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단디단 서재입니다.

내 맘대로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해승화
작품등록일 :
2023.05.11 23:06
최근연재일 :
2023.06.25 13:04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336
추천수 :
4
글자수 :
78,389

작성
23.05.13 06:00
조회
19
추천
0
글자
11쪽

이런 거, 낯설다.

DUMMY

원장 어머니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다.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연신 고개만 끄덕거렸다.


내가 무척 긴장해서 음울한 기운을 풀풀 풍겼을 텐데도 원장은 나의 그런 분위기에 겁먹지도 불쾌해하지도 않았다.


나와 한 자리에 앉아있기도 힘들어하던 이전의 원장들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의 사람이었다.


그녀의 잔잔한 기운을 느낄수록 그 미소가 거짓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괜스레 얼굴이 붉어졌다. 처음으로 쭈뼛거리며 상대방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심장이 쿵쾅거려 조심스럽게 가쁜 호흡을 조절해 보았다.


“우리 아영이가 부끄러움이 많구나. 아이 귀여워.”


원장이 또 다시 나를 꼭 끌어안았다. 타인의 낯선 온기에 내 몸은 더욱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그런 내 반응에도 원장은 따스하게 웃어보였다.


“간단하게 시설만 안내해 줄게. 오늘은 씻고 푹 쉬어. 식사는 방으로 가져다줄까?”


그녀의 손에 이끌려 지낼 방을 구경하고 세면장과 식당을 안내받았다. 그런데 걸을수록 뒤가 점점 묵직해졌다.


웬일인지 마당에서 놀던 아이들이 내 뒤를 졸졸졸 따르고 있었다.


겁먹지도 눈치를 보는 눈빛도 아니었다. 그저 호기심과 반가움이 가득한 맑은 무언가가···. 이상했다,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자 발가락이 간지럽고 기분이 몽글몽글해졌다.


‘뭐지 이 분위기?’






단층의 아담한 신생 보육원에는 나 이외에도 열 명의 다양한 나잇대 아이들이 있었다.


어른이라곤 원장 어머니와 시설을 관리하는 할아버지, 식당 아주머니 두 명과 보육교사 두 명뿐이었다.


모두 정신없이 바빠 보였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아늑하고 편안했다.


첫날이지만 난 모두와 한꺼번에 인사를 나누기 위해 식당에 나와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언제나 그렇듯 아이들의 식사는 복작하고 산만했다. 이럴 땐 군기를 잡는 무서운 선생님이 나서는 법인데 어른들은 아이들의 실수를 수습해 줄뿐, 조금도 위협적이지 않았다.


나는 낯선 분위기를 살피며 원장 어머니가 수북이 담아준 밥과 반찬들을 젓가락으로 깨작거렸다.


“으째 맛이 읍나? 할매가 손 맛 하나는 기가 맥힌데, 아가야 입에는 아닌갑제? 뭐 따른거 맨들어 주까?”


식당 아주머니의 넉살에 민망해진 나는 고개를 크게 흔들고는 밥술을 크게 담아 입에 넣었다. 어, 낯설다 이런 관심.


원장 어머니가 환하게 웃다가 손사래를 치며 나를 말렸다.


“입맛 없으면 남겨도 돼. 억지로 먹다가 체해. 에이 이모는 왜 아이를 놀려! 낯설어서 입맛 없을 수도 있지.”


“으데 내가 놀맀나? 슝늉이라도 챙겨 맥이려 안하나. 니도 주까?”


“난 누룽지에 설탕 뿌려서. 난 그게 제일 맛이더라.”


원장 어머니와 아주머니가 만담을 하듯 목청을 높이며 주방으로 멀어졌다.


나는 눈을 떼구르르 굴리다 다시 젓가락을 깨작거렸다. 도통 모르겠다. 이 사람들은 뒤로 다른 소리가 안 들려서 그 속을 알 수가 없다.


그때 밤톨머리 꼬맹이가 내 옆에서 슬금슬금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공으로 내 머리통을 갈겼던 그 녀석이다.


나는 관심 없는 척 힐끗 그를 훑은 후 젓가락으로 김치를 깔짝거렸다.


“엄마한테 안 일렀지? 요?”


만만하게 친한 척을 하려다가 눈치를 보며 말끝을 올리는 것이 역시 내가 무섭고 어려운 것은 틀림없었다.


나는 그럼 그렇지 하는 마음으로 성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대빵 누나는 다르구나! 엄마 말이 맞았어. 우리 대장 할만 해! 의리 있네.”


“대빵? 대장?”


의외의 말에 반문하듯 물었지만 아이는 엄지를 추켜세우며 살랑살랑 멀어져 갔다. 뭐지? 여기 터가 이상한가?





***





원장 어머니와 전학 수속을 위해 배정 받은 중학교에 들어섰다.


처음 들어선 학교지만 어디에서나 느꼈던 반응들이 언제나 그랬듯 수순처럼 나를 맞이했다.


‘그래 이 반응이 정상이지. 아이들이랑 어머니가 특이한 거야.’


나의 곁을 스치는 아이들이 당황스럽고 불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놀란 듯 멀어지는 것을 무심하게 봐라보았다.


경험으로 미루어 봤을 때 잘못을 많이 저지른 사람일수록 나를 더 불편해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재판장이나 심판관처럼 대했다. 그리고 그들의 대부분은 뒤가 구린 어른들인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여긴 학교고 아이들이잖아? 도대체 이 아이들의 표정은 뭐지?’


아이들이 나를 힐끔거리는 표정은 죄를 감추지 못해 긴장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


‘뭐야? 여기 범죄 집단이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건물 현관입구에서부터 만난 아이들은 평소 다른 곳에서 겪었던 반응보다 유난스럽게 경직 되어 있었다.


학교 전체에 흐르는 공기도 심하게 불쾌했다.


나는 교무실로 먼저 들어간 원장 어머니와 떨어져 학교를 쭉 둘러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아이들이 흠칫 몸을 떨었다.


‘무슨 일이 있었어, 방금 전까지.’


시선을 피하는 아이들을 집요하게 훑어보는데 갑자기 한 구석에서 머리에 우유를 뒤집어 쓴 여자 아이가 뛰어와 내 손을 덥석 잡고 소리쳤다.


“잠깐 너, 뭐야? 와 이거 뭐야? 네가 한 거지? 방금 그거 네가 한 거 맞지? 너 뭔가 대단해!”


미친 아이인가 싶었다. 눈은 광기가 어린 듯 번들거렸고 지저분한 교복에 엉망진창인 꼴을 하고서는 목소리가 지나치게 밝았다.


‘더군다나 먼저 다가와 망설임 없이 내 손을 잡은 두 번째 사람이잖아! 아, 어머니는 안기까지 했었다.’


짧은 생이지만 정말 놀랍도록 새로운 경험이었다.


두려움 없이, 이렇게 서슴없게 내 손을 잡는 아이라니···. 더군다나 내 눈에 보이는 아이의 상태는 심각하게 문제 있어 보였다.


‘누더기처럼 찢겨진 이건 뭐지? 그런데 왜 밝아?’


“안녕? 난 한휘린이야. 넌 누구야? 교복도 처음 보는 거네? 전학 왔어? 몇 학년이야?”


아이는 몸도 마음도 엉망인 주제에 아무 문제없었던 것처럼 발랄하게 떠들었다.


[역시 미친년이야.] [재수 없어. 무당년이 왜 또 설쳐?] [야, 우린 얼른 들어가자. 기분 나빠.]


아이들끼리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안에 담긴 경멸과 비웃음이 진득한 여름습기처럼 피부에 와 닿았다.


불쾌함을 담은 내 눈이 그들을 흩자 아이들이 바람 앞에 쭉정이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사방에서 그들 위로 한휘린과 엮인 장면들이 떠올랐다. 흩어지는 아이들의 기억이었다. 나는 빠르게 그것들을 훑어보며 깊은 한 숨을 내쉬었다.


‘범죄 집단 맞네. 한 사람을 두고 이 정도로 괴롭히기 쉽지 않은데. 얘, 이러다 큰일 나겠다.’


한휘린은 여러 가지 이유로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아이였다.


아이들이 휘린에게 가진 근거 없는 우월감이 가장 크게 읽혔다. 그들에게는 한휘린을 괴롭히는 일이 유희처럼 당연한 일과가 되어 있었다.


입 안이 떫고 썼다. 항상 겪어 익숙한 일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보는 건 번번이 기분 더러웠다.


내가 왜 그들의 고통을 지켜보고 더러운 진실을 알아야하지? 뭘 어쩌라고? 볼 때마다 늘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 나에게 쏟아지는 한휘린의 고통도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한휘린이라는 사람 자체는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뭔가 독특했다.


비산하는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너울지고 잠자리 날개처럼 쉬지 않고 떨리는 영혼의 파장. 그리고 구멍 난 듯 텅 빈 공간.


‘다른 사람들과 달라···, 그리고 유난히 하얗고 깨끗해. 그런데 이건 무슨 기운이지? 이건 왜 자리 잡지 못하고 들쑥날쑥 흔들려?’


순간 주변 아이들이 휘린을 지칭했던 말이 떠올랐다. [무당년!] 아! 한휘린은 무당이구나! 그럼 이건 내림받지 못한 신인가?


생각을 이어가는데 갑자기 한휘린이 놀라운 말을 했다.


“우와! 신기하다. 너도 신을 모시는구나? 그런데 네가 모시는 신은 좀 이상한 거 같아!”


그녀는 정말 놀라운 것을 보는 것처럼 내 몸을 기웃거렸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머리카락에 맺혀있던 하얀 우유가 방울방울 떨어졌다.


나는 몸을 뒤로 빼며 그녀의 말을 되뇌었다. 무슨 소리지? 내가 신을 모셔? 나도 무당이라는 말인가?


예전에 나를 무당에게 팔려고 했던 산속 보육원 원장의 말도 떠올랐다.


[너에게, 네 안에 있는 것이 특별하기 때문에···, 그 여자가 억지를 부렸다. ···하도 사정을 해서 어쩔 수 없이 입양을 시키려고 했던 거다. 팔다니. 아니야! 후원이야!]


‘그 아줌마 안에도 뭔가 있었지! 검고 더러웠지만···. 나에게도 무언가가 있다면, 그럼 나도 무당인거야?’


휘린의 말 한마디에 생각이 많아졌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남들과 다른 나에 대해. 그동안 무시해왔던 나의 다름을 알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휘린과 가까워지기로 결심했다. 그녀가 나를 왜 반기는지, 그 이유가 알고 싶어졌다.





담임을 따라 교실에 들어가자 한휘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그녀를 돌아보는 아이들의 눈빛은 여전히 싸늘했지만 휘린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자 집중! 오늘 전학 온 새 친구가 있다. 친하게 지내고···. 자기소개 할래?”


담임이 중앙자리를 내주며 나에게 물었다.


나는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인 후 교탁 앞으로 걸어 나갔다. 꾸벅.


“내 이름은 아영(娥瓔)이에요.”


나에게 집중 된 시선을 훑으며 담담하게 이름을 말했다. 잠시간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차츰 당황한 듯 흔들리는 눈동자가 늘어갔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뭐지? 나는 그들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뒤늦게 내 소개가 부족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성은 주입니다.”


주아영, 온전하게 이름을 말한 후, 만족스럽게 방긋 웃었다. 누군가의 앞에서 자신을 제대로 소개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원장 어머니가 나는 웃는 얼굴이 무척 예쁘다고 했으니, 나도 나름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와아~ 주아영 반가워!”


침묵 속에서 휘린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담임도 어색하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교실 안에는 잔잔하게 박수소리가 채워졌다.


나는 다시 방긋 웃으며 휘린의 옆자리로 종종종 다가가 앉았다. 당연하다는 듯.


담임과 아이들은 지시나 안내 없이 제 마음대로 자리를 찾아 앉는 나를 보며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뒷문 옆에 붙은 휘린의 옆자리는 언제나 텅 비어있었다. 쓰레기통 냄새와 찬바람이 머무는 곳, 일부로 만든 자리임이 분명해 보이는 그 곳에 내가 앉았다.


모두에게 묵인 되었던 휘린에게 가해지던 학대 안으로 내 자의적인 개입이 시작 된 것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내 맘대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6 마음에 안 들어. 23.06.25 9 0 10쪽
15 다 이유가 있다. 23.06.21 10 0 11쪽
14 어리광 부리다. 23.06.19 13 0 10쪽
13 이런, 들켰다! 23.06.18 13 0 12쪽
12 갑작스런 손님 23.05.25 17 0 12쪽
11 아직 너무 어리다. 23.05.24 17 0 11쪽
10 과거는 굴레가 되어선 안 된다. 23.05.22 19 0 12쪽
9 내 마음대로 23.05.21 20 0 11쪽
8 사람이 아니야. 23.05.18 20 0 11쪽
7 이런 거구나! 23.05.17 19 0 11쪽
6 내 안에 강한 것 23.05.14 20 0 11쪽
5 친구가 되어볼까? 23.05.13 19 0 9쪽
» 이런 거, 낯설다. 23.05.13 20 0 11쪽
3 세상을 왕따 시키려 했는데. +1 23.05.12 24 1 11쪽
2 어린 외톨이 떠돌이 23.05.12 31 1 10쪽
1 내 이름은 아영이에요. 23.05.11 66 2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