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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 인간, 인간, 사람,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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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작품등록일 :
2022.08.06 20:55
최근연재일 :
2024.05.06 21:00
연재수 :
18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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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47
추천수 :
1
글자수 :
970,659

작성
22.09.2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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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천 4

DUMMY

“나리.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알았다. 일어날 테니 상을 봐오거라.”


“알겠습니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눈치를 보는 여자에게 밖으로 나가지는 손짓을 했다.


내 손짓에 반색하며 다급히 밖으로 나간다.


방안에서 한마디도 못 한 여자는 아니나 다를까 불만을 쏟아낸다.


“아우. 답답해 죽는 줄 알았네.”


“잘 참았소.”


“이거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 거야?”


“밥만 주고 이대로 찢어져야지.”


“글쎄. 내가 보기엔 저놈 저거 널 종으로 삼을 것 같은데”


“어떻게든 핑계를 대야지.”


“미치겠네! 무당 피하려다 선비를 만나다니.

평소에는 코빼기도 안 보이는 것들이 왜 갑자기 우리 앞에 나타나는 거야?”


“우리가 도깨비산에 있으니까.”


“에휴. 그래, 좋게 생각하자.

비위만 맞춰주면 죽을 일은 없으니까 무당보다 선비가 낫지.”


“그래도 조심하시오.

눈구멍의 불이 제법 커졌으니.”


“그래서 어쩔거야?

선비랑 같이 갈 거야?”


“어차피 우리가 떼어놓으려고 해도 계속 따라올 거요.

종이 되는 건 거절하고 같이 가는 건 허락해야지.

무당을 죽여야 하니 여차하면 선비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고.”


“거절한다고 지랄하지는 않겠지?”


“보면 알겠지.”


“근데 선비가 도와줄까?”


“그것도 보면 알겠지.”


“그래. 네 마음대로 해.”


여자는 내 말에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아궁이 불을 몇 번 뒤적거린다.


그리곤 솥뚜껑을 열어 밥이 잘 됐는지 살펴본다.


“다 됐다. 나는 밖에 있을 테니까 네가 갖다 줘.”


“알았소.”



///



“싫다는 게냐?”


“죄송합니다. 저희는 급히 갈 곳이 있어 모시지 못할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군. 알았다.

강요하는 건 선비의 도리가 아니지.”


“감사합니다.”


“그러면 어디로 가느냐? 목적지가 같다면 그때까지만이라도 동행해도 되겠지?”


“저희는 칠 구역으로 갈 예정입니다.”


“잘됐군. 나도 그쪽으로 가려던 참이었는데.

그런데 여기는 삼 구역과 가까운 곳인데 왜 이곳에 있느냐?

길을 잘못 든 게냐?”


“그렇습니다. 저희가 길을 잃어···.”


여자가 내 옆으로 와 귓속말로 “지도를 보여주고 맞는지 확인해달라고 해.”라고 말했다.


괜찮은 생각이라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선비님. 저희가 지도를 한 장 가지고 있는데 쇤네가 지도를 볼 줄 몰라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지도를 보여드려도 되겠습니까?”


“어험. 그래

천것이 지도를 볼 줄 알 리가 만무하지.

이리 줘 보아라.”


지도를 건네받은 선비는 혀를 차더니 바깥에 있는 평상으로 가 문방사우를 허공에서 꺼내 들어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지도가 엉망이군. 내가 무지렁이도 볼 수 있는 제대로 된 지도를 그려줄 테니 기다려 보아라.”


“감사합니다. 집안의 보물로 평생 간직하겠습니다.”


“험험. 그러면 내 특별히 더 신경을 써서 그려주도록 하겠다.”


그러더니 지도가 산수화로 변하기 시작했다.


선은 그 광경에 놀라 입을 떡 벌리며 “와아. 진짜 같아.”라고 말했지만, 선비는 못 들은 건지 못 들은 척하는 것인지 무시하고 지도를 그린다.


“내 시간이 없어 본 실력의 절반도 나오지 않았구나.”


지도를 완성한 선비가 나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선이 내 옆에서 연신 “대박.”이라고 큰 소리로 말했고 이번엔 확실히 들었는지 선을 한번 쓱 보더니 아무 말 없이 다시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어떻느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흠흠. 그래.”


내가 가진 지도와 대조해보며 살펴보니 길은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초가가 표시된 곳이 확연히 달랐다.


“이건 뭐지?”


선이 지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건 무당의 집이다.”


“무당의 집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그 무당이 네 얼굴을 봤을 테지.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너희들이 살기 위해선 그 집을 불태워야 한다.”


“서낭당인가 봐.”


“맞다. 그 집은 서낭당이다.”


여자의 혼잣말에 선비가 화답했다.


여자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선비를 잠깐 쳐다보고 이내 고개를 숙여 눈을 피했다.


“험험. 어찌하겠느냐? 이대로 이 숲을 빠져나가겠느냐?

아니면 서낭당을 불태우고 빠져나가겠느냐?”


“태우겠습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내가 도와줄 수 없군.”


“아닙니다. 이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 이제 내 볼일은 끝났으니 가보도록 하겠다.”


선비는 평상에서 일어나 우릴 지나칠 무렵 “쯧쯧. 지아비가 어찌 되었는지도 모르고.”라고 여자를 쳐다보며 말하더니 뒷짐을 지고는 제 갈 길을 가버렸다.


“나한테 말한 거야?”


“그렇소.”


“뭐래. 선비가 미쳤나.”


말하자마자 아차 싶었는지 주변을 급히 돌아봤다.


“갔지? 안보이지?”


“호들갑 그만 떨고 이제 어떻게 할지 생각해보시오.”


“뭐 있어? 낮에만 움직이면서 서낭당에 불 지르고 빠져나가면 되지.

제대로 된 지도도 얻었겠다 거칠 게 없잖아?”


“그렇군.”


“지도 줘. 내가 볼 테니까.

근데 진짜 잘 그렸네.

이거 팔면 얼마 정도 할까?”


한심한 표정으로 여자를 쳐다봤고 뜨끔했는지 딴청을 부리다 갑작스레 큰소리를 외친다.


“아니 근데! 칠 구역까지 같이 간다고 해놓고 왜 가버리는거야?”



///



“랑은 잘 있겠지?”


“잘 있지 않겠소?”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아직 모르나?”


밤이 되어 초가에 머물렀고 여자는 무당을 기다리는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올 때가 됐다고 계속 말했다.


“정신사나우니 가만히 좀 있으시오.

무당이 오지 않으면 좋은 거 아니오?

당신 현혹됐소?”


“미, 미쳤어! 나 현혹 안 됐어!”


“그러면 가만히 좀 있으시오.”


여자는 내 말을 듣고 자리에 털썩 앉아 지도를 펴 히죽히죽하며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정말 잘 그렸단 말이야.

그나저나 선비를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는 처음 보는데 생각보다 까다롭지 않네.”


“비위만 맞춰주면 선비만큼 다루기 쉬운 괴물도 드물지.”


“기분 나쁘기는 하지만···.

뭐··· 이렇게 멋진 그림까지 그려줬는데 내가 참아야지.

이거 내가 가질 거야.

눈독 들이지 마.”


“그렇게 마음에 드시오?”


“어. 나 진짜 가보로 남길까 봐. 헤헤.”


정말 소중한 것을 다루는 듯이 그림을 손바닥으로 한번 쓸고는 고이 접어 품속에 넣는다.


“그렇게 품에 넣으면 다시 꺼낼 때 번거롭지 않겠소?

나한테 맡기는 게 어떻소.”


“전부 숙지했고, 내가 가지고 있어도 괜찮아.”


“당신이 현혹이 안 됐는지 내가 어떻게 믿고?”


“응, 무당은 현혹 풀린 사람한테 다시 못 걸어. 너나 걱정해.”


“헛소리. 한번 현혹되면 현혹되지 않는다는 말은 처음 들어보오.”


“근데 선비가 아까 나보고 뭐라고 했는지 정확히 들었어?”


“괴물이 한 말이니 잊어버리시오.”


“지아비가 뭐라고 했는데···.”


“헛소리니 잊어버리시오.”


“아니야. 선비가 헛소리할 리가 없어.”


“자자, 그것보다 정말 서낭당을 불태울 생각이오?”


“태워야지. 너도 동의했잖아.”


“오면서 생각을 해봤는데 태우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하오.”


“뭐? 그럼 도망가자고?”


“아니. 나는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오.”


“우리 둘이서 무당을 죽이자고? 네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가능성 있소. 전에 짐승을 상대한 것처럼 당신이 가서 망을 보고 오시오.”


“야, 짐승하고 무당이 같니?

그리고 무당이 어디 있는 줄 알고 보고 오라는 거야?”


“생각해둔 곳이 있소. 지도를 줘 보시오.”


여자는 내 말에 품에서 지도를 꺼내 건네주었다.


나는 건네준 지도를 펼쳐 이리저리 살펴본다.


“어두워서 잘 안 보이는군.”


지도를 들어 촛불 가까이에 대었는데 여자가 화들짝 놀라 낚아챈다.


“조심해! 타면 어쩌려고 그래?”


“미안하오. 다시 줘 보시겠소?”


“어딘데? 짚어봐.”


“어두워서 보이지 않으니 촛불로 밝혀야겠소.”


내가 촛불을 집어 지도 가까이 대자 다시 한번 지도를 낚아챈다.


“누구처럼 시력을 잃으셨나?”


“미안하오.”


“···그냥 찍어.

잘 보이는구먼 뭐가 안 보인다는 거야.”


여자가 의심하는 것 같아 군말 없이 나는 무당이 있는 곳을 짚었다.


“여기야?”


“확실하오.”


“그냥 불 지르고 튀는 게 낫지 않을까?

네 말대로 정찰하고 이것저것 하면 시간이 오래 걸릴 텐데?

랑이 기다리고 있어.

하루라도 빨리 가야지.”


“상관없소. 당신이 가서 염탐만 하고 오면 되오.”


“···무당이 눈치채지 않을까?”


“챌 리가 없소.”


“흠···.”


여자가 미심쩍은 듯이 나를 쳐다본다.


“할거요?”


“안 해. 너무 위험하고 오래 걸려.

서낭당만 불태우면 끝인데 왜 위험을 자초하고 시간을 버려서 고생길에 들려고 하는거야?”


“반드시 해야 한다니까.”


“그러니까 왜 죽여야 하냐고!”


여자가 답답한 듯 나에게 소리를 지른다.


“이유는 필요 없어!

반드시 당신 혼자서 무당을 염탐해!”


“뭐··· 뭐? 갑자기 왜 그래?”


“에헴. 게 누구 없느냐?”


빌어먹을 선비가 또.


“대답하지 마시오.”


여자가 내 말에 우물쭈물 망설인다.


“거기 네놈들이 있는 거 다 알고 있으니 문을 열어 보아라.”


“움직이지 마.”


“그, 그냥 여는 게 낫지 않을까?”


“가만히 있어.”


“어허! 지금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 건가? 어서 열도록 해라!”


그 순간. 여자가 내 말을 듣지 않고 문을 벌컥 열다.


이 씨발년이.


“계집. 내 뒤로 오거라.”


“네, 네.”


“가지 마시오! 저놈은 괴물이오!”


여자가 부리나케 선비 뒤로 숨었고 선비가 그런 여자를 보면서 혀를 찬다.


“쯧쯧. 지아비가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고. 한심하기 짝이 없군.”


“선비. 방해 말고 가던 길 가시오.”


“어디 감히! 천것이 눈을 부릅뜨고 망발을 한단 말이냐!”


“닥쳐! 거의 다 왔는데 왜 방해를 하는 거야!”


선비가 성큼성큼 걸어와 양손으로 내 얼굴을 잡아 고정하고 텅 빈 눈으로 날 뚫어지게 응시한다.


바람 소리와 함께 텅 빈 눈구멍에 있는 불꽃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게 보인다.



///



눈을 뜨니 낯선 천장이 보인다.


자리에서 일어나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주위를 둘러보니 선이 멀찌감치 떨어져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뭘 그렇게 보는 거요?”


“정신이 들어? 좀 어때?”


“머리가 아프군.”


“너 무당한테 홀렸었어.”


내가 무당한테 홀려?


“그게 무슨 말이오?”


“어디까지 기억나는데?”


“선비가 내 눈을 마주 보고···. 그다음부터는 모르겠소.”


“그때 선비가 현혹을 풀어줬어.”


“그럼, 우리 둘 다 걸렸었다는 말이오?”


“어. 네가 나를 정신 차리게 했잖아?

나는 그런 너를 철석같이 믿게 됐었지.

무당이 생각보다 치밀하네.

감쪽같이 속았어.”


“이상하군. 무당은 하나밖에 현혹하지 못할 텐데.”


“에이. 우리가 무당을 다 아는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있지.”


“내가 혼절한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소?”


“아무 일도 없었어.

네가 깨어날 때까지 가만히 있었거든.”


“선비는 어떻게 됐소?”


“너 풀어주고 제 갈 길 가버렸어.”


“이상하군. 선비가 갑자기 왜 그런 행동을···.”


“아, 됐고. 이제 여기서 나가자.”


“무당은 어쩌고?”


“다 끝났어.”


“죽였다는 말이오?”


“어.”


미심쩍은 눈으로 선을 쳐다보니 어깨를 으쓱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어떻게 죽였소?”


“선비가 도와줬어.”


“방금 떠나버렸다고 말하지 않았소?”


“아차차. 나 혼자서 서낭당을 불태웠어. 미안.”


말없이 선을 쳐다보고 있으니 날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을 뿐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된다.


아니, 이 산이 들어온 순간부터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또다시 잠가위에서 잠식된 건가?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걸 보아 잠가위는 아니다.


좋아.


이 산에 들어오고 무당을 만났다.


나는 아가씨의 안위가 걱정되어 다른 사도가 있는 곳으로 피신을 제안했고 아가씨는 사도가 있는 곳으로 가셨다.


그 후 빙의된 곰을 봤고 정황상 그 곰을 집으로 들였을 때 현혹이 됐을 터.


선이 곰의 목을 날렸고 그때 무당의 방울 소리가 들렸다.


초가에서 내가 선이 현혹된 걸 풀어주었고, 선비를 만나 나도 현혹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선이 이해 못 할 말을 하는 걸 보아 또다시 현혹된 상태가 분명할 테지.


현혹을 풀게 되면 또다시 내가 홀릴 것으로 추측된다.


선비.


선비는 뭐지?


왜 우리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도와주는 거지?


“안 갈 거야?”


내가 생각에 잠긴 사이에 재촉이라도 하듯 모든 짐을 꾸리고 문 앞에 서서 날 쳐다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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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천 3 22.09.26 21 0 13쪽
27 천 2 22.09.25 21 0 12쪽
26 천 1 22.09.24 20 0 12쪽
25 선 5 22.09.20 19 0 12쪽
24 선 4 22.09.19 17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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