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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우스K 님의 서재입니다.

크라이 오브 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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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우스K
작품등록일 :
2021.04.05 20:25
최근연재일 :
2021.05.20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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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30,487

작성
21.04.1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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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제4장] 거슬리는 놈은 마음 가는 대로 벤다-04

DUMMY

“······.”


그리도 뻔뻔한 녀석의 말에 나는 잠시 할 말을 잊고 말았다. 도대체가 무슨 간을 씹어 먹었기에 사지라 할 수 있는 이곳에서 저리 행동할 수 있는 거지?


나뿐 아니라 가신들마저도 분노하다 못해 어이가 없었는지 차마 입을 열질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성깔 있는 자들이 있으니······.


기사들 중 가장 열혈사내라 알려진, 아니 열혈바보였던가?


하여간 익스퍼트 중급으로서 제법 전도양양한 기사 로한슨 베르단테가 벌게진 얼굴에 핏발이 선 표정으로 버럭 소리 질렀다.


“이런 땅속에 머리 처박을 코볼트 같은 놈들을 봤나. 뭐가 어째?”


꽤 직설적으로 튀어나오는 욕설. 뭐, 그쯤 해두는 게 좋겠지. 이런 잔챙이를 상대로 성을 내봐야 소용없는 일이니까.


다만··· 제법 거슬렸을 뿐이야.


“후흐흐, 아주 개그를 하고 있군. 사절단이 아닌, 완전 광대패거리였어.”


음산하게 흘러나오는 내 웃음에 좌중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욕설을 더 늘어놓으려던 배짱 좋은 로한슨마저도 움츠리며 물러섰다.


그것은 심연 깊은 곳에서 일어난 잔혹한 살의. 나조차도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음험한 야수와 같은 불꽃이다.


어쩌면 내가 언데드라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나를 지배하는 건 부정의 감정뿐이다.


평소 때는 드러나지 않지만, 감정을 건드릴 때는 여지없이 드러나는 잔혹한 야수.


겉으로는 살아 있는 척하지만, 이미 모든 것이 죽어버린 자의 분노. 어쩌면 즐거워하는 감정도, 흥미로웠던 감정들도 그저 음험하고 차가우며 잔혹하기 그지없는 본성을 가리기 위한 포장일 뿐일지도 모르지.


고오오오!


대기가 몸서리치게 떨려온다.


가신들은 물론이고 사절단 또한 쓰러질 듯 사색이 되어 겨우 서 있었다. 다만 가신들에게는 강한 위압을, 사절단에는 그저 미쳐버릴 듯한 살의를 집중시켰다는 게 다르지만.


아아, 좀 더 두려워해달라고. 그렇게 당당했으면서 왜 떨고 있나? 좀 전처럼 떳떳하게 허리를 펴시지?


고작 그 정도로 벌벌 떠는 것들이 내 앞에서 건방을 떨었다는 거냐. 기도 안 차는군.


나는 흉포하게 일어나는 마나의 기운을 거두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아니, 거둘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


“사자가 늙으니까 이젠 하이에나들이 설치시겠다?”


“······.”


더 이상 말할 필요는 없겠지.


나는 입가에 흉악한 미소를 그리며 선언했다.


“좋다. 가서 전해라. 이제 늙었던 사자는 다시 바디 체인지(Body Change, 환골탈태)로 젊어졌다고. 그리고 지금까지 설친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고 말이다.”


“그, 그게 무슨?”


자신의 예상과는 다르게 진행되자 당황한 나머지 고성을 터뜨리는 쥐상의 간프.


“그럼 저희 영지연합군 15만을 트로미온 영지 단독으로 대적하실 생각이십니까?”


두말할 것도 없다. 나는 잔혹하게 답했다.


“그깟 15만? 허수아비들 따윈 나 혼자 지워주지. 저승에서 두고 보는 게 좋을 거네. 아마 15만이나 되는 저승행 동무가 늘어나는 즐거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겠지.”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을······?”


설마 협상이 결렬될 경우는 생각해보지 못했는지 혼란스러운 듯 간프는 당혹스러운 눈동자로 조심스럽게 흘겨보고 있었다.


이제야 좀 볼만한 눈을 하고 있군.


하지만 그 눈,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정말로 맘에 들지 않았다고!


“여러 말 할 것 없지. 지금 그것이 내 뜻이고 나는 그 무엇에도 굽히지 않는다. 설사 왕명이라 할지라도 부당하다면 거부할 생각이거늘.”


300년 전이라면 감히 있을 수도 없는 일.


내가 눈살을 찌푸리면 권세를 자랑하던 귀족들 모두가 침묵에 잠긴 채 공포에 떨었고, 왕조차도 내 눈치를 봐야만 했다. 그리고 가끔 심기에 거슬리는 녀석들은 모두 목이 달아났지.


그런데 고작 주변의 떨거지 영주들 따위가 날 위협하다니!


그동안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이런 걸 보고 넘어갈 정도로 좋은 성격은 아니란 말씀이야.


300년 동안이나 잤는데도 이 성격은 어디 가질 않는구나.


쿡쿡쿡, 하긴 내가 언데드여서 그럴지도 모르지. 어둠을 살라먹고, 깊은 공포와 죽음 속에서 기어 나온 음험함의 화신. 겉껍데기는 젊고 화려하지만, 그 내부는 무엇 하나 진실한 것이 없는 거짓된 사자(死者)의 몸이다.


그러니 남의 시선에 신경 쓸 리가 없지. 모두 보내주겠다. 물론 시체만이지만.


나는 키득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생각한바 그대로 뇌까렸다.


“애초부터 곱게 보낼 생각은 없었다. 네놈들은 몸통을 놔두고 그 목 위의 쓸모없는 것만 가지고 가거라. 그것이 나의 선전포고가 되리라.”


말을 끝맺음과 동시에 잔혹한 살의가 공간을 지배한다. 그것은 나뿐만이 아닌, 이 자리에 있는 가신들과 기사들 모두의 분노다.


그러자 그 중 나름대로 성깔 있는 기사들이 더욱 웅성대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특히 그들의 가장 선임이라는 기사단장 카마트와 그 바로 아래 부단장인 카라반은 서로 피가 이어진 먼 친척임을 과시하듯 절묘한 호흡을 맞추며 그 분위기를 잘 살려가고 있었다. 아니 그동안 주변 영지들의 억압에 쌓인 분노를 이 기회에 해소하는 걸지도 모르지.


“자, 처형을 집행하지. 여기 온 놈들 중 어느 놈 간덩이가 더 부었는지 한번 무작위로 갈라봄세. 나는 이놈에게 걸겠는데, 자네는 어떤가?”


“그냥 그럴 필요 없이 죄다 까놓고 꺼내 놓는 게 편하지 않겠습니까?”


“오호라! 그거 좋은 생각일세. 일단 배를 까 간덩이를 꺼낸 다음에 목은 쳐서 영주들에게 보내고, 몸은 저 성 밖에다 널어놓으면 좋겠군.”


거참, 대단들 하십니다그려.


나조차도 듣기 기가 막힌 기상천외한 말들이 오가는 가운데, 사절단 일행들의 안색이 썩은 돼지의 간처럼 시커멓게 죽어갔다.


“사, 살려주십시오.”


“저, 저희는 어디까지나 사신 자격으로 왔습니다. 어디에도 사신을 위해하는 법도 따윈 없습니다요.”


좀 전의 당당함은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이젠 이구동성으로 살려달라고 아우성인 사신단 일행들.


그저 한심해서 웃음밖엔 나오지 않는다. 고작 이런 녀석들 때문에 나의 가문이, 나의 영지가 이토록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더욱 나의 분노를 부채질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분노가 외부로 표출되며 성난 외침으로 이어졌다.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녀석들이 내 앞에서 그런 건방을 떨었느냐!”


낮게 울리면서도 영혼마저 침탈하는 흉포한 포효!


그런 내 앞에서 그 누구도 두려움을 갖지 않는 이가 없었다.


“으헉! 저, 저는 그저 시키는 대로 한 것밖에는······.”


후후, 그 말을 믿으라는 건가? 물론 시키기야 했겠지.


하지만 내 앞에서 드래곤을 등에 업은 가디언처럼 수많은 영지의 힘을 믿고 위세를 떤 것을 내가 모르리라 생각하나!


그래, 간프 하락스. 쥐의 면상을 가진 간교한 자여.


그동안 세 치 혀로 수많은 사람을 농락하며, 그들의 절망을 양분 삼아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해왔겠지. 그리고 아부와 모함으로 얻은 그 위치로 남의 고혈을 빨고, 타인의 고통을 반주 삼아 자신을 속 깊은 곳까지 살찌워왔을 터.


이제 내가 그 판결을 내리지.


그러니 죽어!


쉬리리릭!


뻗어진 나의 오른손 검지에서 순간 시커먼 빛줄기가 쏘아져간다. 그것은 눈부신 속도로 뛰쳐나가 이윽고 간프의 목을 꿰뚫고 말았다.


“커··· 크르르르륵!”


나의 검지부터 길게 이어진 오러의 선 끝으로 간프의 꿰뚫린 목의 감촉이 선연하게 전해진다. 막힌 숨통으로부터 새어나오는 미약한 숨소리부터, 꿰뚫린 구멍에서 뭉클뭉클 새어나오는 피거품까지.


뭔가 말하고 싶은지 녀석은 숨을 컥컥거리면서도 입을 벌리려 했지만, 뚫린 구멍으로 숨이 새는지라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없었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은 가래 끓는 듯한 소리와 함께 한껏 고통스러워하며 숨을 헐떡이는 일뿐.


많이 괴로운가? 후후후 괴롭겠지. 그동안 지은 죄를 생각한다면 모자라지만, 더 이상 그 낯짝을 마주하는 것도 지겨우니 이쯤 끝내지.


촤아아악!


녀석의 목을 꿰뚫고 나왔던 오러의 선은 다시 원을 그리며 녀석의 목을 휘감더니 과일 꼭지를 따듯 그대로 머리를 잘라버렸다.


퉁! 떼구르르르!


허공을 날았다가 피분수와 함께 떨어지는 간프의 머리가 바닥을 요란히 굴렀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내지 않는다. 나의 분노는 아직도 사그라지지 않은 채 더 많은 생명을 원했다. 그래, 더 많은 피를 원한다. 이것을 제물로 삼아 나의 분노를 승화시켜 모든 것을 사르겠다!


간프의 죽음이 가져다준 충격에서 벗어날 시간도 없이, 휘어지는 오러의 선이 춤을 추듯 낭창낭창 뒤틀리며 남은 사절단들을 노리고 움직인다.


사랴랴랴!


공기를 가르며 허공을 가로지르는 그것은 마치 먹이를 노리는 영활한 뱀과도 같다. 마치 나의 음험함을 닮은 것처럼 그것은 공포와 혼란에 빠진 놈들을 사정없이 유린했다.


가늘고 길긴 하지만 그것은 순수한 오러로 만들어진, 오로지 죽음을 그려내는 파괴의 선. 그 무엇도 저항 없이 베어간다. 간혹 오러 섀도가 깃든 검도 보였지만, 그 정도로는 장애조차 되지 못한다.


“으아아악!”


“저, 저리 가!”


처절한 비명성과 아우성이 뒤범벅된 채 죽음의 나락을 향해 걸어가는 사절단. 나의 오러는 마치 생선을 엮듯 이리저리 똬리를 틀고 휘감으며 줄줄이 놈들의 목을 휘감아 올리고 있었다. 그것은 벗어날 수 없는 지옥의 올가미라 할 수 있는 것.


결국 촤라락, 하는 소리와 함께 20여 개의 머리가 일제히 피안개 속에서 날아올랐다.


그것으로 각 영지의 사절단 대표라 할 수 있는 자들은 모두 사라졌다. 남은 것은 그들의 호위와 시종이라 할 수 있는 놈들뿐.


나는 그들에게 잔인하게 웃으며 선언했다.


“자, 저들의 머리를 들고 네놈들의 주인에게 전해라. 이 영토를 노렸던 자는 모두 이렇게 해주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죽기 싫다면 죽음을 각오하고 덤비거나, 옛날 우리가 하사한 영토를 내놓고 도망가는 길밖에는 없으니 잘 생각해서 결정하라고 해두지.”


내가 손을 떨치자 잔인무도의 정경을 연출한 오러가 사라지고, 그에 매달렸던 사절단들의 머리가 살아남은 자들 앞에 차곡차곡 떨어져 쌓였다.


“으으으······!”


극도의 공포에 질린 나머지 이성을 반쯤 상실한 듯, 동공이 풀려버린 사절단 일행이 바닥에 주저앉아 온몸을 떨었다.


나는 더 이상 용무가 없는 그자들을 차가운 눈으로 응시하며 냉엄히 명했다.


“이제 볼일은 끝났으니 모두 끌어 내쳐라. 가져온 짐도 남김없이 성 밖으로 같이 내던지도록.”


더 이상 멈추지 않는다. 전쟁? 원한다면 치러주지.


대신··· 그 대가는 너희들이 치러야 할 거다. 만족할 만한 선혈의 향연을 너희에게 보여주지. 나는 적에게 용서를 모르는 잔혹하고 음험하며 나의 것을 놓지 않는 흉포한 야수일 뿐이니까.


그것이··· 오랫동안 잊어왔던 나의 본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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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제4장] 거슬리는 놈은 마음 가는 대로 벤다-03 21.04.14 499 12 12쪽
12 [제4장] 거슬리는 놈은 마음 가는 대로 벤다-02 21.04.13 523 11 11쪽
11 [제4장] 거슬리는 놈은 마음 가는 대로 벤다-01 21.04.12 550 13 11쪽
10 [제3장] 임시 대리가주로 취임하다-03 21.04.09 601 12 14쪽
9 [제3장] 임시 대리가주로 취임하다-02 +1 21.04.09 627 13 12쪽
8 [제3장] 임시 대리가주로 취임하다-01 21.04.08 648 13 13쪽
7 [제2장] 가문의 현실은 암담하다-02 21.04.08 689 13 13쪽
6 [제2장] 가문의 현실은 암담하다-01 21.04.06 796 13 12쪽
5 [제1장] 300년 만에 깨어나는 자-04 21.04.06 904 12 11쪽
4 [제1장] 300년 만에 깨어나는 자-03 21.04.06 951 13 12쪽
3 [제1장] 300년 만에 깨어나는 자-02 21.04.05 1,186 15 12쪽
2 [제1장] 300년 만에 깨어나는 자-01 21.04.05 1,520 18 11쪽
1 서장. 21.04.05 1,602 23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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