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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동아리 님의 서재입니다.

천재 에이전트가 다 해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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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동아리
작품등록일 :
2024.08.10 13:23
최근연재일 :
2024.09.08 23:15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7,397
추천수 :
196
글자수 :
130,534

작성
24.08.2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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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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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업보다 업보

DUMMY

-형님, 정말 죄송해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나를 거치지 않고 덥석 물어버린 건 괘씸했지만, 지나간 일이다.


녀석에게 재발 방지를 받아내고 일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아무튼 조건은 어때? 괜찮아?”


-넵! 연봉하고 조항들을 보면 거절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렇긴 하지. 아무튼 채 대표가 너도 데려오라고 했는데 사인은 천천히 해도 되니까 집에서 푹 쉬고 있어.”


마지막으로 쓸데없이 체력 낭비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이틀 후 대구로 향했다.


약속 장소는 구단 사무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고깃집이었다.


“이 양반은 질리지도 않나.”


매번 대구에 올 때마다 여기에서 밥을 먹었던 터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방문을 열었다.


그러자 익숙한 얼굴의 중년 아저씨가 환하게 웃으며 날 반겼다.


“이야! 김 대표! 오랜만이데이.”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채 대표는 씩 웃으며 물었다.


“우리 사이에 무신 안부 인사고, 됐고 앉아라. 차는 놓고 왔제?”

“예, 그렇습니다.”

“팔 떨어지기 전에 한 잔 받아.”


자리에 앉자마자 잔을 건네고 소주를 가득 따라주었다.


나는 병을 넘겨받아 마찬가지로 소주를 가득 채웠다.


넘칠 듯 말 듯 잔을 조심스레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걸 본 채 대표가 혀를 찼다.


“김 대표! 술 앞에서 제사 지내나? 안 마시고 뭐하노?”

“아직 음식이 안 나왔습니다만.”

“원래 빈속에 묵어야 머리가 빠릿빠릿하게 돌아가는 기라. 짠!”


우리는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연거푸 세 번을 비웠다.


취기가 살짝 도니 음식이 나왔다.


육회를 비롯해 다양한 반찬들이 테이블을 가득 채웠고 돌솥 밥과 고깃국이 마지막으로 나왔다.


채 대표는 넥타이를 풀며 말했다.


“멀리서 오느라 시장할 텐데 한 숟갈 묵고 이야기하자꼬.”


채 대표는 육회를 한 무더기로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물었다.


“어떻노? 맛있제?”

“네, 뭐, 괜찮네요.”


나를 굴복시켰다고 생각한 건지 미소를 감출 줄 몰랐다.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워갈 때쯤.


채 대표는 내 잔에 술을 따라주며 진지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김 대표.”

“네.”

“내가 와 김대현이를 올라는지 알고 있나?”

“대충은요.”


대구의 주전 라이트백이자 인기 선수인 장선호의 재계약 결렬.


장선호와 대구 프런트 모두 돈 문제는 아니라며 잡아뗐다.


서로 접점을 찾고 있다며 언플 기사를 내보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이 바닥에서 열에 아홉은 돈과 연결된다.


ACL이니 상위 구단 이적은 부차적인 문제다.


대구에서 인기 스타로 군림하고 팬들도 많은데 굳이 떠나야 할 이유는 없었다.


물론 대구가 매 시즌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팀이긴 하나 돈만 많이 준다면 선수는 무조건 남는다.


‘내가 알기로 계약 기간이 올해 말인가 내년 7월인가 그런데.’


연장 조건은 없는 걸로 안다.


아무튼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를 공짜로 내준다?


아마 채 대표는 팬들의 비난을 면치 못할 거다.


그렇다면 저 짠돌이 대표가 구단 인기 스타인 장선호와 재계약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


‘실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마스크가 훌륭해서 상품 가치가 높을 텐데.’


궁금증을 참을 수 없던 나는 홀로 술을 홀짝이던 그에게 물었다.


“채 대표님, 장선호에게 무슨 일 생겼습니까?”

“니 갑자기 그놈 이야기는 와 꺼내노! 설마 나 몰래 그놈하고 붙어먹을라는 거는 아니제?”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채 대표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하! 김 대표, 니가 내를 우째 물먹였는지 모를 줄 아나?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신경 끄래이!”

“혹시 돈 때문입니까?”


내 물음에 채 대표는 인상을 팍 찡그리며 소리쳤다.


“내가 마! 돈 때문에...됐고! 읽어봐라!”


이럴 때는 져주는 게 좋다.


괜히 채 대표의 속을 긁어봤자 진행이 안 될 테니까.


뭐, 채 대표가 내민 계약서는 흠 잡을 부분이 없었다.


구두 계약으로 맺은 조건과 정확하게 일치했고 채 대표의 승부수인 해외 오퍼 조건도 삽입되어 있는 걸 눈으로 확인했다.


법률은 내 전문 분야가 아니라서 물어봐야겠지만, 문제없을 거다.


채 대표는 차라리 돈을 깎았지 이런 장난을 칠 위인이 아니니까.


“마음에 들면 오늘이라도 김대현이 불러서 사인해라.”

“협상 가능한 부분은 있습니까?”

“아이고! 2년 차 신인이 억 대 연봉을 받는데 여기서 더 벗겨먹을라꼬? 니 진짜 양심도 없나?”

“없으니까 에이전트 일을 하죠. 이야! 육회가 정말 맛있네요.”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채 대표는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럴 줄 알았다며 꽤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좋아. 김 대표, 그라먼 니 내하고 일 하나만 하자.”

“어떤 일입니까?”

“다 니한테 좋은 일이니까는 니는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된다.”


나는 젓가락을 부지런히 놀리며 고개를 저었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제가 판단할 테니 먼저 알려 주시죠.”

“니 요즘 일감 없제? 내가 일감 줄 테니까 그냥 사인해라.”

“대표님께서 얼마나 잘 쳐준다고 일감 가지고 생색을 내세요?”


정곡을 찔린 그는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 잔에 술을 채워주었다.


“이야. 참 지독하다. 지독해. 그 일을 겪었으면 꺾일 법도 한데 우째 한 번을 안 져주노.”


나는 술병을 받아 채 대표의 잔에 술을 가득 채워주며 말했다.


“저번에 하신 행동을 생각하면 많이 참은 겁니다.”

“하긴 오랜만에 보니 독기가 마이 빠지긴 했네.”

“그래 보입니까?”

“그래 인마. 자, 짠!”


우리는 잔을 가볍게 부딪치며 단숨에 술을 비웠다.


알싸한 알코올 냄새가 입안에 가득 진동했지만, 육회를 쑤셔 넣자 바로 진압됐다.


“김 대표, 니 예전에 얼굴 어떻게 하고 다녔는지 기억나나?”

“당연히 안 나죠.”

“참나. 아무리 바쁘게 살더라도 거울은 좀 보고 살으래이.”

“거울은 매일 봅니다만.”


그는 인상을 찡그리더니 이내 물을 한 잔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얼굴에 독기가 그득해가지고 표독한 인간 그 자체였데이! 약해 보일라 카면 찍어 누르고, 강한 놈들은 강한 놈들대로 밟아뿌꼬 내동댕이치면서 깔아뭉개고 그랬다. 와! 내가 그걸 보면서 진짜 깡다구가 그냥 미쳐 돌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칭찬이 아니라 욕이다. 새꺄.”


나는 피식 웃으며 술병을 들었다.


“그럼, 욕으로 듣겠습니다. 잔 비었네요. 한 잔 받으시죠.”

“하아. 이 새끼, 술이 고팠구마! 진작 말하지! 빨리 따라 봐라!”


잔을 연거푸 다섯 번을 비우자 채 대표의 얼굴이 벌겋게 변했다.


나는 바로 채 대표의 잔에 술을 가득 따랐다.


그걸 본 채 대표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눈빛만큼은 전투적으로 변해 있었다.


“오늘 마시고 죽을라카나?”

“원하신다면 응해드리죠.”

“좋다! 좋아! 오늘 누가 죽나 함 해보자! 니 지금 잔 안 비우고 뭐하노?! 퍼뜩 마시라!”


술잔이 한 번 부딪칠 때마다 계약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채 대표는 낄낄 웃어대더니 내 상황이 꼴좋다고 비웃으면서도 조언을 잊지 않았다.


“야! 김 대표! 니가 히끅! 한국에서 실패한 이유가 뭔지 아나? 따아악! 하나다. 하나. 내 잘났다고 큰소리치다가 못난 놈들에게 두들겨 맞은 기라. 사람이 말이야. 적당히 숙일 줄도 알아야 하는데 니는 그게 안 됐어.”

“알고 있으니 그만하시죠.”


당연히 채 대표는 말을 씹었다.


“외국물 먹었다고 다른 놈들은 안중에도 없었제? 하! 내 그럴 줄 알았다. 니 내 처음 만난 날 기억하나?”

“아뇨.”

“책상에 딱! 이래 다리를 꼬고 앉았을 때 와! 돌아삐겠더라고. 그런데 선수가 너무 좋아서 계약을 안 할 수도 없고. 질질 끌려가다가 마지막 날까지 사인을 안 해주니 사람 속이 안 뒤집어 지겠나?”


술에 취하니 옛날이야기를 줄줄 푸는 채 대표.


나는 그냥 술을 따라주고 대충 맞장구쳐줬다.


따라주는 술은 반만 마시고 반은 버리면서 적당히 조절했다.


그렇게 두 병, 세 병, 네 병을 비우니 채 대표의 눈이 반쯤 풀려 있었다.


“김 대표오오. 니 솔직하게 말해보자. 내가 김대현이 계약 많이 챙겨준 거 알고 있제?”

“알고 있죠.”

“이게 진짜 마지막 기회다하고 생각하고 잘해래이.”


장선호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지만, 채 대표는 그것만큼을 알려주지 않고 싶은 눈빛이었다.


채 대표가 굳게 마음을 먹었다면 물러나주는 편이 좋다.


예전처럼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었으니까.


“솔직히 니도 이상하지 않나? 누가 검증도 안 된 유망주한테 억 대 연봉을 주노? 아무리 미래가 창창해도 그건 아닌기라...억 대 불렀다꼬 히끅! 억 대로 되는 거 절대 아이다. 무슨 소린지 알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보통은 구두로 연봉을 부르고 만나면 구단 사정 들먹이면서 연봉을 깎고 압박해서 계약하죠.”

“그러치! 김 대표, 이제야 한국물을 먹은 에이전트답네 그래!”

“물론 저는 그 말을 듣는 즉시 자리를 박차고 나올 겁니다.”

“그래서 니가 미친놈, 독종, 물 흐리는 자슥으로 욕먹은 기라. 히끅! 괜히 협회하고 구단이 다른 에이전트들에게 협력한 거 아이다. 다 니 업보다. 업보.”


채 대표의 헛소리를 들어주며 마지막 남은 육회를 입에 넣었다.


한 접시를 다 비우니 채 대표가 테이블에 빈 잔을 딱 내려놓으며 나를 불렀다.


“김 대표.”

“네.”


술에 취한 목소리가 아니라 본래 목소리, 그새 확 깼나 보다.


“지금 계약하믄 일감 하나하고 U-20 대표 팀 국내 전지훈련 출입증 줄게.”


대표 팀 전지훈련 출입증은 아무나 받을 수 있는 신분증이 아닌데 그걸 내게 준다라.


흥미가 돋았으나 내색하지 않고 숟가락으로 누룽지를 긁었다.


“아까도 그러시더니만 뭔 일인지 말씀해주셔야 하든 말든 하죠.”

“니, 일본에 좀 다녀와라.”


일본을 언급한 순간 채 대표가 무엇을 원하는지 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일본인 용병과 계약하시려고요?”

“어. 다른 구단에서 뛰는 애들 보이까는 잘 적응하고 잘 뛰더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다른 나라에서 온 용병들보다 쉽게 적응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할 끼가 말 끼가?”


길게 고민할 필요도 없다.


구단이 원하는 선수 매칭, 이건 내 전문분야나 다름없었으니까.


현란하게 놀리던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얼마 주실 겁니까?”

“하아! 이 새끼 또 돈부터 이야기하네. 니는 돈밖에 모르나? 에라이! 도둑노무 새끼.”

“돈부터 이야기해야 뒤탈 없죠.”


술에 깨려는 듯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던 채 대표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됐다. 니랑 더 말 섞어봤자 내만 손해제. 스탠다드로 가자. 스탠다드. 됐제?”


그는 새로운 계약서를 내밀었다.


김대현 계약서가 아닌 일감과 관련된 계약서였다.


빠르게 훑어보니 채 대표의 말대로 표준 계약과 거의 비슷했다.


“어우! 머리야. 김 대표, 이제 마무리 짓고 끝내자.”

“알겠습니다.”


나는 일감 계약서에 사인한 후 김대현에게 연락했다.


“어, 합의 끝났으니까 내일 아침 일찍 대구로 내려와. 오후에 메디컬 테스트하고 문제없으면 바로 서명하고. 어. 입단식까지 빠르게 할 거야. 너무 빠르다고? 어쩌겠어. 채 대표님 성격이 굉장히 급하신데. 아무튼 늦지 않게 와.”


통화를 마친 나는 연신 눈을 껌뻑이며 숙취와 싸우는 채 대표를 바라보며 물었다.


“출국은 언제 합니까?”

“일주일 내로.”


빠르네. 하긴 지금 움직여야 괜찮은 매물을 구할 수 있을 테니 무리는 아니다.


“김 대표, 나 부축 좀 해도.”


나는 가볍게 혀를 차며 채 대표를 부축하고 고깃집을 나왔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그냥 헛웃음만 나온다.


“대구만 오면 낮술을 하게 되네.”


처음에는 질색했는데 적응하니 나쁘지 않았다.


“김 대표, 집. 집으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채 대표를 뒤로하고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네, 사모님, 예, 아닙니다. 네. 다름이 아니라 채 대표님께서 많이 취하셨거든요.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사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네, 그럼, 바로 태워 보내겠습니다.”


지옥행 열차에 탈 채 대표.


나는 아까 채 대표가 한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이게 다 본인 업보다. 업보.


작가의말

사투리 좀 어렵네요 ㅋㅋㅋㅋ


오타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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