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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무희 님의 서재입니다.

파륵오륜담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바람무희
작품등록일 :
2009.10.20 17:47
최근연재일 :
2009.10.20 17:47
연재수 :
86 회
조회수 :
36,054
추천수 :
240
글자수 :
622,045

작성
09.06.13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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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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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4쪽

파륵오륜담(破勒悟輪譚) 1부 각면(覺眠) - 프롤로그

DUMMY

파륵오륜담(破勒悟輪譚)


1부 각면(覺眠) - 프롤로그


쏘아오는 태양의 눈빛에 은행나무들이 수줍게 서 있었다. 농락하듯 바람이 불었다. 까만 아스팔트 위를 눈 시리도록 덮더니 찬란한 빛으로 허공을 맴돈다.

황금비가 세상에 내리고 있었다.

노승은 찬탄이 어린 표정으로 눈앞에서 어여쁜 무희의 옷자락처럼 팔락거리며 나리는 은행잎을 하나 손가락으로 붙들고 홀로 물었다.

“그 아이를 어찌할꼬?”

손가락을 떼니, 날아가 사람들이 걸어오는 길 위로 말없이 그 몸을 눕힌다. 회색 양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번쩍거리는 까만 구두로 그것을 밟았다. 무척 바쁜 듯 보이는 그는 노승의 몸에 부딪히자, 한번 바라보고는 찬바람을 일으키며 가버렸다. 노승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가라앉은 눈빛으로 조용히 바라보았다.

“계십니까.”

노승을 보자 새댁은 대뜸 미간을 찌푸린다. 잠시 뒤 부석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회백색의 한줌 머리칼을 애써 은비녀로 꽂아 올린 허리 구부정한 할머니가 얼굴을 내밀었다. 주름 가득한 얼굴에 세월에 무뎌진 눅눅한 말투로 내뱉는다.

“시주를 해드리리까.”

노승은 말없이 목탁을 몇 번 두드렸다. 할머니는 집안으로 되들어갔다. 그리고 뭉툭한 소리가 도도도 나더니 까만 단발머리에 해맑은 눈을 한 여자아이가 마치 현관을 지키고 선 듯한 새댁의 치마 뒤에서 얼굴을 빼쭉 내민다.

노승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참 똑똑하게 생겼구나. 손금을 보여주지 않겠느냐?”

새댁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등을 밀자 아이가 머뭇거리다, 어정거리며 다가왔다.

“영특하겠구나. 장수할 것이고…….”

상냥한 눈빛으로 머리를 쓰다듬으니 아이도 기쁜 기색이다. 노승은 그런 아이를 보고 무릎을 굽혀서 눈을 맞추었다. 산만한 아이의 가녀린 양팔을 힘주어 잡고 뚫어져라 아이의 검은 눈 속을 보았다.

아이의 눈동자가 놀란 토끼의 눈 마냥 졸아들었다.

“이제 되었다.”

아이의 몸이 가늘게 떨리는 것을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 진정시켰다. 하지만 아이는 울면서 자신의 엄마에게로 달려가지 않았다. 다만 그 깊고 어두운 눈으로 노승을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할머니가 쌀 한 바가지와 꿍쳐두었던 돈인 듯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하나를 들고 나왔다. 노승은 아미타불 하고 중얼거리며 바랑에 소중히 받아 담았다. 그리고 아직도 자신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눈 속에 고이 담고는 뒤돌아섰다.

그리고 천천히 걸었다. 한 걸음, 그 집이 보이지 않았다. 두 걸음, 도시가 매연에 묻혀 있었다. 세 걸음, 이파리 썩는 냄새가 향기로운 숲 속이었다.

그리고 노승은 눈을 감았다.

하얀 초가 몇 개 쓰러져 있었다. 반쯤 뭉그러진 배도 있었다. 그리고 부드러운 주름의 천의(天衣)를 입고 석장(錫杖)을 쥔, 돌에 부조된 형상도 있었다.

“이곳 지장보살님이 그렇게 영험하다면서요?”

눈썹이 초승달 같고 얼굴은 백짓장처럼 하얀 젊은 여인이 가늘게 찢어진 눈으로 옆의 알룩달룩한 옷을 입은 나이 좀 지긋한 여자에게 말을 건넸다.

“그럼, 자네도 여기까지 온 걸 후회하지 않을게야.”

두 사람은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조아려 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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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파륵오륜담 1부 각면 3 +2 09.06.14 1,137 3 13쪽
3 파륵오륜담 1부 각면 2 +1 09.06.14 1,818 3 8쪽
2 파륵오륜담 1부 각면 1 +2 09.06.13 3,516 5 12쪽
» 파륵오륜담(破勒悟輪譚) 1부 각면(覺眠) - 프롤로그 +3 09.06.13 4,811 8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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