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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승화
작품등록일 :
2023.05.11 23:06
최근연재일 :
2023.06.25 13:04
연재수 :
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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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8,389

작성
23.05.2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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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갑작스런 손님

DUMMY

준영이의 생일을 하루 앞둔 초저녁 무렵, 보육원 원장실이 시끄러웠다.


목청을 높여 울어대는 아이들과 괴성을 지르며 화를 내는 어른들 소리에 작은 보육원 건물이 들썩였다.


나와 함께 낮잠 자다가 놀라 깨어난 아기들이 겁에 질려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잠이 덜 깬 눈으로 부스스 앉아 습관적으로 손을 양쪽으로 쫙 벌렸다. 그리고 비몽사몽 아무 생각 없이, 방긋 웃으며.


“왜 울어? 내가 도와줄까?”


칭얼거리며 내 품으로 파고드는 아기들을 달래주던 나는 쇳소리 같은 누구가의 고성에 퍼뜩 잠을 떨쳐냈다. 동시에 짜증에 사로잡혔다.


‘왜 남의 집에 와서 난리야. 어린 애기들 놀라게.’


차마 아기들 앞에서 욕을 뱉을 수는 없었지만 사나운 기운이 내 몸 위로 일렁였다.


끌어 오른 내 기운에 겁먹은 아기들이 울음을 그치고 나를 그렁거리는 눈으로 올려보았다. 그 겁먹은 맑은 눈동자들에 순간 움찔했다. 미안해.


“내가 다 쫓아버리고 올게. 울지 말고 얌전히 기다려. 준영이랑 은이는 여기서 동생들 돌보고 있어.”


내 부름에 여덟 살 이준영과 소은이가 쪼르륵 뛰어왔다.


그런데 준영이가 불안한 표정으로 눈치를 보다 원장실로 향하는 내 소매를 붙잡았다. 그의 안색이 어두웠다.


“누나. 지금 원장실에 그 아이들이 와있어.”


그 아이들? 내 머릿속에 얼마 전 준영과 싸운 아이들이 떠올랐다. 그 아이들이 부모를 함께 따지러 온 건가? 겁먹은 준영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 했다.


나는 아이의 머리를 쓱쓱 문질렀다. 놀란 듯 동그래진 아이의 눈이 나를 올려봤다.


“넌 잘못한 거 없잖아. 누나가 가볼게. 날 믿어.”


민망해서 볼을 긁적이며 말했더니 아이의 표정이 부드럽게 풀어졌다. 그러고는 엄지를 척 치켜들었다.


창피하면서도 발바닥이 간질간질했다.





원장실에 가까워지자 싸우는 소리는 더욱 또렷해졌다.


“어차피 나 같은 거 필요 없잖아. 귀찮다며! 한심하다며! 그런데 왜 안 된데?”


“강윤표, 그 입 안 다물어. 얘가 창피한 줄도 모르고 왜 이래. 너는 여기 애들 꼴 보면서 감사한 마음도 안 드니? 아주 복이 터져도 고마운 줄 모르고···, 도대체 뭐가 되려고 이러는지 몰라. 정말. 어휴 망신스러워서.”


“그러니까. 버려! 나도 여기에서 산다고! 나, 버리라고!”


짝! 살이 부딪히는 소리가 복도까지 울렸다. 놀란 원장 어머니의 목소리가 그 사이에 섞여 들었다.


“어머님 흥분을 가라앉히시고요. 아이에게 그러시면 안 됩니다. 아이가 어려서 감정적으로 말하는 거잖아요. 아이잖아요.”


“도대체 누가 꼬드긴 거야? 이런 말도 안 되는 계획을 누가 먼저 시작했어? 민수 너니?”


여자의 말에 신경질적인 남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내가 리더가 되라 했지 이런 거지새끼들 속에서 골목대장 노릇이나 하라고 했어? 내가 친구는 가려 사귀라고 했잖아. 정말 같잖아서.”


“지금 우리 윤표한테 하는 소리에요? 누가 거지새끼야? 김 사장님 말을 막하네!”


아이를 때릴 때는 언제고 남자의 무시하는 말에 발끈해서 목소리를 돋우는 여자의 목청이 다시 건물을 흔들었다.




두 사람은 멱살이라도 잡을 듯 사납게 서로를 노려보았다.


“아이들이 보고 있어요. 점잖으신 분들이 왜 이러세요. 두 분 다 진정하시고···.”


원장의 만류에 살짝 얼굴이 붉어졌던 두 사람은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제가 윤표를 말한 거겠습니까?”


민수의 아버지는 강윤표와 김민수를 제외한 아이들을 흩으며 짜증스럽게 혀를 찼다.


“어디 가서 가오 떨어지지 말라고 용돈 넉넉하게 줬더니 저런 애새끼들을···, 이런 젠장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김민수 이 꼴통 새끼, 네가 아직 혼이 덜났지? 개새끼도 그 정도면 말을 알아듣겠다. 너 정말 어디 모자라냐?”


민수가 움찔 어깨를 좁혔다. 아이의 탓을 하며 언성을 높이는 행동이 익숙해 보였다.


“아버님, 아이에게 말을 가려하셔야죠!”


원장이 드물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남자는 보란 듯 무시하며 아들의 멱살을 잡았다.


놀란 원장이 그의 팔을 잡으며 더욱 소리를 높였다.


“폭력은 용납 할 수 없습니다.”


“제 자식 교육입니다. 철없는 짓은 일찌감치 잡아야 머리 커서 엉뚱한 짓 안하는 거예요. 자기가 받는 혜택을 고마워하지 않는 건 내가 용납 못합니다. 받은 것의 10분의 1이라도 보여주는 인간으로 키우고 싶습니다. 저는.”


남자는 이를 악물고 예의를 차리는 척하면서도 원장 어머니를 내리까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나라 사람은 이렇게 오지랖이 넓어요. 부모 자식 간의 얘기라잖아요. 상관 마세요, 원장선생님은.”


여자도 훈수드는 듯 끼어들었다. 그래도 원장이 물러나려하지 않자 남자는 싸늘한 목소리로 그녀를 탓했다.


“머릿수 늘려서 지원비 늘리려는 속셈은 알겠는데, 부모 멀쩡한 새끼들은 건드리는 거 아니지. 차라리 기부 좀 해달라고 빌지 그랬어요. 당신이 지금 애들 편들 상황인 거 같아? 내가 아주 여길···.”


기세 좋게 협박하는 남자의 말을 자르며 원장이 이를 갈았다.


“경찰까지 부르게 하지 마세요. 이 방의 모든 상황이 녹화 되고 있거든요.”


그제야 남자가 움찔 굳어 벽 위에 설치 된 cctv를 바라보았다.






원장실 문을 열고 들어 선 나는 아이의 멱살을 잡고 흔드는 40대 남자의 험악한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의 옆에서 작고 왜소한 원장이 어쩔 줄 몰라 동동거리는 것이 보였다.


“아버님 우선 아이는 놓아주시고요. 어린아이입니다. 부모의 이런 행동은 아이에게 상처로 남아요. 아버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아이들의 기억에 얼룩이 된다고요.”


남자가 코웃음을 흘렸다.


“배부른 소리하네! 내가 굶기기를 해, 옷을 안 입혀? 그냥 내가 하라는 대로하고, 시키는 대로 노력만하며, 아스팔트로 깔아 논 보장 된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데. 뭐? 상처?”


원장 어머니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책상 위에 놓인 초등학생용 스케치북을 집어 돌아왔다.


스케치북에는 크레파스로 그려진 어리고 알록달록한 예쁜 그림들이 여러 장 붙어있었다.


“아버님, 아이들은 부모가 원하는 그림을 찍어내는 복사기가 아닙니다. 응원하고 믿어줘야 자신만의 그림을 멋지게 그릴 수 있는 거예요. 이 그림 예쁘죠? 이 그림을 그린 아이는 6개월 전에 이런 그림을 그렸어요.”


원장이 또 다른 스케치북을 펼쳐 보였다. 검고 붉은 기괴한 선들이 악마를 표현한 듯 흉측하게 도화지를 덮었다.


“아이들은 이 도화지처럼 그대로 보입니다. 상처 받으면 상처를 표현하고 기쁘면 기쁨을 표현합니다. 아버님이 생각하시기에 민수는 어떤 그림을 그릴 거 같나요?”


남자가 외면하듯 고개를 돌렸다.


“아버님도 그런 거 경험하지 않으셨어요? 어른의 기준에 부족해서 억울하게 혼나고, 비교 당해서 속상했던 경험 없으세요? 자라는 동안 어른들이 원하는 그림을 그려내야 하는 거 힘들지 않으셨어요?”


원장이 저를 가르치려한다는 생각에 분개한 남자가 고개를 쳐들며 짜증을 냈다.


“전 부모들 기준을 벗어난 적 없습니다. 불만도 없었고요. 그래서 지금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거죠. 저처럼 살라하는 게 잘못입니까?”


그 기세에 강윤표의 어머니도 넌지시 끼어들었다.


“저도 그랬어요. 어른들 말에 어떻게 토를 달아. 다 자식 잘 되라고 하는 소린데. 요즘 애들은 버릇없고 노력도 안 한다니까. 내가 한심하고 속상해서.”


나는 벽에 기대서며 코웃음을 흘렸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허세를 부리는 어른들의 꼴이 우스웠다.


허풍쟁이 거짓말쟁이들은 제 아이들에게 본받으라는 듯 거만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속 좋은 원장 어머니가 그들을 달래기 위해 손뼉을 치며 호응을 했다.


“그러시군요. 그렇게 바르게 자라셨다니 정말 훌륭하세요. 와, 인내력과 포용하는 마음이 그렇게 크셨구나! 그럼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너그러운 마음을 보여 주실 수 있겠어요. 그치요? 참고 기다리는 거 어려운 것도 아니잖아요. 그죠?”


원장 어머니는 아기자기한 외모만큼 말투도 귀여웠다. 혈압을 올려 흥분해 있던 그들의 표정이 조금씩 민망해졌다.


그러나 아버지의 손에서 풀려난 민수는 분을 참을 수 없었는지 눈치 없이 다시 기름을 부어 불을 지폈다.


“나는 다 필요 없다고! 누가 과외 시켜 달랬어? 비싼 옷 입고 로봇처럼 다니는 것도 싫어.”


민수도 나름 할 말이 많았다.


“늙은 사람들 앞에 서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소리에 억지로 웃는 것도 싫어. 혼자 밥 먹는 거 싫고, 아플 때 옆에 아무도 없는 것은 더 싫어!”


망신을 당했다고 생각해 얼굴이 일그러진 남자가 아이를 때리려는 듯 손을 들어올렸다.


“아닌데! 아저씨도 민수처럼 그랬는데! 아저씨 정말 어른들 말 고분고분 따랐어요?”


마음이 급해진 난 목소리를 높여 그를 저지했다. 나와 눈이 마주친 남자의 눈동자가 크게 확장 되었다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모르는 어른들 앞에 불려나가 착한 척하는 거 끔찍하게 싫어했잖아요. 받지도 않은 상, 받은 척 거짓말하는 거 자존심 상했잖아요.”


나는 민수와 남자의 어린 시절을 겹쳐보며 툴툴거렸다.


“똑똑한 척, 얌전한 척 하는 거 지겨워서 방에 돌아가면 장난감 다 부셨잖아요. 약한 아이와 동물들에게 상처 줬잖아요. 그랬으면서 민수가 이해 안 돼요?”


깜짝 놀란 원장 어머니가 내 곁으로 다가와 가만히 손을 잡았다. 그녀의 걱정스러운 마음이 전해져왔다.


삐죽삐죽 날을 세우던 내 기운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그렇지만 더 큰 거짓말쟁이가 몸을 사리고 있다는 걸 잊지 않았다.


나는 빨갛게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돌리는 윤기의 어머니를 향해서 싸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설핏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의 얼굴이 홍당무보다 더 붉어졌다.


“아버님, 어머님 오늘은 그냥 돌아가시는 것이 좋겠어요. 그리고 아이들은 친구 생일이라 놀러 온 거니까, 오늘밤만 놀다 자고, 내일 갔으면 좋겠는데 괜찮으실까요? 꼭 허락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원장의 말에 여자는 이때다 싶은지 반색을 하며 일어났다.


“그, 그래요. 애들 노는 거에 그렇게 예민할 필요까지 있나. 이만 돌아가요.”


“하, 하지만.”


남자는 아직도 할 말이 있는 듯 했다. 그러나 내 시선이 계속 그들에게 머물자 두 사람은 점점 좌불안석 불안해졌다.


머뭇거리던 두 어른은 내 눈치를 보다 원장 어머니에게 인사하듯 고개를 까딱였다. 그러고는 원장실을 도망치듯 나갔다.


원장실 안은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내 눈이 좁은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다섯 명의 아이들에게로 향했다. 내 시선을 느낀 아이들이 어깨를 들썩이며 몸을 떨었다.


“준영이네 반 친구래. 우리 보육원이 좋아보였는지 여기서 살고 싶다고 쳐들어 왔다네.”


보육원 잡무를 맡아보는 장노인이 내 옆으로 다가와 슬쩍 설명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상처주기 위해 보육원 생활을 자랑했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 내 도발이 생각보다 강했나 보다. 어쩐지 가슴이 아렸다.


내 탓이다. 아이들은 내 말 때문에 자신의 현실에서 달아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거다.


지금은 이렇게 고비를 넘겼지만 내일이 오면, 저 부모들은 또 자신의 자식들을 괴롭히겠지.


그건 막아줘야겠다, 결심한 나는 자동차에 올라타고 있는 아이들의 보호자에게로 뛰어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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