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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행 님의 서재입니다.

저번 생이 기억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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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행
작품등록일 :
2021.05.12 21:11
최근연재일 :
2022.03.20 00:50
연재수 :
149 회
조회수 :
1,083,447
추천수 :
16,739
글자수 :
714,085

작성
21.06.19 10:54
조회
10,801
추천
144
글자
9쪽

왕께서 하신 말씀이니까요

DUMMY

“아... 카밀레아 영애.”

“응? 카밀레아?”


헤리오스와 함께 마차에서 내린 삼공주와 키사도 길을 막고 선 사람을 보고 ‘이게 무슨일이지?’ 싶어 눈만 깜빡였다.

물론 치마를 무릎까지 걷어부치고 허리에 손을 올린 채 헤리오스 일행이 타고 있는 마차를 보고 씩씩거리는 모습에 어이가 없어 입을 다문 제이크와 헤리오스까지 말이 없자 넓은 평원위의 마차길은 매우 조용했다.


깍! 깍!


뭐 가끔 새가 울기도 하지만...


푸드득!


근처 까마귀떼가 세게 부는 바람에 하늘을 일제히 날아오르자 화가 난 카밀레아가 당당하게 헤리오스에게 소리쳤다.


“분명히! 어제 출발을 했어야 했어요! 그런데 왜 이제야 오는 거죠?”


이상하게 머리가 지끈거리는 헤리오스.


“영애의 그 말씀은 우리의 행적을 감시하고 있었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걸 인정하시나요?”

“물론이에요! 제가 얼마나 많은 돈을 지불했는지 아나요?”


이렇게 인정해버리니 또 다른 의미로 관자놀이가 지끈거린다.


“하아... 감시하셨군요. 하지만 삼공주님도 계신데...”

“전! 오직! 헤리오스 공자만! 감시했어요!”

“아하! 저만 감시하셨군요... 왜요?”


그 질문에 허리에 올린 손을 내리고 치마를 펴서 단정하게 하고 귀밑머리를 살짝 넘기고 턱을 약간 치켜든 채 말했다.


“제가 헤리오스 공자를 유혹해야 하니까요!”

“아... 이미 떡진 머리 넘겨봐야 유혹이 되지 않습니다만...”

“뭐라구요?”


시뻘게진 얼굴로 씩씩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화는커녕 한숨만 나온다.


“그런데 뒤에 있는 마부와 기사들은 떠날 준비를 하는 것 같습니다만...?”

“당연하죠. 저들은 사이먼 남작령으로 갈테니까요.”

“영애는 안가십니까?”

“말했잖아요! 전 그대를 유혹하기 위해...”


쿵!


마차에서 바닥에 내려놓는 짐가방이 하인의 실수로 바닥에 떨어졌다.


“꺄악! 무슨 짓이야! 이런다 안에 거울이 깨지면 니가 살거야? 응?”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야? 어머어머! 아니아니! 그건 그렇게 함부로...”


길을 막아 가지도 못하는 마차에서 헤리오스와 삼공주는 이 한심한 광경을 그저 생각없이 바라보고 있었고, 키사와 제이크는 귀족에 대한 어떤 관념이 부서지는 듯한 느낌에 입만 헤 벌어졌다.


대충 짐 정리가 끝이나자 카밀레아가 헤리오스에게 다가와 말했다.


“함께 여행하게 된 카밀레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허락한 적 없습니다만...?”

“흥! 그렇다면 난 여기서 죽을 거에요.”

“제가 죽이는 것도 아니지요.”


딱 벽을 치는 헤리오스에게 카밀레아는 비장의 수를 쓰듯이 드레스의 가슴골을 살짝 끌어내리며 말했다.


“밤에는 저와...”

“떡진 머리는 매력이 없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무례하군요!”

“길을 이렇게 막고 있는 것이 무례입니다.”


그러는 동안 길을 막았던 마차는 지들끼리 인사도 없이 그냥 가버렸고, 길 한가운데 큰 가방 두 개만을 들고 있는 카밀레아만 떼를 쓰고 있다.


“공주님 어쩔까요?”

“공자의 여행이니 공자가 알아서 하세요.”


그러면서 마차문을 쾅 닫고 들어가버리는 라이비아 삼공주.


“호오~ 이거 상대의 기세가 등등한 걸...”


중얼거리면서 당당하게 마차를 향해 걸어가는 카밀레아.

이 상황을 가만히 지켜만 보는 헤리오스. 그 사이에 낀 제이크와 키사는 어쩔 줄 모르며 그저 고개만 왔다갔다 귀족님들이 하는 꼬락서니를 쳐다볼 뿐이었다.


“여기 가방 좀 짐칸에 실어줘요!”


제이크에게 소리치는 카밀레아 때문에 정신을 차린 헤리오스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을 해보았지만 이미 사이먼 남작가의 마차는 가버렸고, 꼬박 마차로 하루 가까이 온 거리에 귀족가의 영애를 그냥 두고 갈 수도 없다.

물론 함께 있는 삼공주가 불편해하겠지만 여행의 주체는 자신이니 그 또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라면...


“일왕자파와 삼공주 나. 그럼 이왕자파에서 가만 있지 않을텐데...”


함께 오면서 라이비아 공주와 대화를 나누었지만 삼공주가 이왕자를 지지한다거나 일왕자를 싫어하는 표시를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헤리오스의 처신이 더욱 신중해질 수 밖에 없는 처지였지만 이렇게 카밀레아가 무대책으로 밀고 들어올 줄은 몰랐다.


한숨을 내쉬고 마차에 올라타려는데...


마차 문을 열자 쏟아져나오는 눈빛.


뒷자리에 앉아 조용히 헤리오스를 바라보는 공주와 맞은 편에 앉아서 자신의 옆에 앉으라는 듯이 눈알을 흘긋흘긋 움직이는 카밀레아.


“아... 뭐지.”


무언가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의 헤리오스...


‘전생이 아니라 이건 삼생을 통해도 이런 경험따위는 없었어. 두 여자가 하는 기싸움에 끼다니...’


“공자님. 무슨 일이 십니...헉!”


마부석으로 올라탄 제이크와 달리 마차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키사도 마차 안의 풍경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공자님. 저는 아무래도 제이크 옆에서 검술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응. 안돼.”

“귀족 분들끼리 하실 말씀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그렇지. 그러니까 안돼.”

“죄송합니다. 이건 정말 제가 없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정말... 안되는데... 안되겠지?”

“네.”


키사는 얼른 제이크의 엉덩이를 한쪽으로 밀어내고 옆에 탔으며, 헤리오스는 여전히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두 여자가 있는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결국 공주와 남작영애를 나란히 앉히고 헤리오스가 그녀들의 맞은 편에 앉아 가는 것으로 대충 마무리 되었지만 대화가 문제였다. 삼공주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삐져서 창 밖만 쳐다보고 있었고, 카밀레아는 이상하게 전투적으로 변해 옷을 끌어내리는 것을 몇 번이나 막았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 나오시면서 위험다하는 생각은 하지 않아셨습니까?”


헤리오스는 삐진 삼공주의 눈치를 살짝 보면서 카밀레아에게 물었다.


“뭐 귀족가의 후계자가 가는데 안전이야... 응?”


그러더니 마차 창을 열어 뒤를 돌아보고 다시 헤리오스를 보고 삼공주를 보고는 이상한 표정이 되었다.


“혹시 검술을 굉장히 잘하신다거나...”

“제 팔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전 학문쪽으로 소질이 있는지라...”

“기사는요? 호위하는 병사들은 안 따라오는건가요?”

“아까 마차 보시지 않았습니까?”

“그거야 공주님과 밀회를 즐기니까 떨어져서...”


그제야 공주도 버럭 소리를 지른다.


“밀회라니요? 제가? 공자랑?”

“아닌가요? 다들 그렇게 알고 있는데...”


이거 사태가 점점 이상하게 흘러간다.


“이미 수도에는 헤리오스 공자와 함께 라이비아 삼공주가 밀월 여행을 즐기기 위해 최소한의 호위만 데리고 길을 떠났다고 소문이 다 났는걸요. 그리고 둘이 그렇게 여행을 반년 가까이 할 거라는 이야기를 대놓고 왕께 허락받았다는 말도 돌고 있고요.”


뒷목이 팍 저려오는 헤리오스다.


“그 소문의 출처가...”

“소문의 출처랄 것도 없어요. 왕께서 하신 말씀이니까요.”

“컥!”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는 것은 맞지만 왕한테 뒷통수를 맞다니... 라이비아 공주도 얼마나 기분이 상했을지 가늠이 안되는 헤리오스 살짝 눈치를 보는데...


‘어? 왜 얼굴이 빨게졌어? 기분 나쁜 표정이 저런게 맞나? 귀까지 빨게서 왜 창문만...?’


두 번의 전생을 총각으로 죽은 헤리오스의 여자에 대한 판단은 좀 미숙하거나 아주 미숙했다.


“그래서 사이먼 남작가에서도 영애를 보내 소문을 흔들려고 하는 겁니까?”

“아...그게...”


좀 껄끄러워하더니 고개를 숙여버린다.


“그게... 왕실에도 찍혔고, 이왕자파에도 표적이 되었으니 헤리오스 공자를 유혹해서 알아서 살라고 하셨어요.”

“네?”

“어차피 저의 혼사길은 다 막혔으니까요. 귀족가에서는 다 그런 것 아니겠어요?”


이렇게 말을 하며 웃음을 보이는 카밀레아를 보자니 왠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말입니다. 저를 유혹하는 것이 성공하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이 질문에 눈을 똥그랗게 뜨는 사람은 카밀레아 만이 아니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삼공주 역시도 그 질문에 놀라 카밀레아를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야... 가문에서도 쓸모가 없고, 약점만 되니까...”


지금까지 웃음을 지어보이던 카밀레아도 이 때만큼은 더 이상 웃지 못하고 눈물이 떨어졌다.


“어머? 이런...”


자신도 모르게 떨어진 눈물에 놀라 황급히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는 그녀를 보며 헤리오스의 심기도 어지러워졌다. 옆의 공주도 놀라 입만 벌리고 입술을 달싹거렸지만 말을 꺼지는 못하고 그저 숨만 쉴 뿐이었다.


“그렇게 훅 들어오다니 너무 저돌적이시네요. 공자.”


표정을 수습하며 다시 웃어 넘기려는 카밀레아를 보며 헤리오스는 안쓰러운 마음을 담아 말했다.


“눈화장이 번져 너구리 같이 되셨습니다. 잠시 쉬어갈까요?”


이상하게 카밀레아에게 살기를 느낀 헤리오스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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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똑같은 상황이다 +4 21.07.09 8,034 116 11쪽
58 쥐불놀이 +4 21.07.07 8,337 130 15쪽
57 이제 낚시를 해야지 +4 21.07.06 8,398 128 12쪽
56 적에게 공포를 +7 21.07.05 8,469 132 12쪽
55 전쟁은 병력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지 +4 21.07.04 8,753 134 13쪽
54 벨로시아에는 뭐가 있는거지 +3 21.07.03 8,718 141 11쪽
53 동맹을 맺자 +3 21.07.03 8,790 131 12쪽
52 모의 전투 훈련이라고 들어보았나 +4 21.07.01 8,994 142 9쪽
51 도착 +3 21.06.30 8,932 138 10쪽
50 우리 갈 길이 멀지 않나요 +6 21.06.29 8,980 135 12쪽
49 너무 날로 먹으려고 하지마 +6 21.06.28 9,092 149 10쪽
48 당신의 능력을 사용하고 싶습니다 +4 21.06.27 9,460 139 13쪽
47 용돈을 버는 겁니다 +5 21.06.26 9,581 150 10쪽
46 취향차이 +7 21.06.26 9,589 146 11쪽
45 인정할 수 없다면 지금 나서라 +5 21.06.24 9,554 14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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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놀이는 이제 끝이군 +5 21.06.22 9,775 145 9쪽
42 그곳에 다녀오실 용기가 있으십니까 +9 21.06.21 10,154 145 12쪽
41 다음 생에 만나면요 +7 21.06.20 10,540 147 12쪽
40 말은 그냥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야 +8 21.06.19 10,556 148 9쪽
» 왕께서 하신 말씀이니까요 +8 21.06.19 10,802 144 9쪽
38 더 잘 살게 만들어주고 싶어서요 +6 21.06.18 11,020 158 11쪽
37 왕이시니까요 +6 21.06.16 11,222 169 10쪽
36 좀 멋지셨습니다 +8 21.06.15 11,404 158 10쪽
35 내가 실수를 했어 +6 21.06.14 11,850 161 9쪽
34 안전장치 +7 21.06.13 12,047 176 9쪽
33 비인부전 +5 21.06.12 12,112 191 9쪽
32 네 다리를 올릴까 +8 21.06.11 11,943 206 9쪽
31 개혁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10 21.06.10 12,251 182 13쪽
30 즐거우셨다니 기쁩니다 +4 21.06.09 12,652 18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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