있었다. 머릿속에 쌓였던 궁금증의 답을 조금은 찾을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휘린의 이상한 자기 비하의 원인도 알 거 같았다. 그녀는 휘린의 어머니 이영자의 신념은 거름 없이 학습한 거였다.


약인지 독인지도 모른 체 엄마의 삶을 따라했던 거였다. 그렇게 배웠으니까.


나는 가만히 눈을 떠 이영자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보이는 두려움과 정중함은 그동안 보아왔던 사람들의 태도를 가히 넘어서고도 남았다.


그녀의 말과 행동이 진심인 건 알겠는데 너무 부담스러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막막하다.


물론 그녀의 그늘에 들어가 섬김을 받을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녀가 바라보는 것은 내가 아닐 테니까. 그래도 그녀는 제법 흥미로운 말을 해주었다.


‘강한 신, 순리와 같은 강한 힘. 그 힘을 믿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고?’


정말 위험한 말을 들은 거 같아 나는 다시 입을 열어 질문했다.


“제가 원하는 대로 어떡해요? 제가 나쁜 짓을 하면 어떻게 되는데요?”


그녀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올려보았다. 그러나 그 표정은 금방 인자하게 바뀌었다.


“나쁜 짓을 하신 적 있습니까? 남을 악의적으로 괴롭히고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셨습니까? 모함한적은요? 누군가의 몸을 상하게 한 적 있으십니까?”


그녀의 말을 따라 되새기다 한 사건이 떠올라 찔끔했다.


‘악의를 가지고 괴롭힌 적 있는데···, 그것도 최근에 휘린이를 집단으로 괴롭히던 반 아이들에게 치부들을 폭로해서···. 그리고 예전 보육원에서 뒷담하던 아이들의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던 것이, 아직까지 계속 마음에 걸려. 이런 걸 물어 보는 걸까?’


어머니는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 일을 행하셨다면 마음이 어떠셨습니까?”


글쎄 어땠더라? 휘린을 신경 쓰느라 아무 생각 없었는데.


“만일 큰 보살님이 행한 행동이 있다면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것일 겁니다. 약자나 피해자를 위해서. 큰 보살님, 다른 이의 고통에 여기 가슴이 뻐근하고 아리십니까?”


나는 내 가슴께를 더듬었다. 아팠다, 휘린이 때문에. 그러나 나는 차마 말 할 수 없는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어머니가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큰 보살님과 함께 가면 좋을 곳이 있는데 저와 함께 가주시겠습니까?”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휘린을 슬쩍 넘겨보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







햇살이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강물 위를 8차선 다리가 가로지른다.


자동차들이 장난감처럼 내려다보이는 다리 위 철근 난간 꼭대기에서 평지를 걷듯 오락가락 거닐며 지나가는 차량들을 내려다보는 두 남자가 있다.


활동 편한 검은색 개량한복을 유니폼처럼 맞춰 입은 모습이 얼핏 커다란 까마귀 같다.


큰 키와 그에 어울리는 근육질의 큰 덩치로도 가뿐하게 고층 위를 거니는 땅의 수호령 뫼는 험악해진 인상을 잔뜩 구긴 체 끝없이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한껏 노려보았다.


그 옆에는 세밀하게 그려진 고가의 예술품처럼 넋을 잃게 잘생긴 물의 수호령 미르가 자동차들을 하나, 하나 짚으며 그 안을 일일이 확인하고는 고개를 흔든다.


“거봐, 늦지 않았다니까. 아직 안 지나갔다고요.”


미르의 반질거리는 말투에 얼굴이 더욱 험악해진 뫼가 기세를 더욱 세운다.


살살 봄바람처럼 웃던 미르도 그의 압력에 밀려 살짝 언 표정으로 자세를 바로 잡는다.


강 위 다리 전체를 아우르는 둘의 기가 팽팽하게 지나가는 차들을 그물처럼 훑고 지나간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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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과거는 굴레가 되어선 안 된다. 23.05.22 18 0 12쪽
9 내 마음대로 23.05.21 20 0 11쪽
8 사람이 아니야. 23.05.18 2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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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내 안에 강한 것 23.05.14 20 0 11쪽
5 친구가 되어볼까? 23.05.13 19 0 9쪽
4 이런 거, 낯설다. 23.05.13 19 0 11쪽
3 세상을 왕따 시키려 했는데. +1 23.05.12 24 1 11쪽
2 어린 외톨이 떠돌이 23.05.12 30 1 10쪽
1 내 이름은 아영이에요. 23.05.11 66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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