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바람무희 님의 서재입니다.

파륵오륜담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바람무희
작품등록일 :
2009.10.20 17:47
최근연재일 :
2009.10.20 17:47
연재수 :
86 회
조회수 :
36,052
추천수 :
240
글자수 :
622,045

작성
09.06.15 13:57
조회
632
추천
4
글자
11쪽

파륵오륜담 1부 각면 5

DUMMY

요괴들은 윤회의 륜(輪) 바깥에 있는 것들로서 그 존재의 처음이 어떠했는지는 누구도 모른다. 각 도(道)나 천(天), 계(界)의 겹쳐지는 부분에는 많은 부유물들이 고이곤 했는데, 그곳에서 요괴는 모습을 처음 드러냈다. 그리고 점점 번식하여 이젠 차원을 단숨에 통과하려는 자에게는 반드시 맞닥뜨려야 할 것이 되었다.

각 도나 천, 계는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길을 알기만 하면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개안(開眼)하는 데는 전생의 덕과 현생의 수행, 정진이 필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대부분의 아귀들은 지옥으로는 갈 수 있어도, 집장아귀같이 염마왕의 심부름꾼인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아수라도나 축생도, 인간도, 천상도로 갈 순 없었다.

볼 줄 안다면 천천히 그 길을 따라 이동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몸을 공간의 벽에 부딪혀 길을 내어 빠르게 이동하는 것은 여간 강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끈적거리는 것들이 바닥에서 여러 가지 침침한 색으로 섞여 흐르고 있었다. 오랜 세월 모인 침전물로 그 속에 빠지면 끝장이었다. 무엇으로 이루어진 건지는 알 수 없으나 자신의 속으로 들어온 것에 대한 지독한 집착은 저기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륵거리며 빠져들어 가는 요괴를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기묘하게도 또 한편에서는 그것이 미친 듯이 크륵거리며 뱉어내는 새로운 요괴들이 몸을 흔들어 진득거리는 걸 털어내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살아 있는 것 같군.’

먹고 배설하는 행위가 반복된다. 때때로 요괴들은 그들의 영역을 지나가는 자들을 먹기도 했다. 그것이 다시 바닥의 덩어리의 영양분이 되는 것이다.

요괴는 길고 가는 팔 다리에 검붉은 색의 얼굴을 하고 이의 배열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입으로 달려들어 물어뜯으려 했다.

그 입에 가현이 재빨리 운선(雲扇)을 물렸다.

“뿌작.”

요괴의 이가 부러지고 피가 흐르는 잇몸이 운선에 닿았다. 운선은 요괴를 놔주지 않았다. 잠자리날개같이 얇은, 한 뼘밖에 되지 않는 날개로 아무리 발버둥을 쳐보았자 성인 인간의 크기인 그가 날 수 있을 리 없는데도 필사적으로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그랬다. 요괴는 항상 기형이었다.

운선은 탐욕스럽게 요괴의 피를 들이키고 있었다. 요괴의 피는 썩은 내가 나는 검은 색 액체였다. 운선의 구름문양이 점점 흑색을 띠어 갔다.

가현은 요괴를 매단 채로 운선을 펼쳤다. 이미 피가 거의 다 빨린 요괴는 매우 가벼웠다. 그리고 운선에 기를 집어넣고 한 번 부쳤다.

벌 떼처럼 몰려오던 요괴들이 운선의 각 살에서 나온 청백색 빛들에 꿰뚫려 케엑 하고 비명을 올렸다. 그리고 그 바람에 산산조각이 난 운선에 붙잡혀 있던 요괴의 시체가 가현의 눈을 가리자 가현이 재빨리 일 보 뒤로 물러서 운선을 힘껏 부쳤다.

시체의 토막들이 다시 몰려오는 요괴들의 몸을 강타했다.

사모(蛇矛)를 휘둘러 요괴들의 접근을 막으며 가현의 모습을 자세히 보고 있던 라후는 어느새 가현이 자신을 신경 쓰고 있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발을 받으면 응대하나, 막상 그 상황이 되면 사심(私心)은 사라져버리는 저 성정이나 앞만 바라보는 검은 눈이 고고하며 결결하다.

‘몰라도 아버지는 아버지인건가.’

사모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소마가 지옥의 불도 잠재우는 그의 숨결로 요괴들의 모체가 되는 덩어리를 얼렸다. 그리고 가현과 소마, 라후의 일방적인 학살 끝에 그들에게 접근하는 요괴들은 사라졌다. 애초에 정상적인 생명체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그들에겐 겁이라는, 자신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다.

라후는 옆에 함께 날고 있는 가현의 티 하나 없는 하얀 옷과 유리처럼 투명하게 빛을 반사하는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친아버지가 궁금하지 않은가?”

가현은 당황하여 흔들리는 눈으로 라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공중에 멈춰서더니 머리를 손으로 감쌌다.

“머리가.. 머리가…….”

가현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소마가 놀라 컹 하고 울부짖었다. 라후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놀람을 금치 못했다.

‘나조차도 손대지 못한 봉인을 누가... 설마!’

라후는 가현의 품을 바라보았다.

‘봉인되었는데도 여전한 건가.’

라후의 남색 눈동자에 아련한 빛이 어렸다.


지옥은 침략을 받은 적이 없었다. 지옥은 혼을 순순히 하는 지극히 신성한 장소였으며, 그것은 먼 옛날 나후아수라왕과 제석천이 사상 유래 없을 엄청난 전쟁을 벌였을 때에도 그 전화(戰禍)가 지옥까지 미치지 않았음을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 그러한 금기와도 같은 것도 깨어지고 말았다.

염마왕은 옥좌에서 주먹을 쥐고 일갈했다.

“감히 멸족을 겨우 모면한 아수라족이 분수도 모르고 덤벼들다니!”

제석천의 압도적 승리로 천상에 있던 아수라도가 땅 속 깊은 곳까지 떨어지고 아수라족의 신분 또한 격하되었던 것이었다.

아귀도의 아귀들을 거의 전멸시키다시피 하고 지옥으로 내려왔다는 말은 아수라족의 끝없는 탐욕을 고려해볼 때, 뒤를 용납하지 않고 천상으로 쳐들어가겠다는 심산인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묵은 원한이라도 풀겠다는 건가? 근데 왜 하필이면 지옥은 건드려?’

염마왕의 뻣뻣하게 뻗은 검은 수염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꼭지눈으로 보고 있던 보직(報職)이 그 특유의 커다란 두개의 앞니를 보이며 소리 없이 불퉁거렸다. 그러나 신참내기에 불과한 그로서는 찍 소리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양손을 앞으로 모으고 허리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지옥에 온지 이제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정말 재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축생도에서 인간이 버리는 쓰레기를 뒤지고 사는 게 더 맘이 편했을 것이다. 재수 없게 쥐약을 먹고 죽어버리고 말았지만 말이다.

“꽝!”

다혈질 염마왕은 옥좌를 수시로 고쳐야 하는 말단들의 심정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아차차! 또 부서졌다…….’

보직은 안 그래도 태산 같은 할 일에 또 하나의 일이 생겨났다는 사실에 울컥 눈물인지 울화인지가 올라오려 했다.

“지옥의 업화(業火)가 얼마나 뜨거운지 보여주겠다. 아방나찰(阿房羅刹)들은 들어라! 망자들의 형벌은 멈추어선 안 된다. 그러니 내가 지금 판결하겠노라!”

보직은 긴장하여 코를 실룩거렸다.

“지옥에 무단으로 발을 들여놓은 아수라족들은 모두 무간지옥행이다! 그러니 걱정 말고 지옥의 불구덩이와 개미지옥, 도엽림(刀葉林)과 검수림(劍樹林)에 처넣어라!”

보직은 염마왕의 정의를 향한 다혈질적 근성에는 항시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가끔 바보로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고개를 수그리고 머리를 비우려고 안간힘을 썼다.

염마왕의 양 옆에 있는 두 서기 중 한 명은 너무나 아름답고 품위 있는 여인이었다. 하얀 색 긴 머리칼과 같은 색의 속눈썹, 황금빛 눈동자는 항상 꿈꾸는 듯 했다. 황금빛 손톱의 손가락 사이엔 붓이 끼워져 있었는데 쉴 새 없이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추악하고 소름끼치는 외모를 지닌 남자였다. 검은 색 헝클어진 머리칼과 어딘가 비어버린 듯한 같은 색의 눈동자에 손톱도 새까맸다. 이 자도 계속해서 무언가를 적어나가고 있었는데 문득 고개를 들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하필이면 보직과 눈이 마주친 것이다. 그리고 바로 무언가를 적는데 보직은 똥줄이 타는 듯 했다.

염마왕의 공정함은 모든 도와 천, 계에서 인정하는 바다. 하지만 보직은 그것을 절대 믿을 수 없었다. 세상에 누가 자기를 바보라 하는데 좋다 하겠느냐 말이다.

선한 언행과 마음, 악한 언행과 마음을 샅샅이 적어 내려가는 두 서기의 붓끝을 피해나갈 자는 그 누구도 없었다. 심지어 저기서 저렇게 호령하는 염마왕의 전생의 기록까지 지옥의 서고에 보관되어 있을 정도니 말이다.

‘우, 씨…….’

맘속으로 웅얼거리고는 또 아차 했다.

보(報)는 일반적으로 갚다, 알리다 라는 뜻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죄를 진술하게 하다, 나아가 처형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직(職)은 직분, 일, 벼슬, 임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즉, 보직을 말 그대로 풀이하면 죄를 진술하도록 죄인을 닦달하거나 처형을 하는 벼슬자리이다. 이미 죽어서 온 자를 처형하면 뭐하나 싶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는 상당한 것이어서 죄를 진술하게 만드는 데는 꽤나 효과가 있었다. 머리가 없는 자신의 몸이 머리를 찾지 못하고 헤매는 광경을 두 눈 멀쩡히 뜨고 쳐다보는 걸 상상해보라. 게다가 다리가 머리를 밟고 지나간다면. 꽤 재미있지 않은가 말이다. 물론 죄만 진술하면 금방 원상회복된다.

하지만 정식의 벼슬이름은 보였고 보직이 아니었다. 사실 그는 보찍이라 불리고 있었다. 전생이 쥐여서 그런지 귀신의 형상을 하고 있긴 하나, 그 습성 그대로 감정이 격해졌을 땐 ‘찍’ 하고 소리 내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보(報)들 중 그를 구분해낼 겸, 특징을 나타내는 겸해서 직(職)이란 글자를 음차(音借)해 벼슬명에 붙여 명칭이 보직(報職)이 된 것이었다. 그렇게 되니 직을 뜻으로 풀이하여 오히려 보가 아닌 보직이 옳다고 혼동을 하는 자들도 소수지만 간혹 생겨나는 것이었다.

지옥에 온지 오래 되지 않았기 때문에 공초 받는 정식 임무를 제하고도 수많은 잡다한 일들이 그의 몫이었다. 그는 염마왕의 수시로 부서지는 옥좌 손잡이 수리, 노침(路寢)의 나무 바닥 윤내기, 옥졸의 무기 중 하나인 채찍 손질이나 서고의 책 널어 말리기 등 끊임없는 잡무에 시달려 매우 지쳐 있었다.

처음 염마왕 앞에 서서 지옥의 훌륭한 관리가 되겠다고 조그만 쥐의 모습을 해가지고 외쳤을 때의 그 기개는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그저 하루하루 어떻게 농땡이를 칠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는 아까 아차 해놓고는, 또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전쟁이 나면 농땡이 치는 게 더 쉬워질지도…….’

그리곤 기뻐 손뼉을 소리 없이 쳤다.

‘혹은, 지옥에서 도망칠 수 있을지도!’

마음껏 하수구를 누비던 때가 그리웠다. 비단옷도 무거운 형구(刑具)같이 느껴지는 요즘에 들어서 전쟁은 일종의 활력소 혹은 계기가 될 듯 했다. 하필이면 왜 지옥이냐고 재수 없다고 하다가, 일변하여 재미있겠다 생각하였다. 그의 편도(扁桃) 모양의 까만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99 금원
    작성일
    09.09.27 20:56
    No. 1

    려은이랑 가현이랑 다른건가요? 뒤죽박죽으로 나와서 뭐가 뭔지...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transistor
    작성일
    09.10.23 18:13
    No. 2

    려은이는 여고생이고 가현이는 종달새 양 오빠죠

    찬성: 0 | 반대: 0 삭제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파륵오륜담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6 파륵오륜담 2부 탈피 5 09.08.09 237 3 10쪽
25 파륵오륜담 2부 탈피 4 09.08.09 239 3 10쪽
24 파륵오륜담 2부 탈피 3 09.08.03 204 3 12쪽
23 파륵오륜담 2부 탈피 2 +2 09.07.30 491 3 30쪽
22 파륵오륜담 2부 탈피 1 +2 09.07.29 342 3 15쪽
21 파륵오륜담(破勒悟輪譚) 2부 탈피(脫皮) - 프롤로그 09.07.29 295 3 2쪽
20 파륵오륜담 1부 각면 19 +1 09.07.22 341 4 16쪽
19 파륵오륜담 1부 각면 18 09.07.16 279 3 22쪽
18 파륵오륜담 1부 각면 17 09.07.07 332 3 8쪽
17 파륵오륜담 1부 각면 16 09.07.05 273 3 18쪽
16 파륵오륜담 1부 각면 15 09.06.30 236 3 23쪽
15 파륵오륜담 1부 각면 14 09.06.27 193 3 18쪽
14 파륵오륜담 1부 각면 13 09.06.25 363 5 12쪽
13 파륵오륜담 1부 각면 12 09.06.24 362 3 22쪽
12 파륵오륜담 1부 각면 11 09.06.23 301 3 11쪽
11 파륵오륜담 1부 각면 10 09.06.20 344 3 15쪽
10 파륵오륜담 1부 각면 9 09.06.17 791 4 34쪽
9 파륵오륜담 1부 각면 8 +1 09.06.17 406 3 19쪽
8 파륵오륜담 1부 각면 7 +1 09.06.15 470 4 13쪽
7 파륵오륜담 1부 각면 6 +2 09.06.15 546 2 15쪽
» 파륵오륜담 1부 각면 5 +2 09.06.15 633 4 11쪽
5 파륵오륜담 1부 각면 4 +1 09.06.14 869 2 18쪽
4 파륵오륜담 1부 각면 3 +2 09.06.14 1,137 3 13쪽
3 파륵오륜담 1부 각면 2 +1 09.06.14 1,818 3 8쪽
2 파륵오륜담 1부 각면 1 +2 09.06.13 3,516 5 12쪽
1 파륵오륜담(破勒悟輪譚) 1부 각면(覺眠) - 프롤로그 +3 09.06.13 4,810 8 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