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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우스K 님의 서재입니다.

크라이 오브 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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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우스K
작품등록일 :
2021.04.05 20:25
최근연재일 :
2021.05.20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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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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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
글자수 :
230,487

작성
21.04.09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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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제3장] 임시 대리가주로 취임하다-02

DUMMY

“크헉!”

“켁!”


피를 토하며 주저앉아버리는 기사들. 그나마 부단장이라는 직함의 값을 하겠다는 듯, 겨우 창백한 얼굴로 버티고 선 카라반을 제외한 모든 기사들은 다섯 번째 걸음을 버티지 못했다.


“크으, 이··· 이것은!”


“불복종하겠다는 너희들의 마음이 가져다준 무거움이다. 만약 내게 복종할 마음이 있었다면 이 발소리에 결코 현혹되어 흔들리진 않았겠지. 하지만 대항하겠다는 마음을 가진 너희들에게는 아마도 천하가 무너지는 듯한 충격이었을 테지.”


“그런 게 가능할 리가······.”


하긴 믿기 어렵겠지. 아니 눈앞의 현실을 부정하고 싶겠지.


지금 내가 보인 건 단순히 마나양만 많아 소드 마스터가 된 자들과는 격이 다른 경지.


진 마스터에 이르러야 하고, 새로운 깨달음이 있어야 도달할 수 있는 마음의 검을 성취해야 가능한 거다. 하지만 일일이 설명해줄 필요도, 그럴 가치도 없겠지.


“믿지 않아도 상관없다. 분명한 것은, 지금 너희들은 결정해야 한다는 거다. 나에게 대항할 건지, 아니면 나를 섬길 것인지를 말이다.”


“으으······.”


분노로 몸을 떠는 카라반과 기사들. 하지만 그런 헛된 자존심은 내 앞에서는 하찮다.


“네놈들의 단장은 너희들의 반항을 한 번쯤 재롱으로 봐주라고 하더군. 그래도 수하라고 구제는 해주고 싶었던 모양이야.”


내가 던진 말에 무언가 느낀 건지, 기사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약간은 흔들렸는가? 그럼 아예 쐐기를 박아주지.


“하지만··· 반항하는 기사단은 존재할 의미가 없지.”


다시 던진 내 말이 그들에게 큰 파문이 되어 전해진다. 기사란 충성의 대상이 존재함으로써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 법.


가주의 죽음 이후, 지금까지 그들은 주인 없는 자들이었다. 레나딘이 존재했지만 취임조차 하지 못하는 어린 소가주에게 진심으로 복종할 리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다르지. 나는 정복하는 자, 만인 위에 군림하는 자다. 생전에 왕이 될 욕심은 없었지만 내 소유라 생각하는 것은 결코 놓지 않았다.


완전히 굴복하는 것이 신상에 좋을 게다. 나는 반항하는 자에겐 용서가 없거든.


잠들었던 300년을 제외하더라도 내가 살아왔던 삶은 짧지 않은 100여 년의 세월. 나는 음흉하고도 욕심 많으며, 결코 물러서지 않는 완고한 노인네다.


“여섯 번째 발걸음이다. 자, 부디 살아남길 바라마.”


이윽고 늦추던 여섯 번째 내디딤이 이루어졌다.


쿠우우웅!


느끼기에 따라 천지가 울리는 듯하면서도, 그저 조용한 일보. 그것은 소리 없이 다가든다.


“······.”


침묵이 흐르고, 내 일보가 내린 판결의 결과가 드러났다. 그것은 생각보다 더 뜻밖이었다.


“호오라, 다들 멀쩡하다니. 나를 따르기로 결심한 건가?”


놀랍게도 이번 발걸음의 기세에서는 한 사람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


나의 일보는 내게 대항하는 마음을 지닌 자만 굴복시키는 것. 그 말은 모두 내게 복종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몇몇은 피 토하며 나자빠질 거라 생각했거늘, 예상보다 더 대만족이다.


잠시 허탈한 표정을 짓던 카라반이 수하들을 돌아보더니, 이윽고 포기한 듯 머리를 숙인다.


“주군으로서 모시겠습니다.”


그가 무너지듯 한쪽 무릎을 꿇자, 그 뒤의 기사들 또한 파도에 쓸려나가는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고 말았다.


힘에 굴복했다는 사실이 조금 걸리긴 하지만, 일단은 이것으로 됐다. 임시가주로 취임한 후에 차차 이들의 마음을 달래도 늦지 않는다. 내 능력이라면 충분히 이들을 진심으로 복종케 할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내게 평생을 걸고 맹약할 필요는 없다. 내가 바라는 건 레나딘이 성인이 되어 가주가 될 때까지만이다. 5년이면 되겠지.”


너무 뜻밖이었던지 고개를 숙인 기사들의 머리가 반사적으로 쳐들려졌다. 그런 그들에게 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나를 의심하지 마라. 나는 나 스스로 오롯이 서는 자다. 그것이 검을 익히는 자로서의 마음가짐이지. 아무리 탐욕이 나도 가문을 가로채는 짓은 못한다. 욕심이 나면 스스로 그만한 가치를 일굴 수 있는데 조카의 것을 탐할 필요가 있겠나.”


물론 나는 욕심이 많은 자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 자신의 소유에 한정된다. 타인의 것에 욕심을 내는 게 아니라, 나의 소유가 내 손에서 벗어나는 것이 싫을 따름이다.


그렇기에 나는 조용히 오른손을 들었다. 내가 그들을 거느릴 만한 자격을 갖췄음을, 또한 나 자신의 가치는 이런 가문을 홀로 손에 넣을 수 있을 정도임을 이들에게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다.


“오, 오러다!”


“오러가 어찌 맨손에서!”


사방에서 터지는 경악과 함께 타오르는 검푸른 파괴의 빛이 손을 타고 길게 뻗는다. 그것은 미스릴 검이 아니면 오러 비슷한 가짜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자들과 격이 다름을 증명하는 것.


미약한 피륙으로 오러를 구현한다는 것은 지금 시대의 인간들에게는 상상조차 못할 일인 거다.


“보다시피 나는 강하다네. 일반적인 마스터들과는 격을 달리하지. 그러니 좋게 생각해보게나. 5년간 나를 따르는 것도 그다지 나쁘진 않을 테니. 나는 사람을 그냥 부리진 않는다네. 그만한 대가는 얻을 수 있을 게야.”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용무가 없는 나는 등을 돌렸다.


이제 남은 건 마법사들인가?


그때 등 뒤에서 혼란한 감정이 묻어나오는 카라반의 질문이 와 닿았다.


“당신은, 아니 주군께서는 뭘 원하시는 겁니까?”


“글쎄, 우선은 트로미안가를 과거와 같은 위상으로 끌어올리는 거겠지.”


잠시 묘한 미소를 지은 나는 의미심장한 말을 내던지고는 굳어진 기사들을 남긴 채 그 자리를 떠났다.


“그 뒤에는··· 한번 세상을 뒤흔들어볼까? 후후후.”



* * *


그 다음으로 향한 곳은 마법사들의 집합소, 흔히 영지마탑이라 불리는 곳이다.


비록 영지 내에서는 그다지 큰 영향력은 없지만, 그들이 가진 전략적 가치나 생활 마법은 더할 수 없이 유용한 것들이다. 비록 그 수준은 타 영지에 비해 떨어진다 하나, 그만큼 충성심은 높을 터.


어디까지나 내 위치는 가주의 대리이니, 그들에게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나 또한 5클래스 마스터의 마법사로서 그들 앞에 마나의 맹세로서 선언한다면 충분할 터였다.


마나의 맹세란 모든 마법사가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언령으로, 이에 걸고 맹세하면 결코 거역할 수 없다. 만약 맹세를 저버리게 된다면, 심장에 위치한 마나의 고리는 파괴되어 영원히 마법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마나의 맹세는 마법사에게 그 무엇보다 우선하므로, 나의 맹세는 가장 큰 신뢰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대대로 내려오는 영지마탑의 규모는 상당히 컸다. 층수만 해도 10여 층이 넘기에 오히려 높이만 따지면 영주성보다도 더 높다. 과거 가문이 흥성할 때는 7클래스 대마법사가 관장할 정도였지만 지금은 그 규모에 비해 사람의 능력이 부족하니 답답할 노릇이지.


그렇게 영지마탑에 다다른 나는 간단한 확인 절차를 거친 후, 탑주인 바즈엘과 마주할 수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데이스 님. 마탑에 방문하신 걸 환영합니다.”


나는 인사를 건네는 그의 두 눈을 조용히 응시하며 그의 신상을 떠올렸다.


4클래스 유저 바즈엘 엘트니카.


대대로 트로미안가의 마탑주를 맡아온 엘트니카가의 현 계승자로서 40 줄에 접어드는 중년의 마법사다. 그렇다고 그 핏줄이 대대로 내려온 건 아니고 선대의 탑주가 재능 있는 고아를 양자로 들여 그 성을 물려주는 방식으로 이어져왔다.


그렇기에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으나, 기사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마법들을 잃어버린 터라 배움에 한계가 생긴 상태라고 보고받았다. 덕분에 그는 그리 높은 수준의 마법사라고는 보기 어렵다.


간신히 견습 마법사의 꼬리를 떼고 정식의 이름을 붙일 만한 정도니 말이 좋아 4클래스 유저지, 사실은 3클래스 마스터라고 봐야 정확하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


“긴말하진 않겠네.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이번에 5년간 대리가주로서 취임하게 되지.”


“알고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건 하나네. 절대적인 복종과 지지. 그것이 전부지.”


“그건······.”


머리 좋은 마법사이니 이미 나의 뜻을 예상하고 있었을 거다. 다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대놓고 요구하니 난감하겠지.


“마나에 걸고 맹세하지. 자네들로부터 영원한 충성을 받을 생각은 없어. 그저 가문을 일으키고 다시 조카에게 온전히 돌려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네.”


기사들이나 마법사, 가신들이 염려하는 건 어디까지나 내가 가문을 장악할까 두려웠을 뿐. 그것만 해결된다면 더 이상 걸림돌은 사라진다.


하지만 바즈엘은 쓴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후, 뜻은 알겠지만, 기사인 당신께서 하는 마나에 건 맹세가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그에 답할 말은 단 하나다. 굳이 길게 말할 필요 없었다.


“나 또한 마법사다!”


“······!”


“나는 기사임과 동시에 마법사. 이미 마도사의 이름을 획득한 자라네.”


그렇다. 나는 마도사다. 마도사라 불릴 정도로 강력한 5클래스 마스터가 바로 나다.


하지만 나는 소드 마스터로서 엄청난 양의 마나마저 보유한 상태. 그것을 사용하면 사실상 그 이상도 가능하다.


쿠오오오오!


내 육신 주변에 한정되어 있던 무형의 마나 장벽이 급속도로 팽창해 영역권을 넓혀간다. 그것은 강대한 지배력으로 공고히 나만의 공간을 창출해내었다.


수 키리(킬로미터)에 이르는 이 영역 안에서 펼쳐지는 나의 마법은 그 무엇보다도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하리라.


“큭! 엄청난 마력장! 설마!”


바즈엘 또한 자신의 마력장을 구현하여 그 강대한 압력 앞에 대항했지만, 역부족인지 고작 5페킷 남짓하게 쪼그라든 상태. 아니 그보다는 그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경악이 떠올라 있었다.


“5클래스 마스터, 6클래스 익스퍼터지. 7클래스는 유저 정도인가? 그래도 자네보다는 한참 상위라고 생각되는데. 안 그런가?”


“······.”


그는 침묵했다. 그 말이 아니라도 그는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 본인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까마득한 격차.


5클래스 마스터라 했지만 나의 깨달음만을 따지면 사실상 6클래스 마스터라 할 수 있다. 아직 서클을 완성할 마나가 부족해 여섯 번째 원이 흐릿하게 생성되었지만 이것은 시간이 해결해줄 일이다.


아니, 기사로서 보유한 마나까지 동원한다면 나의 클래스는 7클래스 익스퍼트에까지 육박한다. 그렇기에 바즈엘과 나의 격차는 가히 촛불과 태양에 비견할 수 있을 정도.


그렇기에 예절을 지키면서도 경계의 빛을 지우지 않던 바즈엘이 날 저리도 경외와 존경의 빛으로 바라보게 되었지 않은가. 마법사란 바로 저런 존재인 거다.


“기사이면서 마법사라··· 대단하시군요. 아니 높은 검의 경지를 이룩하면서 그와 같은 마법의 경지를 성취하신 분께 경의를 표합니다.”


그 말에 나는 흐릿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모든 것은 하나에서 나뉘어 탄생하여 결국에는 하나로 회귀하는 법. 검과 마법이 길은 달리하나, 종국에는 같은 궁극을 추구하는 법이네. 검이든 마법이든 결국 근본은 완벽한 마나의 제어에 있으니 깨달음 또한 서로 상통하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네.”


이것은 내가 최근 들어 느끼고 있는 깨달음이기도 했다. 처음 마법을 익힐 때만 해도 서로 검과 마법의 상이한 법칙에 배우기가 어려웠으나 높은 경지로 갈수록 오히려 서로 상호 조합되어 나를 높은 곳으로 이끌고 있음을.


아직 바즈엘의 경지로서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언젠가는 알게 될 날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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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장] 임시 대리가주로 취임하다-02 +1 21.04.09 627 13 12쪽
8 [제3장] 임시 대리가주로 취임하다-01 21.04.08 647 13 13쪽
7 [제2장] 가문의 현실은 암담하다-02 21.04.08 689 13 13쪽
6 [제2장] 가문의 현실은 암담하다-01 21.04.06 796 13 12쪽
5 [제1장] 300년 만에 깨어나는 자-04 21.04.06 904 12 11쪽
4 [제1장] 300년 만에 깨어나는 자-03 21.04.06 950 13 12쪽
3 [제1장] 300년 만에 깨어나는 자-02 21.04.05 1,186 15 12쪽
2 [제1장] 300년 만에 깨어나는 자-01 21.04.05 1,520 18 11쪽
1 서장. 21.04.05 1,601 23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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