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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무희 님의 서재입니다.

파륵오륜담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바람무희
작품등록일 :
2009.10.20 17:47
최근연재일 :
2009.10.20 17:47
연재수 :
8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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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7.22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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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파륵오륜담 1부 각면 19

DUMMY

서늘한 듯 온기를 품고 있는 손이 천천히 이마와 머리칼을 쓸고 있었다. 상냥함이 손바닥 전체에 융단처럼 덮인 듯 부드럽게 다가오는 느낌에 동화(同華)는 잠에서 기분 좋게 깨었다. 눈을 깜빡이는 동안 희미한 빛과 같은 것이 자신의 머리맡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조금 더 눈에 힘을 주고 보자, 빛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하얗게 빛나는 가운데 얼핏 염마대왕인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는 평온한 미소를 짓더니 동화의 손에 딱딱하고 차가운 것을 쥐어주었다. 그 선뜩한 느낌에 동화는 완전히 잠을 떨쳐버렸다. 벌떡 일어나 주위를 살펴보자, 여전히 무덤들이 가득하고 누런 흙먼지 날리는 무간지옥이었다.

손을 펴보니, 손바닥에는 품안에 있었을 지옥의 옥새가 쥐어져 있었다.

“전하.”

중얼거리고는 머리에 쥐가 내리듯 피가 쏠리는 것을 느꼈다.

‘다 큰 아들 녀석이 이렇게 붙어봤자 하나도 좋지 않아! 썩 가지 못해!’

동화는 염마왕의 마지막 말을 떠올린 순간 울컥 넘어오는 게 있었다. 눈에 열이 고이더니 투명한 액체가 되어 한 방울 툭 떨어졌다.

“아버지…….”

그는 소매로 눈가를 거칠게 닦아내었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려 애썼다.

“저는 지옥에 가려 합니다. 함께 가시겠습니까?”

가빈사라를 깨워 물었다. 그녀가 잠이 덜 깨서 멍한 듯 보이자 설명을 덧붙였다.

“무간지옥은 들기는 마음대로여도, 나가는 것은 어렵습니다. 저와 함께 일단은 이곳에서 나가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제야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갑시다.”

동화가 무언가를 참고 있는 듯한 얼굴로 밝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가빈사라는 동화가 왜 그런지 알 수 없었지만 동화의 내민 손을 잡고 몇 번 토닥거렸다. 그러자 동화의 표정이 슬며시 풀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벌써 어머니가 되어가는군요.”

가빈사라는 흠칫 놀라 손을 놓았다. 그 모습에 동화가 재미있다는 듯한 웃음으로 가빈사라를 무간지옥의 밖으로 이끌었다.


려은과 가현, 소마와 보찍은 새하얀 빛이 사라지고, 자신들이 단단한 지면에 발을 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취색의 아름다운 정자가 서 있는 곳 주위에는 색색의 꽃들이 생생하였다.

그러나 코끝을 찌르는 기묘한 냄새에 려은은 미간을 찌푸렸다. 꽃의 향기라 보기엔 너무나 고약했다.

“피냄새…….”

보찍이 코를 실룩거리더니 새까만 눈을 가늘게 뜨고서 중얼거렸다.

가현의 안색이 침중해졌다. 려은은 비취색 투명한 정자의 안쪽을 바라보며 가빈사라와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자신이 눈을 뜨고, 그녀와 만난 곳이 바로 저 정자였다.

‘지금 그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려은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왕과 그 공주라는 것부터, 반역이라는 개념까지 민주주의국가를 표방해온 대한민국에서 자란 그녀에게는 피부에 와 닿지 않았다. 그저 막연할 뿐이었다. 하지만 반역을 했다면, 기존의 왕족이 무사할 보장이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가현도 위험해지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가현의 얼굴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며 그런 생각을 접었다. 그리고 무심코 그 얼굴을 시선으로 더듬다, 가빈사라의 생김새와 비교하기에 이르렀다. 전혀 닮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남매인건지 의문이 생겼다.

보찍은 처음 와본 아수라도의 모습에 정신이 허황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평온했다. 그가 들어온 아수라족의 평에 의한 예상과 매우 달랐다. 그러나 코를 통해 뇌를 자극하는 이 혈향(血香)은.

“찍?”

생각에 잠겨 있던 보찍의 뒤로부터 문득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등골이 시리고 꼬리뼈가 찌릿찌릿 하는 느낌이 있었다. 갑자기 심장 박동이 느려졌다.

아주 이상한 감각이었다.

보찍은 새삼스레 주위를 둘러보았다. 별 다른 것은 없었다. 다만 엄청난 위축감이 그에게 생겨난 것뿐이었다. 발밑의 무력한 꽃들이 여러 개의 입처럼 보였다. 정자는 당장이라도 앞으로 쏠려 그를 덮칠 것만 같았다. 땅은 자신을 끌어당겨 삼켜버릴 것처럼 느껴졌다. 붉은 하늘에 번개가 번쩍하며 그를 향해 내리꽂힐 듯 했다.

‘왜 이러는 거야…….’

한기(寒氣)가 들지도 않는데 보찍은 옷깃을 여몄다.

소마가 보찍을 향해 우렁차게 몇 번 짖었다. 마치 경고하는 듯한.


“손님이 왔다. 흉신(兇身).”

라후가 반투명한 검정 유(襦)를 걸치다, 문득 동작을 멈추며 말했다. 흉신이 말없이 고개를 숙이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토록... 기다리던 손님이다.”

라후는 발을 통해 먼 곳을 바라보듯 시선을 고정시켰다.

마치 회한과 같은 것이 눈 깊숙한 곳에 어려 있었다.

려은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어느새 바로 앞에 거구의 사내가 서 있는 것이었다. 넓적한 얼굴에 듬성듬성한 갈색 머리, 허연 옷에 억세 보이는 몸, 등에는 검은 상자가 매어져 있었다.

그 사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려은, 가현, 보찍, 소마를 눈으로 훑은 뒤, 언덕 너머 황금빛 궁전을 보았다. 대충 무슨 뜻인지 알아들은 일행은 가현을 필두로 하여 발걸음을 옮겼다.

려은은 불안감에 가슴이 조마조마 두근두근했다.

그러나 그것을 순식간에 날려버리는 것이 언덕 꼭대기에 올라서자 보였다.

“찍!”

보찍이 소리 질렀다.

시체들의 산.

질퍽하게 반쯤 응고되어 흘러내리는 붉고 푸른 피.

엄청난 악취와 흰색반투명한 구더기들, 파리들.

표정이 남아 있는, 움직이지 않는 기이한 모양의 살덩이들.

목이 길고 부리가 날카로운 새들이 포만감에 끼익 하고 울었다.

려은은 자신이 무간지옥에서 여인이 대접했던 음식들을 먹고, 밤에 토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그 때의 토사물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반사적으로 뱃속이 용틀임을 했다. 올라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그 바람에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러나 사내는 멈추지 않고 그 옆을 태연 유유하게 지나갔다.

가현과 소마 또한 상태가 양호하였고, 시퍼런 얼굴이 하얗게 되어버린 보찍과 구역질을 참느라 정신이 없는 려은만이 헤맬 뿐이었다.

사내가 손가락으로 황금빛 궁의 여러 개의 방 가운데 하나의 앞에 서서 가리켰다.

가현이 굳은 얼굴로 손으로 발을 걷었다.

모두의 앞에 드러난 방안에는 라후가 앉아 용 문양을 안에서 두드려 튀어나오게 한 은제 술병으로 같은 방법으로 만든 비슷한 모양의 잔에 무색투명한 술을 따르고 있었다. 잔 안에 노란 국화잎이 하나 떠돌았다.

가현은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듯한 자신의 몸을 억제하느라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옆에 마련된 다섯 개의 자리 중 하나에 앉았다. 소마가 얼른 가현의 옆에 마련된 자리의 방석 위에 앉았다. 그리고 려은과 보찍이 자리하자, 제 혼자 남은 안중에도 없는 듯 술을 마시던 라후가 입을 열었다.

“너의 잠을 깨운 것은 나다.”

가현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난 파천흑룡(破天黑龍) 파륜(破輪)의 봉인 중 하나를 깨기 위해 천신(天神)의 피를 가진 너를 필요로 했던 것이고, 마침 소한이 너를 인간도로부터 끌고 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너는 강력한 무색투명한 수정결계로 보호받고 있었지. 소한은 그것에 손댈 수 없었다. 하지만 나의 힘으로는 충분히 가능했다. 그런데 깨어난 너는 어쩐 일인지 기억이 지워져 있었다. 하지만 내 식혼오공(喰魂蜈蚣)에 지배당하고 있는 소한에게 복종하도록 주술을 거는 덴 문제가 없었지.”

가현이 말이 없자, 라후가 말을 이었다.

“네 정체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 것은 근래의 일일 터이다. 너는 천신도 아니며, 인간도 아니다. 너의 어머니는 인간이란 이유로 아버지에게 버림을 받고 비참하게 죽었지. 너의 아버지는 천주(天主)라 불리는 도리천의 지배자, 제석천(帝釋天)이다.”

가현의 몸이 경악으로 흔들렸다.

“나의 아버지, 선대 나후아수라왕의 원수의 아들이다.”

려은과 보찍은 꿈쩍도 못하고 눈만 떴다 감았다 하면서 어찌해야 할 바 몰랐다. 그 이유는 이야기의 내용을 잘 몰랐으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만은 알았기 때문이었다.

“네가 봉인해제를 위해 소한에게서 받아간 것은 파륜의 수염이다. 저기 앉아 있는…….”

라후의 시선이 려은에게로 향했다. 따라서 가현의 시선도 려은에게로 향했다. 려은은 어쩔 줄 몰라 멍하게 있었다.

“과거 온 우주를 뒤흔든 흉포한 흑룡, 그리하여 파천흑룡이라는 별호를 손에 넣은 바로 그다. 언제쯤이면 본모습을 드러내겠는가? 그 껍질을 벗어버리고... 파륜!”

라후의 애절한 외침에 려은은 새파랗게 질려가고 있었다. 그녀의 이마에 땀이 송송 맺혔다. 그녀의 눈동자는 점점 붉어지고 있었다.

“싫어, 안 돼…….”

려은은 자신의 옷자락을 꽉 잡아 비틀었다. 손마디가 하얗게 두드러졌다.

“파륜! 나를 못 알아보겠나!”

려은이 눈물을 흘리며 발작적으로 외쳤다

“누굴 향해서 이야기를 하는 거야. 나야! 내가 여기 있는데!”

보찍이 벌떡 일어나 려은 앞을 가로막았다.

“그, 그만해.”

떨려서 별 박력 없는, 그러나 필사적인 목소리로 보찍이 외쳤다. 가현은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네 몸은 제석천의 궁에 봉인되어 있다!”

라후의 말에 려은의 몸이 덜덜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동자는 붉게 물들었고, 길고 검은 머리카락이 미풍에 흩날리듯 움직이고 있었다. 보찍이 이를 앙다물고는 손을 들어 려은의 뺨을 쳤다.

“정신 차려, 정신 차려! 려은은 려은이…….”

그 때였다.

보찍은 자신의 배를 뚫고 나온 검푸른 칼날을 보았다.

“방해는 용납지 않는다.”

라후의 열기 띤 외침과 함께 보찍은 천천히 바닥으로 무너졌다. 소마가 가현의 곁을 떠나 라후와 보찍 사이를 가로막고 섰다. 으르렁거리는 소마의 소리에 가현이 정신을 일깨웠다.

가현이 서둘러 라후를 향해 운선(雲扇)을 휘둘렀지만, 보찍의 희미해지는 의식은 돌이킬 수 없었다. 보찍은 바닥에 엎드린 상태로 손을 뻗어 려은의 발목을 잡았다.

려은의 볼이 파르르 경련을 일으키더니 차츰차츰 눈이 검어져가는 것을 보고서 그는 눈을 감았다.

‘내가 어울리지 않게 반성 같은 걸 하다니, 이 때문이었어.’

속으로 킥킥 웃었다. 이상한 예감도 또한 이 때문이었다.

차가운 바람이 몸을 꽁꽁 얼린 지도 오래다.

썩지도 않고 인간들의 바람보다도 더 매서운 눈초리에 노출된 지도 사흘째.

쥐약을 먹고 버둥거리다 죽었다.

왜 죽어야하는지 알 수 없는 채 죽어야만 했다. 자신은 살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졌고, 시궁창을 달렸다. 단지 그 뿐이었다.

미웠다.

저주해주리라.

마음먹었다.

길가에 뉘어져 있는 자신의 시체를 누군가 손을 뻗어 잡아주었다.

저 인간이다.

저 인간을 저주할 테다.

따뜻한 눈물이 떨어졌다.

‘다음엔 좋은 곳에서 태어나라.’

짧지만 간절한 말.

그렇게 자신은 잊혀졌다.

축축한 땅속에서 맥없이 자신의 시체는 썩어갔다.

자신의 악의 또한 눅어졌다.

지박령이 되어, 나중엔 흩어 사라지는 것 대신 저승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마음이 순순해졌다.

기뻤다.

‘기쁘다…….’

보찍의 감은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웃고 있었다.

“이럴 순 없어…….”

정신을 차린 려은이 눈앞의 광경에 멍하니 중얼거렸다. 손끝으로 보찍의 얼굴을 더듬으며 말했다.

“이렇게 갑자기....죽은 거 아니지?”

그러면서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려은은 려은이야.’

보찍이 말해주었다. 어떤 괴물이 자신의 안에 있더라도 려은은 려은이라고. 뻔뻔스러운 듯 우스꽝스러운 농담들이 무거운 마음에 위안이 되어주었었다. 아직도 체온이 남아 있고, 살은 말랑해서 도저히 믿고 싶지 않았다.

“뭐라고 말 좀 해봐. 이렇게 갑자기 가버리는 법이 어디 있어…….”

려은이 보찍의 몸에 엎드려 허윽어윽 오열을 쏟아내었다. 그 소리에 가현이 뒤를 돌아보았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라후가 단검으로 가현의 운선(雲扇)을 쳐내었다.

“컹!”

소마가 소리 높여 울부짖었다. 가현의 손아귀가 찢어져 붉은 피가 철철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날카로운 단검의 끝이 연한 가현의 목의 살갗에 닿아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방심은 금물이다.”

라후가 손에 힘을 주어 목을 베어내려던 순간이었다. 차가운 살기(殺氣)가 그의 등 뒤에서 느껴졌다.

“그 손 치워.”

려은의 젖은, 그러나 매서운 목소리였다.

“난 너 같은 거 기억 못해.”

라후가 냉막한 미소를 짓고는 대꾸했다.

“너 같은 가짜를 원하는 게 아니다.”

려은의 표정에 금이 갔다.

“원하는 것은 얻지 못할 거야. 영원히.”

그리고 동시에 셋은 튕기듯 도약해 흩어졌다.

“가빈사라는 어떻게 되었지?”

라후의 조롱조의 태연자약하던 얼굴에 일순 균열이 생겼다.

“보찍과 마찬가지로 네가 죽였나?”

가현의 눈에 초록색 불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그래. 내가 죽인 거다.”

라후는 자학하듯 답했다. 그의 얼굴은 무기질의 성질을 띠고서 웃는 모양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죽여 버려. 완전히 지워버리는 거다.’

라후의 대답에 분노한 가현이 피가 나는 손으로 운선을 잡았다. 운선은 가현의 피를 울컥울컥 삼켜 붉게 물들고 있었다.

“이…….”

분노의 외침과 함께 달려들려 할 때 이미 라후와 려은이 맞붙고 있었다. 려은의 길게 자란 검은 손톱이 라후의 단검과 부딪혀 챙 하고 귀를 찌르는 소리를 냈다.

가현이 놀라 려은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려은의 눈동자는 검었다.

“용서하지 않아.”

라후가 비웃으며 말했다.

“각성도 제대로 하지 못한 주제에 네가? 그리고 넌 곧 사라져버릴 거다.”

려은이 쐐기를 박듯 크게 외쳤다.

“난 나로서 충분해!”

라후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재미있군.”

려은을 밀어내며 라후가 명령하듯 말했다.

“어디 한번 견뎌보아라! 하나의 인간에 불과한 네가 과연 파천흑룡 파륜의 힘, 몸, 영혼 모두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 너 같은 속임수를 위한 허수아비가 무엇을 알고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으랴!”

라후의 기(氣)가 방안에 팽배해 사방의 발과 가리개가 마구 날렸다. 길고 검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려은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를 노려보았다.

가현은 재빨리 보찍의 시신을 살피고 옆구리에 끼었다.

“정신 차려, 려은!”

가현의 말에 려은은 보찍의 목소리가 겹쳐 들리는 듯 했다. 순식간에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보찍을 쉬게 해주지 않으면 안 돼.”

가현의 비장한 목소리에 라후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손 안에 화기(火氣)를 모아 라후를 향해 집어던진 후 가현, 소마와 함께 뒤로 물러났다. 려은 스스로도 어떻게 그런 힘을 쓸 수 있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소마가 향하는 데로 아수라도를 벗어나 명계(冥界)에 이르렀다. 강바람이 시원하고 둥근 달이 황금빛으로 밝았다.

강 위에 떠서 가현이 물었다.

“어디로 갈 거야?”

려은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검은 물 위에 달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어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 건 이곳이 어두운 저승이기 때문이었다. 강 한쪽에는 지옥이, 다른 한쪽에는 사혼(死魂)들이 자신이 건너갈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따뜻하고 밝은 해가 비추는 곳.”

려은은 소마의 등에 뉘어져 있는 보찍의 평화스러운 미소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런 장소에 묻어 주고 싶어.”

가현은 침통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인간도(人間道)로.”

어둠 저 너머로 그들은 서서히 사라져갔다.












*********

2부 탈피(脫皮)로 이어집니다. 1부 각면에서 배경이 주로 아수라도, 지옥도였던 반면에 2부 탈피에서는 주로 축생도, 인간도가 배경이 됩니다.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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