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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 인간, 인간, 사람,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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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작품등록일 :
2022.08.06 20:55
최근연재일 :
2024.06.10 21:00
연재수 :
18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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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5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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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12,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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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1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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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짐승 3

DUMMY

잠을 못 자서 그런가?


왜 이런 이상한 생각을 한 거지?


“결핵약?”


천의 목소리가 내 상념을 꿰뚫고 귀에 들어왔다.


“네? 네. 약방에 결핵약도 팔까요?”


“결핵이라도 걸린 건가?”


“아, 아니요. 그런 건 아니고요.”


내가 말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니 천이 의심스럽게 날 쳐다본다.


“돈은?”


“어, 없는데요.”


“그럼 약도 없다.”


“있으면요?”


“나랑 장난하는 건가?”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돈이 있으면 약도 있지.”


나는 주머니에서 남은 공작금을 탈탈 털어 천에게 건네주었다.


“훔친 건가?”


“제가 일해서 벌었어요.”


“누가 너에게 노동의 대가로 돈을 준다는 거지?”


“지, 짐승이요.”


“그렇군. 이 돈은 내가 보관하겠다.”


천이 내가 준 돈을 자기 주머니에 넣는다.


“약방은 제일 마지막에 간다.”


“알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돈을 주지 않았는데 어떻게 지게를 산다는 거지?”


“야! 돈 줘!”


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돈 달라는 선의 목소리가 들렸다.



///



“약을 샀다. 이젠 어떻게 할 거지?”


천이 나에게 약을 건네주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이 짐승이 결핵약이 필요하다는군.”


“너 결핵 걸렸어?”


“아니요! 안 걸렸어요.”


“그럼 왜?”


“제가··· 아는 짐승이 결핵에 걸려서요.”


“그래서 그 짐승에게 약을 주려고 산 건가?”


“네···.”


천과 선이 한소리를 할 줄 알았건만 의외로 별말이 없다.


특히 선이 큰소리를 칠 줄 알았는데.


“그래서. 이 약을 가져다줘야 하는 거야?”


“네. 걔는 제가 이 약을 샀는지 몰라서요.”


“갔다 오도록. 한 시간 주겠다.”


천이 나를 보고 허락했다.


“아니! 같이 가보자!

너 지하도 가려는 거지?”


“네? 네.”


“싫소. 거긴 더럽단 말이오.”


“어때? 한 번쯤은 괜찮지 않아?”


“거긴 냄새나고 벌레도 많단 말이오.”


“뭐래. 구정물에 목욕하게 생겨선.”


“뭐요?”


“응? 내가 뭐라 그랬어?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 한 시간 주겠소.

일 분이라도 늦으면 버리고 갈 테니 그리 아시오.”


말을 마친 천은 어디론가 가버렸다.


“자, 방해물도 없으니 안내해.”



///



선과 나는 지하도 입구에 서 있다.


“여기야?”


“네.”


“괜히 왔나. 정말 더럽네.

너희들은 여기서 어떻게 사는 거니?”


“하하, 뭐. 익숙해지면 괜찮아져요.”


“여기도 시장 같은데 있지?”


“네. 있어요.”


“좋아. 날 그리로 안내해.”


“네, 그럼 안으로 들어갈게요.”


안으로 들어서니 선이 코를 막으며 “아우, 냄새.”라는 말을 계속했다.


“빨리 가자. 여기에 한시라도 있기 싫으니까.”


있기 싫은데 왜 온 거지?


시장은 왜 가려고 하는 거고.


특별한 목적이 있나?


나는 발걸음을 바삐 옮겨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으로 향하니 짐승들의 시선이 나와 선에게로 모인다.


“사, 사람이 왔어.”


“여긴 왜 온 거지?

한번 뒤집어엎으려고 온 건가?”


“저 녀석 좀 봐.

표식이 있어.

저 사람이 저놈의 주인인가 봐.”


선은 짐승들의 수군거림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주변을 살펴본다.


“여기야?”


“네, 여기가 시장이에요.”


“좋아. 그럼 네 볼일 봐.”


“네? 혼자서 가시면 안 돼요.”


“왜?”


“저것들이 선님에게 무슨 해코지를 할지도 몰라요.”


“저것들이? 풋. 저놈들 눈 좀 봐봐.

저것들은 절대 날 해칠 수 없어.”


그건 그렇지만···


시장에는 저들만 있는 게 아닌데.


뒷골목에 사는 애들은 저놈들과 달라도 한참 달라요.


“저기···.”


“아, 됐으니까 가라고.”


선이 윽박지른다.


나는 걱정돼서···.


“아, 알겠어요.

혹시나 누군가가 이상한 짓을 하면 그냥 목을 날려버리세요.

어지간한 짐승이 아니고서는 보고도 모른척할 거예요.”


“알겠어. 그러니까 이제 좀 가.”


“네, 네.”


나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옮기다 걱정되어 뒤로 돌아봤다.


그런데 어느새 선이 사라져버렸다.


그새 흥미로운 걸 찾은 건가?


“어! 형!”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내 표식을 훔쳐가려는 녀석이었다.


“또 보네. 잘 있었어?”


“벌써 돌아온 거예요?

우리 헤어진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았는데요.”


“너한테 볼일이 있어서 왔어.”


“네? 무슨 볼일이요?”


“그게···.”


약을 가져왔다는 얘기를 꺼낼까 하다 너무 많은 이목이 내게로 모여 급히 입을 닫았다.


내가 약을 이 아이한테 준다는 얘길 하면 꼭 무슨 일이 생길 거야.


“네?”


“일단 네 집에 가서 얘기하자.

너 지금 시간이 있지?”


“아, 저기··· 아직 일이 안 끝나서요.”


“언제 끝나는데?”


“지금이 열 시니까··· 열한 시간 남았어요.”


나한테 한 시간만 준다고 했는데.


“그럼 내가 네 동생을 좀 봐도 될까?

집에 있지?”


“네? 제 동생은 왜요?”


“내가 약을 구해왔거든.

네 동생에게 주려고.”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귓속말로 아이에게 말했다.


“네? 저, 정말이에요?”


“조용히 말해!”


아이가 소리를 질러서 그런지 이목이 더 쏠린다.


“내가 가져왔으니까 네 동생에게 주고 갈게.

괜찮지?”


“네, 네. 괜찮아요.

기억하시죠? 저희집.”


“어, 기억하고 있어.

네가 일을 마칠 때까지 기다리고 싶은데 시간이 별로 없어서 말이야.”


“알겠어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그, 그래. 가봐. 늦겠다.”


기뻐하긴 하는데 왜 이렇게 미지근하지?


일이 힘들어서 그런가?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멀어지는 아이를 쳐다봤다.



///



결핵이 나으면 신에게 가는 문에 있는 짐승이 운영했던 약방에 가라고 해야겠다.


거기 주인은 이제 없으니까 가서 주인행세를 하면서 살면 그래도 꽤 괜찮게 살 수 있을 거야.


잠깐만, 내가 그놈 시체를 처리했던가?


생각에 잠겨 길을 걸으니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안에 있어?”


“누, 누구세요?”


문을 두드리며 안에 있는지 물어보니 대답이 들려온다.


“나야. 새벽에 너한테 종 생활을 하는 얘기를 해준 짐승.”


“오빠!”


안에서 쿠당탕하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린다.


참. 입을 가려야 하는데.


나는 황급히 천으로 입을 가렸다.


내가 입을 가리니 동생이 기침을 콜록콜록한다.


“오, 오셨어요?”


“응. 너한테 줄 게 있어서.”


“뭔데요?”


“일단 안으로 들어가도 될까?”


혹시나 날 따라오는 것들이 있을까 싶어 주위를 둘러보고 말했다.


“네! 들어오세요.”


동생은 흔쾌히 날 안으로 들였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죽을 거 같더니 이젠 괜찮아 보이네.


잠도 제대로 못 잤을 텐데.


“그래서 주고 싶은 게 뭔데요?”


“결핵약을 주고 싶어서.”


주머니를 뒤적여 약을 건네주었다.


“약이요? 이걸 어떻게···?”


“내가 부탁해서 사 온 거야.

너 이거 꾸준히 먹으면 나을 테니까 꼭 먹어야 한다?”


“이, 이걸 어떻게 받아요?

이렇게 귀한걸···.”


“네가 안타까워서 주는 거야.

그럼 약 줬으니까 난 이제 가볼게.”


“네? 버, 벌써요?

차라도 한잔하고 가세요.”


이런 가난한 집에 차도 있···.


갑작스러운 불안한 생각에 황급히 몸을 돌렸다.



///



눈을 뜨니 집안이 온통 피범벅이다.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가 들어온다.


“정신을 차린 건가?”


천이다.


“네? 이, 이게 무슨 일이죠?”


“내가 짐승을 죽였다.

네가 약을 주려는 짐승과 그 짐승과 같이 사는 짐승.

두 마리 전부다.”


아이와 동생을 말하는 건가?


도대체 왜?


“왜, 왜 죽였죠?”


“짐승을 죽이는 데 이유가 필요한가?

죽이고 싶어서 죽였다.”


천의 황당한 말에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하고 쏟아졌지만, 가까스로 내뱉지 않았다.


“왜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거지?”


나는 또다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례한 행동이었지만 내 기분을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말로는 표현하지 않고 무언으로 내 기분을 표현했다.


내가 여기서 말을 꺼내면 죽일 것 같았기 때문에.


“너희 짐승은 말로만 동포다, 동지다 하면서 막상 목숨에 위협을 느끼니 그저 모른척하기 바쁘군.

한심한 족속에 실로 어울리는 행동이야.”


나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그뿐.


더는 행동은 할 수 없었다.


내 목숨이 위험하니까.


“왜 죽였는지만 말해주실 수 있을까요?”


내가 약도 준비하고 병이 나으면 편히 지낼 곳까지 생각해뒀는데.


“죽일만했으니까.”


“···그렇군요. 근데 입 가리시는 게 좋아요.

여기 사는 짐승 중 하나가 결핵에 걸렸거든요.”


“알고 있다.”


그런데 왜 가리지 않는 거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이번엔 선이 들어온다.


“일어났어?”


“네··· 일어났어요.”


“야. 넌 나한테 짐승이 해코지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하더니 네 코가 석 자야.”


“네? 그게 무슨···?”


“이 두 놈이 너한테 작업 친 거야.”


작업이라고?


또다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번엔 어제 입구에서 봤던 짐승이다.


조금 멍청한 짐승.


“처리하셨군요. 저에게 맡기셨으면 손을 더럽히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짐승의 말에 천이 한번 쳐다보고는 날 쳐다본다.


“정신 차렸으면 일어나도록.

네 사정까지 헤아릴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뭐라는 거야? 네가 여기까지 찾아와서 일을 벌여놓고는.”


“왜 이렇게 벌레가 많은 거야! 냄새도 불쾌하고!”


천이 문을 쾅 열고 나가버린다.


“쟤는 은근히 부끄럼쟁이라니까.”


선이 킥킥대며 말했다.


“나도 갈 테니까 전후 사정은 쟤한테 들어.

여기 냄새는 정말 적응 안 된단 말이야.”


선 또한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집안엔 나와 짐승만이 남아있다.


짐승은 나가는 선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집안을 완전히 나간듯하니 의자를 가져와 내 앞에 앉았다.


“이놈들이 너한테 뭘 했지?”


나는 어제 내 표식을 뜯어가려는 것 부터 내가 정신을 잃기 전까지의 모든 일을 말해주었다.


“우선, 저 동생이라는 년은 결핵이 아니다.”


“그렇군.”


“놀라지 않는 걸 보니 대충 알고 있었던 모양이야.”


눈치를 밥 말아 먹지 않고서야 지금까지 상황을 보면 모를 수가 없지.


“이놈들은 여기서 유명한 짐승들이다.

여기로 처음 굴러들어오는 짐승들을 상대로 작업을 하고 골수까지 털어먹는 것들이지.”


“내가 대상이 되었다. 그 말인가?”


“그래.”


짐승이 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문다.


하지만 불은 붙이지 않는다.


“넌 운이 좋았고 널 고른 이놈들은 운이 없었지.

아니 운이 없었기보다 멍청했지.

아무리 짐승이라도 표식을 가진 짐승을 건드리는 건 위험한 짓이야.”


“그런데.”


나도 의자를 가져와 짐승의 앞에 놓고 앉았다.


“왜 진작 처리를 하지 않은 거지?”


“우리 동지니까.”


“저놈들 손에 죽은 짐승은 동지가 아닌가?”


“동지라도 다 같은 동지가 아니지.

가까운 사이가 있으면 먼 사이도 있는 법이지.

더군다나 저놈들은 우리 일원으로 받아들인 짐승은 건드리지 않았어.”


“그런데 네 동지를 배반했군.”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동지, 동지라고 하면서 막상 목숨이 위협받으니 헌신짝처럼 버린 주제에 동지는 개뿔이라고 말하고 싶나?”


맞아.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넌 아무것도 몰라.

지금 일어난, 그리고 내가 말해준 단편적인 일만 가지고 판단할 게 아니란 말이야.

사람의 종으로 호의호식하며 살아간 주제에 뭘 안다고 떠드는 거야?”


나는 반박하고 싶었지만, 울분에 찬 짐승의 목소리에 할 수 없었다.


“그래. 여기서 사람 둘쯤 죽이는 건 아무 일도 아니야.

그런데 그다음은?

여기서 사람이 죽었다는 게 알려지면 여긴 하루도 안 돼서 쑥대밭이 돼버리고 말 거야.”


짐승이 담배에 불을 붙인다.


“하루하루 마음졸이면서 사는 기분을 네가 알아?

미친 사도드리니 새끼들이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데 제압하는 대신 누구를 희생양으로 삼아야 할지 생각하는 내 기분을 아느냔 말이다.”


짐승이 거의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가라. 가서 평생 사람이나 모시면서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가라.”


짐승의 말에 반박할 것이 수없이도 많았지만 나는 그러지 않고 문을 열고 나갔다.


그렇게 터덜터덜 걷고 있으니 어느새 출입구에 다다랐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천과 선이 날 기다리고 있다.


“야! 안 뛰어와!”


“네, 네! 가겠습니다!”


선의 말에 헐레벌떡 뛰어갔다.


“너 씻고 와라.”


“알겠습니다.”


가까이 가니 천이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천이 그놈들한테서 날 구해준 거겠지?


동지는 날 죽이려 했지만, 사람은 날 살리려 했어.


또다시.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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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7 22.10.22 31 0 12쪽
38 36 22.10.18 29 0 12쪽
37 35 22.10.17 28 0 12쪽
» 짐승 3 22.10.16 3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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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랑 3, 짐승1 22.10.04 2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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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랑 1 22.10.02 24 0 12쪽
30 천 5 22.10.01 23 0 13쪽
29 천 4 22.09.27 27 0 13쪽
28 천 3 22.09.26 21 0 13쪽
27 천 2 22.09.25 21 0 12쪽
26 천 1 22.09.24 2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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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선 2 22.09.17 18 0 13쪽
21 선 1 22.09.06 22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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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랑 3, 짐승 1 22.09.03 19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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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랑 2(1) 22.08.28 18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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