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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행 님의 서재입니다.

저번 생이 기억나버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군자행
작품등록일 :
2021.05.12 21:11
최근연재일 :
2022.03.20 00:50
연재수 :
1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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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14,085

작성
21.06.27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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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글자
13쪽

당신의 능력을 사용하고 싶습니다

DUMMY

왕의 명령이 내려왔다. 사실 조선 시대의 왕의 명령이면


“신을 이토록 믿어주시어 이런 과분한 영광을 주신 주상전하의 은혜가 하해와 같사옵니다. 신의 비루한 몸이 부서져 가루가 된다 하더라고 전하께서 하명하신 일은 반드시 완수하여 은혜에 보답하겠사옵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라고 시부리며 왕이 있는 곳으로 세 번 절을 하고 겁나 감격한 표정을 지어야 한다고 헤리오스는 드라마에서 봤었다.

하지만 여기는 중세랜드. 왕의 힘은 국왕령에 한정되어 미치고 있고, 나머지는 각 영지의 영주들이 졸라 강해서 말을 해도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게다가 단체로 미쳐서 왕을 공격하면 왕은 작살난다. 그러니 왕이 이렇게 시키는 것도 그냥 왕이라서 시킨다기 보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들어줄테니 내 일을 처리해줘’ 라는 일종의 계약관계와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헤리오스는 쿨하게 왕의 말대로 해주기로 하고 다음 여행지로 출발하려고 하는데...


“우리 일행이 상당히 늘은 것 같지 않아?”


마차 앞에 서 있는 라이비아 공주, 카밀레아 영애, 제이크, 키사, 클라라, 늑대1, 늑대2, 늑대3.


“응? 늑대 1,2,3?”


헤리오스의 중얼거림에 키사는 겸연쩍은 얼굴이 되어 괜히 먼 산을 바라보았고, 클라라는 그 동안 헤리오스의 치료로 인해 상당히 인간의 행동양식을 제대로 구사(?)하게 되었다.


“오빠! 내 부하들!”

“부하?”

“응! 내가 더 강해. 그러니까 내 부하들!”


‘아... 늑대가 보살 핀 것이 아니라 늑대의 등골을 빼먹으며 살았던 작은 악...’


“오빠오빠! 저기 숲에서 죽어가는 거 내가 데리고 와서 살려줬어.”


‘...마의 매력을 가진 천사.’


“데리고 가도 되지? 오빠? 응? 오빠?”


어떤 단어에는 특이하게도 마법의 힘이 들어있는지 자신만 모르고 모두가 아는 일이 헤리오스에게 생겼다.

얼굴의 살짝 상기되고, 콧구멍에 콧김이 씩씩 거려지며, 어깨가 으쓱하고 올라가고, 눈은 살짝 반달처럼 휘어지며, 입은 복날 강아지가 혀를 빼기 전 쫙 벌려서 귀까지 벌어지는 모양으로 변했다.


“그...그럼! 걱정마렴. 이 오.빠.가 함께 보살펴주마.”

“역시! 오빠 멋있어!”

“험! 험!”


이런 바보같은 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키사와 제이크.

예리한 눈으로 보는 카밀레아와 라이비아...


“연하에게 약한 것이었군... 내가 나이가 더 많아서 유혹이 되지 않은 거였어.”

“오빠라는 단어가... 그리 좋을까요? 하지만 바보처럼 변하는데...?”


그런 공주들에게 감히 키사가 한마디 툭 던졌다.


“그냥 공자님이 약간 들뜨신 것 뿐입니다.”


뭐... 헤리오스의 상태를 보면 믿을 수 없는 말이기는 하다.


이렇게 출발한 일행의 마차가 숲을 통과해 내륙으로 들어가기 시작하자, 숲에서 간혹 나오는 곰과 소수의 고블린 등이 이상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가끔 늑대1, 2, 3이 사라졌다가 돌아오고는 했는데, 뭐 하고 왔는지 자신의 털을 혀로 핥고, 하품을 하고, 서로 장난을 치다가 마차가 출발하며 가볍게 따라왔다.


며칠을 달려 산 속에 큰 마을에 도착했다. 이 곳은 탄광이 있는 곳으로 탄광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마을이 살아가고 있다. 물론 감시를 행정관이 하고 있고, 일이 거친 만큼 사람들도 거칠었다.

그렇다고 해도 공주가 있으니 함부로 할 수 있는 사람도 없거니와, 제이크가 앞에 서서 눈을 부라리면 고개도 들지 못하고 모두 꼬리를 말았지만 말이다.


이 곳에서 헤리오스는 왕의 법을 마을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크게 읽어주었고, 공주는 행정관이 가지고 있는 서류를 확인하여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시정조치 했으며, 카밀레아는 헤리오스와 함께 탄광안을 돌아다니고 사람들을 만나 이런 저런 작업환경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거짓과 진실을 판단해 헤리오스에게 이야기 했는데,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다.

뭐 겸사겸사 탄광 안에서 백골이 된 시체도 찾아내었고, 숨겨두고 있었던 은도 찾아내었고, 마을에서 행패를 부리던 남자를 잡아 두들겨 패 교육을 시키기도 하면서 법을 적용하여 벌금과 감옥행. 또는 교수형에 처하는 모습을 보여 주민들에게 왕의 힘이 미치는 곳이니 왕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에 집어 넣었다.


그리고 밤이 되면 헤리오스와 키사, 제이크는 중원의 무공을 수련했고, 공주와 카밀레아는 헤리오스가 알려준 토납법과 행공을 수련하며 아기피부를 가지는 꿈을 쫓았다.

뭐 겸사겸사 클라라가 이상하게 점점 더 성장하는 늑대들보다 달려다니는 것이 느려지는 것이 보여 달리는 법과 걷는 법, 몸을 가볍게 하여 빨리 움직이는 법을 알려주니 뭐 말 그대로 동물적인 감각으로 필요한 부분을 쭈욱 흡수하여 다시 늑대들보다 빠르게 숲의 여기저기를 뛰어 다니며 놀았다.


이렇게 국왕령 곳곳을 다니며 왕의 법을 알리고, 틈틈이 수련을 하며, 국왕령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특산품, 도로 등을 보며 나름 필요한 것을 습득하고 왕궁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왕궁에 가까워질수록 불안해하던 카밀레아가 결국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그제야 라이비아 공주는 카밀레아의 사정을 알고 난감해져 헤리오스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임무는 헤리오스를 유혹하여 일왕자파의 그늘로 끌어 들이는 것. 아니면 최소한 흠결이라도 내어 결혼으로 묶이게 만들어 이왕자파에 합류하지 못하게 하는 것.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사실 살아오면서 이렇게 편안하게 지내는 것은 처음이었어요. 그리고... 저 피부도 좀 좋아진 것 같지 않아요?”


곧 헤어져야 함을 알고 카밀레아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려고 하며 인사를 했지만 헤리오스는 그런 그녀에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런 얘기 콧물 흘리면서 해봐야 감동도 없고, 어울리지도 않습니다.”

“사람이...! 휴... 됐어요!”


라이비아 삼공주도 이번에는 헤리오스의 잘못을 지적했다.


“사정을 알면서도 그리 매정하게 말씀을 하시다니... 이번에는 공자가 심하셨어요.”


그런 말을 들어도 헤리오스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카밀레아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흥! 그런 눈으로 봐도 저한테 안넘어오는 거 알고 있거든...”

“아뇨. 유혹이니 옷을 벗고 함께 어쩌니 그런 것 말고... 정식으로 제의 합니다. 당신의 우리 영지의 행정관으로 영입하고 싶습니다. 특히 상단이나 군사 협정등의 협상 테이블에서 당신의 능력을 사용하고 싶습니다.”

“...뭐라고요?”


카밀레아는 무언가 이상한 소리를 잘못 들었다는 듯이 헤리오스가 한 말을 정리해서 다시 되집었지만 이는 확실히 자신을 영지의 관리로 채용하고 싶다는 소리였다.


“아니... 저는 여자라고요. 여자가...”

“저번에도 말씀드렸듯이 여자라고 가진 능력을 쓰지 않는 것은 확실히 비효율적입니다.”

“그래도... 귀족가의 여자라면...”

“그러니 선택하시죠. 귀족가로 돌아가 다시 결혼 상대를 기다리며 가슴 졸이는 삶을 살 것인지, 가문에서 벗어나 그냥 하나의 인간으로서 능력을 발휘해 스스로 살아나갈 것인지.”

“하지만 여자가...”

“그럼 싫다는 것으로 알고...”

“아뇨! 그게 아니라 여자인 저를 써 줄 곳이 있다는 말이 사실이냐고요!”

“우리 영지는 사람이 많이 모자랍니다. 그게 여자던 어린 아이던, 노인이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로 척박하죠. 그러니 오히려 제가 묻고 싶습니다. 우리 영지에서는 지금처럼 편하게 살고 따뜻하고 안전하게 생활하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물론 나중에는 바뀌겠지만 지금은 그렇죠. 이런 곳이라도 오셔서 그 능력 한 번 펼쳐보실 생각 없으십니까?”

“...”


카밀레아의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이런 모습도 이미 예상 했는지 헤리오스는 더 이상 카밀레아에게 말을 걸지 않고, 창 밖을 바라보며 왕궁으로 가는 길을 무심히 지켜보기만 했다.

무거워진 분위기에 라이비아 공주 역시 창 밖을 바라보았지만 헤리오스의 말은 공주의 가슴에도 꽂혔다.


- 가문에서 벗어나 그냥 하나의 인간으로서 능력을 발휘해 스스로 살아나갈 것인지.


이미 국왕령을 돌아다니면서 뒤져 본 장부의 숫자만 서재 하나를 채우고도 남는다. 그런 곳에서 잘못된 것을 찾아내 지적하고, 더 나은 계산법을 알려주고, 비리를 적발하는 것도 쉽게 해내는 자신의 능력을 왕성으로 들어가면 제대로 사용하며, 자신의 바라는 인생을 살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였다.


갑자기 조용해지자 마부석에서 클라라가 뒤롤 돌아보며 소리쳤다.


“오빠? 자?”


클라라의 외침에 헤리오스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 * *


홀에 모인 귀족들은 왕을 중심으로 서로의 눈치를 보며 누구도 입을 열지 않고 있다.


“허... 지원하는 규모가 생각보다 너무 커졌어. 이건 그대들의 배포가 너무 큰 것인지, 그만큼 얻을 것이 많은 것인지 알 수가 없어.”


국왕의 말은 일왕자파의 귀족들과 이왕자파의 귀족들이 서로를 노려보는데, 더 분위기를 사납게 만들었다.


“동부의 귀족들은 대부분 많은 사람들을 이주시키기로 했고, 중부의 귀족들은 많은 식량을 지원하기로 했더군. 그래. 솔직히 말해서 돈이나 철을 보내주면 내가 좀 조정해서 보내려고 했어. 그런데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지원을 이렇게 과하게 하는지 알 수가 없군.”


그 때 홀 밖에서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왕국의 삼공주인 라이비아 공주님과 벨로시아 영지의 후계자인 헤리오스 공자가 외성문을 통과하여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 소리에 쟈이네크 후작의 눈썹이 씰룩였고, 슬로안 후작의 안색도 더 딱딱하게 바뀌었다. 두 후작 모두 속으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 우리의 지원이 이런 것은 너희의 노선이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 후 홀 안으로 헤리오스가 상당히 진중한 걸음으로 들어와 왕에게 경의를 표한다.


“왕국에서 홀로 빛나시고 계시며...”

“되었다. 먼 길을 다녀오느라 피곤하겠지만 귀족들이 여기 모여서 너만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냥 이야기를 나누어 봤으면 한다.”

“왕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헤리오스는 양쪽으로 나누어 서서 헤리오스를 살펴보는 귀족들을 보며 왕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동부와 중부에서 지원을 해주었다. 시종장.”

“예.”


시종장은 각 영지에서 지원하는 물품에 대해 읊었고, 그 내용을 모두 정리해서 다시 말해주었는데...


동부 – 암염 100포대. 이주민 12582명.

중부 – 곡식 종자 밀 20포대. 콩 20포대. 보리 20포대. 이주민 7254명


내용을 다 들은 헤리오스는 어이가 없이 그냥 웃고 말았다.


“정말 대단한 지원이군요. 알겠습니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헤리오스의 반응에 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지원이 불만스럽지는 않은가?”

“어쩌겠습니까? 영지마다 사정이 있겠지요. 성의는 잘 알았으니 그저 오래도록 기억할 뿐입니다. 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냥 순순히 물러나는 헤리오스의 반응에 떨떠름해진 것은 자리에서 헤리오스를 관찰하던 두 후작이었다.


“벨로시아는 왕국의 지원에 더 원하는 것이 없는가?”

“벨로시아는 이 지원의 성의를 영원히 기억할 것이며, 처음에도 그랬고, 나중에도 벨로시아는 왕의 뜻을 따르는 힘이 될 것입니다.”


그 말에 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피곤할테니 물러가도 좋다. 영지로 돌아가는 것은 추후 다시 이야기 하도록 하지.”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헤리오스가 조용히 나가자 귀족들은 무언가 분위기가 이상하게 흐르는 것을 감지했다.


- 벨로시아 영지가 그냥 물러났다.

- 분명 식량이 모자라고 무기가 부족하다 했는데 그냥 넘어간다는 것은...?

- 저 이주민들을 모두 데려가기는 할 작정인가?


“벨로시아 영지에서 그대들의 지원을 모두 수용했고, 왕실은 단 하나의 지원도 손대지 않았다. 내일 벨로시아의 후계자와 영지까지 지원품목을 옮기는 것에 대해 왕실과 논할 것이다. 모두들 고생이 많았다.”


왕은 말을 마치고 그대로 자리를 떠났고, 두 진영은 헤리오스의 반응에 당황하여 술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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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똑같은 상황이다 +4 21.07.09 8,034 116 11쪽
58 쥐불놀이 +4 21.07.07 8,337 130 15쪽
57 이제 낚시를 해야지 +4 21.07.06 8,398 128 12쪽
56 적에게 공포를 +7 21.07.05 8,469 132 12쪽
55 전쟁은 병력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지 +4 21.07.04 8,753 134 13쪽
54 벨로시아에는 뭐가 있는거지 +3 21.07.03 8,718 141 11쪽
53 동맹을 맺자 +3 21.07.03 8,790 131 12쪽
52 모의 전투 훈련이라고 들어보았나 +4 21.07.01 8,994 142 9쪽
51 도착 +3 21.06.30 8,932 138 10쪽
50 우리 갈 길이 멀지 않나요 +6 21.06.29 8,980 135 12쪽
49 너무 날로 먹으려고 하지마 +6 21.06.28 9,092 149 10쪽
» 당신의 능력을 사용하고 싶습니다 +4 21.06.27 9,461 139 13쪽
47 용돈을 버는 겁니다 +5 21.06.26 9,581 150 10쪽
46 취향차이 +7 21.06.26 9,589 146 11쪽
45 인정할 수 없다면 지금 나서라 +5 21.06.24 9,554 147 11쪽
44 확인 +6 21.06.23 9,612 140 10쪽
43 놀이는 이제 끝이군 +5 21.06.22 9,775 145 9쪽
42 그곳에 다녀오실 용기가 있으십니까 +9 21.06.21 10,154 145 12쪽
41 다음 생에 만나면요 +7 21.06.20 10,540 147 12쪽
40 말은 그냥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야 +8 21.06.19 10,556 148 9쪽
39 왕께서 하신 말씀이니까요 +8 21.06.19 10,802 144 9쪽
38 더 잘 살게 만들어주고 싶어서요 +6 21.06.18 11,020 158 11쪽
37 왕이시니까요 +6 21.06.16 11,222 169 10쪽
36 좀 멋지셨습니다 +8 21.06.15 11,404 158 10쪽
35 내가 실수를 했어 +6 21.06.14 11,850 161 9쪽
34 안전장치 +7 21.06.13 12,047 176 9쪽
33 비인부전 +5 21.06.12 12,112 191 9쪽
32 네 다리를 올릴까 +8 21.06.11 11,943 206 9쪽
31 개혁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10 21.06.10 12,251 182 13쪽
30 즐거우셨다니 기쁩니다 +4 21.06.09 12,652 18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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