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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우스K 님의 서재입니다.

크라이 오브 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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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우스K
작품등록일 :
2021.04.05 20:25
최근연재일 :
2021.05.20 21:51
연재수 :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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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3
추천수 :
383
글자수 :
230,487

작성
21.04.17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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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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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글자
12쪽

[제5장] 영지전? 어디 한번 붙자!-02

DUMMY

웅성대는 소리가 내 귓전을 울려온다.


하긴 그들로서는 뜻밖의 상황일 것이다. 농성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성문을 여는 위험을 무릅쓰고 자살희망자라도 되는 양 한 사람이 홀로 기어나왔으니 이해하기 어려웠으리라.


“뭐 하는 놈이냐! 뭣 때문에 혼자 다가오는 거냐?”


부대의 선봉을 이끄는 지휘관으로 보이는 놈이 소리쳤지만 무시했다. 어차피 저 녀석이 아니라도 입을 열 작정이었다.


나는 한껏 마나를 돋워 이 평야에 자리한 사람들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말했다.


“나는 트로미온 영지의 임시가주인 데이스 덴 트로미안이다. 내 그대들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고하고자 한다.”


웅성대는 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하긴 놀랄 만도 하다. 한 영지의 주인이 호위도 없이 단독으로 성 밖을 나온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니까.


물론 그중에서는 머리 좀 돌아간다는 놈들은 내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해내려고 머리에 쥐나도록 고심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거 다 헛짓이긴 하지만.


나는 더욱 마나를 돋워 다음 말을 이어갔다. 마나가 실린 내 음성은 수많은 병사들의 웅성거림에도 또렷이 퍼져나가 그들의 귓전에 선명히 닿았다.


“지금부터 나는 나와 트로미온 영지를 적대한 모든 자를 멸살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니 그에 동참하고 싶지 않은 자들은 물러서라. 물러선다면 나의 검은 그들을 단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물러서지 않는 자에겐 오로지 죽음만이 남게 될 것이다.”


뭐 내용은 간단하다. 죽고 싶은 자는 덤비고, 죽기 싫은 자는 따로 떨어져 있어라. 그런 의미였다.


나도 마구잡이로 사람을 죽이는 도살자는 아니므로 죽여야 할 수를 줄이고 싶은 마음에 일단 경고를 시도해본 것이다.


그제야 내 말뜻을 알아챘는지, 영지연합군 중 썩 듣기 거북한 음성이 반박하듯 울려왔다. 마법사가 음성증폭마법을 걸어준 탓인지 소리 하나는 우렁우렁하다.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네놈 혼자서 뭘 하겠다고? 가소로운 것 같으니! 이 대군을 보고 나서 두려운 나머지 아예 미친 모양이구나! 크흐흐, 내 마음 크게 써서 자비를 베풀 터이니 머리를 조아리고 항복하는 게 좋을 거다. 그러니 쓸데없는 짓 그만 하고 성문이나 열어라!”


뭐, 예상했던 반응이다. 하긴, 혼자 나와서 이렇게 말하면 어느 누구라도 저렇게 나오겠지.


시야를 넓히자 방금 소리친 자로 짐작되는 꽤 투실투실한 자 하나가 들어왔다. 복장이 화려해 보이는 것이, 나 우두머리라고 써 붙인 듯한 인물.


아이즈가 가져온 초상화들을 통해 파악해놓은 자였다.


간프라는 그 싹수 노란 녀석의 주인이자 로엔트 영지의 주인인 로엔트 백작. 영지연합군 중 가장 높은 작위를 가진 녀석이다. 물론 이번에 끌고 온 군사도 3만에 달해 그가 가장 많았다.


게다가 그동안 가문을 몰락 지경까지 압박해온 원흉이라 할 만한 자.


물론 알아본 바에 의하면 그 배후는 따로 존재하지만 드러난 자들 중에서는 그가 가장 윗선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녀석을 보는 순간 가슴속에서 불길이 타오르는 듯했다.


하지만 여기서 계획을 그르칠 수 없는 일.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다시 소리 높여 외쳤다.


“귀족들에게 강제로 집집당한 병사들이여, 그리고 잘못된 주군을 만나 불의한 일에 동원된 기사와 가신들이여, 그대들의 의지를 보여라. 잘못된 길에 동참하지 말고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행하라. 잘못된 길을 향한 자의 종결은 파멸일지니 뒤늦게 후회하지 말고 신중히 생각하도록. 때를 놓친 후에는 내 검에 자비는 없을 것이라.”


나는 허리춤의 애검 레일그라프를 뽑고는 머리 위로 높이 들었다.


단순히 말로는 설득이 안 되니 무력을 보여서 설득할 생각이었다. 물론 귀족들이나 지휘관들은 어렵겠지만, 무지한 평민들로 이루어진 병사들이라면 먹혀들어갈 가능성이 높았다.


전신의 충만한 마나가 검으로 흘러들자 검푸른 오러가 길게 뻗어 올라 하늘을 꿰뚫을 듯한 기세로 그 광채를 뿌렸다.


그 길이만 장장 9페킷!


제대로 된 마나 소드가 없는 현대에서는 이 정도의 오러 블레이드를 뽑아낼 수 있는 자는 아마도 나 외엔 없으리라.


병사들은 사색이 되어 두려움에 떨었고, 귀족들 또한 상상치 못한 사태에 혼란에 잠겨버렸다. 그만큼 초월적인 오러의 위력이 가져다준 충격은 가공했다.


“허억! 오, 오러 블레이드!? 그것도 9페킷을 넘어서는 길이라니!”


“신영주가 소드 마스터였다니! 역시 뭔가 믿는 힘이 있었군.”


“저와 같은 장대한 길이라니! 저런 말도 안 되는 경지의 소드 마스터는 없었어!”


물론 현대의 소드 마스터들은 내 눈엔 부족하긴 해도 나름대로 귀한 전력이라 할 수 있다. 상대의 기세를 꺾고, 무인지경으로 돌파할 수 있는 그 능력은 높이 살 만하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드 마스터가 무적이란 말은 아니다. 다수의 기사들로 철저한 협공과 차륜전을 펼친다면 감당할 수 있고, 체력에도 한계가 있기에 물량공세에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현재 귀족들이 이끌고 온 전력은 소드 마스터란 예상 밖의 변수가 등장한다 해도 뒤집을 수 없는 막대한 것이지만, 내가 보인 힘은 일반적인 소드 마스터와는 차원이 다르다.


한 번도 보지 못한 놀라운 오러로 인해 내 힘과 전력을 측량키 힘들었으리라.


“이것이 내가 가진 힘이니, 이 응징의 검을 두려워하는 자는 빠져라! 그대들의 상관에게 명령 불복종으로 이탈하는 것이 내 검에 생명을 잃는 것보다 나을 것이니!”


하늘을 향해 높게 뻗어 올라가는 오러 블레이드의 기운을 타고 거대한 기세가 사방으로 내뻗는다.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기세. 그 기운에 모든 이들이 몸을 떨었다.


그것은 본능.


초식동물이 육식동물을 보며 떨듯, 산 자인 그들이 사자인 내게서 풍기는 진한 살의를 본능으로 느끼고 떤 것이다.


거기에 오러 블레이드라는 가공할 광경까지 인식되자, 내 계획대로 병사들 중 하나 둘 이탈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적은 숫자였지만 내가 기세와 살의를 더욱 강하게 뿌리자,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가히 통제 불능의 상황에 이른 것이다.


“나, 나는 살고 싶어!”


“귀족들 때문에 강제로 끌려와서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아!”


“으아아!”


서로를 밟고 밟는 이탈이 사방에서 벌어졌다. 강제로 징병당한 병사들에게 있어 전쟁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저 자신의 생명이 소중할 뿐이다.


“이, 이놈들이 어딜 간다는 거냐!”


“벗어나지 마라! 열을 이탈하는 자는 즉결처분하겠다!”


사방에서 지휘관들이 아우성을 치며 행렬을 이탈하는 병사들을 향해 검을 휘둘러갔다.


한마디로 본보기를 보여 병사들에게 이탈하면 반드시 죽는다는 공포를 심어줄 셈이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지. 여기서 이탈한 병사들이 죽게 놔둔다면 내 계획은 어긋나버린다. 하지만 저들을 막아준다면 병사들의 이탈은 더욱 가속화되겠지.


그렇기에 지금이 바로 내가 나서야 할 때!


나는 하늘로 들어올렸던 검을 내려 한창 병사들 몇을 베고 있는 지휘관들을 향해 내뻗는다. 오러는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사납게 울부짖고, 검은 몸서리치게 떨고 있었다.


고오오오!


검 끝을 벗어난 수십에 달하는 오러의 파편이 눈부신 궤적을 그리며 쏘아졌다.



블랭크(Blank, 탄강)!



그 강렬한 파괴의 결정체가 흔적을 남긴다.


콰아앙! 콰콰쾅!


지축을 뒤흔드는 요란한 폭음! 수십여 개의 오러 덩어리는 무참한 기세로 나아가 병사를 도륙하던 지휘관들을 폭사시켜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젖어드는 순간의 정적이 사방을 지배했다.


마치 신전의 성당을 연상케 하는 고요함 가운데, 나는 다시 경고를 이어갔다. 두려움에 젖은 수많은 눈들이 소리 없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스스로의 의지로 이탈하는 사람들을 강제하는 자는 지금처럼 내 검에 죽게 됨을 명심하도록.”


그 말에 어느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다. 방금 그 경고를 어긴 자들의 최후를 목격한 이상, 목숨을 걸고 병사들의 탈영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이미 상당수의 병사들이 군진에서 멀어져 사방으로 개미떼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지휘관들이 몰살한 이상 더 이상의 통제는 불가능하다.


물론 기사들도 있긴 하지만 그들은 돌파를 위해 가장 선봉에 열을 지어 모여 있는 상황이라 도움을 줄 형편이 아니었다.


“마, 막아! 막으란 말이다! 네놈들이 어디로 도망가겠다는 거냐!”


로엔트 백작을 비롯해 귀족들이 흉악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발악했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행렬을 이탈하지 않는 건, 고작 4만 정도. 그것은 그들이 철저하게 훈련받고 교육된 정예 병사들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어차피 나머지는 모두 훈련은커녕 이번에 처음으로 창 한번 잡아본 징집병들. 그러니 저런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겠지.


하여간 덕분에 내 손으로 죽여야 할 자들은 많이 줄어들었다. 여전히 4만이란 숫자는 가볍게 볼 수 없지만, 그래도 다행으로 여겨야 하겠지.


내가 내심 안도하는 그때, 저 멀리 선봉의 무리에서 두 명의 사내가 걸어나왔다.


전신에 갑주를 걸쳤지만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듯 나른한 걸음걸이. 그 속에는 보이지 않는 자신감과 오만이 자연스럽게 배어나오고 있었다.


“이래서야 오합지졸밖에 안 되는군. 역시 급조한 녀석들로는 안 되는 건가?”


“그것보다는 상대가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봐야겠지.”


“하긴 대단하긴 하군. 그렇다고 해서 우리를 한꺼번에 감당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두런두런 대화 소리가 들려온다. 뭐 자신감의 발로인가? 후, 느긋한 발걸음에 느껴지는 기세로 보아 세상에서 말하는 마스터급은 되어 보인다.


뭐, 그래 봐야 반쪽짜리 소드 마스터이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 마나양이 무지막지하니 제법이라 할 정도였다.


“후, 이제 메인디시의 등장인가?”


그들의 존재감은 처음 군이 출전했을 때부터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내게 변수조차 되지 못한다. 그만큼 진 마스터와 반쪽짜리 마스터 사이에 존재하는 간격은 상상 이상으로 크기 때문이다. 고작 둘로는 나의 발걸음을 지체시키는 것조차 불가능한 일.


천천히 걸어온 그들이 이윽고 내 앞에 멈춰 섰다. 쉰은 족히 넘어 보이는 푸른 머리칼의 사내와, 금발의 사내. 그들의 전신을 감싼 갑주는 화려한 문양들이 그려져 있었는데, 대항마갑주로 보였다.


그 중 푸른 장발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별로 놀라는 표정이 아닌 걸 보니 이미 알고 있었던가?”


“쿡, 그렇게 방대한 마나를 풀풀 풍기고 있으면서 느끼지 못하길 바란다면 그거야말로 웃기는 일이지.”


그렇다. 그들의 전신에서 풀풀 풍기는 마나는 마나에 대해 약간이라도 자질이 있다면 얼마든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것. 그런데도 그것을 어떻게 알고 있었냐고 묻는 저들이 웃기는 거다.


“클클클, 이건 어쩔 수 없다네. 소드 마스터쯤 되면 마나양이 워낙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음? 그러고 보니 처음 나타났을 때 자네는 소드 마스터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마나가 느껴지질 않았는데?”


“이제 알았나? 반쪽짜리 소드 마스터여. 자신의 마나도 통제 못하면서 어찌 마스터란 광오한 칭호를 쓰는 건지. 대담도 하시지.”


나의 낮게 이어진 비웃음에 두 소드 마스터가 발끈하며 기세를 가일층시켰다.


“젊은 나이에 마스터가 된 것을 가상히 여겨 선처해줄 생각이었거늘. 죽고 싶은가?”


“클, 아무래도 마나의 기척을 차단하는 아티팩트 따위를 갖고 있는 모양인데, 그 정도로 기고만장하면 안 되지.”


후, 전신의 마나를 체내에 완전히 갈무리한 이 경지를 고작 아티팩트 정도로 생각했던가? 하긴 그렇기에 고만고만한 경지에서 기고만장한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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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1장] 300년 만에 깨어나는 자-01 21.04.05 1,520 1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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