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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quiem Mass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Delco
작품등록일 :
2008.03.08 21:35
최근연재일 :
2008.03.08 21:35
연재수 :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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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29
추천수 :
110
글자수 :
224,276

작성
08.01.06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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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Requiem Mass - 전운

DUMMY

레이언과 에즈밀라가 황태자와 만나 협상에 대한 최종확인을 끝난 그날 저녁. 2황자는 변함없이 자신의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최근 그가 빠져들은 건 전술에 대한 내용이 담긴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악마들이나 쓸 법한 치졸한 전술이라는 동양의 전술들이 꽤 흥미로웠다. 자신들의 서양대륙에서라면 패배가 확실한 경우 무조건 항복이라는 것으로 상대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게 전쟁이라면 동양인들은 정말 끝까지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생각이 들만큼 그들의 전술은 살벌했다.


“대단하군, 역시… 세레이언의 전 기사단장이야.”

“…”

“어이, 어이. 황자에 대한 예의는 어디 간 거냐?”


어디선가 나타난 레이언은 2황자의 등에 칼끝을 대고 서있었다. 시선은 그대로 책을 향한 채 느긋한 자세로 읽던 책을 마저 읽던 2황자는 묵묵부답의 레이언의 태도를 장난어린 말투로 반박했다. 레이언 역시 2황자가 책에 집중하고 있지 않다는 건 이 방에 침입하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던 일이었다. 다만, 실험해보고 싶어졌다고 할까?


“…헛소리 하지 마. 이대로 네놈의 목을 따버릴 수도 있다.”

“…훗! 자네가 그럴 작정이었으면 이런 수고도 하지 않지. 안 그런가?”


틀린 말이 아니었다. 레이언은 2황자 등을 찌를 듯 누르고 있던 칼끝을 거둬들였다.


“형님을 만났었다고?”

“…”

“과묵한 게 언제나 도움이 되는 건 아냐.”

“…”


레이언은 끝까지 아무런 말없이 2황자의 주위를 돌아 2황자를 마주보고 선 뒤, 2황자의 책상 위에 작은 금속물체를 던졌다. 둔탁한 금속이 부딪히며 책상 위에 올라앉았다. 그건, 작은 반지였다.


“이건?”

“오늘부터 시크레스트 가문은 2황자 길버트 슈렌로드 마레크 마레이언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합니다.”


레이언은 무릎을 꿇지도 않고 2황자를 똑바로 노려보며 마치 책을 읽듯 빠르고 정확한 발음으로 충성의 서약을 읊었다. 그러자 2황자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도 못하고 레이언을 쳐다보았다. 그러다


“…훗. 후후…크크큭…크하하하! 이거, 이거! 나 2황자 길버트 슈렌로드 마레크 마레인은 시크레스트 가문의 충성을 받아들이노라. 크크큭, 웃기는 군. 정말 재미있어. 안 그런가? 연인을 죽인 자에게 충성한다니. 크크크”


2황자는 이제 아주 배를 끌어안고 웃기 시작했다. 이 정도로 시끄러우면 호위기사들이 뛰어 들어와도 이상할 게 하나 없는 상황. 2황자 역시 그 사실을 알기에 웃음을 속으로 삼켰지만, 한동안 그 끈적끈적한 웃음은 계속되었다.


“…다 웃었나?”

“그렇다면?”


레이언은 품 안에서 이번엔 덱샤를 꺼내들어 2황자의 눈앞에 내밀었다. 덱샤의 화면엔 타루엘과 2황자가 맺은 협상의 내용과 함께 협상의 내용에 따라 지원군으로써 레이언 루벨 드 시크레스트를 보낸다는 글이 떠있었다. 2황자는 그 글을 찬찬히 읽어보고는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아까보다는 많이 수그러진 웃음이었다.


“천하의 레이언이 원수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이거 정말 오래살고 볼 일이야. 안 그런가? 후후후”

“…”

“하늘에 있을 리엔이 정말 좋아하겠…”


퍽!


더 이상 참지 못한 레이언이 2황자의 멱살을 잡고 벽으로 밀어붙였다. 작은 소리와 2황자의 등이 벽에 부딪히는 순간 레이언의 허리춤에서 뽑힌 칼이 2황자 눈 바로 옆의 벽에 박혀있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2황자의 등에 느껴진 충격은 컸지만 바람계열 중 음파를 조종하는 사일런스 마법으로 소리가 줄어든 탓에 밖에서 들렸을 리는 없었다.


“…흥. 날, 죽이려고? 그랬다간 네 주인이라는 자와 맺었던 협…”

“…닥쳐! 한마디만 더 하면 네놈의 입부터 찢어주겠다.”


레이언의 갑작스런 행동에 2황자는 적잖게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긴장했다. 그러나 레이언이 손을 놓고 멀어지며 칼까지 허리춤에 다시 끼우고 나자 그 긴장도 오래가지 못하고 금세 시비조의 비웃음을 입가에 그려보였다.


“…날 죽이시겠다고? 기대하지.”


그러나 비웃는 2황자는 아직 그 긴장이 풀리지 않았는지 목소리가 살며시 떨리고 있었다.


“…하나 묻지. 누구냐?”

“응?”


레이언의 뜬금없는 질문. 그러나 2황자 역시 레이언이 한 질문의 의미 정도는 알고 있었다. 반문한 건 그저 순순히 말해줄 생각이 없었던 것 뿐. 그걸 아는 레이언의 인상은 더욱 차갑게 변해갔다.


“…원로회겠지? 당연하게도 구 귀족이나 세레이언은 아닐 테니까.”


2황자의 얼굴이 놀랍다는 표정으로 바뀌어졌다. 그러나 그 표정은 큰 웃음소리로 곧 바뀌었다.


“큭큭, 역시 넌 제거대상 1호였어. 그래, 네 예상대로 내게 손을 벌려준 건 우습게도 원로들이다.”

“그렇군. 그래서 황태자가 내 소식을 듣지 못했던 거였군.”

“우습지 않나? 원로들이 황태자가 아닌 내 편을 들어준 것이?”


그다지 신기할 것도 우스울 것도 없었다. 황실과 구 귀족, 그리고 원로회의 관계를 알고 있는 자라면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구 귀족들이라면 몰라도 원로회 늙은이들이라면 황태자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 정도는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선대황제 때부터 내려오는 황실과 구 귀족세력과의 연대관계 때문이었다.

본래라면 황실과 유대관계가 좋은 쪽은 구 귀족세력보단 원로들이어야 하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현재 황실은 그렇지 못했다. 주변국들에 대한 통일정책으로 인해 너무 잦은 출병이 문제가 되어 출병을 반대하는 원로들과 황제가 직접적으로 대립하게 된 것이 이 상황까지 오게 된 이유였다. 물론 2황자가 황제가 되어 원로들과 대립하게 될 일이 없을 거라는 확신이나 그런 기대 같은 걸 말하는 게 아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약속할 수 있었다.


“멍청한 협상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으면 좋겠군.”


2황자가 황제가 된다면, 이제부터 황실은 원로들의 입김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는 결론만 남았다는 것이다.


----------


레이언이 2황자와 이중계약을 맺고 있을 때, 에밀리는 짐을 꾸리고 있었다. 새벽에 출발하는 비행정을 타고 킹세티 지역으로 날아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킹세티 지역에서 무역업을 하며 뒤로는 레이언에게 무기를 만들어 대주는 그레이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물론 무기 문제가 아니었다. 무기 쪽 문제는 지금까지 그레이가 대준 것만으로도 한동안은 견딜 만 했다. 그레이를 만나야 하는 이유는 그레이에게 부탁했던 또 다른 한 가지 사안에 대한 것이었다.


“몇 시에 출발하는 비행정이라고 했지?”

“3시요.”


짐을 다 싸고 1시간 떨어진 공항으로 출발하기 위해 방을 나서자마자 방 앞에 서 있는 여자를 보게 되었다. 루드비아였다. 그녀 역시 작은 크기의 여행용 가방을 끌고 있었다.


“같이 가.”

“네? 하지만…”

“하델로든, 수도든 간에 레이언 자식을 만나려면 여기보단 킹세티 지역이 훨씬 가까워. 게다가 오랜만에 그레이 아저씨도 보고 싶고.”

“…네, 같이 가요.”


에밀리는 약간의 고민 끝에 흔쾌히 승낙했다. 어차피 킹세티까지 가는 동안 혼자서 가는 건 지겹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 중 하나였다. 뭐, 지겹다고 해도 어차피 대부분 수면시간일 테지만.


----------


레이언은 아침 일찍 시크레스트 가에 들렸다. 새벽공기를 마시며 도착한 저택은 일찍 일어난 시종들과 시녀들의 바쁜 움직임이 정원과 저택의 창 너머로 간간히 보이고 있었다. 저택에 도착하자마자 집사인 프랭크의 안내를 받아 응접실로 들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미 깨어 준비하고 있었던 듯, 단장을 마친 미셸이 응접실로 들어왔다.


“너무 일찍 와서 잠을 깨운 건 아닌지 모르겠군.”

“아뇨, 괜찮습니다. 일은 무사히 마치셨습니까?”


아직 일어나기엔 너무 이른 시각인 탓에 단장을 했다곤 하나 온 몸을 누르고 있는 잠의 유혹까진 완전하게 벗어나진 못한 것 같았지만, 며칠 전과는 사뭇 다른 조금은 당당해졌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자세로 레이언을 마주 바라보는 미셸이었다. 레이언이 가주로써 미셸을 인정했으니 미셸로써도 조금은 가주로써의 당당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것이었다.


“아아, 2황자가 흡족해하더군.”

“네, 그러셨군요.”


미셸은 레이언을 향해 가볍게 웃어보였다.


“…내가 반지를 빌려간 이유에 대해선 두 번 묻지 않는 건가?”

“시크레스트 가문이 2황자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이 있었나요?”

“아니, 없다.”


레이언에게 있어 반지를 빌려간 것에 대한 그 외의 목적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럼 괜찮은 것 아닌가요?”

“…반란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또한 반란이 일어나면 죽을 지도 모른다. 그걸 모르진 않겠지?”


레이언은 지금 미셸의 마음을 떠보는 것이었다. 아직 이렇다할 확정적인 대답을 듣지 못했다. 그저 반지를 빌려주기만 했을 뿐, 미셸은 반란에 ‘참가한다.’ 혹은 ‘하지 않는다.’ 라는 대답을 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니 일단 미셸의 대답이 필요했다. 때에 따라선 시크레스트 가문이 무너지는 것으로써 반란의 시작을 알리게 될 수도 있는 일이니까.


“황제의 편에 서든, 2황자의 편에 서든 어차피 반란은 벌어지게 되는 거 아니었나요?”

“…훗! 오만인가? 자신감인가?”

“자신감일 것 같군요. 무엇보다 레이언, 당신이 이 가문을 당신의 목적에 끌어들였으니까요.”


대답은 확실히 들었다. 그리고 그 대답을 통해 레이언은 미셸에 대해 한 가지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역시나 말로는 이길 수 없는 여자였다. 가주로 인정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이 정도의 자신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는 것 자체만 봐도 레이언이 쉽사리 이길 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후후… 뭐,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일단 무슨 일이 벌어질 거라는 걸 알고 있다면 2황자가 바라는 게 뭔지는 잘 알고 있을 테니 굳이 두 번 말하지 않도록 하지.”

“네.”

“그럼 이만 일어나보겠다. 피곤할 텐데 깨워서 미안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그럼, 배웅은 여기서 하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그래, 그럼…”


레이언은 집사인 폴의 안내를 받으며 저택을 빠져나왔다. 이제 남은 건, 에즈밀라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


잡설 1.

다음화부터가 전란의 전초가 그려질 겁니다.

지금까진 중요한 인물들의 등장이었을 뿐, 특별한 건 없었죠...

그럼 다음에는 2화. 전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잡설 2.

다음주부터 연재 주기가 조금 길어질 것 같습니다. 이틀이나 삼일에 한번 꼴로 올라올 것 같습니다. 쓸데없이 바빠서요.




연재합니다.

* 정규마스터님에 의해서 문피아 - 자연 - 판타지 (gof) 에서 문피아 - 하 - 연재 완결(etc_fine) 으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03-19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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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Requiem Mass - 전운 08.02.22 237 2 11쪽
18 Requiem Mass - 전운 08.02.21 293 3 17쪽
17 Requiem Mass - 전운 08.02.21 208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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