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레니우스K 님의 서재입니다.

크라이 오브 데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레니우스K
작품등록일 :
2021.04.05 20:25
최근연재일 :
2021.05.20 21:51
연재수 :
44 회
조회수 :
19,425
추천수 :
383
글자수 :
230,487

작성
21.04.08 22:56
조회
689
추천
13
글자
13쪽

[제2장] 가문의 현실은 암담하다-02

DUMMY

* * *



대략 7일쯤 걸었을까? 본디 10일쯤 걸릴 거리를 통과하는 데 우리가 소요한 시간은 대략 그 정도였다.


그리 험한 여정은 아니었지만 카마트와 레나딘은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렸다.


뭐, 나야 본디 지칠 리 없는 존재였고, 두 녀석은 아무리 훈련을 겸해왔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체력이 부족할 줄이야. 가문에 있는 녀석들은 두말할 것도 없겠군.


그렇지만 나름대로 성취는 있었지. 하체 훈련 하나는 튼실하게 되었으니까. 제대로 된 스텝을 밟으며 균형을 잃지 않고 검을 휘두를 기초가 된 상태이니 앞으로 무얼 가르쳐도 성취가 빠를 것이다.


그렇게 가벼운 여정 끝에 도달하게 된 성벽을 바라보는 일행. 희색이 완연한 것은 카마트였다.


“으흐흐, 이제 겨우 도착했군요, 트로미온에!”


이, 기사 양반아. 표정 관리는 좀 하는 게 좋을걸. ‘이제 훈련에서 해방이다!’라는 식으로 좋아 죽으려고 하는군. 하여간 나잇값을 못한다니까.


나는 그런 그를 살며시 노려봐준 다음에 조카에게 시선을 돌렸다. 녀석도 지친 것은 마찬가지지만 드러내놓고 저리 좋아 날뛰지는 않는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레나딘의 어깨가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녀석이 낮은 음성으로 뇌까린다. 그 안에는 숨길 수 없는 감격이 담겨 있었다.


“삼촌, 이제 훈련은 더 안 하는 거죠?”


“······.”


너마저도 배신을 때리는구나.




어찌되었든 무사히 도착한 나와 일행은 성문을 통과했다. 흙먼지와 땀이 범벅이 되어 상거지 꼴에 이른 카마트와 레나딘을 성문지기가 알아보지 못해 작은 소동이 있었지만 그건 가볍게 넘어가기로 하자.


일단 소가주와 기사단장이 무사히 돌아왔다는 소식이 내부에 전해지자, 가신들이 우르르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복장을 보아하니 집사부터 해서 마법사, 기사들까지 나올 대로 다 나온 모양이다.


그 중 나이가 지긋하게 먹은 60대 노년의 사내가 나와 레나딘을 맞이했다.


“돌아오셨습니까, 소가주님. 정말이지 고생이 많으셨군요. 그동안 얼마나 험하게 지내셨기에 이런 모습이 되셨습니까? 이럴 것 같아 몰래 나가지 말라고 그렇게나 당부드렸건만······.”


그는 조카 녀석의 손을 잡으며 울먹이고 있었다.


아마도 반쯤 상거지 꼴을 하고 나타난 덕분이겠지.


곧 노년의 사내는 눈물이 일렁이던 눈동자 위에 분노의 불꽃을 피워올리며 그 화살을 옆으로 돌렸다.


“카마트 단장! 도대체 어떻게 모셨기에 소가주께서 이런 모습이 된단 말이오? 자신의 직분을 너무 소홀이 여기는 것 아니오?”


“그, 그게······.”


카마트는 당혹스런 표정으로 주저주저하더니 어떻게 하냐는 듯 풀죽은 강아지처럼 나를 돌아본다. 하긴 이번 귀환 여정은 내 지시대로 했으니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다, 이거겠지.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묘하게 기분이 상한다.


그런 내 기분을 눈치 챈 것일까? 레나딘이 재빠르게 나서서 수습에 나섰다.


“집사, 이분은··· 본가의 방계 친척이십니다. 이번 여정은 이분을 모시기 위한 거였죠. 부족한 가문을 위해 많은 일을 해주실 겁니다. 앞으로 잘 모시길 바랍니다.”


그 말에 집사는 순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비친다. 하긴 한 가문을 총괄하는 집사 자신이 모르는 방계 일족이라는 말은 너무나 뜻밖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본래의 표정으로 돌아가 공손히 인사해왔다.


“아, 그러시군요. 집사인 로하엘 하르시프입니다. 영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가 인사하자 모두들 자기소개를 해온다. 하지만 외부 인물이라는 인식 때문인지, 아니면 어디서 영지를 차지하기 위해 굴러온 사기꾼 아닌가 의심하는 건지 표정들은 그리 좋지 못하다. 게다가 진 마스터로서 신체가 재구성된 후에 언데드가 되어 새파랗게 젊어 보이니 더더욱 그렇게 보이겠지.


그나마 그 중 표정관리가 되는 건 노련해 보이는 집사뿐인가.


하아, 격세지감이로구나. 옛날 내 시대 같았으면 감히 나와 눈도 마주치지 못했을 텐데.


“영지법사인 바즈엘 엘트니카입니다.”

“기사단의 부단장인 카라반 하야트입니다.”

“재정관인 레일 하노트라입니다.”


여러 사람들의 인사를 받은 나는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네들, 내게 딱 걸렸다네. 앞으로 고생문이 훤할 테니 기대해도 좋을 거야.


“반갑네. 나는 데이스 덴 트로미안이라 하네. 이 아이의 삼촌뻘 되지. 앞으로 잘 부탁들 하네. 앞으로 얼굴 마주할 일이 많을 게야.”


미묘한 어조에 담긴 의미를 느낀 것일까. 집사의 안색이 약간 굳어지더니 다시 평소의 얼굴로 물어왔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왕 이렇게 모인 거 아예 선언해두는 게 좋겠지.


“앞으로 5년. 레나딘이 성인이 될 때까지 내가 트로미안가의 영주로서 너희들을 관리하겠다는 말이지.”


잠시 침묵이 장내를 지배했다. 갑작스런 내 선언이 다들 충격적이었는지 할 말을 잃고 서 있었다. 레나딘도 설마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나올 줄 몰랐는지 멍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내 분노한 감정들이 얼굴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심지어 병사들과 기사들은 명이 떨어지면 당장에라도 날 참살할 분위기였다.


안절부절못하며 바라보는 사람은 레나딘과 카마트뿐이다.


분위기는 살벌했지만 몰락해가는 와중에도 그나마 인심은 잃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밀려왔다.


전신을 푸들푸들 떨고 있던 집사가 분노를 담은 어조로 모두를 대표해 물었다.


“그게··· 무슨 망발이십니까?”


“망발? 나도 트로미안가의 혈통인데 망발까지 갈 거야 있나?”


“혈통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게 아닙니다. 당신께서 트로미안가의 혈통을 이었을지는 몰라도 영주의 자리를 잇는 건 오로지 직계들뿐입니다.”


그래도 트로미안 혈통이라는 말에 조금 누그러진 말투였지만 여전히 살기가 넘실넘실 느껴지는 어투였다.


이렇게 된 이상 장난은 그만둬야겠군.


“어디까지나 나는 레나딘에게 정식 요청을 받아 임시 영주가 되는 것뿐이다. 그것도 5년짜리 단기 영주지. 그게 그리도 못마땅한가?”


나는 가공할 기세를 담아 말했다.


“으윽! 하지만······.”


“레나딘으로부터 부탁받은 건 가문의 부흥이었다. 내게 주어진 5년. 그동안 트로미안가를 옛날처럼 우뚝 세워주지. 그러니 더 이상의 반론은 받지 않겠다.”


“······.”


내가 퍼트린 기세의 대상은 집사뿐만이 아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는 아마 심장이 멎을 것만 같은 체험을 했을 터였다. 내가 그리 쉽지 않은 자라는 것을 깊게 새겨줘야 앞으로도 일이 편해질 터였다.


하지만 레나딘이 끼어들면서 나는 기세를 거둘 수밖에 없었다.


“집사, 그만 하세요.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정이에요. 게다가 이 일은 저 혼자 결정한 것이 아니라, 선대의 유언이기도 해요. 그래서 카마트 경도 함께 동의하고 다녀온 거죠.”


결국 레나딘의 도움으로 숨을 돌리게 된 집사는 허탈한 얼굴로 말했다.


“휴, 알겠습니다. 그동안 힘드셨을 텐데 어서 들어가서 여독을 푸시지요. 여기서 언제까지 있을 수는 없지요.”


“그러는 게 좋겠어요, 삼촌.”


“그러자꾸나.”


손을 잡고 이끄는 조카의 행동에 그만 나는 웃으며 뒤를 따랐다. 후후, 오늘만 날이 아니니 이만 물러나주지. 그러나 기강은 확실히 잡아주마. 나는 성격이 더러워서 내 머리에 기어오르는 놈을 용서한 적이 없거든.


하지만 집사와 조카를 따라 성문 안으로 향하던 나는 잠시 멈춰 서고는 가신들을 향해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무턱대고 짓밟을 순 없으니 작게 경고라도 해줘야지. 저들에게는 선전포고가 되겠지만.


“참고로 말하는 건데, 소가주와 카마트 경의 모양새가 저리된 건 여기까지 오면서 나의 특훈을 받은 것 때문일세. 많은 발전이 있었지. 앞으로 자네들도 함께 동참하게 될 거야. 기대해도 좋을 거네. 후후후, 다음에 보세나.”


나는 굳어진 채 서 있는 가신들을 뒤로한 채, 걸음을 다시 옮겨갔다. 왠지 앞장선 조카의 표정이 하얗게 변한 것 같았지만 무시했다.


아, 오늘도 하늘은 맑고 화창한 게 좋구먼.


* * *


나의 등장으로 트로미안가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어디서 온 자인지, 도대체 족보에도 나오지 않는 나의 등장은 가신들에게 그만큼 놀람과 충격이 되었던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어린 가주를 속이고 가문을 차지하려는 악당으로 볼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런 악소문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5년 동안의 임시 가주이긴 해도 나는 분명 가문을 내 뜻대로 움직일 생각이고, 그런 반발쯤은 예상한 바다.


만약 내가 300년 전의 가주였다는 사실을 밝히면 가신들을 진정시키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나 비밀은 아는 사람은 적을수록 좋은 법. 솔직히 비밀의 중요성을 생각해볼 때, 카마트와 레나딘, 두 사람도 많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만약 내가 언데드로서 부활한 옛 가주라는 걸 세상이 알게 되면 트로미안가는 재건은커녕, 확실히 멸문당할 정도로 위험천만하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가신들을 다스리는 건 순수하게 내 능력만으로 해내야 한다는 상황이다.


뭐, 윗사람으로서의 능력을 보이고 위엄으로써 지배한다면 알아서 기겠지. 그래도 따르지 않는다면 가문에서 퇴출될 수밖에. 나는 그런 면에선 좀 단호하다.

하나 직면한 문제는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가주의 집무실에 앉게 된 내가 조카 녀석과 집사, 재무관으로부터 받은 보고는 나를 절망과 나락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내 손에 들린 서류가 부들부들 떨린다.


“익스퍼트급 기사들은 불과 다섯. 나머지 정식 기사들은 마나 유저? 거기다가 수련 기사들은 소드 유저고?”


어쩌다가 이리되었는지. 대륙 최고의 기사가문이라 불리던 트로미안가가 이 정도로 몰락했을 줄이야.


근위기사의 경우엔 최소자격요건이 중급부터지만, 일반적인 영지의 정식기사 자격요건은 대체적으로 익스퍼트 하급이라 할 수 있었다. 허나 본가는 기사의 본고장 같은 곳이라서 최소한 근위기사급 이상은 되어야 겨우 기사 작위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성세가 대단했다.


즉 왕실과 맞먹는 수준이었다는 거지.


한데 지금 수준이라면··· 어지간한 시골 영지만도 못했다. 아니 숫자는 많으니 좀 더 나은 건가? 하긴 기사대전에서 익스퍼트급 기사 넷이 죽은 것도 타격이 컸겠지.


“마법사는 4클래스 유저 하나. 3클래스 마스터 둘. 나머지 여섯은 2클래스 유저 수련 마법사라니······.”


몰락도 이런 대몰락이 따로 없다. 기사가문이라지만 우리 가문은 마법에 있어서도 그리 뒤지지 않았다. 기사인 나조차도 생전에 4클래스 마스터였으니······.


기사야 그렇다 쳐도 마법사는 내 능력으론 어쩔 수 없다. 내 기억에 남은 가문의 마법서의 내용을 필사해주면 되겠지만, 무턱대고 마법서만 준다고 해서 실력이 급상승하는 건 아니니 말이다.


“암담하군. 이놈들을 다 어떻게 키우지?”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남은 가문의 재정 또한 위기상황이었다. 안 그래도 없는 재물이 기사대전으로 가주를 비롯해 기사들이 줄초상 나는 바람에 장례를 치르느라 소모되었다.


거기다가 조카 녀석이 나를 깨운답시고 찾아오는 동안 사용한 마법 스크롤 구입비도 재정 타격에 한몫했군.


지금 영지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완전 거지로군.”


아마 이번 가을이 되면서 세를 걷지 못했다면 당장 내일 먹을 것을 걱정해야 했을 거다.


그리고 병력 상황도 그리 좋진 않았다. 병력들은 5,000명. 영지의 크기를 볼 때 기껏 치안 유지 수준을 약간 넘는 정도고 훈련 상태도 지극히 나쁘다. 장비는 그나마 기본은 되지만 이래서야 영지전 같은 건 어림도 없겠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선대의 가주들이 선정을 펼친 덕분에 영지민들의 평판이 나쁘지 않았고, 살림 또한 그런대로 사는 축에 속한다는 거다. 영지민들에게 그만한 저력이 있다면 어떻게 운영하는가에 따라 가문은 빠르게 회복할 수 있겠지.


하여간 가문의 현실은 말 그대로 암담하다.


“휴우······.”


나오는 것은 한숨뿐.


나는 물끄러미 집사와 재무관을 측은한 눈길로 응시했다. 그들도 그 눈빛에 담긴 의미를 알아챘는지, 그저 침울한 기색으로 한숨을 내쉬고 만다.


저자들, 이런 가문을 잘도 파산내지 않고 유지해왔군. 생각보다 능력 있어.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크라이 오브 데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4 [제4장] 거슬리는 놈은 마음 가는 대로 벤다-04 21.04.15 494 12 11쪽
13 [제4장] 거슬리는 놈은 마음 가는 대로 벤다-03 21.04.14 499 12 12쪽
12 [제4장] 거슬리는 놈은 마음 가는 대로 벤다-02 21.04.13 523 11 11쪽
11 [제4장] 거슬리는 놈은 마음 가는 대로 벤다-01 21.04.12 550 13 11쪽
10 [제3장] 임시 대리가주로 취임하다-03 21.04.09 601 12 14쪽
9 [제3장] 임시 대리가주로 취임하다-02 +1 21.04.09 627 13 12쪽
8 [제3장] 임시 대리가주로 취임하다-01 21.04.08 648 13 13쪽
» [제2장] 가문의 현실은 암담하다-02 21.04.08 690 13 13쪽
6 [제2장] 가문의 현실은 암담하다-01 21.04.06 796 13 12쪽
5 [제1장] 300년 만에 깨어나는 자-04 21.04.06 904 12 11쪽
4 [제1장] 300년 만에 깨어나는 자-03 21.04.06 951 13 12쪽
3 [제1장] 300년 만에 깨어나는 자-02 21.04.05 1,186 15 12쪽
2 [제1장] 300년 만에 깨어나는 자-01 21.04.05 1,520 18 11쪽
1 서장. 21.04.05 1,602 23 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