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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행 님의 서재입니다.

저번 생이 기억나버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군자행
작품등록일 :
2021.05.12 21:11
최근연재일 :
2022.03.20 00:50
연재수 :
1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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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3,067
추천수 :
16,739
글자수 :
714,085

작성
21.06.18 21:15
조회
11,017
추천
158
글자
11쪽

더 잘 살게 만들어주고 싶어서요

DUMMY

헤리오스는 지금의 삶 외에 두 개의 삶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21세기 지구의 삶이 기억났을 때에는 문화적인 충격으로 멍해져 있었지만, 두 번째 무림의 삶의 기억이 떠올랐을 때에는 연약한 자신의 몸에 그저 암담한 기분만 들었다.

그래도 두 번째 삶에서의 자신은 매우 강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평생을 무공을 수련하고 독을 공부하고...

뭐 그게 다 였다.


“하... 진짜 그게 다 였다니... 너무 쉽게 요약이 되는 삶이었네.”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돌리니 멀뚱멀뚱 자신을 바라보는 제이크가 보였다.


“요즘은 그 입을 상당히 관리 잘 하고 있네?”

“예...”


처음 헤리오스에게 갈굼을 당할 때에도 입이 문제였고, 그 뒤로도 지적을 당한 것도 모두 입조심을 하지 않아서 였다. 그래서 제이크는 아예 입을 열지 않았다.


“너도 참...”


헤리오스가 침대에 눕지 않아서 인지 제이크 역시 쇼파에 앉은 채 대기하고 있는 자세로 앉아있다.


“먼저 자라. 난 침대에 앉아서 명상을 할테니...”

“그... 아닙니다.”

“왜? 배우고 싶어서?”

“...네.”

“조금만 더 지켜보고 마음에 들면 너에게 맞는 검술 정도는 하나 알려주지.”

“...!”

“싫어?”

“아닙니다! 정말 노력하겠습니다!”


드디어 헤리오스에게 긍정적인 답변이 나왔다. 제이크의 입이 귀에 걸려 헤벌쭉 해졌지만 여전히 말을 없다.


“그래. 그러니까 먼저 자. 내일 마차 몰고 가려면 너 푹 자둬야 해.”

“그래도...”

“명령이니까 자.”

“넵.”


그제야 제이크는 잘 준비를 하기 시작했고, 헤리오스는 침대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이라고 한 것을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다른 쪽 침대에서 잠을 자던 제이크가 눈을 떴을 때 그가 본 것은 잠들기 전 침대에 다리를 꼬고 앉은 자세 그대로 앉아 눈을 감고 있는 헤리오스의 모습이었다.

다가가 깨우려는 마음이 잠시 들었지만 왜인지 모르게 지금은 지켜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는 그것을 생각에 옮겼다. 조용히 방 밖으로 나가 문 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공자는 아직인가요?”


삼공주의 목소리와 함께 옆 방에서 차분하게 걸어나오는 그녀를 보고 제이크는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고 말했다.


“주무시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잠시 혼자 계시게 놓아두어야 할 것 같아 이리 서 있었습니다.”


덩치에 맞지 않게 조용히 말하는 모습에 삼공주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뒤이어 나오던 키사가 제이크에게 와서 역시 조용하게 물었다.


“혹시 앉은 채로 미동도 않고 계신 것 아니야?”

“맞아. 다리도 꼬아져서 불편할 것 같은데...”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 해. 예전에 공자님께서 말씀하셨어.”

“그래?”


제이크는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속으로 기뻐하며 문 앞에 움츠렸던 가슴까지 펴고 섰다.

다만 이해를 하지 못하는 삼공주만 요즘들어 생긴 습관인 고개를 옆으로 갸웃거리는 것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헤리오스가 방문을 열고 나온 것은 그날 저녁이 다 되어서였다. 방 밖으로 나온 헤리오스를 보고 기쁜 듯이 고개를 숙인 키사와 그 때까지 문 앞에서 지키고 서 있었던 제이크가 고개를 숙였고, 삼공주만이 불퉁한 표정으로 입을 삐죽거렸다.


“뭐... 공자의 여행이니 문제될 것은 없지만 이렇게 하루를 보내다니... 혹시 어디 아픈 것은 아니겠죠?”


공주의 물음에도 그저 히죽 웃음을 보인 헤리오스가 제이크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작은 움직임에도 제이크는 왈칵 눈물이 치솟았다. 키사는 그 모습을 보고 이해가 간다는 듯 가볍게 웃음을 보여주었고, 여전히 삼공주만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이거 너무 나만 따돌리는 것 같아요. 왜 저는 세분이 아는 것을 모르는 것 같죠?”

“모르시는 것이 맞습니다. 식사 아직이시죠?”

“네.”


그렇게 저녁식사까지 마치고 난 후 방으로 다시 올라온 일행은 하루 밀린 여정은 다음 날 다시 시작하는 것으로 하고 그대로 잠을 자기로 했다.


‘어쩌다가 나도 모르게 무아지경에 빠져버렸어. 나쁘지 않아. 그런데 심기체가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이건 기억만 돌아와 기혈과 체력이 단련이 안되어 있으니... 쯧...’


그러다가 방 한쪽에 앉아 헤리오스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는 제이크를 발견하고는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잠깐 나갈까? 검 챙겨서 나와.”


그 말에 정말 스프링이 튀어오르듯 벌떡 일어선 제이크가 문 앞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헤리오스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피식 웃음을 흘리고 함께 나가자니 옆 방에서 키사까지 검을 챙겨 나오고 있었다.


“그래. 모두 가자.”


복도에서 눈이 마주친 제이크와 키사는 서로 눈을 빛내고 앞서가며 헤리오스의 뒤를 따라 여관의 뒤뜰로 갔고, 거기에서 제이크의 검을 받아들었다.


“흠... 역시 길고... 무겁고... 강해.”


어떤 것이 제이크에게 어울릴지 고민하던 헤리오스. 기억에 무수히 많은 검술이 머리 속을 어지럽혔지만 결국 그에게 어울리는 것은 도법이었다.


“제이크에게 알려줄 검법은... 그냥 호랑이 검법이라고 하자.”

“호랑이 검법이요? 이름이...”

“원래는 다섯 마리의 호랑이가 문을 가르며 달려드는 듯한 모습의 빠르고 그리고 매우 격렬한 칼질이지.”


그러면서 헤리오스의 몸집에 너무 큰 제이크의 검을 돌려주고 근처에 떨어진 나무 막대를 주워들었다.


“잘 봐.”


그리고 시작하는 오호단문도의 초식. 점점 변해가는 제이크의 표정...


“정말... 이걸 배웁니까?”


썩어들어가는 제이크의 표정을 보며 웃음을 터뜨린 헤리오스는 지금 제이크가 느낀 느낌을 그대로 말하라고 하였다.


“어디서 그냥 춤도 아니고 방정을 떠는 듯한... 험...”


그 말에 헤리오스는 크게 웃고 말았다.


“맞아!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느꼈으니까... 하하하.”


오히려 웃는 모습에 제이크는 더욱 난감했다.


“제이크. 넌 이 검술의 연습과 함께 호흡법을 하나 알려줄테니 그것도 함께 익혀야 해.”


이윽고 세 사람은 밤 늦도록 수련의 삼매경에 빠져들어갔다.

오호단문도와 함께 혼원벽력신공을 제이크에게 알려주기 시작했고, 이미 키사에게 알려준 난피풍검법과 연화심법을 봐주면서, 헤리오스 자신은 전생에 자신이 창조한 것과 다름없는 당문의 심법에 자신의 심득을 담은 아직 이름없는 심법을 수련하며 외공을 단련했다.


다음 날 마차에 올라타고 길을 떠나려는데 여관주인이 떠나는 헤리오스 일행 앞에서 굽신거리며 인사를 했다.


“어이구! 나으리. 이제 떠나십니까요? 더 잘해드렸어야 했는데 아쉽구만요.”


여관주인의 넉살에 헤리오스가 피식 웃으며 금화 한 개를 날렸다.


“아니! 아니 뭘 이런 걸 다...”


그러면서 얼른 주머니에 슥 집어 넣는 모습을 보며 공주는 살짝 눈썹을 찡그렸지만 헤리오스는 빙그레 웃으며 여관주인에게 다가가 어깨를 토닥이고 옷깃을 펴주며 다정스레 말했다.


“우리 다음 행선지는 해안쪽으로 가게 되니까 아마... 드루앙 마을 쯤 되지 않을까?”

“예? 그...그걸 어째서... 저에게...”

“그냥 그렇다고. 분명히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 거 아냐? 너도 그래서 여기서 이 고생하고 있는 거고...”

“아...아니...”

“괜찮아. 그런데... 다음에는 좀 잘하자. 여관 음식이 이게 뭐냐? 아무리 위장이라도 그렇지 어느 정도 전문성 있는 놈들이 와서 해야 티가 안 나지. 이건 먹으라고 주는 건지 처먹으라고 주는 건지... 알았지? 위에다 잘 말해라.”


그리고 휙 마차에 올라타자 여관주인이 뭐라고 말을 하려 했으나 제이크는 그보다 더 빠르게 마차를 출발시켰다.


떠나는 마차를 보면서 여관주인은 중얼거렸다.


“시발... 여관 일하랴 밥하랴 보고하랴... 인원이나 좀 보내주면 내가 밥이라도 제대로 했지. 나혼자 다하는데... 시발...”


점점 나아지는 제이크의 운전 실력은 마차 안에 탄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었다. 덜컹거리는 것도 줄어들고, 또한 말들 역시 리듬있게 또 여유있으면서 속도는 유지하는 놀라운 솜씨를 발휘했는데, 제이크의 복장 역시 갑옷이 아닌 마부복으로 입고 있어 누군가 본다면 정말 말을 잘 모는 마부라고 생각할 정도 였다.


그렇게 사람들이 사는 곳을 지나며 보이는 풍경은 어느 덧 익어가는 밀밭과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뒤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개들...

여전히 길은 비포장이라 덜컹거리고 바람이 불면 먼지가 날려 창문을 수시로 닫아야 했지만 헤리오스는 그런 풍경을 바라보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래도 상당히 사람들이 여유로워 보이네요.”


헤리오스의 말에 삼공주는 창 밖을 보며 뭐가 여유롭다는 것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개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먹을 것이 부족하지는 않다는 것이죠.”

“부족하면 아이들이 뛰어놀지 않나요?”

“아뇨... 개가 없어지겠죠? 먹을 것이 없어지면...”

“아...!”


생각해보니 그랬다. 벨로시아 영지에는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이 없었다. 항상 집 안에 움츠려 있는 사람들... 목책 안에서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는 어른의 뒤에 숨어서 고개만 내미는 아이들...

삼공주는 헤리오스가 무엇을 보려하는지 어렴풋이 느낌이 왔다.


“벨로시아 영지도 이렇게 만들고 싶은 거죠?”

“아니오.”


‘네’라고 예상한 대답에 ‘아니오’가 나오자 당황했다.


“예? 그럼...”

“더 잘 살게 만들어주고 싶어서요.”

“아...!”


그러면서 여전히 창 밖을 보는 헤리오스의 옆 모습을 보니 잘 생겼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

“왜요? 제가 잘 생겨보여요?”

“네? 아뇨! 그럴리가요!”


속마음을 들켜버려 당황하던 때


덜컹!


“아악!”

“어?”


마차가 갑자기 멈춰섰다.


“무슨 일이야?”


헤리오스가 마부석에 있는 제이크에게 물었지만 제이크의 대답이 들려오지는 않았다.

결국 문을 열고 나간 헤리오스 앞에 보이는 것은 고급스러운 마차로 길을 막고는 허리에 손을 올리고 당당하게 서 있는 대장부... 아니 여장부...처럼 보이는 카밀레아 사이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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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벨로시아에는 뭐가 있는거지 +3 21.07.03 8,715 14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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