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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 인간, 인간, 사람,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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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작품등록일 :
2022.08.06 20:55
최근연재일 :
2024.05.0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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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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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1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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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선 3

DUMMY

천은 마을 입구에 당도할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평소에도 말이 없긴 하지만 왠지 모르게 심통이나 나도 입을 꾹 다물었다.


“여기 맞소?”


내가 대답할 줄 알아?


“아직도 삐진 거요?”


“누가···.”


천에 말에 대답하려 했으나 황급히 입을 닫았다.


삐지진 않았지만 네 태도가 마음에 안 들어서 대답해주기 싫은 거라고.


“거 참. 알았소. 언제까지 말 안 하나 봅시다.”


그래 난 평생 너랑 말 안 할 테니까 두고 보셔.


마을로 들어서니 전에 봤던 것보다 많은 사람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이 마을 사람들은 짐승에 대해 알고나 있는 걸까?


밖으로 뛰쳐나올 걸 생각해서 무서워해야 하는데.


사람들 표정을 보니 한결같이 밝아 이상하다.


짐승들로 인해 이 마을 사람들이 때아닌 호황을 맞아서 그런 건가?


하긴, 이 작은 마을에 무슨 수입원이 있겠어?


작물이나 파는 정도겠지.


그건 그렇고 인간이 정말 많은데?


“인간이 이 정도로 많았소? 내가 듣기론 여긴 백 명도 안 되는 마을이라고 들었는데.”


난 천의 말을 못 들은 척하고 괜히 주변을 돌아보는 척했다.


“알았소. 내가 잘못했으니 화 푸시오.”


“나 화 안 났어.”


“알겠으니 내가 어떻게 하면 말을 하시겠소?”


무릎 꿇고 울면서 빌면 용서해줄지도.


“잘못했다고 해.”


“이미 말··· 내가 잘못했소.”


그래.


네가 잘못한 거야.


난 하나도 잘못한 거 없다고.


“알았어. 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자비로운 내가 용서해줘야지.”


“그래서, 인간이 이 정도로 많았소?”


“아니. 내가 갔을 때만 해도 인간이 이렇게 많지는 않았는데. 이건 좀 이상하네.”


정말 이상하다.


그 사이에 이렇게나 많아진다고?


“곤란하군. 일단 그 청부인이 있는 곳으로 가봅시다.”


“알았어. 나만 따라와.”


청부인은 돌아왔겠지?


없으면 곤란한데.


이윽고 청부인이 있어야 할 장소에 당도했고 다행히 청부인은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주위로 울타리가 설치되어있었고 도깨비가 그 입구에서 가판을 설치한 채 있었으며 그 주위로 꽤 건장한 범 청년들이 세 명 서 있었다.


위험하니 어중이떠중이를 막는 건가?


입구를 지나 청부인에게 가려고 했으나 “이보시오. 청부를 받으려면 돈을 내야 하오.”라고 우릴 막아서며 말했다.


“뭐라고요? 청부를 받는데 돈을 내라고요?”


내가 잘못 들었는지 싶어 우리를 가로막은 도깨비에게 되물었다.


“맞소. 그리고 순번을 기다려야 하지. 어디 보자··· 당신들 앞에 열 개 조가 있으니 사흘은 기다려야 하겠구먼.”


“아니. 문제를 해결해준다는데 돈을 내라는 게 어디 있어요? 저 사람하고 무슨 사이라도 되는 거예요?”


“그건 아니고. 인간들이 많이 모여서 우리 마을에 피해가 가니 돈을 받는 거지.”


“어이가 없네. 당신들 마을에 위협이 되는 짐승을 해결해준다는데 돈을 내고 해결하라는 건 무슨 생각이세요?

그리고 전에 왔을 땐 이런 건 없었는데요.”


“새로 생긴 마을 법이니까 지키기 싫으면 저리 가쇼.”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세명의 범들이 입구를 막아섰다.


“당신네 말고도 하겠다는 사람이 넘쳐나니까 우리는 아쉬울 거 없어.”


나는 어이가 없어 천을 한번 쳐다봤고 천 또한 나랑 같은 생각인지 표정이 밝아 보이지 않았다.


“얼마요?”


천은 돈을 내고서라도 짐승을 만나보고 싶었던 걸까?


나라면 절대 내지 않을 돈을 내겠다며 가격을 물었다.


“곱사등이 양반이 보기와 다르게 머리는 돌아가는 모양이네.”


이 깡촌에 사는 무지렁이 새끼들이 노예기사를 보고 존중을 표현하지 못할망정 모욕을 해?


나는 화가 나 칼집에 손을 얹었고 이를 본 천은 나를 만류했다.


“그래서, 얼마요?”


“어디 보자··· 한 명에 십 원이니까 두 명에는 이십이 원이네.”


너무 무식한 나머지 셈도 제대로 못 하는 걸까?


“뭐 이렇게 비싸요! 그리고, 한 명에 십 원인데 왜 두 명은 이십이 원인데요?”


“위험이 늘어나니까 그렇게 받는 거요.”


“사람들 늘어나면 위험이 줄어들지 왜 늘어나는 거예요!”


“어허. 이 아가씨가 생각하는 거 하고는. 사람 수가 늘면 자연스레 짐승이 죽을 위험이 늘어나지. 안 그렇소?”


“뭐, 뭐라고요?”


지금 짐승이 죽으면 안 되니까 돈을 더 받는다는 거야?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아?


“그러니까 짐승이 죽을 위험을 낮추고자 돈을 더 받는다는 말인가요?”


“이제야 머리가 돌아가나 보군.”


속에서 천불이 났지만, 가까스로 꾹 누르고 좌판대에 앉아있는 도깨비를 노려봤다.


도깨비는 나의 적의 어린 시선을 빙글빙글 웃으며 받아쳤다.


“여기 있소. 이십이 원이니 확인해보시오.”


천이 남자에게 돈을 건넸고 남자는 확인해보더니 “맞는군. 여기에 이름을 적으시오.”라고 말했다.


천이 기록부에 이름을 적고 “정확히 언제 우리 차례가 되는 거요?”라고 물었고 남자는 “나흘 후에 이 시간에 오시오.”라고 답했다.


분명히 아까 사흘이라고 했는데 언제 하루가 늘었는지 싶어 물어보려고 했으나 더는 도깨비와 말 섞기가 싫어 무시하고 말았다.


“알았소. 나흘 후에 오겠소.”


천의 말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몸을 휙 돌려 자리를 벗어났다.



///



“그새 주막까지 만들었네. 이참에 제대로 한탕 하겠다는 속셈이네. 어이가 없어서 정말.”


평상이 마련되어있었고 주위로 천막까지 처져 있는 거로 보아 구색을 어느 정도 갖추기는 했으나 급히 만든 탓에 조악하기 그지없었다.


그 짧은 사이에 이렇게까지 변하다니 이 마을 인간들은 어찌 보면 대단하긴 하다.


“야, 너는 기분 안 나빠?”


“음.”


“참나. 너는 속도 좋다.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화를 안 내는 거야?”


“음.”


내가 지금까지 천을 파악한 결과에 따르면 천은 지금 언짢은 상태다.


어떻게 아느냐고?


내가 말을 걸었지만 두 번이나 음이라고 말했다.


내가 한 번 더 물어보니 또 음이라고 하겠지.


“그럼 너는 기다릴 거야? 사흘이나 기다려야 하는데 랑은 어떻게 하고?”


“음.”


봐.


내 말 맞지?


이제 물어보면 대답하거나 아무 말도 안 할 거야.


대답한다면 자기의 나쁜 기분을 수습했다는 거고 아무 말도 없으면 못 했다는 거지.


잘 봐.


“아무리 불개랑 같이 있어도 불편할 거 같은데. 괜찮아?”


“당신 말이 맞소. 돌아가야겠소.”


어?


내 말이 맞긴 했는데 돌아간다고 말할 줄 예상 못 했어.


“진짜 돌아가게? 짐승이 궁금하다며.”


“내 궁금증보다 아가씨의 안위가 더 우선이오. 잘됐군. 그렇지 않아도 마음이 불편했는데.”


“잠깐.”


천은 그렇게 말하곤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내가 제지했다.


“여기에 앉았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가면 눈치 보이잖아. 국밥이나 한 그릇 먹고 가자.”


내 말을 들은 천은 타당하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앉으며 주변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주문을 마친 나도 천과 같이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에는 어디서 용병 노릇 좀 하다 온 듯한 무리가 여럿 있었는데 그들 한결같이 우리가 신기한지 흘끗거리고 있었다.


하긴, 노예기사가 어디서 쉽게 볼 수 있는 건 아니지.


이럴 때 꼭 호승심 높은 것들이 나타나서 괜히 시비를 건단 말이지.


“어이, 형씨.”


이것 봐.


나 정말 작두 타도 되겠는데?


예상하는 족족 맞아 떨어지잖아.


목소리를 들어보니 건장하게 생긴 사내를 생각했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작은 체구에 쥐상을 가진 야비해 보이는 남자 사람이다.


남자는 다짜고짜 우리 평상에 털썩 앉더니 천을 뚫어지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남자의 무례한 행동에 천의 무표정한 얼굴이 살짝 일그러진다.


랑과 나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아주 미미하게.


천의 얼굴에 표정이 나타났다는 것은 무슨 감정이든 간에 아주 강하게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저기서 조금만 더 건드리면 저 남자는 죽을 거야.


“무슨 일이시죠?”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싶어 천이 행동하기 전에 상황을 누그러뜨리고자 재빨리 말을 꺼냈다.


“아, 너한텐 볼일 없어. 나는 이 꼽추 양반에게 볼일이 있거든.”


남자는 그런 내 노력을 가볍게 일축해버림과 동시에 천을 모욕하는 말을 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 또한 이 상황이 흥미롭다는 듯 행동을 멈추고 천과 남자를 지켜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시오?”


“내가 노예기사를 처음 봐서 말이야. 당신 정말 노예기사 맞아?”


“그렇소.”


“허허. 이봐! 정말 맞는다는데?”


남자가 자신의 일행으로 보이는 무리에게 머리를 돌린 채 말했고 남자의 일행은 상황이 재밌다는 듯이 킥킥거리며 웃기 바빴다.


나는 혹시나 해 저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해두었다.


“노예기사가 맞는다는 걸 확인해주었으니 이만 돌아가 보시오.”


“그럼 저 여자가 네 주인이야? 그러니까··· 아쥔타말이야.”


남자는 기분 나쁘게 날 턱으로 한번 가리키며 물었다.


“아니오.”


“어라? 노예기사는 자신의 주인 곁을 떠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너 가짜 아니야?”


천이 눈을 감고 입을 꽉 다물었다.


보아하니 분노를 삭이는 듯 하다.


“너 가짜지? 어? 꼽추로 태어났는데 노예기사라고 하면 사람들이 해코지 안 할까 봐 거짓말하는 거지?”


“그렇소. 그러니 이만 가보시오.”


“하하. 이것 보라지. 내 이럴 줄 알았다고.”


남자는 천이 가짜인 걸 밝힌 게 자랑스러운지 다른 사람들을 한 번씩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말이야. 내가 비밀을 지켜줄 테니 값을 좀 치르라고.”


“하하하!”


천이 가짜라는 게 밝혀져서 긴장할 필요가 없다고 느낀 걸까?


쥐상을 한 남자의 동료가 크게 웃었다.


나는 천이 왜 이렇게까지 모욕을 당하며 참고 있는지 모르겠다.


마음 같아선 저들을 혼내주라고 말하고 싶었건만 천이 보이는 표정의 의미를 아는 나로서는 괜히 불똥이 나에게 튈까 봐 말할 수 없었다.


부끄럽지만 그렇다고 내가 나서자니 저들을 한 번에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그저 말로만 남자를 만류할 수밖에.


“저기 그만 하세요. 천이 곤란해하잖아요.”


“뭐? 이놈 이름이 천이야? 이야. 꼴에 사람이라고 이름까지 가지고 있는 거 봐. 솔직히 너 같은 병신이랑 짐승이랑 다른 게 뭔데?”


남자는 천이 노예기사가 아니라는 걸 확신이라도 한 걸까?


아예 대놓고 모욕을 주기 시작했다.


“어? 야 이 쓸모없는 병신새끼야. 네가 짐승이랑 다른 게 뭐냐고?”


“···없소. 그러니 이만 돌아가 주시오.”


“그래그래 알았어. 뭐. 내가 참아야지 어쩌겠어?”


이 개새끼가.


나는 화를 참지 못해 풀어두었던 칼에 손을 대었지만 천은 살짝 고개를 저으며 나를 만류했다.


남자는 천의 저자세에 기분이 한껏 고양된 듯 거들먹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런 병신을 노예기사로 믿고 주인행세를 하는 한심한 새끼도 참···. 하긴 유유상종이라고 똑같은 놈들끼리 모이는 법이지.”


남자의 혼잣말에 천의 표정이 누구나 알아볼 정도로 일그러진다.


쥐상을 한 남자가 랑을 들먹이자 인내심이 끊어진 걸까?


천은 남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젓가락을 집어 남자의 턱밑에 쑤셔 넣었고 젓가락이 턱을 통과해 코를 꿰뚫고 나왔다.


남자는 자신이 무슨 일을 당한 것인지도 모르는지 그저 멀뚱멀뚱 천을 쳐다보기만 했다.


“으아악!”


인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한 걸까?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천은 이내 남자의 아래턱을 잡아 뽑아 버렸다.


젓가락에 혀도 관통되었는지 턱이 뽑히면서 젓가락이 혀를 찢어버려 뱀의 혀와 같이 두 갈래로 나뉘어 파닥거렸다.


잔인한 광경에 고개를 돌려 남자의 일행을 쳐다보았는데 그제야 부리나케 병장기를 집어 들어 대응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죽으러 온 사람에게 자비는 무의미한 법인데 괜한 행동을 했군.”


천은 이해하지 못할 말을 하곤 남자의 일행에게 시선을 옮겨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사지를 자르고 눈알을 뽑아 동물들의 장난감이 되게 하겠다.”라고 말했다.


일행은 움찔하며 모두 움직임을 멈췄고 천은 다시 쥐상을 한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남자는 공황상태에 빠진 듯 자신의 양손을 빠져버린 턱 근처에 대고 연신 신음을 흘렸다.


천은 바닥에서 제법 큰 돌멩이를 집어 들더니 남자의 목구멍에 쑤셔놓고 “네 사인은 질식일까? 과다출혈일까?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일까? 의원이 뭐라고 할지 궁금하군.”이라고 말했다.


남자는 숨이 막힌 듯 돌멩이를 꺼내려 자신의 목구멍을 쉴새없이 박박 긁었지만 깊게 박혀 꺼내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이내 눈이 돌아가더니 남자는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다.


천은 죽어버린 남자에서 시선을 거두고 일행에게 걸어갔다.


죽어버린 남자의 일행은 천의 협박이 꽤 세게 먹힌 듯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잘했다. 용케도 내 말을 따라주었군.”


“가, 가, 감사합니다. 기, 기사님께서 살려주신 모, 목숨 다, 다시는 허투루 쓰, 쓰지 않겠습니다.”


“누가 저놈을 부추겼지?”


천의 말에 한 남자의 바지가 축축해진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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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천 5 22.10.01 23 0 13쪽
29 천 4 22.09.27 26 0 13쪽
28 천 3 22.09.26 21 0 13쪽
27 천 2 22.09.25 21 0 12쪽
26 천 1 22.09.24 20 0 12쪽
25 선 5 22.09.20 19 0 12쪽
24 선 4 22.09.19 17 0 13쪽
» 선 3 22.09.18 18 0 13쪽
22 선 2 22.09.17 18 0 13쪽
21 선 1 22.09.06 22 0 14쪽
20 짐승 3 22.09.05 20 0 13쪽
19 짐승 2 22.09.04 23 0 12쪽
18 랑 3, 짐승 1 22.09.03 19 0 13쪽
17 랑 2(2) 22.08.28 17 0 13쪽
16 랑 2(1) 22.08.28 18 0 13쪽
15 랑 1 22.08.28 17 0 13쪽
14 천 5 22.08.27 18 0 15쪽
13 천 4 22.08.27 21 0 16쪽
12 천 3 22.08.21 25 0 14쪽
11 천 2 22.08.21 24 0 13쪽
10 천 1 22.08.20 32 0 14쪽
9 선 6 22.08.20 78 0 14쪽
8 선 5 22.08.14 29 0 13쪽
7 선 4 22.08.14 33 0 15쪽
6 선 3 22.08.13 45 0 13쪽
5 선 2 22.08.13 48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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