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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 인간, 인간, 사람, 짐승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야옹이
작품등록일 :
2022.08.06 20:55
최근연재일 :
2024.05.06 21:00
연재수 :
18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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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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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7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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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2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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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6쪽

천 4

DUMMY

“자! 가자. 따라온나”


“네? 어, 어딜 가는 건가요?”


“뭐겠노? 짐성 죽이러 가야지.”


“네? 제가 왜 짐승을 죽여야 하는 건가요?”


“아, 아. 아직 자각을 모했나?

하긴, 그르니까 눈이 안 보있겠지.”


“뭘 자각한다는 거죠?”


“본인이 사도라는 걸 깨닫는다고.”


“아, 그렇군요.”


별안간 범이 또다시 아가씨에게 손을 뻗었다.


아가씨는 범의 손을 피했고 나는 단검을 들고 범을 위협했다.


“뭐 하는 짓이오?”


“뭐 좀 확인 해볼라고.”


“뭘 말이오?”


“별로 안 말하고 싶은데.”


“아가씨에게 손대지 마시오.”


“아이고, 무습네. 니 근데 그거 아나?

니는 노예기사지만 내는 사도다.

앙갚음이면 내가 기다니겠지만 아이잖아?”


범이 나를 내려다봤다.


줄무늬가 범의 기분을 대변하는 양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범의 입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난다.


급히 손을 뻗어 단검을 쥐려고 했지만,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범의 모든 검은 줄무늬가 머리로 모이더니 눈을 제외하곤 모든 곳이 검은색으로 변했다.


범이 손톱을 세운 손을 나에게 뻗는다.


“그만 하세요.”


“엉? 뭐고?”


당황한 범이 고개를 돌렸고, 나도 틈을 타 옆을 쳐다보니 아가씨가 범을 노려보고 있었다.


한 손에는 파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푸른 불빛이 일어났으며 눈구멍엔 아가씨의 예쁜 눈은 온데간데없고 푸른빛만 보일 뿐이다.


“천을 해치면 가만히 있지 않겠어요.”


“크하하하! 그래! 이기 자귀추즉자지!

알았다. 내 고마할테니까 니도 고마해라.”


범이 나에게 뻗었던 손을 거두었고, 머리에 몰려있던 줄무늬가 다시 몸으로 구석구석으로 돌아간다.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사라지니 내 몸을 구속한 힘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하지만 강한 절망에 아가씨에게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아가씨가 정말 자귀추적자라니.


가엾고 불쌍한 아가씨.


아가씨가 나에게 다가온다.


“천? 괜찮아?”


“네, 네. 아가씨. 괜찮습니다.”


“미안해. 나 때문에.”


“정말로 괜찮습니다.

저는 선과 마를 챙기도록 하겠습니다.”


“마? 마는 어디 있지?”


아가씨에게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손에서 튀어나오던 불꽃이 더 강렬해졌으며 눈빛의 푸르름에 눈이 멀어버릴 지경이었다.


“마는 어디 있냐고!”


“저, 저기 있습니다.”


아가씨의 고성에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으며 마가 있는 곳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 순간 번개가 마에게 떨어졌고 마는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머리가 터져 죽어버렸다.


선은 믿기지 않는 듯 아가씨를 쳐다봤고 범은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웃고 있었다.


아가씨는··· 아가씨도 미소를 짓고 계셨다.


그리곤 쓰려지셨다.


“으하하하! 내가 느무 극증을 했나? 내보다 더한데?

됐다. 내는 이제 불개찾으러 갈 테니까 니는 주비 찾으러 가라. 알았나?”


말을 끝낸 산어르신은 걸어왔던곳으로 다시 돌아간다.


나는 산어르신을 잡고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그럴 새도 없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천, 천. 랑이 마를 죽였어.”


“아니. 마는 아가씨가 죽인 게 아니오.

마는 운이 없어 벼락에 맞아 죽은 거요.”


“아, 아니야. 내가 분명 봤어. 내가 봤다고!

랑이 마를 보자마자···.”


“그만!”


선은 눈물을 흘리며 마에게 다가가더니 양손으로 몸을 받쳐 들어 올렸다.


그리곤 어디론가 가려는 듯 뒤로 돈다.


나는 선에게 재빨리 다가가 어깨를 잡고 강하게 흔들었다.


내가 정신없이 흔들자 선은 몸을 돌려 나를 바라봤다.


나는 선의 시선을 뒤로 한 채 마를 잡아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그깟 짐승 새끼 하나 죽은 게 뭐가 대수라고 그렇게까지 하는 거요!”


“뭐? 그깟 짐승 새끼? 마는 그깟 짐승 새끼라고 불릴만한 아이가 아니야!”


“짐승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이오!”


“너, 너는···. 마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어?

네가 어떻게 마한테 그럴 수 가 있어!”


선이 내 뺨을 후려쳤다.


반사적으로 칼에 손이 갔다.


“이제 나까지 죽이려고? 그래! 어디 한번 죽여봐!”


“그런 게 아니오.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그랬소. 미안하오.”


“막지 마. 나는 마를 묻어주고 올 거야.

날 막으면···. 널··· 어떻게 할지 몰라.”


선은 다시 마를 들어 올려 어디론가 향했다.


나는 그런 선을 멍하니 보고 있다 정신을 차려 아가씨에게 향했다.


아가씨는 본인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 인지하지 못 한 양 평온한 얼굴이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왜 눈물이 떨어지는 거지?


아가씨 때문에? 아니면 마 때문에?



///



다음날.


아가씨는 깨어나지 않았으며 선은 돌아오지 않았다.


선이 돌아올 걸 대비해 자리를 옮기지 않았지만 허사였다.


나는 무작정 기다릴 수 없기에 쓸모있는 가재를 챙기기 시작했다.


“마는 묻어주고 왔어.”


목소리가 들려 그쪽을 바라보니 선이었다.


자리를 옮기지 않은 건 허사가 아니었다.


“잘했소.”


“생각해봤어. 네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랑 때문이지? 마를 단순한 짐승으로 격하해 랑의 죄를 낮추려는 의도였어.”


“죄? 짐승을 죽인 게 죄란 말이오?

애초에 짐승을 종으로 받아들인 건 아가씨였소.

그렇다면 짐승의 생사여탈은 아가씨에게 있는단 말이오.

그리고 짐승 하나 죽은 걸 가지고 왜 이리 유난을 떠시오?”


“유난? 넌 마가 죽은걸 애도하는 게 유난이야?”


“됐소. 그 짐승에 대해 더 말하고 싶지 않소.”


“너, 너 정말!”


“애초에 그 짐승을 받아들이는 걸 가장 반대한 사람은 당신이었소.

왜 갑자기 그런 행동을 하는 거요?”


“그건! 그래··· 알았어.”


“마지막으로 아가씨께서 그 짐승에 대해 여쭤보신다면,

그 짐승은 은혜도 모른 채 우릴 떠나갔다고 말하시오.”


선은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아가씨가 짐승을 죽였다고 말하면 나는 당신을···.

내가 뭘 뜻하는지 알 거로 생각하오.”


“넌 피도 눈물도 없어?

아무리 마가 짐승이라지만 어찌 이리 매정할 수 가 있어?”


나는 말 없이 선을 바라봤다.


선의 눈엔 눈물이 글썽거렸으며 나에게 상당히 화가 난 듯 주먹을 쥔 손을 부르르 떨었다.


“선, 나는 그런 사람이오.

난 아가씨를 위해서라면 이 세상에 있는 것들에게 무슨 짓이든 할 것이오.

설령 그것이 나에게 소중한 것일지라도.

노예기사란 이런 족속들이오.

당신은 나에게 다른 노예기사와 다를 거란 모종의 기대를 하고 있었겠지만, 나도 결국 노예기사일 뿐이오.”


“그래도! 그래도! 넌 다른 노예기사와 다를 줄 알았어!”


“범이 곶감을 먹는게 더 현실성있군.”


내 말을 들은 선은 눈물을 쏟아냈다.


쪼그리고 앉아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려온다.


“저기 말씀 좀 묻겠습니다.”


목소리가 들린 곳을 쳐다보니 남자 2명과 여자 1명이 선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각각 낫과 곡괭이 그리고 쇠스랑을 쥐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사도드리니인걸 눈치챘다.


선은 그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울고 있었다.


“무슨 일이시오?”


“아···. 저기 이 근처에서 짐승을 봤다는 얘길 들어서요.

사람들과 동행한다고 들었습니다.”


선은 짐승이라는 얘기를 듣자마자 울음을 멈추고 그들을 쏘아봤다.


적의 담긴 눈빛에 그들은 우리가 마의 일행이라는 걸 눈치챈 듯 무기를 강하게 쥐었다.


“글쎄, 짐승은 보지 못했소.”


“아! 그러십니까? 그런데, 그것이, 제가 듣기론···.”


사도드리니들이 슬금슬금 선이 있는 곳으로 움직이더니 재빨리 다가가 선을 제압하곤.


“이년이야! 이년이 그 짐승 새끼랑 같이 있었어!”


선은 충분히 저항할 수 있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그러지 않았다.


체념한 듯 머리를 다시 숙이고만 있을 뿐이었다.


“이, 이봐 노예기사. 내, 내 말 안 들으면 이년을 죽여버리겠어!”


사도드리니들의 대장인 듯한 여자가 꽤 긴장한 듯 말을 더듬으며 나에게 말했다.


나는 순간 ‘죽이시오’라고 말할 뻔했으나 가까스로 참았다.


“협상하시겠소?”


“혀, 협상? 협상 좋지! 이 여자가 죽는 꼴을 보고 싶지 않으면 우리랑 협상하는 게 좋을 거야.”


선이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눈은 퉁퉁 부었으며 눈물과 콧물 범벅이었다.


“알겠소. 그렇다면 협상에 나올 자는 누구요?”


“당연히 대장인 내가 나서야지!”


“그것보다 2명이 협상하고 1명은 남아 저 여자를 감시하는 게 어떻소?

1명보다 2명이 협상에 임하는 게 더 좋은 결과를 이끌지 않겠소?

그렇다고 3명이 협상에 임하면 여자를 감시할 사람이 없으니 당신들의 상황에선 2명이 나오는 게 가장 최선일 거요.”


여자가 나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그, 그런가? 얘들아 어떻게 생각해?”


“맞습니다! 하나보단 둘이 더 유리한 법이죠!”


“흠. 좋다. 쇠. 너는 저 여자를 단단히 감시해라.

나는 타와 함께 협상에 임할 테니.”


“정해지셨소?”


“그래! 우리는 2명이 너와 협상에 나설 것이다.”


선을 쳐다보고.


“나는 협상할 것이오. 2명과. 협상을.”


선은 무언가를 눈치챈 듯 피식거렸다.


2명이 나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좋아. 그럼 짐승이 어디에······.”


나는 말을 다 듣지 않고 남자의 낭심을 걷어차고 여자의 목을 때렸다.


남자는 바닥에서 데굴데굴 굴렀고 여자는 자신의 목을 두 손으로 잡고 캑캑거린다.


사도드리니들의 무기를 치운 후 포박하고 선을 바라봤다.


역시 내 예상대로 선은 자신을 감시하고 있던 남자를 제압하고 포박까지 마친 상태였다.


“제법 빠르군. 언제 포박까지 마친 거요?”


“네가 저 남자 거시기를 걷어찰 때.”


“그렇소? 그럼 나 좀 도와주지 그랬소?”


“네가 널 왜 도와? 미워 죽겠는데.

안 죽였네? 난 네가 제압 같은 거 할 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노예기사지 살인귀가 아니오.

나도 불필요한 살생은 좋아하지 않소.”


“어머! 웃겨!”


선은 이 상황이 못내 우스운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나도 웃기지 않소.

마을에 들어가 쉬어야겠소.

이제 갑시다.”


선에게 손을 내밀었고 내 손을 빤히 보고 있더니.


“그래. 가자! 랑은 내가 업고 갈게.”


“내가 하겠소. 당신은 많이 지쳤지 않소?”


“뭐래. 팔 하나 없는 너보다 내가 더 잘 업을 수 있거든?”


“그렇소? 그럼 그렇게 하시오.”



///



“아, 불안한데. 불안해.”


선은 연신 불안하다는 말을 하며 방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불안하단 말이야. 내가 가서 처리하고 올까?”


“됐소. 그것들도 생각이 있으면 우릴 쫓아오질 않겠지.”


“사도드리니들을 잘 몰라서 그러나 본데, 걔들 엄청 집요해.”


“괜찮소. 다음에 또 보이면 본때를 보여줄 참이오.”


“그래. 네 마음대로 하셔.”


선이 뒤로 벌렁 누우면서 말했다.


그리고 다리를 꼬더니.


“괜찮아?”


“괜찮다니까. 왜 계속 묻는 거요?”


“아니. 랑 말이야.”


아가씨를 한번 쓱 보고.


“자귀추적자잖아.”


산어르신을 만났다는 놀라움은 이내 눈을 회복했다는 기쁨에 뒤덮였고,


그 기쁨은 아가씨가 자귀추적자라는 걸 안 순간 슬픔이 되었다.


“그래도 랑은 계속 모실 거지? 그렇지?”


“그렇소. 아가씨가 도움이 더 필요 없다고 할 때까지 난 아가씨를 모실 작정이오.”


“음. 그런데 말이야. 아니다.”


“말해보시오.”


“아니야.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야.”


“산어르신이 어떻게 우릴 찾았는지 물어보려고 했소?”


“노예기사는 다른 사람의 생각도 읽어?”


“그렇소.”


“그, 그럼 내가 너 흉본 것도 알고 있겠네?”


“지금까지 나를 흉보고 있었단 말이오?”


“어, 미안.”


선은 정말로 미안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날 보며 말했다.


“괜찮소. 나도 당신 흉보면 되니까.”


“뭐? 그렇게 어딨어!”


“쓸데없는 말은 여기서 그만합시다.

사도는 다른 사도를 찾는데 도가 텄소.

그러니 아가씨를 찾아왔겠지.

그리고 당신이 얼마 전 나에게 말했던, 짐승이 사람의 씨를 말리겠다는 계획.

신이 사도를 보냈으니 그 계획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라는게 밝혀졌소.”


“그래! 너 그때, 일리 있는 얘기라고 했잖아!

왜 그렇게 생각한 거야?”


“있어 보이려고 아는척한 거요.”


“뭐? 노예기사가 농담도 해?”


“못할 게 뭐가 있소?”


“그렇구나. 새로운 사실을 알았네.”


“하여튼, 그 계획이 실행되고 있고 사람에게 상당한 위협이 될 거란 이야기지.”


“그렇구나. 그래서 신께서 사도를 보내주셨어.”


“벌써 2명이 모였소.

생각보다 진전된 상태일 수도 있소.”


“어떻게 해야 하지?”


“나한테 왜 물으시오?”


“너도 사람이잖아! 짐승이 사람의 자리를 차지하겠다는데 아무런 생각이 없어?”


“관심 없소. 내 관심은 오직 아가씨뿐이오.”


선이 나를 빤히 바라보곤.


“그래. 맞아. 너희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옆에서 누가 죽는지 관심 없지.

너희들은 관심은 오직 주인뿐이라는 걸 내가 잠깐 잊었네.

그거 알아?

네 주인은 자귀추적자야.

네 주인은 짐승을 막아야 하는 운명을 신으로부터 부여받았어.

그런데 너는 뒤에서 팔짱만 끼고 보고만 있겠다고?

신이 허락하지 않아 인간이 되지 못한 짐승은 언제나 인간이 되길 갈망했지만,

그 갈망에 지쳐 인간의 피로 해갈하려고 하지.

짐승은 자신들의 계획에서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인 랑을 노릴 거야.”


“그럼 어쩌자는 말이오?

내가 닥치는 대로 짐승을 죽여야 한다는 말이오?

그리고 당신···.”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짐승인 마가 죽어 눈물 콧물 흘리며 슬퍼했잖아.


그런데 사람이 인간의 자리를 짐승에게 빼앗기는 미래가 현실이 될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런 슬픔은 내팽개쳐 버리고 나에게 짐승을 죽이기를 부탁하는 거야?


역겹기 짝이 없군!


“뭐? 말해봐. 왜 말을 하다가 끊니?”


“아무것도 아니오.”


“그러니까 넌 짐승의 계획을 막아야 해.”


나는 대답하지 않고 아가씨를 바라봤다,


아가씨는 아직 한 번도 깨어나지 않으셨다.


불쌍한 아가씨.


“하하.”


느닷없이 선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얼굴을 쳐다보니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바닥을 보고 있었다.


“나 너무 쌍년인 것 같아.”


선이 자조 섞인 한탄을 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마가 죽었다고 슬퍼하지 않는 널 보고 욕했으면서,

마를 묻어줘야 한다면서 난리를 피웠으면서, 정작 내가 죽을 위기에 처하니까 짐승을 죽여달라고 사주를 하고 있네.

나는 존나 이기적인 년이야 그렇지?”


날 보고 있는 선의 눈동자에 눈물이 맺혀있다.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떨어져 바닥을 적셨다.


“수많은 욕설보다 네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드네.

네가 차라리 날 욕했으면 좋겠어.

위선자라고, 개 같은 년이라고, 쓰레기 같은 년이라고.

그러면 내 마음이 조금이나마 나아질까?

마에 대한 죄책감이 네가 한 욕설에 대한 반감으로 조금이나마 희석될까?”


선은 흘러내리는 자신의 눈물을 연신 훔쳐냈다.


“선···.”


“괜찮아. 날 욕해도 좋고 나를 역겹게 보는 눈빛으로 봐도 좋아.

하지만 날 도와줘. 사람을 도와줘.

내가 사람의 멸종을 막을 수 있게 도와줘.”


“선. 당신과 나는 아이들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영웅이 아니오.

우리는 그저 세상에 스쳐 지나가는 작은 바람에 불과하오.

그러나 우리가 맞서야 하는 적은 커다란 태풍이지.

선. 미안하오.

난 죽어서 아가씨의 곁을 지킬 수 없는 영웅 보다 살아있어 곁을 지킬 수 있는 겁쟁이가 될 거요.

죽어서 칭송받는 영웅 보다 살아서 손가락질받는 겁쟁이가 되겠소.”


“알았어. 미안해. 내가 너무 어려운 부탁을 했네.

너무 피곤하다. 나도 자야겠어.”


선은 힘없이 일어나 랑의 곁으로 가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길 얼마간.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본다.


“짐승이 랑을 죽이면 어떻게 할 거야?”


“죽여야지. 모든 짐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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