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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우스K 님의 서재입니다.

크라이 오브 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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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우스K
작품등록일 :
2021.04.05 20:25
최근연재일 :
2021.05.20 21:51
연재수 :
44 회
조회수 :
19,411
추천수 :
383
글자수 :
230,487

작성
21.04.05 20:30
조회
1,519
추천
18
글자
11쪽

[제1장] 300년 만에 깨어나는 자-01

DUMMY

《깨어나세요!》


아득했던 의식이 또렷해지기 시작한다. 어디선가 울려오는 간절한 파동이 깊은 심연 속의 혼돈에서 허우적대던 나의 의식을 일깨운다.


《부디 깨어나주세요!》


절실함이 묻어나오는 강한 염원(念願)!


그것은 몇 번이고 울려왔다. 마치 내가 깨어날 때까지 계속될 것처럼 말이다.


이러니 일어나지 않을 도리가 없군.


마치 무수한 파편처럼 흩어져 표류하던 나의 의식은 하나가 되었고, 서서히 부상했다. 그리고 겨우 자리를 잡은 나의 정신은 급기야 물밀듯이 밀려오는 오랜 기억의 잔재로 인해 신음성을 토하고 말았다.


“큭!”


마치 뇌수가 달아오르는 듯한 격통! 단번에 수많은 기억들이 되돌아오는 반작용은 나를 일시 공황상태에 빠지게 했다.


그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나 자신을 지칭하는 것, 나란 존재를 명명하는 단어.


“나는··· 나는··· 데이스 덴 트로미안.”


아직 눈뜨지 못한 채 내가 토해낸 음성이 거칠게 뇌리를 두드린다. 나 자신의 존재의 진명을 인지하게 되자, 기억들은 더욱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나는 나 자신이 누군지, 왜 잠들어 있었는지 모두 기억해낼 수 있었다.


이제··· 일어날 시간이다.


오래 잠들어 뻑뻑해진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귓전으로 탄성이 들린다.


“아!”


눈을 뜨고 보니 횃불로 희미하게 밝혀진 석실 천장이 들어온다. 그리고 이를 배경으로 두 사람의 놀란 시선이 관 안에 뉘어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직 열다섯 남짓한 금발의 소년과 구릿빛으로 단련된 중년의 기사.


불쾌한 기분이 엄습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정리했다. 눈을 뜨자마자 누가 빤히 내려다보는 시선을 느끼게 되는 건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지만, 지금은 사소한 걸 논할 때가 아니다.


나란 존재는 깨워서는 안 될, 아니 본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야 할, 법칙에 위배된 존재니까. 만약을 위해 스스로 소멸되지 않고 나 자신을 봉인시키긴 했지만 다시 깨어날 날이 있을 거라곤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300년 만에 깨어나셨군요.”


소년이 먼저 말을 열었다. 그 목소리는 감격에 차 울먹이고 있었다.


300년이라······. 꽤 오래도 잠들어 있었군.


나는 몸을 일으켰다. 300년이란 세월이 흘렀건만 약간 뻣뻣한 걸 제외하면 육신의 상태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하긴, 죽은 녀석이 더 이상 나빠질 리가 없지.


곧게 몸을 펴고 어두운 석실을 등진 채 스스로 선 나는 소년을 응시했다. 나의 영면을 깨운 자이자, 나에게 목적을 가지고 온 소년. 과연, 내게 무엇을 원하는 것인가.


“네가 나를 깨웠나 보군. 누구더냐, 너는?”


소년에게 던져진 나의 질문은 지당하다. 나의 존재를 아는 자들은 한정되어 있다. 나 데이스 덴 트로미안의 가문인 트로미안 가문의 가주와 직계 소주인, 그리고 지금은 살아 있을지 알 수 없는 친우뿐.


오랜 세월에 마모되어 나온 무미건조한 어조에 소년은 몸을 떨었으나, 감정을 억누른 침착한 어조로 인사해왔다.


“21대손 레나딘 덴 트로미안이 8대조 할아버님을 뵙습니다.”


문득 눈앞의 소년과 한 인물이 겹쳐 비쳐졌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잊히지 않는 그리운 얼굴. 이 아이의 얼굴에는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


“아나드의 직계 후손인가?”


“예.”


그렇군. 과연··· 아나드의 후손이었던가.


“이미 나에게는 세월이 의미가 없으니 너를 조카로 대하마. 그러니 앞으로 삼촌이라 부르도록 하거라.”


나하고는 까마득한 세월을 둔 후손이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동생 흔적이 남아 있는 후손과 거리를 두고 싶진 않았다. 녀석이 날 깨운 목적을 이룰 때까지는 삼촌과 조카 관계가 적당했다.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도 녀석이 언제까지 조상이라 부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레나딘도 이를 깨달은 듯 쉽게 수긍하며 바로 호칭을 바꿨다.


“예, 삼촌. 그리고 이 사람은 저희 가문의 기사단장인 카마트 님이지요.”


“처음 뵙습니다. 기사단장 카마트 트로마겐입니다. 앞으로 많은 지도 부탁드립니다!”


이어진 조카의 소개에 나는 힐끔 중년 기사를 훑어봤다.


하지만 그 결과 꽤 실망스러웠다. 고지식하고 충성스럽게는 보이나 대충 보니 익스퍼트 상급, 아니 중급이나 되려나? 마나양은 상급인데 체내에 흐르는 마나 로드는 매우 불순한 게 중급을 간신히 넘긴 정도야. 한 가문의 기사단장을 하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하군. 더군다나 트로미안가는 알크리온 제국의 최고 기사 가문이었는데도 저 지경이라면 현 가문이 어떤지 보지 않아도 뻔하겠어.


하지만 굳이 무안 줄 필요는 없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고는 조카에게 시선을 던졌다.


“흠, 날 깨웠다 함은 그만큼 가문이 어렵다는 걸 테고. 그런데 가문을 계승하기에는 아직 어린 네가 날 깨우다니··· 당대 가주는 어찌된 게냐?”


그렇다. 나는 분명 잠들기 전, 내 아우 아나드에게 가주 자리를 물려주면서 당부했었다. 가문이 멸문할 위기가 아닌 한 결코 나를 깨워선 안 된다고. 사리사욕으로 날 깨운 자는 반드시 가법으로 처단한 후 다시 잠들겠노라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를, 그것도 저렇게 어린 후손이 와서 깨웠다 함은 그만큼 가문이 어렵다는 말이 되는 거다. 뭐 기사단장의 수준만 봐도 바로 알 수 있지만.


“돌아가셨어요. 이웃 영주인 버팔 백작이 고의로 시비를 걸어 기사대전을 벌이셨는데, 결국······.”


제길······! 어찌된 거지? 기껏 내가 목숨을 버리고 언데드가 되어가면서까지 가문을 되살려놨는데 불과 300년 만에 풍비박산이 나버리다니! 최고의 기사가 되어야 할 트로미안의 가주가 고작 버팔 가문 하나 못 이겨 죽었다고? 기가 막히다 못해 헛웃음마저 나올 지경이다.


“어찌된 거냐? 버팔 가문 따위에게 패하다니. 본가의 마나 소드(Mana Sword:운기검형運氣劍形)는 독보적인 절기다. 그런데 어찌 질 수가 있단 거냐? 차라리 달걀이 바위를 깼다는 말이 현실성 있을 게다.”


“모두 잃었죠. 100년 전에······.”


“······.”


“당시 본가에 큰 화재가 났었어요. 그때 마나 소드를 완성한 사람들은 불길에 돌아가셨죠. 그래서 그 당시 살아남은 몇몇 기사 분들이 기억하는 반쪽짜리 마나 소드로 겨우 맥을 잇고 있을 뿐이에요.”


“마나 소드를 완성했다 함은 소드 마스터가 되었다는 건데, 소드 마스터가 불에 타 죽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릴!”


익스퍼트급만 되어도 뛰어난 육체 능력으로 불길 따윈 쉽게 피할 수 있다. 한데 전신을 마나로 보호할 수 있는 소드 마스터가 불에 타 죽었다는 건 레드 드래곤이 불에 타 죽었다는 말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뭔가 음모가 있었던 게로군.”


“심증은 있었지만··· 모두 불에 타서 남은 증거가 사라진 데다가 가문에 남은 힘이 모자라······. 어쩔 수 없었어요.”


300년 만에 깨어나 듣게 된 가문의 현실은 암담함 그 자체였다.


몰락해도 이렇게 철저히 몰락할 수 있단 말인가!


하긴, 눈앞의 조카란 녀석만 해도 열다섯 나이에 겨우 마나 유저다. 평범한 자라면 제법 뛰어나다고 평가받겠지만, 옛 본가의 위용을 생각해보면 저열하기 그지없는 성취였다.


그렇게 탄식한 나는 가라앉은 어조로 물었다.


“그래, 현 상황은 그렇다고 치지. 그럼 내게 바라는 건 잃어버린 마나 소드인 거냐, 아니면······.”


“가문을··· 가문을 다시 일으켜주세요.”


“휴우······.”


역시 예상했던 요구다. 다시 과거의 반복인가? 하지만 나서지 않을 도리가 없군. 듣지 않았다면 모를까 가문의 위기를 안 이상 이대로 놔둘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녀석에게 물었다.


“네 나이가 몇이냐?”


“올해로 열다섯입니다.”


“좋다. 돕도록 하지. 하지만 네가 성인이 될 때까지다. 그때까지는 내가 기반을 다져놓으마. 그 이상은 바라지도, 요구하지도 말아라.”


성인이 되어 가문을 계승하는 것은 20세. 그렇다면 앞으로 5년의 시간이 있다. 그때까지만 가문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으면 되는 것이다. 그 뒤는 이 녀석의 능력에 달린 일.


“예. 감, 감사합니다!”


한 줄기 희망을 잡게 되어서일까, 아니면 무거운 짐을 한결 덜게 되어서일까? 감격한 듯 눈물을 쏟는 조카의 모습에 난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고 말았다.


죽고 난 이후, 다시 언데드가 되어 대지를 다시 딛게 됐지만 이러한 기대와 감사를 받는 것은 여전히 어색하다.


나는··· 법칙에서 위배된 자. 깊은 흑암의 나락에서 뛰쳐나온, 혐오와 공포의 대상.


나는··· 죽음에서 일어난 자, 세상에 존재하지 말아야할 자인 거다.


그것이 바로 나, 데이스 덴 트로미안이다.



* * *


깊은 지하 봉인지에서 벗어난 나와 레나딘 일행 앞에 펼쳐진 건 드넓은 갈색의 대지였다.


하라한의 황야(荒野).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던 황폐화된 대지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었다. 과거 마왕이 강림했었다는 이곳은 언제나 마나가 뒤틀려 흐른다. 그렇기에 풀 한 포기 나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고, 사람은 물론 동식물도 살 수 없는 곳으로서 거의 500여 년에 가깝게 방치된 곳이다.


그렇기에 인적이 있을 수 없는 쓸모없는 땅.


내가 이곳을 나 자신의 봉인지로 지정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지.


“300년이 흘렀어도 이곳은 변함없는가······.”


“아, 예. 아무리 인간이 발전해도 자연을 어찌할 수는 없으니까요.”


딱히 대답을 바란 건 아니지만, 레나딘은 조심스럽게 답한다.

아무래도 까마득한 선조 앞이라 일거수일투족을 긴장한 채 행동하는 거겠지.


휘이이잉!


사납게 불어오는 바람이 할퀴고 지나간다. 지극히 메마른 그것은 황폐한 대지를 스치고, 내 마음마저 매섭게 헤집어왔다.


나는 이미 잊힌 자다. 아니 잊혀야 할 자.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 다시 현세로 돌아가고 있다.


뭔가 약간 혼란해진 듯한 기분. 아니, 나 자신부터가 뭔가 이상하다. 나 자신이 300년 만에 깨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세월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부터가 이상하고, 가장 이상한 것은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나의 존재다.


처음 깨어났을 때는 몰랐지만, 지금 되짚어보면··· 과거의 기억이 뭔가 괴이했다.


의식이 부상할 때, 떠오른 기억들. 그것들은 마치 되살아난 것이 아닌, 무언가로부터 주입된 것처럼 내게 몰려들었었다.


그리고··· 지금은 떠올릴 수는 없지만, 무의식 속에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지식과 기억들이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 자리한 정체불명의 무언가도······.


과연 그것은 뭐란 말인가? 나의 이면에 자리한 무의식인가, 아니면 알지 못할 또 다른 불명의 존재인가.


아니면··· 어쩌면 데이스 덴 트로미안이 아닌, 그의 기억을 주입받은, 또 다른 존재일지도 모르지.


후우, 어느 쪽이라 해도 결코 기뻐할 수는 없는 입장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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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장] 300년 만에 깨어나는 자-01 21.04.05 1,520 1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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