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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 인간, 인간, 사람,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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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작품등록일 :
2022.08.06 20:55
최근연재일 :
2024.06.1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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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0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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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짐승 2

DUMMY

성문을 지나려는 찰나.


아니나 다를까 문지기가 우리를 막아선다.


“짐승? 확실한가?”


“그렇소.”


문지기가 내키지 않는 듯 날 천천히 훑어본다.


“왜 안으로 들이려 하는 거지?”


“보고 있다시피 난 몸이 불편하고 일행은 여자라 짐을 들기 어렵소.

종으로 삼으면 좋다고 따라다니고 돈까지 안 드니 이보다 더 좋은 짐꾼이 어디 있소?”


“그래도 짐승이잖아.”


“짐승에게 목걸이까지 채운 상태요.

뭐가 문제란 말이오?”


문지기는 또다시 날 샅샅이 훑어본다.


“···통과!”


문지기는 날 성문 안으로 들이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천의 완강한 태도에 어쩔 수 없다는 듯 내켜 하지 않으며 길을 비켜주었다.


이런, 이런.


내가 성문을 통과할 줄이야.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짐승, 잘 들어라.

너는 주막에 못 들어간다.

그러니 짐을 우리에게 주고 적당한 곳을 찾아 하룻밤을 지내라.”


“네, 네? 적당한 곳 어딜 말씀하시는지···?”


“그건 이제부터 네가 알아봐야지.

다음날 8시에 이곳에서 보자.

목걸이가 있으니 널 죽이지는 않겠다만 몇 군데 부러질 수 있으니 조심해라.”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누가 때려도 반격하면 안 된다?

너 그럼 진짜 죽을 수 있어.”


이 말을 끝으로 천과 선은 자리를 떠났다.


나는 자리에 가만히 서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점점 내게로 적의 어린 시선이 쏘아 들기 시작한다.


이크!


빨리 자리를 피해야겠다.



///



이런 규모의 마을이라면 도시라고 해야 하나?


하여튼 이런 큰 곳에는 반드시 동지들이 있기 마련이지.


나는 지하도를 찾기 위해 마을을 샅샅이 뒤집었고 결국 찾을 수 있었다.


“아, 짐승이 지하도로 들어가는데?”


“쳇! 어쩔 수 없다! 돌아가자.”


“안 들어가게?”


“저기 더럽단 말이야.”


“그래! 돌아가자! 오늘도 재밌었다. 그치?”


“응, 응! 내일도 짐승을 봤으면 좋겠다. 헤헤.”


저 범 꼬맹이와 도깨비 꼬맹이는 내가 지하도를 찾을 때부터 따라다니면서 돌멩이를 던져댔다.


호두만 한 돌멩이라 제법 아팠지만, 저 꼬맹이가 달라붙은 덕분인지 딱히 나에게 시비를 거는 인간들이 없어 비교적 편안히 지하도를 찾을 수 있었다.


역시 표식이 있군.


어둡고 축축한 지하도로 들어가···기 전에.


또다시 내게서 냄새가 난다고 할지 모르니 옷을 전부 벗고 보따리에 챙겼다.


잠만 자고 나갈 예정이기에 출입구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쉬고 있으니 내 앞으로 짐승이 나타난다.


“처음 보는 동지군. 여기는 처음인가?”


“그래.”


“그래? 천지 분간을 못 하는 놈이로군.”


“내가 너에게 무례하게 구는 이유는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으면 해서야.

그러니 네 갈 길 갔으면 좋겠어.”


“여긴 어떻게 찾았지?”


“이런 큰 마을에 짐승이 있는 곳은 하나뿐이지.

가장 더러운 곳 말이야.”


“솜씨가 제법이군.”


이거 진짜 바보 아니야?


세 살 먹은 짐승도 알겠다!


“아, 거참! 네 갈 길 가라니까!”


“우리 동료가 될 생각 없나?”


너랑 동료가 될 바에 다시 돌아가고 말지.


“없으니까 제발 저리 좀 가.

나 내일 일찍 일어나서 씻고 주인님한테···.”


나도 모르게 천이 내 주인이라는 걸 인정해버렸다.


왜지?


왜 인정한 거지?


산어르신이 내게 심어둔 생각의 여파인가?


나는!


나는! 종이 된 게 기뻐서 같이 있는 게 아니라!


선비가 그려준 지도를 훔치기 위해서 같이 있는 거야!


나는 내가 선택해서 사람과 같이 있는 거야!


사람들이 나랑 같이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사람들과 같이 있는 거야!


“주인? 그러고 보니 표식이 있군.

쳇. 너도 사람의 충견 노릇을 하는 게 기쁜가 보지?”


나는 대답하지 않은 채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아버렸다.


그 후로 짐승은 내게 몇 번이나 말을 걸었지만 이내 흥미를 잃어버렸는지 자리를 떠나버린다.



///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잠이 깨 주의를 기울여보니 소리는 내 목 근처에서 나고 있었다.


실눈을 뜨고 이놈이 뭘 하는지 보니.


내 표식을 뜯어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왜 이렇게 안 뜯어지는 거야?”


내 표식을 뜯어내려는 짐승이 작게 속삭인다.


하는 행동을 보니 이런 일이 그리 능숙지 않은 놈인 모양이다.


“그냥 목을 잘라내 버릴까?

아니야. 그럼 피가 묻잖아.

내 주인님이 될 분이 물으면 어떡해?”


뭐야?


내 표식을 뜯어서 지가 찰 생각인 거야?


속셈을 알아챈 나는 재빨리 내 표식을 뜯어가려는 짐승의 목을 움켜쥐었다.


“커헉, 켁,켁. 죄, 죄송합니다.

제발 한 번만 살려주세요.”


짐승이 손을 싹싹 빌며 내게 용서를 구한다.


“지금 뭐 하는 거지?”


“죄, 죄송합니다. 제발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마지막으로 묻는 거야.

뭘 하려고 했지?”


“표, 표식을 뜯어가려고 했어요.”


“왜?”


“조, 종이 되고 싶어서요.”


안돼!


내 표식은 그 누구에게도···.


“꺼져라.”


나는 목을 움켜쥐었던 손을 풀고 짐승을 내쫓았다.


그러나 짐승은 우물쭈물하면서 도망가지 않는다.


“가라고 했잖아.”


“저, 저기 정말 인간의 종이세요?”


“···그래.”


“누, 누구요? 도깨비? 곰?”


“사람.”


“그, 그럼 부탁이 있는데 우리 집으로 오셔서 사람의 종으로 생활한 이야기 좀 들려주시면 안 될까요?”


“싫다. 내가 거기 가면 날 급습할지 어떻게 알고?”


“그러면요! 그러면 제가 제 동생을 여기로 데리고 올게요.

네? 제발 들려주시면 안 될까요?”


내 표식을 훔쳐가려고 하더니 이젠 뜬금없이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싫어.”


“제발요! 네? 제발 부탁드릴게요.

탈이 필요하세요? 그럼 제가 가진 거 전부 드릴게요!”


“너, 탈 어디서 구했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짐승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겁을 먹은 것인지 위축된 모습을 보인다.


“사, 샀어요. 여기에 시장이 있거든요···.”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인간을 죽여서 얻은 거지?”


“저, 정말이에요! 인간하고 같이 있게 하고 싶어서 제 전 재산을 털어서 샀어요!”


“근데 왜 안 썼어?”


“···제 동생이 지금 몸이 아프거든요.

다 나으면 선물해 주려고요.”


“네 부모는 어디 있지?”


“없어요. 헤헤 이상하죠? 저는 도깨비도 아닌데 부모가 없어요.”


짐승이 풀이 죽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도깨비는 부모 없이 태어나지만, 짐승은 아니야.

어딘가에 계시겠지.”


“그렇겠죠? 근데 도깨비처럼 부모가 없어도 좋으니 도깨비가 됐으면 좋겠어요.”


짐승의 말을 끝으로 한동안 말이 끊겼다.


나는 그 분위기가 싫어 입을 연다.


“너 수작 부리는 거 아니지?”


“네?”


“내가 너한테 연민을 느끼게 만들어서 꾀어내려는 속셈 아니냐고.”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짐승이 손사래를 치며 극구 부인한다.


“네 집으로 안내해.”



///



집 앞에 도착하니.


집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지만.


“무슨 병인데?”


나는 안으로 들어서기 전에 병명을 물었다.


“의원이 결핵이래요.”


“고칠 수 있는 병인데 왜 약을 안 먹이는 거야?

이만한 도시엔 결핵약 정도 있을걸?”


“짐승은 약방을 이용 못 하거든요···.”


여기 약방을 털면 손쉽게 구할 수 있을 텐데.


“···도둑질하면 되잖아.”


“거기는 못 털어요.”


“그럼 탈을 쓰고 가면 되잖아.”


“거울이 있고··· 무엇보다 중요한 게 돈이 없어요.”


하아···.


“알았다. 들어가자.”


헝겊으로 입을 가리고 방 안으로 들어가니 짐승의 여동생이 찬 바닥에 누워 연신 기침을 하고 있다.


바닥에 뭐라도 좀 깔지.


“오빠! 어? 옆에 계신 분은 누구셔?”


“으응. 네가 인간의 종이 되면 어떨지 궁금해했잖아?

그래서 내가 모셔왔어.

무려! 사람의 종으로 생활하시는 분이야.

목에 있는 표식 보이지?”


“와! 정말이세요? 콜록콜록.”


동생이 벌떡 나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보더니 기침을 했다.


“그래. 네 오빠의 부탁을 받고 내가 어떻게 생활하는지 알려주려고 왔어.

몸이 안 좋아 보이는데 누워있는 게 어떠니?”


“네! 그럼 착하게 누워있을 테니 얘기해주세요!”


동생이 자리에 누우며 말했다.


저거 찬 바닥에 누워있으면 더 심해질 텐데.


나는 벗어둔 내 옷가지가 생각나 보따리를 만지작거렸다.


“그건 뭐예요?”


“이거 사람님이 준 옷인데, 여기서 입으면 때 타니까 보관해둔 거야.”


“와! 사람님이 오빠를 엄청 아끼시는 모양이네요!”


씨발···.


“한번 만져볼래?”


“괘, 괜찮으세요? 지금 제 손 더러운데···.”


“괜찮아.”


나는 보따리를 풀어 옷을 건네주었고 동생을 귀한 것을 만지는 양 연신 손바닥으로 옷을 쓸어댔다.


“이게 사람님이 주신 옷···.

엄청 고급스러워 보여.

촉감도 부드럽고···.”


나는 때 탈까 봐 한 번만 만지라고 했지만, 너무 좋아하는 모습에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럼 내가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말해줄게.”



///



“···이렇게 생활하고 있어.”


“와! 정말 부러워요.”


“그래? 아! 나 이제 가봐야겠다.

8시까지 오라고 했는데.”


“정말요? 그럼 어서 가보세요!

사람님이 말했는데 꼭 지키셔야죠.”


나는 동생에게서 옷을 건네받고 집을 나섰다.


“다시 오실 수 있으세요?”


동생의 말이 내 발목을 잡는다.


“나도 잘 모르겠어. 이 마을에 또 오게 되면 반드시 들릴게.”


동생의 말에 대답하고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을 옮겼다.


“정말 고맙습니다!”


집으로 나오니 오빠가 내가 연신 고개를 조아린다.


“여기···.”


무언가를 건네주는데 살펴보니 도깨비의 탈이다.


“필요 없어.”


“네? 그, 그러면 제가 줄 게 아무것도 없는데요.”


“너, 그거 다른 짐승한테 팔아.

가지고 있다가 괜히 욕본다.”


“네? 그, 그건···.”


“그거 나한테 준다고 했지?

그럼 내 물건이니까 내 마음대로 해도 되잖아.

그러니까 팔아.

지금 당장.

다음에 와서 확인해본다?”


“아, 알겠어요.”


“그래. 그럼 난 간다.”


오빠를 뒤로하고 난 지하도를 빠져나와 개울물로 황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몸을 박박 씻고 내 옷에도 때가 묻은 거 같아 열심히 빨았다.


어느새 8시가 가까워졌고 나는 겨우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천과 선이 내게로 다가온다.


“뭐야? 너 물놀이라도 했어? 왜 이렇게 옷이 젖은 거야?”


선이 내 몰골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조금 더러워진 거 같아서요.”


“호호. 그래 잘했어. 이제 냄새는 안 나는 거 같네.”


“네가 젖어있어서 짐을 못 들잖아.

멍청하긴.”


천이 마음에 안 든다는 투로 내게 말했다.


이런! 그걸 생각 못 했어.


“이참에 지게라도 하나 사는 게 어때?”


“그래야겠군.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하나 사 오시겠소?

오면서 본거 같은데.”


“그래. 알았어.”


천의 말에 대답한 선은 어디론가 사라저버렸다.


“감사합니다.”


천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만큼 네가 들 짐이 많다는 뜻이다.

선이 지게를 사 오면 식료품점과 잡화점 그리고 약방에 들릴 테니 그리 알고 있어라.”


약방?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얘기를 나눈 결핵에 걸린 짐승이 생각났다.


사소한 얘기 하나하나 큰 반응을 보여준 모습이 눈앞에 생생하다.


그렇게 인간과의 생황을 동경하고 있는 걸까?


하지만 결핵에 걸린 짐승이니 남은 건 죽음밖에 없을 테지.


왠지 모를 변덕에 인심 쓰는척하며 짐승에게 내 거짓된 생활을 얘기해주었지만, 짐승은 그 모든 것이 사실인 양 크게 기뻐하며, 어떨 땐 손뼉까지 치며 내 거짓을 경청해 주었다.


그 순간 난 너희 짐승과는 다른 짐승이라는 우월감에 한껏 가슴을 부풀리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하지만 그 우월감이 가시고 나니 남은 건 죄책감과 부끄러움이다.


내 우월감을 뽐내기 위해 난 죽어가는 짐승에게 서슴없이 거짓을 내뱉었고 죽어가는 짐승은 내 거짓으로 말미암아 더더욱 인간과의 생활을 동경하게 될테지.


내 거짓이 그 짐승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을까?


내 거짓으로 인간과의 생활을 더더욱 동경하게 되어 병을 이기려는 의지를 갖추게 되었을까?


그렇다면 내 거짓은 진실이 아닐까?


정말 진실이 아닐까?


내가 악한 행동을 하더라도 상대에게 선한 영향을 주었다면 그것은 선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결핵 걸린 짐승에게 거짓을 말한 게 아니라 진실을 말한 것이다.


“저기··· 약방에 결핵약도 팔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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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짐승 3 22.10.16 3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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