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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quiem Mass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Delco
작품등록일 :
2008.03.08 21:35
최근연재일 :
2008.03.08 21:35
연재수 :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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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30
추천수 :
110
글자수 :
224,276

작성
08.02.21 10:04
조회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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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2쪽

Requiem Mass - 전운

DUMMY

2황자는 품 안에서 데리고 놀던 시녀 외엔 아무도 없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아주 작은 인기척이 느껴지자 시녀의 가슴을 주무르던 손을 빼고 시녀를 밀어냈다. 한참 달아오르던 시녀는 엉겁결에 밀려 일어난 뒤에도 이런 일이 익숙한 지, 재빨리 옷매무새를 만지고는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취미한번 고약하군.”


시녀가 집무실을 빠져나가자마자 2황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 한쪽에 자리한 술 장을 열어 붉은색 포도주를 꺼낸 뒤, 두 잔에 나눠담고 뒤로 돌아서며 툴툴거렸다. 2황자의 눈이 멈춘 곳엔 레이언이 금색의 차가운 눈을 빛내며 서있었다.


“…준비가 끝났다.”

“그럼, 이건 축배로군.”


2황자는 레이언에게 들고 있던 포도주잔을 내밀었지만, 레이언은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시선으로 2황자를 노려볼 뿐이었다.


“축배일 뿐이야.”

“…좋지.”


난처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2황자를 노려보던 레이언은 느릿한 손짓으로 잔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툭!


레이언의 손에 쥐어져 있던 잔이 손을 떠나 바닥으로 수직낙하한 뒤 몸 안에 담겨 있던 포도주를 뱉어내버렸고, 그에 갈 곳을 잃은 포도주는 바닥에 깔린 카펫을 붉게 물들이며 번져나갔다.


“이런, 이런. 카펫도 카펫이지만 자네가 버린 그 술이 얼마나 비싼 건지 알고 한 짓인가?”


2황자는 레이언의 행동을 예상했다는 듯이 빈정대는 말투로 카펫을 물들이고 있는 포도주를 쳐다본 뒤, 다시 레이언을 쳐다보았다. 2황자의 표정은 빈정대는 말투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비웃음이 그려져 있었다.


“…황태자와 아센테르드간의 협약문서다.”


레이언은 품속에서 덱샤를 꺼내들고 덱샤 하단의 선을 뽑아 2황자의 펙션에 연결했다. 덱샤와 펙션이 연결되었다는 표시가 펙션의 화면에 뜨는 걸 확인하자 레이언은 덱샤의 전송버튼을 눌렀고, 곧바로 문서 하나가 2황자의 펙션 안으로 옮겨졌다.


“오호, 형님이 이런 짓을 하셨을 줄은… 역시 형님이야.”


2황자는 레이언이 전송해준 협약문서를 읽으며 기쁜 듯 웃음을 터트렸다. 이것으로 황태자 자리에 앉을, 그리고 머지않아 황제의 자리에 앉을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이었다. 레이언은 말없이 2황자가 웃는 모습을 지켜보다 창가로 걸어가 창문을 열어젖혔다. 이제 겨우 오후 2시인만큼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엔 황궁의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아, 가려는 건가?”

“…”


레이언은 2황자의 말을 못들은 척 귀 뒤로 넘기며 높이만 해도 6층 높이의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고, 그 순간 돌풍과 함께 모습이 사라졌다.


“…훗. 허공에서 포탈 스크롤을 찢었나? 역시 네놈은 제거대상목록의 최고 위치에 자리할 만 해.”


2황자는 레이언의 방금 전 행동을 그렇게 칭찬도 비웃음도 아닌 말투로 평가하며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레이언이 사라지며 남긴 돌풍은 지상에 닿을 때 쯤, 가벼운 미풍이 되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머리와, 옷을 흩날리고 있었다.


----------


“이런, 비가 오는 군.”


오후 3시가 되자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분명 예보에는 내일부터 비가 온다고 했는데, 킹세티 시의 아마리아 상단장 그레이는 킹세티 시의 대표 산물인 커피를 마시며 예보란 건 참으로 믿을 수 없는 놈이라는 생각을 하며 불과 몇 분전에 도착한 운이 좋은 두 여자를 돌아보았다.


“너희들은 참 운도 좋다. 아니 없는 건가?”


그레이의 맞은편에 앉은 에밀리와 루드비아는 그레이의 말에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에밀리는 그저 웃을 뿐이었고, 루드비아는…


“그러게 말이네요, 비 그치고 가도 되죠?”


라는 말로 그레이로 하여금 제 2의 레이언을 보게 하는 기분을 들게 했다. 능글맞게 웃는 표정부터 시작해서, 맡겨놓은 것도 없이 빚쟁이들처럼 와서는 얻어가려고만 하는 모습들 모두가 레이언과 닮아있었다.


“방이야 많으니…”


그레이가 말끝을 흐린 건, 결코 방을 내주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에밀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책장으로 곧장 걸어갔기 때문이었다. 그에 루드비아가 ‘저 책벌레, 이번엔 뭘 또 발견해서.’ 라고 중얼거리며 에밀리의 뒷모습과 그레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저씨, 이 책 읽어봐도 돼요?”

“응? 그 책… 그래, 괜찮으니까 얼마든지 읽어봐라.”


그레이는 서슴없이 책장을 열어 두껍고 큰 책을 꺼내들어 양팔로 가슴에 안고 서있는 에밀리를 쳐다보고는 [창세전쟁 당시의 천사와 악마.] 라 적힌 책 제목을 안경너머의 지긋한 시선으로 확인한 뒤, 흔쾌히 승낙했다. 어차피 이미 들어야 할 내전에 대한 정보는 다 전해들은 상태였고, 레이언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벌이고 있다는 점에선 셋 다 동의한 상태였다. 차이라면 그레이가 마지막으로 내놓은 새로운 결론이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것은 ‘레이언이 2황자를 돕는 건, 복수 때문일 것 같군.’ 이라는 알 수 없는 결론이었고, 그레이는 그것이 무엇인지 말해줄 생각이 없을 뿐이었다.


“알지 말아야 할 자를 안 탓에 너희들이 고생이구나.”


책장 앞에 털썩 주저앉아 그자세로 책을 파고들어가기 시작하는 에밀리를 쳐다보던 그레이가 내뱉은 말이었다.


----------


“폴이 성공적으로 시작한 모양이다.”


폴의 성공 소식은 에밀리를 시작으로 빠르게 전해졌다. 그건 이제부터 작전을 시작해야 하는 메기에게도, 호미를 수리하던 자이델에게도, 그리고 제이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럼, 우린 언제 싸우는 거야?”


제이크의 앞에 놓인 탁자에 양손을 받치고 서서 제이크를 내려다보고 있는 레스티의 여자 같은 높은 음성에 제이크의 이마엔 또다시 주름이 그려졌다. 이미 수십 차례 그 말투를 그만두라 말했지만, 취향자체가 완전 다른 레스티다 보니 쉽게 고쳐질 리는 없는 일. 제이크는 숨을 한차례 들이마시더니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 우린 한참 뒤에나 싸우겠지.”


작전대로만 진행이 된다면 제이크가 싸우게 될 시기는 약 한달 뒤의 일이었다. 딱히 시간이 정해진 것이 아니었다. 그저 레이언이 짜놓은 작전명령서에 의거해 따져보면 약 한달 뒤라는 시간이 나오는 것뿐이었다.


“에이, 난 또 싸우는 줄 알고 기대했네.”

“…넌 싸움이 좋냐?”


마치 어린아이의 말투 같은 레스티의 말에 제이크는 한쪽 눈썹을 살짝 올리며 레스티를 올려다보았다. 그에 레스티는 무슨 소릴 하는 거냐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목숨을 건 한판 승부! 멋지잖아?”

“…”


제이크는 말없이 레스티를 쳐다보았다.


“…왜에?”

“…누군가 죽는데도?”

“내가 안 죽으면 그만 아냐?”

“…그래, 그렇지.”


제이크는 쉽사리 인정했다. 아니 인정할 수밖엔 없었다. 적어도 자신도 싸움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다만, 리엔이 죽은 뒤부터 누군가 자신을 떠난다는 게,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이별을 맞이한다는 게, 무엇인지 깨닫게 된 뒤로는 싸움을 조금은 기피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뿐이었다.


‘옳고 그름은… 네 애인, 레이언이 말해주겠지?’


제이크는 리엔에게 묻듯이 그렇게 자신을 향해 질문했다.


----------


“오빠로부터 연락이에요.”


사라 바워버드가 메기 키킨의 침실로 뛰어 들어오며 외친 말이었다.


“레이언?”


메기는 침대 옆에 있는 책상에 앉아 의학서적을 뒤적이던 손길을 멈추고 사라를 돌아본 뒤, 사라의 끄덕이는 고갯짓을 확인하는 순간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병원으로 쓰고 있는 1층 로비로 달려가 수화기를 집어 들고는 사라를 다시 돌아보았다. 3층에서 뛰어내려온 탓에 메기와 사라 모두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 매우 작은 병원인 탓에 5시가 넘은 이 시각, 1층엔 메기와 사라 외엔 아무도 없었다.


“보안 처리 됐어요.”


무슨 의미로 쳐다본 건지 알고 있는 사라의 귓속말에 메기는 주저함 없이 수화기를 얼굴에 가져다댔다.


“오랜만이네? 나야, 바꿨어.”


퉁명스럽다 못해, 전화기 너머의 상대가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는 말투로 메기는 대화를 시작했다.


-그래, 오랜만이네. 잘 지냈나?

“잘 지냈다면 잘 지낸 편이긴 하지.”


아니 애초에 두 사람의 말투가 똑같았다. 서로에 대해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에게 말을 하듯 격양된 레이언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고, 그에 질세라 메기 역시 똑같이 받아쳤다. 특히 메기의 [하지] 라는 마지막 단어는 쓸데없는 인사말은 그만하고 어서 필요한 말이나 하라는 의미가 내포된 것 같았다.


-아센테르드에 작전이 전달되었다.

“네 작전 말이지? 아센테르드 본부야? 아니면 이번에 임무를 띠고 제국으로 넘어온 자들에게야?”

-후자다.

“…역시.”


충분히 예상되는 답변이었기에 메기의 음성은 탄식으로 바뀌어 있었다. 사고를 아주 제대로 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마레크 제국과 아센테르드라는 두 거대한 세력을 상대로 말이다. 이대로라면 레이언이 제시한 작전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문제였다. 레이언은 아센테르드에 명령위반과 반란 혐의로 체포, 혹은 즉결 처분이라는 죄와 죗값이 내려질 뿐이었다. 상식적으로 레이언의 말도 안 되는 작전을 위해 아센테르드에서 파견된 자들이 순순히 따라줄 것이라는 보장자체가 없지 않은가.


-뭐?

“아냐, 아무것도. 그럼 작전대로 진행하면 되는 거야?”

-그래, 작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거다. 그대로 진행하면 되.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대답하는 레이언의 목소리에 메기는 할 말을 잊었다. 남은 심정은 [너 알아서 하세요.] 정도라 할까.


“그렇군. 알았어. 그럼 아센테르드 군대가 움직이는 걸 확인하고 상황에 맞춰 움직여도 되겠지?”

-어차피 명령 자체가 그렇지 않았나?

“재확인이야.”

-…다시 말하지만 작전대로 움직이면 된다.

“아아, 알았어. 그럼.”


더 이상 말할 것도 남아있지 않은 듯 메기는 레이언의 답변조차 듣지 않고 서둘러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난생 처음 보는 레이언과 메기의 마치 원수 같은 모습에 사라는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고, 메기는 약간의 난처함을 보이며 웃어보였다. 그러나 그 웃음조차 쉽지 않은 듯, 메기의 표정은 다시 굳어졌다. 아센테르드에서 파견된 자들이 레이언의 작전대로 움직여준다면 첫 시작은 수월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레이언의 작전대로 움직여 줄 것이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명령 위반으로 체포령이 떨어질 텐데 그런 위험부담을 안고 따라줄 리 만무하기 때문이었다.


‘후… 일단, 기다려보자.’


별 달리 방법이 없었다. 불안하다고 이제 와서 멈출 수도 없는 문제였다. 벌써 몇 번을 다짐한 일이지만 방금 레이언과의 통화에 다시 불안해진 마음을 추스를 방법은 루드비아의 말을 다시 상기하는 것뿐이었다.



==========


용어설명


펙션 : 현재의 컴퓨터와 기능면에서 동일한 기계, 생긴 모습은 하드가 탑재된 텔레비젼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


잡설 1.


저라면 이렇게 불안감만 조성하는 지도자 밑에서 절대로 일 안 할겁니다.

다른 건 몰라도 다른 사람의 계획 때문에 죽는 건 사양이거든요.


잡설 3.


에밀리는 책벌레인 겁니다. (사실 소설 쓰다가 만들어진 설정입니다.)


잡설 4.


앞부분의 2황자와 시녀 씬은 고민끝에 넣어봤습니다. 본래는 야한 거나 잔인한 건 다 빼고 쓰려고 했지만, 너무 동화책적인 내용들인 것 같다는 생각에 이제부턴 케릭터가 탈선하는 장면들이 조금씩 나올 겁니다... 그렇다고 저 이상의 등급 상향은 제쪽이 사양합니다...;;; 성인 소설은 성인 소설란에 쓰는 게 맞다는 생각에서 말이죠. ㅡ_-)a

* 정규마스터님에 의해서 문피아 - 자연 - 판타지 (gof) 에서 문피아 - 하 - 연재 완결(etc_fine) 으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03-19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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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Requiem Mass - 전쟁 08.03.07 206 2 10쪽
37 Requiem Mass - 전쟁 08.03.07 220 2 12쪽
36 Requiem Mass - 전쟁 08.03.05 152 2 10쪽
35 Requiem Mass - 전쟁 08.03.05 241 2 10쪽
34 Requiem Mass - 전쟁 08.03.05 207 4 10쪽
33 Requiem Mass - 전쟁 +2 08.03.04 396 2 12쪽
32 Requiem Mass - 전쟁 +2 08.03.04 288 2 12쪽
31 Requiem Mass - 전쟁 08.03.04 344 2 14쪽
30 Requiem Mass - 전쟁 08.03.01 150 2 16쪽
29 Requiem Mass - 전쟁 08.03.01 309 2 11쪽
28 Requiem Mass - 전쟁 08.03.01 194 2 11쪽
27 Requiem Mass - 전쟁 08.03.01 174 2 12쪽
26 Requiem Mass - 전쟁 08.03.01 237 4 13쪽
25 Requiem Mass - 전쟁 08.03.01 172 2 9쪽
24 Requiem Mass - 전운 08.02.24 289 3 17쪽
23 Requiem Mass - 전운 08.02.24 175 2 11쪽
22 Requiem Mass - 전운 08.02.23 276 2 11쪽
21 Requiem Mass - 전운 08.02.23 313 3 10쪽
20 Requiem Mass - 전운 08.02.23 187 2 10쪽
19 Requiem Mass - 전운 08.02.22 237 2 11쪽
18 Requiem Mass - 전운 08.02.21 293 3 17쪽
» Requiem Mass - 전운 08.02.21 208 7 12쪽
16 Requiem Mass - 전운 08.02.21 300 2 9쪽
15 Requiem Mass - 전운 08.01.12 346 4 13쪽
14 Requiem Mass - 전운 +2 08.01.06 451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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