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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가 님의 서재입니다.

가상 현실의 고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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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이다가
작품등록일 :
2024.01.17 13:39
최근연재일 :
2024.04.01 08:00
연재수 :
7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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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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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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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4화. 축제

DUMMY

가상 현실의 고인물

044화




오랜만에 피아노 앞에 선다.

가끔 취미 삼아 치기도 했으니 오랜만은 아닐 것이다.


‘생각해 보면 누나의 재능이 넘사벽이라 그렇지 나도 있는 편이었던 것 같은데.’


천천히 자리에 앉았고 그런 나를 바라보며 윤설 누나는 가벼운 미소를 지어준다.

오랜만에 앉아서 그런가 평소와 다른 기분이 든다.

주변은 침묵에 내리 앉았고 엄마도 그런 나를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나 혼자 자격지심 느끼지 말고, 오랜만에 해봐야지.’


물론, 여전히 그런 생각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보다 머리는 차가워지고 손은 가벼워진 것은 맞다.

피아노 건반에 천천히 손을 올린다.

악마적인 재능을 지녔다고 불리우는 윤설이 누나처럼 나도 하면 되는 것이다.


쇼팽 - 에튜드 Op. 10, No. 4


이것이 오늘 내가 칠 곡이고 내가 피아노 배울 때 다들 잘 친다고 칭찬했던 곡이다.

추격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곡이기도 하다.

물론, 나의 실력은 그리 좋지 않아 조금 미스도 많이 날 것이고 약간 간소화시킬 것이다.

왼손의 유창성을 위한 연습곡이라나 뭐라나,

내가 익혀봤는데 그냥 양손 다 박살나는 곡이다.


‘무슨 페달을 밟았더라?’


솔직히 말하면 지금 제대로 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감이야, 다 감.

칭찬받고 기쁜 나머지 미친 듯이 쳐서 외울 수밖에 없던 곡이다.

점차 파티장 내부에 퍼져 나갔고 숨죽여 모두 이 곡을 듣기 시작한다.


‘아니, 딴 생각은 멈춰.’


손이 움직이는 것처럼 별칭에 맞게 추격신을 찍는 것처럼,

천천히 하면 되는데 괜히 가족들의 천재성에 짓눌려 도망친 것처럼,

하면 된다.

그리고, 양손으로 도#을 치는 것으로 곡을 마무리한다.

박수 소리가 들려 왔고 너무 오랜만에 듣는 소리에 나는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땀을 닦아냈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 * *


윤설과 나머지 가족들은 모여 막내의 모습에 흐뭇하게 미소를 지어 보인다.


“확실히, 피아노에 재능이 있었는데 갑자기 왜 틀은 건지. 진짜 조금만 더 했으면 유학 보내는 거잖아.”

“윤설아. 네가 너무 천재라서 그런 거야.”


첫째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저었고 윤설은 그런 그의 말에 물음표를 띄우며 말한다.


“아니, 내가 볼 때는 나보다 쟤가 더 천재인데?”

“그런 것이 바로 천재의 재수 없는 포인트란다.”


몇몇 가족 구성원만 알아차린 피아노를 즐기던 그가 피아노에서 손을 뗀 이유를 윤설은 모르고 있었다.


“뭐야, 벌써 내려오는 거야?”


윤설이 시선을 돌리며 그렇게 말하자 그들도 인정한다는 듯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

바깥쪽으로 나온 건우는 가볍게 술을 마셨고 그런 그의 옆에는 아까 꼬맹이가 다시 찾아왔다.


“아저씨, 미워요.”

“응?”

“피아노 못 친다면서요.”


건우는 실제로 스스로 피아노를 못 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더 천재적인 피아니스트 윤설이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일 뿐 그의 실력은 꽤 좋은 편이었다.

그 또한 물음표를 띄우며 고개를 갸우뚱거렸고 소녀는 그런 그의 다리를 퍽하고 치고는 빠르게 달려간다.

아프지도 않은 다리를 어루만지며 건우는 천천히 술을 들이마신다.


‘그런가? 나도 잘 치는 건가?’


그의 스승인 윤설과 엄마는 딱히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아서 몰랐다.


‘다 안 치는 이유가 피아노에 재능 없어서 그런 것 아니던가?’


그래서 그 또한 그런 이들처럼 피아노에서 손을 뗀 것인데 갑자기 잘 친다라.

순수한 아이인 만큼 그녀의 평가는 어느 정도 맞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어느 정도 틀린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옆에 윤설이 천천히 걸어 온다.


“음?”

“동생아. 도대체 넌 피아노에 손을 왜 놓은 것이니.”


그게 아니었다면 벌써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었을 것 같은데.

시선을 피하며 약간 미간을 좁혔고 술잔에 입을 댄다.


“거봐라. 너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았더냐.”


그 뒤에서 연이어 가족들이 다가왔고 건우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이에 건우는 가볍게 고개를 까딱거리며 말한다.


“엄마, 생일 축하드려요.”

“건우야 생신이 존칭이란다.”


건우는 그렇게 말하는 둘째를 바라보며 노려보듯 보았고 이는 알고 있는 사실을 왜 굳이 말하냐는 뜻과 같았다.


“음, 이왕 존대말 할 것이면 다 하는 것이 어떤가 싶어서 그렇지.”


가족도 감당되지 않는 무서운 건우의 얼굴이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가족끼리 밥을 먹게 된다.


* * *


딸깍, 딸깍, 딸깍,

자동차 내부에서 그런 소리가 울려 퍼졌고 하품을 가볍게 내뱉으며 조수석에서 멍하니 바깥을 바라본다.

오랜만에 본 가족은 너무 술을 잘 마셨다.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있는지 너무 궁금할 정도로,


‘갑자기 누나가 피아노 치겠다며 가다가 토하고, 어휴.’


난리도 아니었다.

아무런 말 없이 옆에 지나가는 자동차를 바라던 그때 옆에 있던 형은 나에게 말을 건다.


“너 하고 싶은 거 많이 해라.”

“이미 하고 있어요.”

“가족 눈치 보지 말고 하라고.”


순간 뜨끔했지만 아무 말 없이 시선을 옮긴다.


“너 예전에 피아노에서 손 놓겠다고 했을 때도 말했지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 돈을 우리가 줄게.”


그러면서 그는 결혼은 죽어도 못할 수도 있다며 농담을 내뱉고는 호탕하게 웃는다.


“너 피아노에서 손 놓았을 때 미련이 너무 넘쳤던 거 알아? 그리고 사람 보는 곳에 피아노를 친 너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즐거워 보였어.”


그런가, 엄마의 핏줄은 어디로 도망가지는 않는다는 것인가.

피아노 재미있기는 하다.

근데 표정이 다 드러날 정도라니,

나는 그 정도의 표정 변화가 있었는지도 몰랐다.


“넌 항상 무엇이든 우리 눈치를 보다가 망치더라.”


그러면서 옛날이야기를 꺼냈는데 대다수 내가 숨겼다고 생각했지만 숨겨지지 않은 이야기였다.


“역사 싫다면서 역사 이야기를 가장 좋아하고.”


그냥 그때 사춘기라서 싫은 척하고 싶었다.


“그림 잘 그릴 수 있다고 그렸는데 솔직히 진짜 못 그렸어.”


애초에 우리 가족 모두 그림에는 영 소질이 없다.

예술 작품을 보고 감상평을 내리라면 잘 쓰겠지만 나보고 그런 예술 작품을 그리라고 한다?

다시는 예술 작품을 보러 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재미있다고 했는데 별로 즐거워하는 표정은 아니었어.”


미술은 피아노를 관둔 다음 날부터 시작한 새로운 취미였다.

무엇이 되었든 피아노가 주던 그 청각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네가 뭐랑 자신을 비교하며 낮추고 성공에 열망하는지 알아. 그러니깐 그런 행위는 관 둬.”


언젠가 스스로 깎아 먹을 테니.

맞는 말인가?

맞는 말이다.

근데 자아 성찰을 한 번 하면 나는 그것을 깨닫고 있어도 바꿀 수 없다.


“그럼, 잘 가.”


형은 차를 멈췄고 벌써 내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나는 자동차에서 내린 후 엘레베이터를 타고 비밀번호를 눌러 그리운 집 안에 들어선다.

창문 바깥을 보기도 했고 오랜만에 구석에 잠겨 있던 피아노를 꺼내기도 했다.


“피아노, 피아노라.”


이참에 그냥 다른 뉴튜브 하나 더 팔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럴 실력이 되지도 않고 해도 성공할 자신이 없다.

티비 앞에 앉아 티비를 바라보고 있으니 아무런 것도 집중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책을 보자니 집중이 되지 않는다.


‘산책이나 가야겠다.’


술을 그렇게 마셨는데 주변 공원을 향해 발을 옮긴다.

걷고, 또 걸었고,

지고 있던 해가 더 져 달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얼마나 걸은 거냐.”


그런 생각을 하며 휴대폰에 깔린 만보기에 들어가니깐 이만 보 걸었다고 떠있었다.


“개 오래 걸었네.”


아직 생각 정리를 끝내지 못했는데 늦은 시간에 적당히 맛있는 부대찌개를 산 이후 집으로 들어간다.


* * *


밥을 다 먹고 할 것도 없어서 방 안에 들어간다.


“방음 부스를 사야 하기는 하는데.”


가만히 생각하던 나는 간단히 결정을 내렸고 이사하기로 결정한다.


“이참에 방음 부스도 사고, 피아노도 하나 사고.”


집도 아마 곧 계약이 끝날 것이다.


“아 그걸 물어볼 걸.”


나는 수고스러움을 들여 톡에 들어가 형에게 톡을 보냈고 나의 예상대로 다음 달에 만료된다고 한다.

술 마시고 바이올린을 쳐서 소음 공해를 한 나를 주인이 좋아하지도 않을 테고 여러 가지 이유로 재계약은 받아주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내 통장 잔고에는,

충분한 돈이 남아 있었다.

나는 신나는 마음을 부여잡은 채 곧바로 집 찾는 어플에 들어간다.


* * *


종철은 수기와 시연에게 여러 가지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건우가 오늘 어머니 생신이라 못할 것 같아요.”

“응? 그때는 뭔 일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미친놈이 까먹고 있다가 그때 생각났다고 하네요. 참고로 형이 데리러 왔어요.”


수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가 보다 했고 임시연도 마찬가지였다.

임시연 또한 최근 생일일 한 인물이 떠올랐다.

세대가 이렇게 크게 바뀌기 전에, 그리고 피아노 전공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인물이 말이다.

독재 정권이 자리 잡기 전 한국을 피아노로 알린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한때 국뽕하면 떠오르는 인물 중 한 명이었던 적 있었다.

여전히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렇게 불리기는 하지만 대중적인 인기를 잃어버린 지는 꽤 되었다.


‘그분도 생신이시겠네.’


갑자기 난 생각에 임시연은 가볍게 생각했고 이어지는 종철의 말에 완전히 생각에서 지운다.


“아무튼, 그래서 우리 다음 합방은 내일모레 하기로 했습니다.”


모두 동의했고 그들은 곧 방송을 켠 이후 그들끼리 따로 합방할 예정이었다.

요즘 잠을 영자지 못해 피곤하기는 하지만 아마 방송 중에 잠들 일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캡슐에서 몸을 일으킨 임시연은 터덜터덜 걸어가 자리에 누웠고 힘 빠지는 몸에 정신까지 맡긴 채 바다에 떠다니는 해파리처럼 몸을 만든다.


“잠, 잠 와라.”


서서히 눈이 감겼고,

수면제를 끊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그리 질이 좋지 않은 수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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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067화. 무제 24.04.01 3 0 11쪽
66 066화. 무제 24.04.01 3 0 11쪽
65 065화. 무제 24.04.01 3 0 11쪽
64 064화. 산으로 간다, 산으로 가 - 더 헌터 죽어가는 세상 24.04.01 4 0 10쪽
63 063화. 힘의 균형 - 더 헌터 죽어가는 세상 24.04.01 3 0 14쪽
62 062화. 힘의 균형 - 더 헌터 죽어가는 세상 24.04.01 4 0 12쪽
61 061화. 힘의 균형 - 더 헌터 죽어가는 세상 24.04.01 4 0 11쪽
60 060화. 힘의 균형 - 더 헌터 죽어가는 세상 24.04.01 6 0 13쪽
59 059화. 힘의 균형 - 더 헌터 죽어가는 세상 24.04.01 4 0 14쪽
58 058화. 수도 방위전 - 더 헌터 죽어가는 세상 24.04.01 4 0 13쪽
57 057화. 수도 방위전 - 더 헌터 죽어가는 세상 24.04.01 4 0 14쪽
56 056화. 수도 방위전 - 더 헌터 죽어가는 세상 24.04.01 4 0 12쪽
55 055화. 병 24.04.01 7 0 11쪽
54 054화. 연기와 그들 24.04.01 5 0 13쪽
53 053화. 연기와 그들 24.04.01 5 0 11쪽
52 052화. 야만적 존재 - 라이프 데드 애프터 24.04.01 5 0 14쪽
51 051화. 야만적 존재 - 라이프 데드 애프터 24.04.01 5 0 10쪽
50 050화. 유인원의 왕 - 라이프 데드 애프터 24.04.01 4 0 11쪽
49 049화. 유인원의 왕 - 라이프 데드 애프터 24.03.19 9 0 14쪽
48 048화. 유인원의 왕 - 라이프 데드 애프터 24.03.18 10 0 12쪽
47 047화. 멸망해버린 도시 - 라이프 데드 애프터 24.03.16 8 0 13쪽
46 046화. 멸망해버린 도시 - 라이프 데드 애프터 24.03.15 11 0 12쪽
45 045화. 멸망해버린 도시 - 라이프 데드 애프터 24.03.15 12 0 13쪽
» 044화. 축제 24.03.14 1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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