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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행 님의 서재입니다.

저번 생이 기억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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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행
작품등록일 :
2021.05.12 21:11
최근연재일 :
2022.03.20 00:50
연재수 :
149 회
조회수 :
1,083,184
추천수 :
16,739
글자수 :
714,085

작성
21.07.09 20:40
조회
8,134
추천
130
글자
13쪽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뻐할텐데

DUMMY

사람이 살면서 많은 사건 사고를 겪지만, 사람이 일으키는 가장 무서운 재앙 중 하나는 전쟁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일으키지 않는, 자연이 일으키는 재앙은 무엇이 있을까?

바다에 산다면 해일을, 저지대에 산다면 홍수를, 산에 살고 있다면 바로 산사태를 걱정해야 할 것이다.

물론 땅 위에 사는 이상 지진은 더 이상 있을 수 없는 재앙이라고 하겠지만, 지금 당장 벨로시아 영지의 북쪽에 있는 이름모를 산에 오르던 병사들은 굉음과 함께 저 위에서 자욱한 먼지와 함께 쏟아져 내리는 바위덩어리들과 부러진 나무들... 그리고 그것들과 함께 쓸려서 내려오는 흙더미들을 보며 비명을 지르는 사람과 조용히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사람,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멍하니 있는 사람 등 여러 사람이 있었지만 공통점은 모두 죽음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었다.


-콰콰콰콰!

-꽈지직! 뿌드득!

-쿵! 쿵! 쿵!


여러 굉음과 함께 땅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쓸고 중력이 작용하는 방향으로 이동하는 돌과 흙무더기들...

이 장면을 산 아래에서 지켜보던 중부의 영주들은 입을 벌리고 다물지를 못했다.

산이라고는 작은 동산 따위에 넓은 광야에 항상 풍족하게 흐르는 강만을 보던 그들은 이런 거친 산의 분노를 본 적이 없으니 그 충격은 가히 하늘이 갈라진 것과 같을 정도로 컸다.


“이것이... 뭡니까?”

“아... 신이 노하신 건가?”

“신이시여...”


심지어 슬로안 후작까지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북을 쳐라! 철수! 철수 시켜!”


영주 하나가 소리쳤다.

메이안 남작은 과시용으로 가져온 성인 남자의 키의 3배가 넘는 거대한 북을 가져와 영주들과 다른 병사들에게 자랑을 했었다. 하지만 후퇴하기 위해 북을 치라고 명령을 하자 망루 같은 곳에 올라 간 근육질의 병사가 있는 힘껏 북을 두드렸다.


- 둥! 둥! 둥! 둥!


이 어마어마한 북이 내는 소리는 또 다시 산을 울렸고, 아니 하늘과 땅이 모두 울렸고, 산 정상에 있던 헤리오스는 이를 갈며 욕을 했다.


“하... 이런 개쉐이들... 혼자 뒈지지... 모두 비상 사태에 대비해라!”


헤리오스의 외침에 뒤에 있는 기사들과 오크들, 병사들이 ‘비상사태’라는 말을 외치며 훈련 시에 지정한 각자의 위치로 미친 듯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하... 이런 나중에 콱...!”


헤리오스도 말을 다 끝내지 못하고 미친 듯이 어디론가 달려가 튀어나온 절벽의 아래쪽 틈으로 파고들어가 몸을 웅크렸고, 그 뒤를 키사와 제이크가 따라들어와 몸을 웅크렸다.


- 우르르릉!

- 콰르르르...

- 펑! 퍼펑!


그리고 중부귀족들은 다시 산에서 일어나는 광경에 온 몸이 굳어 뻗뻗하게 선 채 움직이지 못했다.

심지어 숨도 못쉬고 눈 앞에 광경에 공포로 오줌까지 지리는 사람까지 속출했다.

북을 치던 근육질의 병사도 치던 북을 멈추고 멍하니 산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보았다.


산의 저 높은 하얗게 구름과 눈이 덮여있던 곳에서부터 하얀 연기같은 것들이 날리는 것 같더니 천둥소리 같은 것이 계속 들리며 산사태가 났던 지역으로 하얀것들이 쏟아져 내려온다.


“아...!”


아까의 돌 무더기가 쏜아지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스케일.

그리고 그 하얀 것들은 돌과, 나무와, 사람을 마구 뒤섞으며 산 아래까지 내려와 하얀 눈을 굉음과 함께 사방으로 흩뿌리며 멈춘다.


“미...미친...! 북을 도대체 왜 친거요?”

“다 죽이려고 작정한거요?”

“쓸데없이 북을... 하아...”


영주들의 항의와 욕설이 빗발쳤고, 군영에서 대기하며 지켜보던 기사들과 병사들은 아직까지 덜덜 떨리는 손을 추스르지 못하고 태반이 다리가 풀려 주저앉아버렸다.


“가서... 시체라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시죠.”


슬로안 후작의 말에 영주들은 더 이상 메이안 남작에게 뭐라 하지 않고, 다시 남아 있는 기사들을 불렀다.


* * *


“모두 인원 파악해! 결원이나 부상자 파악해서 보고하도록!”


산 위쪽의 헤리오스 쪽도 부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시팔... 저런 음파공격을 할 줄이야.”


오크들과 기사들 파견나온 영지군들 역시 눈을 치우고 나오거나 소리를 지르는 곳을 찾아 땅을 파고 사람을 구출하는 등 눈사태 이후 피해상황 파악과 실종자 수색 및 구출이 여념이 없었다.


“오늘... 키사와 제이크 둘만 나를 따라 간다. 어디 한 번 제대로 잘 수 있나 두고보자.”


메이안 남작의 북소리는 본격적인 게릴라 전의 서막을 알렸으며, 후에 대륙의 역사책에는 이렇게 기록되어졌다.


- 중부귀족연합군들은 오크를 잡기위해 벨로시아 영지의 가장 높은 산인 아킬레이아스산 앞까지 도달하였으나, 거대한 북을 쳐 고요한 산의 신을 노하게 만들었고, 이후 교만한 영주들은 산의 신이 보낸 유령에게 많은 수의 기사들을 잃었다.


* * *


“처음에 난 돌이 굴러 내려올 때 오크놈들이 숨어있다가 굴린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했지만...”

“북소리에 눈사태가 날 정도의 산이라면 확실히...”

“그럼 저 눈사태에 오크들도 다 죽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다시 수색대를... 보낼 수 있을까요?”


거대한 자연재해는 귀족의 자부심마저 꺾어놓았다.


“어차피 오크와 전투를 벌이기는 했잖습니까? 그러니 이대로 병력을 돌려 벨로시아 영주성을 포위하고 압박합시다. 전투의 승패가 뭐가 중요합니까?”

“생각해보니 그렇습니다. 오크랑은 이미 싸웠고, 눈사태라는 재해가 일어나 병력이 출전이 어려운 상황이니 여기서 물러날 명분은 충분합니다.”

“찬성입니다.”

“저 역시 찬성입니다.”


영주들의 의견이 일치하자 각자 호위기사를 불렀다.


“돌슨!”

“헤밀턴!”


영주들이 각자의 호위기사를 불렀지만 누구도 대답하거나 천막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없었다.


“졸고 있는건가? 도대체...”

“잠시만... 한 둘이라면 모를까, 지금 우리 일곱 영지의 기사들 모두 오지 않는 것은 이상합니다.”


그 말에 천막 밖으로 나가 소리를 지르려던 영주 둘 셋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그...그럼 제가 나가 살펴보지요.”


그나마 검술실력이 꽤 있다고 알려진 유리켈론 자작이 검을 뽑아 들고 천막을 걷어 젖혔다.


“헉!”


그리고 그의 숨이 멈추었다.


“왜? 무슨 일이길래...? 헉!”

“아니...!”


그리고 몰려온 귀족들은 눈 앞에 벌어져 있는 광경에 온 몸을 벌벌 떨기 시작했다.

천막 앞에는 7명의 호위기사들이 누워서 자신의 잘린 머리를 가슴에 얹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언제 죽었는지 경비를 서던 병사들도 모두 쓰러져 있었다.


“병사! 누구 없나? 병사!”


유리켈론 자작이 소리쳤고, 병사들과 기사들은 영주의 목소리에 급히 뛰어오다가 나란히 목이 잘린 채 누워있는 일곱구의 시체와 잠든 것처럼 편안하게 누워있는 병사들의 시체를 보며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아... 이건 오크가 아니야...”

“악마의 저주다.”


병사들의 동요가 크게 번지자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기사들이 검을 뽑아들고 소리쳤다.


“헛소리를 하는 자는 직접 목을 베겠다!”


하지만 이렇게 소리치는 기사들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당장 시체를 치우고 경비를 배로 늘려!”


영주들 역시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기사들에게 소리를 질렀지만 모두들 알 수 있었다. 영주들 역시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다음 날 벨로시아 영주성으로 향하기 위해 새벽부터 군영을 정리하고 병사들이 행군을 위해 준비를 하기 시작하면서 아침 식사를 위해 부지런히 불위에 솥을 걸고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데 비상종이 울렸다.

하얀 귀신의 탈을 쓴 오크전사들이 몰려왔다. 그 수는 어림잡아 약 100.

그들은 저 만치에서 일제히 등에 있는 창을 던졌다. 그리고 그 창은 몇몇 병사들의 가슴에 사정없이 틀어 박혔고, 식사는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행군을 시작한 그 날 저녁 여러 개의 천막에서 알 수 없는 불이 치솟아 병사들은 불을 끄느라 잠을 설쳤다.

또 아침이 되자 오크들이 나팔 소리와 함께 함성을 지르며 뛰어 오다가 어느 정도 거리에서 멈추고 크게 소리만 지르며 시위를 하다가 사라졌다. 이 때 기사들과 병사들은 무기를 챙기고 갑옷을 입고 전투를 준비하느라 식사가 엉망이 되어버렸다.

다시 밤이 되자 기사들과 병사들의 시체가 한무더기씩 생겨났다. 특히 기사들은 모두 목이 잘려 죽어있어 기사들의 공포는 눈에 띠가 커져갔다.

심지어 저녁 식사를 기다리던 영주들은 식사가 오지 않아 병사들 찾았더니 그 병사의 머리가 음식을 담은 쟁반 위에 올려져 있기도 했다.


이미 사기는 떨어질대로 떨어졌고, 추위와 지속적인 야습으로 인해 기사들과 병사들의 체력은 급속도로 떨어져 결국 낙오자가 생기기 시작했지만 누구도 낙오된 사람을 구조하거나 함께 데려가기 위해 힘쓰는 이는 없었다.

영주들이 타는 마차를 끌던 병사들도 쓰러져 길에서 얼어 죽기 시작하니 이미 중부귀족들은 벨로시아 영지를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을 더 이상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벨로시아 영주성까지 도착한 군세는 겨우 기사 124명에 병사 272명. 시종과 하인들은 이미 죽은 지 오래였고, 영주들의 차림 또한 추레해져 있었다.

그런 그들을 맞은 벨로시아의 공작은 이럴 줄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놀라지도, 분노하지도, 가여워하지도, 비웃지도 않았다.

그저 표정없이 그들을 맞이하고 저녁식사를 대접하면서 향후 일정을 물어볼 뿐이었다.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중부의 영주들께서 만나신 오크들은 대락 100여마리 정도로 알고 있는데... 생각보다 전투가 어려웠나보군.”


언제 돌아갈지를 물어보는 공작의 질문에 누구도 대답을 하지 않자 공작이 식당의자에 몸을 뒤로 기대며 말했다.


“사실 오크를 상대하는 것이 뭐가 힘드냐고 왕궁에서도, 중부에서도, 서부에서도 그리 말을 하지. 그런데 전쟁이라는 것이 참 웃기는 것이 피흘리는 쪽은 정말 죽는 것보다 힘들고 괴로운데 옆에서 구경하는 쪽은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어.”


잠시 말을 멈춘 공작은 시녀들이 가져온 차를 들어 향을 맡고는 후루룩 마셨다.


“원래 묻지 않으려 했지만, 이리 분위기가 무거우니 물어보지. 싸워보니 어떻던가? 해볼만 하던가?”


이번 공작의 질문에도 대답을 하는 중부귀족은 없었다. 차라리 인간대 인간의 싸움이었다면 중부귀족들이 이렇게 침울하지 않았을 것이다. 상대는 어차피 자신과 같은 인간이니까.

하지만 오크는 아니었다. 자신과 다른 종족. 다른 싸움. 다른 힘. 다른 생각.

종잡을 수 없으니 한번 품은 공포는 더욱 커진다.


“돌아가기 두렵소? 우리 기사단이 호위해줄테니 걱정말고... 변경까지만 이동을 도와주도록 하지.”


다시 공작이 돌아갈 것을 언급하자 슬로안 후작이 입을 열었다.


“오크들의 존재는 생각 이상이었습니다. 우리는 제대로 된 전투를 단 한번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소? 아쉽군.”

“아쉽다는 것은...?”

“제대로 된 전투를 벌였다면 이런 반응이 아닐테니...”

“...무슨 뜻입니까?”


슬로안 후작은 자신들의 계획을 알고 있는 것인지 불안해하며 공작을 쳐다보았고, 공작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여유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제대로 붙었다면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뻐할텐데... 이리 생각들이 많아서야... 쯧.”


슬로안 후작은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만약 공작이 우리들의 속마음을 알고 있었다면... 그렇다면... 지금 한 말은 지금 목숨을 붙여주고 있으니 딴생각을 말라는 것이다.’


슬로안 후작의 표정을 본 다른 영주들도 결국 슬로안 후작의 뜻을 알아차렸다.


“내일 날이 밝은 대로 떠나려고 합니다. 다만...”

“말해도 좋소. 하지만 우리 영지는 아시는대로 척박한 곳이지. 뭐든 그냥은 못 도와주니 그 점 양해해주었으면 좋겠군.”

“추후 보답하겠습니다.”


결국 다음 날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중부의 영주들과 병력은 벨로시아 영지에서 제공하는 마차와 수레를 타고 변경까지 벨로시아 기사 100명과 병사 500명의 호위를 받으며 이동하여 자신의 영지로 갈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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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쥐불놀이 +4 21.07.07 8,336 130 15쪽
57 이제 낚시를 해야지 +4 21.07.06 8,397 128 12쪽
56 적에게 공포를 +7 21.07.05 8,466 132 12쪽
55 전쟁은 병력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지 +4 21.07.04 8,752 134 13쪽
54 벨로시아에는 뭐가 있는거지 +3 21.07.03 8,716 141 11쪽
53 동맹을 맺자 +3 21.07.03 8,789 131 12쪽
52 모의 전투 훈련이라고 들어보았나 +4 21.07.01 8,993 142 9쪽
51 도착 +3 21.06.30 8,931 138 10쪽
50 우리 갈 길이 멀지 않나요 +6 21.06.29 8,979 135 12쪽
49 너무 날로 먹으려고 하지마 +6 21.06.28 9,091 149 10쪽
48 당신의 능력을 사용하고 싶습니다 +4 21.06.27 9,459 139 13쪽
47 용돈을 버는 겁니다 +5 21.06.26 9,579 150 10쪽
46 취향차이 +7 21.06.26 9,588 146 11쪽
45 인정할 수 없다면 지금 나서라 +5 21.06.24 9,553 14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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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놀이는 이제 끝이군 +5 21.06.22 9,773 145 9쪽
42 그곳에 다녀오실 용기가 있으십니까 +9 21.06.21 10,153 145 12쪽
41 다음 생에 만나면요 +7 21.06.20 10,539 147 12쪽
40 말은 그냥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야 +8 21.06.19 10,554 148 9쪽
39 왕께서 하신 말씀이니까요 +8 21.06.19 10,800 144 9쪽
38 더 잘 살게 만들어주고 싶어서요 +6 21.06.18 11,018 158 11쪽
37 왕이시니까요 +6 21.06.16 11,220 169 10쪽
36 좀 멋지셨습니다 +8 21.06.15 11,402 158 10쪽
35 내가 실수를 했어 +6 21.06.14 11,848 161 9쪽
34 안전장치 +7 21.06.13 12,045 176 9쪽
33 비인부전 +5 21.06.12 12,108 191 9쪽
32 네 다리를 올릴까 +8 21.06.11 11,941 206 9쪽
31 개혁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10 21.06.10 12,249 182 13쪽
30 즐거우셨다니 기쁩니다 +4 21.06.09 12,647 18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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