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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 인간, 인간, 사람,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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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작품등록일 :
2022.08.06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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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1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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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DUMMY

-선 2-



“다 먹었으면 치워.”


내 말에 짐승이 남은 뼈다귀를 한곳에 모아 땅에 파묻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문뜩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역시, 사람은 마음이 편하고 배가 불러야 머리가 돌아간다니까.


“너, 탈 가진 거 있어?”


“타, 탈이요? 없는데요.”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게 하나도 없어?

거짓말하면 죽는다!”


내가 소리를 지르자 짐승은 더욱 움츠러들었다.


“어, 없어요. 정말 없어요.”


진짜야? 가짜야?


알 수가 없네.


“정말이야?”


“네···. 저기···.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 건가요?

주인님도 안 보이시고요.”


그래.


얘도 알아야 같이 방법을 찾지.


그렇게 해서 짐승에게 내가 겪었던 모든 일을 말해주었다.


“제, 제 생각인데 괴물은 아닌 거 같아요.”


“괴물이 아니라고?”


“물론 정신을 조종하는 괴물은 있긴 해요.

하지만 노예기사를 특정해 몸 상태를 악화시키고 다수의 인간을 조종하는 괴물은 들어 본 적이 없어요.”


“괴물이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면?”


“괴물은 협업이라는 걸 몰라요.”


“그래서 네 판단은 괴물이 아니다?”


“네, 저는 괴물이 아니라고 확신해요.”


뭐지?


괴물에 대해 왜 이렇게 잘 알고 있는 거야?


“그럼 어떻게 하지?”


“제가 가서 어떻게 된 건지 알아보고 올게요.”


“네가?”


“네. 선님은 얼굴이 알려져 있으니 못 가시잖아요.

저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 그게 좋겠다. 너 그런데 탈 없다며?”


“탈이 없어도 다 방법이 있어요.”


“그래? 알았으니까 열심히 해 봐.”



///



한 시간쯤 지났을까?


저 멀리서 짐승이 보이기 시작한다.


“헉, 헉! 선님! 제가 알아왔어요!”


짐승도 내가 보였는지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쟤는 뛰어오면서 큰 소리로 말하기까지 하네.


힘들지 않나?


“제가, 제가 알아왔어요.”


이윽고 내 앞에 서서 허리를 굽히고 손으로 무릎을 잡은 채 씩씩대며 말했다.


“숨넘어가겠다. 일단 호흡 좀 고르고 말해봐.”


“감사합니다. 헉, 헉.”


“그래. 말해봐.”


“이 마을 족장이 노예기사래요.”


뭐?


“응? 족장이 노예기사를 부리고 있다고?”


“아뇨. 그게 아니라요.

이 마을의 족장은 노예기사래요.”


그게 말이 되나?


아니지, 안될 것도 없지···. 않아!


노예기사가 어떻게 족장이 돼!


“어휴. 널 믿은 내 잘못이지.

너 노예기사에 대해서 얼마만큼 알고 있어?”


“전부 안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


전부?


대충 주워서 들은 게 아니라 전부 알고 있다고?


나는 이상한 마음에 짐승을 잠깐 쳐다봤다.


그러자 짐승이 움찔하며 내 눈을 피한다.


그냥 허풍이 떨고 싶었던 걸까?


“그래. 알고 있으면 말할 것도 없네.

네가 한 말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겠지?”


“하, 하지만 거기서 만난 짐승이 그렇게 말했어요···.”


“널 놀리는 게 아니라?”


“그래서 저도 의심스러워 열 마리가 넘은 짐승에게 물어봤는데, 한결같이 여기 족장은 노예기사라고 말하던걸요?”


짐승이 억울한 투로 나에게 말했다.


아, 이거 답답해 죽겠네.


안 믿자니 저놈 태도가 너무 확실하고 믿자니 말이 안 되고.


어떡하란 말이야.


“일단 그건 그렇다 치고, 천은 어디 있는지 알아냈어?”


“듣기로는 족장이 데려갔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족장의 집에 있지 않을까요?”


역시 족장이 데려갔군.


뭐지?


그럼 노예기사인 족장이 단순히 천이 반가워서 데려갔다는 건가?


그래서 천이 고분고분하게···.


그럼 천이 갑작스레 몸이 아파진 건 설명할 수 없는데.


누군가가 농간을 부려 천을 아프게 만들었고, 족장이 이때다 싶어 천을 데려간 거야.


그리고 동료인 나도 잡아들이려고 했고.


맞아.


딱딱 맞아떨어지네.


족장은 노예기사가 아니라 괴물이었어.


아니면 짐승···?


짐승?


짐승이 탈을 쓰고 족장행세를 해 우리를 잡아들였다?


이만한 규모의 마을엔 거울은 없겠지.


짐승일 가능성도 있군.


그렇게 생각하며 내 앞에 있는 짐승을 의심스럽게 쳐다봤다.


날 초롱초롱 쳐다보는 짐승의 눈이 갑작스레 어두워진다.


이놈 말을 믿는 게 아닌데.


앞으로 걸려들어야겠어.


“천은 안전해?”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럼 입구에 경비는 어때? 삼엄해?”


“느슨하던데요?”


아, 이거 진짜야 가짜야


헷갈리게 만드네.


이놈을 죽여버려야 하나?


“마을 분위기는? 어수선하고?”


“평온했어요.”


그 순간.


짐승이 왔던 방향에서 한 무리의 인간들이 몰려온다.


나는 깜짝 놀라 칼을 뽑아 짐승을 쳐다봤고 짐승도 놀란 듯 세로로 찢어진 동공이 확 커져 눈을 뒤덮었다.


“너야?”


“네, 네? 아,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씨발. 네가 날 배신한 게 맞으면 괴물이 되어서라도 널 죽여버리고 말 거야.”


“절대 아니에요! 제발 믿어주세요!”


짐승이 무릎을 꿇고 손을 싹싹 빈다.


무리가 어느새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까지 다가온다.


새삼스럽지만 전부 사람이다.


칼을 쥔 손에 힘이 절로 들어간다.


5명이면···. 조금 힘들겠지만 괜찮아.


우선, 이 짐승 새끼를 미끼로 던져버려야겠어.


일행이면 살리고 아니면 죽이겠지.


살리면 배신자는 탈이 없을 테고, 죽이면 내가 안 죽였으니 그것도 탈이 없겠지.


“손톱 세우지 마. 그럴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목을 날려버리겠어.”


짐승이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짐승의 목덜미를 움켜잡아 바로 세우고 엉덩이를 발로 차 앞으로 내보냈다.


내가 너 한···.


“노예기사분 일행이시오?”


“네?”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물었고, 나는 영문을 몰라 멀뚱멀뚱 쳐다보며 답했다.


“노예기사분 일행이냐고 물었소.”


“그, 그런데요?”


“따라오시오. 족장님께서 당신을 초대하셨소.”


“저를요? 왜요?”


나는 멍청한 말투로 답했고, 짐승도 이 상황이 어이가 없는지 눈물범벅인 얼굴로 뒤로 돌아 날 쳐다본다.


“내가 족장님의 의중을 어떻게 알겠소?

초대를 받아들이겠소?

받아들이는 게 좋을 거요.”


위협을 줄 목적인지 칼집에 손을 얹는다.


“그, 그래요.”


“현명한 생각이오.”


내가 긍정적인 의사표시를 하자 그제야 칼집에 손을 뗀다.


“근데 이 짐승도요?”


대장을 비롯한 일행의 모든 사람의 표정이 구겨진다.


“내가 네놈의 더러운 발자취를 따라 여기까지 올 줄이야.

족장님의 말이 아니었다면 넌 이미 죽었다.

족장님에게 감사하도록.”


“가, 감사합니다.”


그걸 왜 감사하다고 하는 거야?


그냥 가만히 있지.


“아쉽지만 족장님은 당신만 초대하셨소.”


“그러면 마을 입구까지만 같이 가도 될까요?”


“들어오지만 않는다면 상관없소.”


대장이 선심 쓴다는 양 코를 한껏 치켜들며 대답했다.


거 되게 똥폼잡네.


짜증 나는데 그냥 죽여버리고 탈이나 쓰라고 할까?


괜히 처음에 저자세로 나가서 내가 저놈들한테 밀린다는 느낌이 들잖아.


“고마워요. 그럼 앞장서 주실래요?

저는 이 짐승과 나눌 얘기가 있어서요.”


“그렇게는 안 되겠소.”


“그럼요?”


짜증이 더 차오른다.


그때 짐승이 내 옆으로 다가와 입을 연다.


“선님께서 저에게 긴히 할 얘기가 있으신 거 같아요.

아마도 사람님들에게 들려주고 싶지 않은 거 같은데 양해를 해주시면 어떨까요?”


내 기분을 눈치 챈 걸까?


나 대신 사람들에게 설명한다.


“...알겠소. 하지만, 정체 모를 위험에 노출되어 있을지도 모르니 우리가 사방을 에워싸며 당신을 보호해드리겠소.”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짐승이 나 대신 답하며 배꼽 인사를 했다.


“그럼. 갑시다.”



///



“이해했어?”


“네. 완벽히 했어요.”


“그러면 넌 어떻게 해야 하지?”


“기다릴게요.”


“너 이해 못 했구나?”


“했어요.”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거기서 동물을 잡아먹든지 약초를 캐 먹든지 네 알아서 해”


“감사합니다.”


짐승이 내게 꾸벅 인사를 한다.


허리는 숙였는데 다리는 계속해서 걷고 있으니 상당히 이상한 모양새다.


“그리고 인간별로 탈 하나씩 구비해 둬.”


“네?”


“못 들은 척 하지 말고. 네가 탈이 없으니까 우리가 불편하잖아.”


“하, 하지만···.”


“도깨비탈은 구하기 어려우니, 근데 저번에 걔는 도깨비탈을 어떻게 구했을까?, 하여튼, 준비해 둬.

죽이지 말고 돈을 주고 사던지 갓 죽은 놈 탈을 뜯어오던지 모르겠는데 구해 놔.”


“알겠어요.”


마을 입구가 보인다.


“다 왔으니까 넌 가봐.

너, 내가 너한테 명령 내린 거야.

탈 하나씩 구해 놔.

도깨비는 못 구해도 내가 봐줄 테니까.”


“네.”


“그래.”


내가 대답하자 짐승은 몸을 돌려 우리가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나는 우두커니 서서 그런 모습을 멍하니 쳐다본다.


“뭐하시오?”


“아, 네.”


그나저나 이걸 안 물어봤네.


“천은 괜찮아요?”


“나는 그저 족장님의 심부름을 하는 사람에 불과하오.”


“알려주기 싫다고요?”


“족장님이 알려주실 거요.”


알려준다고?


보여준다는 게 아니라?


“자, 여기가 족장님이 머무시는 곳이오.

안에 들어가면 시비가 있을 테니 시키는 대로 하면 될 것이오.”


그렇게 말한 대장은 나를 남겨두고 일행과 같이 사라졌다.


근데.


집이 생각보다 안 크네?


겨울개천과 푸른바람과는 딴판이야.


의외로 소박한 사람인가?


잡생각 끝에 문을 열고 들어가자 대장의 말처럼 시비가 내게 인사를 건네온다.


“이쪽입니다.”


안내받은 곳으로 들어가니, 평범한 여자 사람이 의자에 앉아있다.


복장으로 보아 족장은 아닌 거 같은데.


근데 꼭 저런 사람이 족장이더라.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족장님의 초대를 받고 왔는데요.

혹시 족장님이신가요?”


“어머!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크으- 내 통찰력이란.


엥?


근데 족장은 노예기사라고 했는데?


내가 잘못 봤나 싶어 다시 한번 족장의 몸을 티가 나지 않게 훑어봤다.


등이 안 굽었는데?


족장의 딸인가?


“저기요. 정말 족장 맞아, 요?”


“네, 저는 족장입니다.”


“아, 그러시구나.

그, 제가 듣기로는 족장님이 노예기사라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소문이 거기까지 퍼졌나 보네요.

맞아요. 저는 노예기사입니다.”


이건 또 무슨 신종 미친놈인가?


사도 사칭도 아니고 노예기사 사칭까지 생긴 거야?


“그, 그러시군요.”


하지만 난 내색하지 않고 족장의 헛소리를 받았다.


“요즘 아쥔타를 보호하느라 심신이 말이 아니네요.

상당히 속을 썩이는 아이라···.”


아, 이거 피곤해지겠는데?


그래서 천은 어디 있냐고!


“아실지 모르지만, 노예기사는 상대방 머리에 돌을 던져···.”


“노예기사가 되면 이전 기억은 모두···.”


“아쥔타가 죽게 되면 앙갚음···.”


“짐승이 표적이 되면···.”


“아-함.”


너무 지루해 한 귀로도 듣지 않고 흘렸지만 나도 모르게 하품이 나왔다.


“제가 너무 떠들었나 보네요. 미안합니다.”


나는 깜짝 놀라 족장을 쳐다봤고 족장은 대수롭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죄송합니다. 어제 잠을 못 자서요.”


족장이 노여워 할까 봐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히고 사과를 했다.


“괜찮아요. 이해합니다.”


왜 참는 거지?


설마 이 여자 내가 아쥔타라 생각하는 거 아니야?


진짜?


“저기, 그런데 밥은 안 주시나요? 종일 밖에 있었더니 배가 고파서요.”


“그, 그럴까요?”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아무 말이나 던졌고 족장은 그 말을 받아주었다.


내 생각이 맞았어.


족장은 내가 아쥔타라고 착각하고 있어.


하긴.


노예기사랑 같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아쥔타라고 생각하는 건 당연하지.


나라도 그렇게 생각하겠다.


근데 아까 그 대장은 나한테 왜 그렇게 행동했지?


지침이 내려오지 않았나?


생각에 빠져있으니 어느새 상이 나왔고 난 족장을 자극하려고 일부러 쩝쩝대며 게걸스럽게 먹었다.


잠깐잠깐 살펴보니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아 내가 제대로 신경을 긁고 있는듯하다.


“꺼억- 배부르다.

고마워요. 족장님.”


“손님을 극진히 접대하는 건 제 기쁨이죠.”


“그래서요? 저를 왜 부르셨죠?

그리고 내 노예기사인 천은 어디 갔어요?”


“역시.”


“네?”


“아니에요. 이리로 모셔올 테니 잠깐 기다려주실 수 있을까요?”


“서둘러서 데려오셨으면 해요.

제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거든요.”


너무 나갔나?


“얼마 안 걸릴 겁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천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어? 안녕?”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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