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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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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승화
작품등록일 :
2023.05.11 23:06
최근연재일 :
2023.06.25 13:04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324
추천수 :
4
글자수 :
78,389

작성
23.05.11 23:17
조회
64
추천
2
글자
12쪽

내 이름은 아영이에요.

DUMMY

“엄마, 빨리···. 봐요. 예쁘죠? 나, 자꾸만 이 아기가 신경 쓰여서···. 어제는 꿈에서도 만났다니까. 걱정 되고, 보고 싶고, 남 같지가 않아. 나 사랑에 빠졌나 봐! ···잘 돌볼게요. 엄마, 우리 이 아기 입양해요. 네?”


아이고, 이 녀석 또 찾아왔네. “까아~” 나는 작은 손을 흔들며 최대한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철없이 곱게 자란 티가 폴폴 나는 예쁜 도련님이 내 웃음에 행복한 듯 방긋 웃는다. 나도 이 예쁜 오빠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 아주 좋은 것이 주렁주렁 달렸거든.


‘네가 가진 거 조금만 나눠주라. 나도 좀 편하게 살게.’


이제 겨우 사물이 보이고 소리가 이해되기 시작했지만 나는 내 삶이 그리 즐겁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내 생명이 생겨난 순간부터 느꼈던 부분이다. 그리고 조금씩 눈에 보이기 시작한 주변 상황은 그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다는 걸 알려주었다.


나랑 비슷한 쪼꼬미들이 바글바글한 방에 커다란 여자들이 성의 없이 들락거리는 싸늘하고 산만한 분위기. 조금도 아름답지 않은 그 모든 것은 참으로 음울했다.


그럴 수밖에, 죽은 엄마의 배에서 죽은 후 태어난 운명이니···.


나는 본능적으로 내 앞에 서있는 반짝이는 두 사람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걸 느꼈다. 앞으로 살게 될 내 삶의 편안함을 위해서라도.


“끄아아, 까깍 까~”






김여의는 봉사 황동으로 영아원에 왔다가 이 작은 아기를 만났다.


평소엔 아기는 귀찮고 지저분하고 아무리 귀여워봤자 결국 다 시끄러운 존재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왜인지 처음 본 이 아기는 이상하게 신경이 쓰였다.


한 공간에 많은 아기들이 있었지만 그는 올 때마다 이 아기의 주변에서만 서성거렸다.


그의 태도가 신기했던 친구들은 여의의 첫사랑이라 떠들며 그의 정성을 지지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친구들은 그에게 아기의 돌봄을 전담 시켰고 과제까지 수행 시켰다.


웃지 않는 무표정한 아기를 위해 그에게 떨어진 친구들의 숙제는 아기를 웃게 하라. 이었다.


얼굴을 기괴하게 찡그리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얼굴을 들이대고 주접을 떨길 여러 날, 반응 없는 아기에게 지친 여의가 실망해서 포기하려 할 때쯤 갑자기 아기가 살며시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 환한 미소에 심장이 뻐근해진 여의는 상상 병에 걸린 사람처럼 며칠 동안 아기의 웃는 얼굴만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그는 작정하고 어머니를 억지로 끌고 왔다.


여의는 어머니의 성품을 알고 있었다. 아기를 좋아하는 그녀라면 자신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기와 만나면 분명 어머니도 흠뻑 빠질 것이다.


이미 아기를 입양해 잘 키워서 시집보내는 것까지 망상한 그는 잔뜩 흥분해서 앞뒤 설명할 정신없이 다짜고짜 어머니에게 아기를 입양하자고 졸랐다.


평소답지 않은 아들의 요구에 눈을 커다랗게 뜨고 난감한 표정을 짓던 그의 어머니는 말없이 아기를 안아 한참을 토닥거렸다.


그리고 생각 많은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게 정말 사랑스럽네. ···아이 예뻐. ···그래, 정말 예쁘다. 여의 네가 왜 그러는지, 알겠어. 엄마도 인정.”


그러나 뒷말을 잊는 그녀의 목소리는 단단했다.


“하지만 우리 집은 아기에게 좋은 환경이 아니야. 엄마 말 이해하지? 책임감 없이 일시적인 충동으로 다른 사람의 운명을 건드려서는 안 돼. 우린 자격 없어.”


예상에서 벗어난 대답에 발끈한 여의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충동이 아니야. 난 정말 좋은 오빠가 될 수 있어.”


“김여의 그건 너의 이기심이야. 차라리 후원해주다가 좋은 부모를 만나게 돕는 것이 옳아.”


두 사람의 언성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놀란 아기들이 울고 분위기는 냉랭해졌다.


당황한 두 사람이 주변에 사과하느라 바빴지만 서로의 얼굴에는 물러설 마음이 조금도 비취지 않았다.






나는 방긋방긋 웃던 얼굴을 굳히고 서로를 노려보는 두 사람을 가만히 올려보았다.


우아하게 아들을 달래는 어머니는 참으로 좋은 기운을 가진 사람이었다. 맑고 깨끗한 커다란 그릇이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달랐다.


하긴 눈부신 빛을 품은 오빠의 어머니니까 그럴 만도 하겠다.


나는 푸른 기운으로 아롱거리는 여의를 보며 숨을 크게 들이 쉬었다. 와! 정말 예쁘다.


여의에게는 아름다운 빛이 흘렀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먹는 맘마처럼 뿌옇고 흐릿한 하얀 빛을 가졌지만 그의 몸을 채워 흐르는 푸른빛은 너무나 예쁘고 신비로웠다.


그랬기에 내가 웃어도 주고, 놀아도 주고, 특별히 관심을 베풀어 준 거였는데···.


“어머! 김복희 회장님 맞으시지요? 여긴 어쩐 일이세요?”


언제 나타났는지 원장님이라고 불리는 여자가 갑자기 끼어들어 호들갑을 떨었다. 언제는 정숙, 정숙만 외치더니 오늘 따라 유난히 목소리 톤이 높다.


주변 아기들의 칭얼거림과 울음 속에서도 그 유난스러움이 또랑또랑했다. 내 표정도 금방 울음을 터트릴 듯 와락 일그러졌다.


“회장님, 힘드세요. 요것들이 쪼그만 해도 꽤 무겁다고요. 자, 이쪽으로 오세요. 저랑 사무실에 가서 차라도 한잔 마셔요. 세상에 제가 존경하는 김복희 회장님이 저희 영아원에 다 방문해 주시고, 정말 영광입니다.”


“이 아기 이름이 뭔가요?”


그때 사심가득한 원장의 아부를 차단하듯 여의가 끼어들었다.


평범한 학생인 줄 알았던 여의의 정체를 알게 된 원장이 그동안 거만을 떨었던 과거의 행동을 떠올리며 입술에 경련을 일으켰다.


민망한 듯 움찔거리더니 화제를 돌리기 위해 김복희의 품에 안긴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 출생 신고를 안 해서 이름이 없어요. ···이제 만들어야지요. 적당히.”


생후 6개월이나 된 아기의 출생신고가 계속 미뤄지는 중이었다. 나름 이유가 있다는 듯 원장은 미간을 의미심장하게 구겼다.


“잘 된 네요. 아영娥瓔(예쁠 아, 구슬목걸이 영)이라고 지어요. 여의如意(같을 여, 뜻 의) 동생 아영 잘 어울리죠?”


여의는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한자를 쓱쓱 써냈다.


자신의 이름 여의주와 예쁜 구슬을 같은 계열에 놓고 생각해 낸 이름이었다. 그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김여의!”


그러나 김복희는 그의 의도를 저지하듯 나를 강보에 내려놓으며 엄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럴수록 여의의 표정은 더욱 진지해졌다.


“모레가 내 생일이잖아. 내 생일 선물로 허락해줘요? 저 꼭 아영이의 오빠가 되고 싶어요. 가볍게 하는 결심 아니에요. 아영이 호적에 올려줘요.”


김복희는 아들의 고집을 생전 처음 보는 사람처럼 놀란 입만 뻐금거렸다.


여의에게 이미 나는 동생 아영이였다. 그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을 것처럼 단단한 표정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마주 보았다.


좋아 더 밀어 붙여. 어서 날 데리고 여기서 나가! 희망이 보이자 내 입에선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까아~”


“어머! 얘가 웃네! 어머, 어머.”


내 웃음소리에 원장이 신기한 구경거리가 난 듯 호들갑을 떨었다.


이해되지 않는 원장의 반응에 김복희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아기가 웃는 게 이상해요?”


김복희의 표정 하나로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당황한 원장이 황급히 변명하듯 말했다.


“아, 그러니까. 이 아기는 지능이 모자라서 특별한 관심이 필요하거든요.”


누가? 내가? 나 보고 모자라다고? 진심이야? 억울해진 나는 끙차하며 몸에 힘을 주었다. 그와 함께 내 몸에서 빠져나온 묵직한 것이 기저귀를 가득 채웠다. 윽 이런.


“어! 아영이가 응까 했나 봐요.”


내 상태를 제일 먼저 알아챈 건 여의였다.


역시 넌 예민하고 눈치도 빠르구나! 맘에 들어! 그래 오빠, 내 오빠해라. 나 오빠 동생 아영이 할래.


그러나 원장은 나를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내려 보며 입을 열었다.


“보세요. 안 울지요? 이 아기는 이 곳에 들어온 후 한 번도 운 적이 없어요. 응까나 쉬를 하면 우는 것이 당연한데, 도통 표현을 안 해요. 얌전하고 순하다고 말할 수준이 아니라니까요. 신호를 보내야 케어를 하지, ···걸핏하면 피부도 짓무르고, 배고프다고 울지도 않으니 오히려 까다로워서···. 사실 오래 살 거 같지도 않고···.”


뒷말은 혼잣말하듯 작게 웅얼거렸지만 다 들릴만한 소리였다. 김복희의 표정이 더욱 싸늘해졌다.


원장의 지시로 보육교사가 다가왔다.


난 급한 마음에 김복희의 손가락을 꽉 쥐었다. 날 데려가. 날 키워. 후회하지 않게 해줄게. 간절한 눈으로 그렇게 외쳤다.


그러나 김복희는 슬픈 표정을 짓고는 씁쓸하게 미소만 지었다.


눈과 귀만큼 입이 제 구실을 못하는 것이 너무 서러웠다. 나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웅얼거리다가 짜증스럽게 빽! 소리를 지르고 서럽게 울어버렸다.


내 울음소리에 놀란 영아원 사람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보육교사가 나를 안아들어 토닥였다.


“어머나 세상에!” “한 번도 울지 않던 아기인데?” “혹시 아기에게 뭔가 하셨어요?”


모두들 한 마디씩 했다. 놀란 다른 아기들도 일제히 울음을 터트렸다. 순식간에 보육실이 난장판이 되었다.


그랬다. 나는 태어난 순간 이후로 한 번도 울지 않았다. 모두들 나에게 문제가 있다, 말했다. 아직 겉으로 들어나지 않은 병이 있을 거라고 장담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랬던 내가 세상 서럽게 울었다.


나를 입양해. 나 데리고 가. 제발.


“으아마~~~~ 아~~~.”


난 있는 힘껏 손을 뻗어 복희에게 안기려고 했다. 여의도 안타까운 표정으로 내게 손을 뻗었다. 그러나 김복희의 손이 그의 팔을 붙잡았다.


“여의야. 신중하자! 입양은 봉사와 달라. 엄마도 바쁘고 너도 이제 복학해서 대학 생활 시작하는데···, 기껏 가족이 되어서 남의 손에 아기를 키울래? 그런 가정에서 아기가 행복하겠니?”


“하지만···.”


“그리고 우리 집은···. 하, 왜 갑자기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부리는 거야. 제발 현명하게 생각해.”


김복희는 정말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간을 찌푸리던 여의가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손을 거두어들였다.


그들을 바라보는 내 눈이 가늘어졌다. 그들의 위로 무언가가 보였다.


그들의 표정을 이해한 나는 결국 뻗었던 손을 축 떨어트렸다. 미안 더 이상 조르지 않을게. 슬퍼하지 마. 괜찮아.


나는 거짓말처럼 울음을 뚝 그쳤다.


고집, 끝! 가라 가. 얼른 기저귀 갈아 줘. 나 기분 몹시 나쁘다. 나는 보육교사의 옷을 잡아 쭉쭉 당겼다.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정말 좋은 사람들인데, 그들이라면 내 삶이 달라질 거 같은데···.


하지만 그들은 정말 나를 입양 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모자의 위로 보인 장면은 나를 포기시키기에 충분했다. 나는 빠르고 확실하게 마음을 정리했다. 그들과 나의 인연은 여기까지인가 보다.


“원장님 저와 이야기 좀 하시죠.”


위에 선 자의 분위기를 풍기며 김복희는 죄인이 된 듯 얼어붙은 원장과 밖으로 나갔다.


“또 올게 아영아. 잘 지내.”


여의도 아쉬운 표정으로 내 손을 꼭 쥐었다가 인사를 남기며 그들의 뒤를 따랐다.


나는 그에게 어른거리는 장면을 바라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안녕. 힘내. 잘 견뎌.] 할 수 없는 말을 오물거리면서.


두 사람은 다시는 이곳에 오지 못 할 것이다. 그들에게 일어날 불행을 보게 된 나는 다시 모든 의지를 놓아 버렸다.


그 날 이 후, 두 사람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울지 않는 아기가 된 나는 1년 후 다른 영아원으로 옮겨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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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세상을 왕따 시키려 했는데. +1 23.05.12 24 1 11쪽
2 어린 외톨이 떠돌이 23.05.12 30 1 10쪽
» 내 이름은 아영이에요. 23.05.11 65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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