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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 인간, 인간, 사람,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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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작품등록일 :
2022.08.06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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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0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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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랑 3, 짐승1

DUMMY

천이 보인다.


언니와 함께 모닥불 앞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다.


아, 다행이야.


도깨비산에서 아무 탈 없이 탈출했구나.


나는 그런 천을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문뜩 짐승과 같이 온 것이 생각나 정신을 차렸다.


“저기 보여?”


“네, 네. 보입니다.”


“내가 말한 거 다 숙지했지?”


“네. 전부 완벽하게 기억했습니다.”


“가 봐.”


“네? 저기 사도님은 안 가시는 건가요?”


“내가 갈 거면 너한테 왜 그런 일을 시키겠어?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좀 해.”


짐승이 풀이 죽어 고개를 푹 숙인다.


“안 가?”


“네. 가, 가보겠습니다.”


짐승이 천에게 걸어간다.


“뭐, 뭐야!”


갑작스레 짐승이 나타나자 언니가 화들짝 놀라 큰소리친다.


“이 새끼가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오냐, 네가 그렇게 원하면 당장 죽여주지.”


정신을 차린 언니가 칼을 뽑아 짐승에게 걸어간다.


천 또한 짐승을 가만히 내버려 둘 생각이 없는 것인지 잠자코 보기만 한다.


“자, 잠깐만요! 저, 저는 사도님이 보내서 왔어요!”


언니가 칼을 휘두르려고 하자 짐승이 바닥에 납작 엎드리며 말했다.


“잠깐 기다려보시오!”


천이 언니를 제지하고 짐승에게 다가간다.


“뭐라고 했지?”


“사, 사도님께서 저를 여기로 데리고 오셨어요.”


“아가씨 말인가?”


“네? 네. 맞아요.”


“아가씨는 어디 계시지?”


“저, 저곳에 있어요.”


천의 말에 짐승이 내가 있는 곳을 손으로 가리킨다.


저 멍청한 새끼가!


천이 내가 있는 곳으로 급히 달려온다.


난 천을 피해 황급히 여우볕으로 향했다.



///



돌아오니 족장들과 사도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허허, 그것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설마 그렇게 하기까지 하겠소?”


“족장님. 그놈들은 미쳤어요.

그러니 사람의 자리를 빼앗는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는 게 아니겠어요?”


불개가 족장의 부정적인 말에 답했다.


나는 그 대답을 들으면서 빈자리에 앉았다.


불개는 열띤 토론을 하느라 정신이 팔려 날 보지 않았지만 산어르신은 턱을 괸 채 날 쳐다봤다.


눈치챘나?


산어르신을 한번 보고 웃음을 지은 다음 입을 연다.


“맞습니다. 그것들은 미쳤습니다.

짐승 따위가 어디 감히 사람의 자리를 넘본단 말입니까?”


토론에 참석한 모든 인간의 시선이 내게로 모였다.


“그놈들은 자신이 있는 겁니다.

일을 조용히 진행해도 모자랄 판에 인간이 되겠다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얼마나 사람을 우습게 보길래 이런 말까지 했던 걸까요?”


“그, 그게 정말이오?

정말 그것들이 당신에게 말했단 말이오?”


“네. 맞습니다.”


내 대답에 놀란 족장들이 웅성거렸다.


“이건 도저히 묵과할 수 없소!”


이름 모를 한 족장이 상을 쾅 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도의 말대로 우리가 얼마나 우습게 보였으면 그런 말을 지껄인단 말이오!”


족장이 좌중을 둘러보고 순간적인 화가 풀린 듯 자리에 앉는다.


“푸른바람에 짐승 놈들이 쳐들어와 쑥대밭을 만들고 자신의 땅으로 만든 건 나도 알고 있소.”


그런데도 무사태평인 것처럼 행동했단 말이야?


한심하기 짝이 없어.


“그리고 여기 있는 몇몇도 이미 알고 있었지 않소?”


몇몇이 고개를 끄덕인다.


한심한 놈들이 한둘이 아니군.


“이건 보통일가 아니오.

우리는 짐승이 선전포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안일하게 있었소.”


또 다른 이름 모를 족장이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지 않은 몇몇 중 하나다.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할까?


정말로 보통 사태가 아니다는 위기?


푸른바람이 짐승소굴이 되었는데도 알지 못한 무능으로 인한 수치?


아니면 알고 있었으면서도 알려주지 않았던 족장들에 대한 분노?


“이보게.”


“네.”


“자네들은 잠깐 나가 있어 주지 않겠나? 긴히 나눌 얘기가 있어 그렇네.”


다른 족장들을 살펴보니 대부분 동의하는 것 같다.


“알겠습니다.”


내 말이 끝나자 산어르신과 불개와 함께 일어나 회의장을 나갔다.



///



“짐승 찾았나?”


불개와 방에서 쉬고 있으니 산어르신이 찾아와 꽤 애가 타는 듯 다급히 나에게 물었다.


“아직 못 찾았어요. 산어르신님.”


“아따, 이 새끼가 으데로 숨읐길래 니도 못찾노?”


범이란 족속은 하나같이 이상한 곳에 자존심을 부린다.


도대체 왜 그럴까?


이곳에 정상적인 것들은 나를 제외하면 하나도 없다.


신께서 잘못 만들···. 아.


“산어르신님. 그냥 회수하면 안 돼요?”


불경한 생각을 한 나를 대신해 불개가 대답했다.


“아···. 혹시 제가 자존심을 건드린 건가요?”


나는 깜짝 놀라 불개를 쳐다보고 산어르신을 다시 쳐다봤다.


다행히도 줄무늬에 변화가 없다.


“그그는 아인데···. 참나, 회수할까?

그라모 이때까지 내가 한 행동이 즌혀 의미가 없는데.”


“산어르신님. 포기하시고 회수하는 게 어떨까요?

여기는 얼추 마무리되었으니 슬슬 다른 곳으로 가야 해요.”


산어르신이 날 빤히 쳐다본다.


진짜 알고 있나?


알고 있으면서 능청 떠는 건가?


“알았다. 어쩔 수 없지.”


“잠깐만요.

회수하면 그 짐승은 어떻게 되나요?”


나는 짐승을 천에게 보낸 것이 생각나 산어르신에게 물었다.


“어? 그그는 왜?”


“그냥···. 궁금해서요.”


“뭐···. 다시 증상으로 돌아오지.

아이다, 증상이라 하긴 그른가?

좀 복잡한데 머라해야 되노?”


이 멍청이가 그것도 몰라?


“하여튼 이제 수거한다.”


산어르신이 눈을 감고 집중한다.


중간중간 입을 오므리는데 그때마다 흰 수염이 움찔거린다.


불개는 나를 한 번 보고 미소를 짓는다.


그리곤 입 모양으로 ‘봤죠? 절대 모른다니깐요.’라고 말한다.


이놈은 위험하다.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지만 앞으로 네 뜻대로 절대 움직이지 않을 거야.



-짐승 1-



남자 사람님과 여자 사람님이 약간의 언쟁을 벌이고 있어요.


남자님은 절 받아드리자는 태도고 여자님은 반대의 뜻이에요.


저는 남자님이 이겼으면 좋겠어요.


“뭐가 문제란 말이오?”


“불안하다니까!”


“아가씨께서 데려오신 짐승이오.

더 의논할 게 없소.”


“저 새끼가 우리가 자는 중에 칼침 놓으면 어쩌려고 그래!”


“안 놓는다고 하지 않았소?”


“넌 그걸 믿어?”


“아가씨께서 아무런 생각 없이 저 짐승을 데려오지 않았을 것이오.”


“그, 그건 그렇지만···.”


“됐군.

저 짐승은 이제 우리가 함께 하는 것이오.

그렇게 알도록 하시오.”


“에잇! 알았어!

너! 내가 자는 중에 저놈한테 죽으면 널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


“죽었는데 당신이 날 무슨 수로?”


“야! 그럴 때는 그냥 알았다고 하는 거야!”


“싫소만?”


“저, 저게!”


여자님은 분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방방 뛰기 시작해요.


그러나 남자님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리를 옮겨 짐을 뒤적이기 시작하더니 저를 불러요.


“짐승. 이리 와라.”


“네? 네!”


남자님이 노여워할까 봐 부리나케 달려갔어요.


“이제부터 너는 우리 종이다.”


“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종으로 받아준다는 말이 깜짝 놀라 여러 번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표했어요.


헤헤, 저도 이제 사람의 종이 되었어요.


헤헤, 헤헤헤.


“이게 우리 짐이다.

네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며 지키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이런 귀한 것들 저에게 맡기시다니!


저를 총애하시는 게 틀림없어요!


“야! 나 배고프니까 빨리 밥 차려와!”


“알겠습니다!”


여자님의 말에 저는 쌀과 솥을 들고 근처 개울가로 향했어요.


솥에 쌀을 적당히 이인분 넣고 물을 붓고 씻고 있는데 갑자기 두통이 느껴지기 시작해요.


“으, 윽! 허억, 허억.”


무, 무슨 일이지?


내가 왜···.


나는 이해 할 수 없었지만 쌀 세척을 마무리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내색하지 않고 밥을 안쳤다.


주변을 살피니 천이라는 노예기사는 수첩을 읽고 있고 선이라는 여자는 자신의 칼을 손보고 있다.


내, 내가 왜 저들의 이름을?


아! 심포!


거기서 봤어!


그리고···. 신에게 가는 문!


모든 게 기억난다.


어, 어떡하지?


저들이 날 알아볼 가능성은 없나?


못 알아본다면 이대로 신분세탁하고 살아버릴까?


아니면 못한 내 임무를 끝내야 하나?


복잡한 마음속에 천과 선이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린다.


“증표가 필요한데.

근처에 가까운 마을은 없소?”


“뭐? 증표까지? 그럴 필요 있어?”


“이제부터 데리고 다닐 건데 확실하게 해야지.”


“알았어.”


선이 자신의 품속에서 종이를 꺼내 들어 펼친다.


“어디 보자···. 우리가 여기에 있으니까···. 있네.

하루 거리에 있고 규모도 제법 커서 가능하겠다.”


“잘됐군. 가서 증표도 받고 없는 물건도 채웁시다.”


나는 지도가 신기해 무례하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 빤히 쳐다봤다.


내 시선을 느낀 선이 입을 연다.


“뭐야? 너도 신기해?”


“네? 아, 죄송합니다.”


“괜찮아. 신기하면 너도 와서 봐.”


선이 나에게 손짓한다.


나도 모르게 선의 옆에 앉았고 지도를 천천히 구경하기 시작했다.


“신기하지? 이거 선비가 그린 거다?”


서, 선비!


이들은 선비에게서 살아남은 것도 모자라 그림까지 받은 건가?


“이거 우리가 어디에 있든 간에 주위에 있는 모든 지형지물을 보여준다?

정말 신기하지?

그리고 얼마나 질긴지 종이가 찢어지지도 않아.”


선은 지도가 자신의 보물이라도 되는 양 미소를 지으며 손바닥으로 한번 쓸어본다.


선의 말대로라면 정말 보물로 여겨도 되는 물건이다.


이 물건이 우리 동지들에게 가면···.


“야, 근데 너 씻었어?”


“네? 아, 안 씻었어요.”


“개울가에 가서 좀 씻고 와라 냄새가 왜 이렇게 나니?”


“아, 알겠습니다.”


민망해진 나는 개울로 가 몸을 씻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도망가 복귀해야 하나?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을 동포들에게 알려야 할까?


고뇌에 빠져있을 무렵.


천의 목소리가 들린다.


“네가 입고 있던 옷은 버리고 이 옷을 입도록 해라.”


천이 옷가지를 근처에 툭 던져놓고 가버린다.


당황한 나는 감사하다는 말도 못한 채 멍하니 옷을 쳐다보기만 했다.


···언제든 도망칠 수 있으니까 좀 더 염탐해야겠어.



///



사람들과 나는 성문 앞에 서서 어찌할 줄 몰라 가만히 문을 보고만 있다.


“너, 탈 가진 거 없어?”


“어, 없어요.”


“그럼 어쩌지? 증표 없이 안으로 들여보내 주지 않을 텐데.”


“생각해보니 참으로 괴상하군.

증표를 받기 위해서 안으로 들어가는데 증표가 없으면 안 들여 보내주니.”


“그러게. 이거 어쩌지?”


“내가 짐승을 보고 있을 테니 당신이 가서 물어보고 오시오.”


“좋은 생각이네. 알았어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선이 성문으로 들어간다.


천은 그런 선을 잠깐 쳐다보곤 자리에 앉아 수첩을 쳐다보기 시작한다.


나는 어찌할 줄 몰라 그냥 우두커니 서서 앞을 바라봤다.


“너도 앉아서 기다려라.”


“네. 알겠어요.”


그러고 있길 얼마간.


선의 모습이 보인다.


한 손에는 목걸이가 한 손에는 목줄이 쥐어져 있다.


“그냥 주던데?”


이게 말로만 듣던 짐승 목걸인가?


개 목줄 같이 사슬을 멜 수 있게 동그란 쇠가 달려있고 겉에는 ‘이 짐승은 소유물이니 죽이지 마시오.’라고 적혀있다.


“그렇소? 간단하군.

규정은 어떻게 되오?”


“안에 들어오려면 목걸이는 반드시 차야 하고 목줄은 선택이라고 하더라.

생각해보니 나도 목줄 한 짐승을 본 거 같아.

하여튼, 목줄은 선택인데 만약 짐승이 다른 인간을 해치면 짐승은 그 자리에서 죽이고 주인은 배상을 해야 한다던데?”


“개랑 같군. 알았소.

짐승에게 건네주시오.”


나는 목걸이를 건네받고 스스로 목에 걸었다.


“목줄은 어떡하지?”


“굳이 할 필요 있소?”


“야, 너 난동 안 피울 자신 있지?”


병든 닭처럼 가만히 있어 줄게.


“그, 그럼요! 제 특기가 가만히 있는 거예요.”


“너, 거기서 아무 곳이나 오줌이나 똥 싸면 안 된다?”


“네, 반드시 화장실에서 해결하겠습니다.”


“그리고 맛있어 보인다고 아무거나 먹으면 안 돼.

그것들은 돈 주고 사야 하는 거란 말이야.

알아들었어?”


아무래도 이 여자는 나는 반쯤 바보로 생각하다 보다.


“네, 알겠어요.”


“그리고···.”


“그쯤하시오.”


천이 선을 바라보며 다그쳤다.


“아, 아니 불안해서 그렇단 말이야.”


“뭐가 불안하단 말이오?”


“얘가 가서 갑자기 미친놈처럼 행동하면 어떡해?”


“걱정할 게 뭐가 있소?

그럼 머리를 날려버리면 되는데.”


“그, 그렇네.”


절대 난동 피우지 않을 거야.


그렇게 우리는 성문을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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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7 22.10.22 31 0 12쪽
38 36 22.10.18 29 0 12쪽
37 35 22.10.17 27 0 12쪽
36 짐승 3 22.10.16 31 0 12쪽
35 짐승 2 22.10.08 27 0 12쪽
» 랑 3, 짐승1 22.10.04 29 0 12쪽
33 랑 2(2) 22.10.03 30 0 12쪽
32 랑 2(1) 22.10.03 24 0 12쪽
31 랑 1 22.10.02 24 0 12쪽
30 천 5 22.10.01 23 0 13쪽
29 천 4 22.09.27 27 0 13쪽
28 천 3 22.09.26 21 0 13쪽
27 천 2 22.09.25 21 0 12쪽
26 천 1 22.09.24 20 0 12쪽
25 선 5 22.09.20 19 0 12쪽
24 선 4 22.09.19 18 0 13쪽
23 선 3 22.09.18 18 0 13쪽
22 선 2 22.09.17 18 0 13쪽
21 선 1 22.09.06 22 0 14쪽
20 짐승 3 22.09.05 20 0 13쪽
19 짐승 2 22.09.04 23 0 12쪽
18 랑 3, 짐승 1 22.09.03 19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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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랑 2(1) 22.08.28 18 0 13쪽
15 랑 1 22.08.28 17 0 13쪽
14 천 5 22.08.27 18 0 15쪽
13 천 4 22.08.27 24 0 16쪽
12 천 3 22.08.21 26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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