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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우스K 님의 서재입니다.

크라이 오브 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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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우스K
작품등록일 :
2021.04.05 20:25
최근연재일 :
2021.05.20 21:51
연재수 :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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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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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
글자수 :
230,487

작성
21.04.05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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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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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글자
12쪽

[제1장] 300년 만에 깨어나는 자-02

DUMMY

* * *


어느덧 해는 저물어가고 황야는 정적에 휩싸였다. 밤이 되자 일행은 야영을 하기 위해 준비된 물건들을 꺼내놓았다.


미리 준비한 장작에 불을 붙이고, 준비된 마른 식량을 꺼내 따끈하게 데워진 차와 함께 저녁 끼니를 때웠다.


황폐한 황야라 그런지 차가운 바람이 불어온다. 어색한 분위기 때문인지 그 바람은 더욱 차갑게 느껴진다.


레나딘에게 있어서 내 존재는 감히 말하기 어려운 선조라 할 수 있었고, 카마트도 내가 어색한지 말을 붙이지 못했다. 나 또한 300년 만에 깨어난 터라 기이한 감회가 느껴져 별로 말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그런 어색한 분위기 때문에 다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레나딘과 카라딘이 잠자기 전, 몇 가지 마법 스크롤을 찢어 알람마법을 비롯한 비상마법을 걸어둔 터라 불침번 걱정 없이 나도 편히 누웠다.


무려 300년 만에 보는 밤하늘이었다. 침묵으로 가득 찬 한밤의 공기가 이상할 정도로 친숙하게 와 닿는 느낌이다.


달마저 구름에 가려져 어둠으로 가득 찬 밤이 고요히 깊어가고, 내 전신은 마치 어둠에 동화되는 듯한 감각에 잠겨갔다.


나는 그 기이한 감각 속에서 편안함을 느낀 채 그대로 눈을 감았다. 거친 모포 너머로 전해지는 모래의 부드러운 감촉이 몸을 편안히 만들고 있었다.


본디 잠들 리 없는 몸이다. 하지만 의식을 육신과 차단하면 얼마든지 수면과 비슷한 효과는 누릴 수 있었다. 이것은 예전에 봉인된 것과는 달라서, 외부의 살기나 기척에는 반응하여 다시 육신과 접속되기에 만약의 사태에 대처할 수도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솔직히 육신은 지치지 않지만, 이것을 유지하는 정신은 인간에 불과한지라 정신과 마음은 자연스럽게 피로를 느낀다. 그렇기에 나도 가끔 한 번씩은 이렇게 임의로 수면을 취하게 된다. 거의 1달에 두세 번 정도니 거의 자지 않는다고 봐도 되겠지만, 여하튼 그랬다.


나는 눈을 감은 채 그대로 의식을 닫고 수면을 청했다.


본디 나의 수면은 그저 외부와의 연결을 차단하는 것. 그렇기에 수면을 취하면서도 결코 꿈을 꾸진 않는다. 꿈이란 그저 뇌에 남겨진 기억과 잔류사념의 형상화이다. 그런데 죽은 내가 꿈 따위 꿀 수 있을 리도 만무할뿐더러, 그럴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은 어떻게 된 것일까?


나는 까마득한 심연 속에 가라앉아 나 자신을 돌아본다. 깊게 침잠해 들어간 나 자신의 의식 앞에는 또 다른 나 자신이 존재하고 있었다.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듯 존재하는 또 다른 나 자신의 모습에 놀랄 만도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나는 평온한 마음으로 이를 관조하고 있었다.


기이할 정도로 평온하고도, 냉철한 의식상태. 나 스스로도 이상함을 느꼈지만, 이것을 놀람의 감정으로 승화시키지 못할 만큼 지금의 의식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나는 그 존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대칭이 되는 그 존재도 마찬가지로 똑같이 손을 뻗어왔다.


이윽고 두 손이 맞닿았다. 그리고 그 순간, 세상이 흔들리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 같더니 모든 것이 변했다.


도대체 뭐지?


의문을 떠올렸지만 그것은 금세 잊혀졌다.


거울에 비친 것 같은 존재와 나는 어느새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어두웠던 주변은 환하게 변하더니 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배경이 주변으로 펼쳐졌다.


전에 보지 못한 풍경의 방이다. 대륙의 문화하고는 완전히 다른, 듣도 보도 못한 것들이 방 안에 즐비해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꽤 화려한 것이 제법 지체 높은 자의 방이라는 것이다.


아아, 그나마 알아볼 수 있는 게 몇 개는 있었군. 지금 내가 누워 있는 건 침상이고, 저건 문이며, 저기 걸린 건 검인가? 간단해서 좋군. 제기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원.


그때 미닫이문이 스르르 열리더니 꽤 진중해 보이는 사내 하나가 들어섰다. 특이하게도 구레나룻 부분만 붉게 물들어 있는, 보기만 해도 건장해 보이는 30대의 사내였다. 그가 입을 열었다.


“깨어나셨습니까, 형님?”


꽤 낯선 음성. 하지만 익숙한 느낌이다. 섬세해 보이는 가느다란 턱 선과 진중해 보이는 눈빛이 신뢰할 수 있는 자임을 보여준다. 나는, 아니 형님이라 불린 이 몸은 너스레를 떨듯 웃으며 말했다.


“아아, 오랜만에 깊게 자고 말았네. 그동안 하도 시달려서 말이지. 어제 자네와 대작한 것도 있었고.”


손을 들어 머리를 긁적이자, 살짝 눈에 들어오는 긴 소매가 굉장히 낯설면서도 그립게 느껴진다. 부드러운 옷의 재질과, 그에 그려진 문양들이 낯설고도 익숙한 것이 괴이한 기분이었다.


쑥스러운 듯한 그 반응에 사내가 미간을 찌푸리며 반응했다.


“본디 천하무림을 경영한다는 건 다 그런 겁니다. 그런데 형님 같은 주호가 그 정도로 취해서 잠드셨다는 건 믿기 어렵군요.”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잠시 생경한 주변의 환경에 넋을 잃고 있었다.


그에 사내가 이상하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불렀다.


“형님?”


“아무것도 아니야. 잠시 넋을 잃었을 뿐이네.”


나는 손을 내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아니, 내가 아니라 이 형님이라 불린 자가 일어나 앉은 것이겠지만, 뭐 그렇다는 거다.


앉은 침상에서 대륙의 푹신푹신한 침대와는 다른 딱딱한 느낌이 엉덩이를 통해 전해졌다.


그 모습이 어색해 보였던지 사내가 묘한 표정으로 다시 말을 던졌다.


“아직 잠이 덜 깨신 겁니까? 아니면 술이 덜 깨신 겁니까? 꿀물이라도 타다 드릴까요? 원하신다면 임시처방으로 찬물 세례도 가능합니다만?”


“내 참, 정중히 사양하지.”


피식 웃으며 장난기 어린 말을 받아넘긴 나는 사내를 응시하며 물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무슨 일인가? 오늘은 하루 쉬는 날로 아는데······.”


그제야 안색을 바꿔 심각한 표정으로 사내는 자신이 알아 온 사실을 전했다.


“사천무림의 반응이 심상치 않습니다. 본디 사천의 세력 분포가 복잡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런지 녀석들이 점점 본 맹의 경고를 무시하고 서로 암중으로 피를 보고 있는 듯합니다.”


알 수 없는 말들투성이다. 사천무림은 뭐고 맹은 또 뭐란 말인가?


이건 의문투성이의 세상이다. 대륙 어디에도 저런 말이나 문화는 존재하지 않았고, 저런 지명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본래 꿈을 꿀 수 없게 되어 있는 내가 지금 다른 세상에라도 와 있는 건가?


이건 의문투성이의 세상이다. 대륙 어디에도 저런 말이나 문화는 존재하지 않았고, 저런 지명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본래 꿈을 꿀 수 없게 되어 있는 내가 지금 다른 세상에라도 와 있는 건가?


하지만 그런 의문과 혼란함과는 달리 몸은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내젓고 있었다.


“하여간, 나도 무림인이긴 하지만 그런 걸 보면 이해를 못하겠단 말이야. 자기 영역을 지키며 살면 되지 무슨 욕심이 그리 많아서 피를 보려는 건지, 원.”


“그러는 형님은 천하제일인 아닙니까. 천무맹(天武盟)의 주인이자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 만절무신(萬節武神) 여소천(呂小天). 그런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지요.”


무림인? 천하제일인? 만절무신?


내가 알아듣지 못할 말들이 줄줄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나마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데이스의 기억을 살펴보면··· 이 육체를 언데드로 만들 당시 사용된 가문의 비전, 즉 대대로 내려온 책자에 적힌 문자나 말들이 바로 저와 같다는 것이다.


그것은 트로미안 가문의 선조인 그라나스 덴 트로미안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트로미안가의 핏줄은 본디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에 근본을 두고 있는 것일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지만, 이 몸은 그저 나와는 상관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아니 여소천은 멋쩍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거참, 사람 쑥스럽게 만들긴. 천하제일인이라고 추켜세우고 기름칠을 쳐줘도 줄 건 없네.”


“그런 건 애당초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심통 맞은 듯 대꾸하는 사내의 모습에 기이한 미소를 짓던 여소천은 문득 무언가를 발견한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고는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탄성을 토해냈다.


“그러고 보니 극정화륜신강(極晶火輪神罡)이 10성에 오른 것 같구나. 축하한다.”


“역시 단번에 눈치 채셨군요. 이제 겨우 화경의 진경에 첫발을 내디딘 것뿐. 아직 형님을 따라가려면 멀었습니다.”


겸양하는 사내에게 여소천은 자식을 보듯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열심히 하거라.”


“아직도 절 애 취급하십니까?”


“이래서 넌 아직 어리다니까.”


발끈하는 사내에게 여소천은 능글스럽게 대처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내도 결국 흥분을 가라앉히고는 방을 나서는 사내의 뒤를 따랐다. 미닫이문이 열리고 새로운 공간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시야가 환히 밝아지는 듯했다. 오색찬란한 꽃잎들이 화사함을 뽐내고, 잎은 단아하게 차려입은 아낙네처럼 다소곳한 모습으로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렇다. 이곳은 정원이다. 나무로 만든 울타리들이 길게 늘어서 있고, 꽃과 나무들로 우거진 정원 가운데에는 연못이 보였으며, 아담한 정원석들이 주변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내가 잠들어 있던 곳은 바로 이 정원에 자리한 별장 같은 곳으로 보였다.


머금은 아침 이슬은 영롱하고, 콧속으로 스며드는 향기와 흙냄새가 그윽하게 밀려든다. 그리고 밀려드는 정겨운 새소리와 신선하고도 맑은 공기가 정신을 활짝 일깨웠다. 이른 아침에만 느낄 수 있는 이 풍취에 기분이 슬쩍 들뜨는 것처럼 좋아졌다.


내 몸, 즉 여소천의 육신은 그 정원을 성큼성큼 걸어가 그 입구에 닿았다. 아치형으로 만들어진 입구에 이른 순간, 느닷없이 나타난 하나의 인영이 시야를 메워버렸다.


그 인영은 젊은 여인이었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녀는 흑단과도 같은 검은 머릿결과 그에 대조되는 하얀 얼굴로 나의 시선을 순식간에 잡아끌었다. 만약 현실이었다면 하이엘프라 해도 믿을 정도의 아름다움이었다. 정말이지 인간이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곱고 아름다웠다.


“어제는 왜 안 들어오셨던 거죠? 밤새 찾았어요.”


무엇에 화가 난 것일까? 심통 맞은 표정을 짓던 여인이 뾰족한 음성으로 퉁명스레 물어왔다. 그에 나는, 아니 여소천은 죄를 지은 사람처럼 몸을 움찔 떨며 핑계를 주워섬겼다.


“그, 그게 말이지. 아, 맞아! 저기 진하(晉昰) 녀석이 술로 꾀어서 말이지.”


그러자 진하라 불린 사내가 항변했다. 곰처럼 당당한 체구의 사내대장부가 울상을 짓자 그것 또한 보기 가관이다.


“어, 억울합니다, 형수님. 형님이 제게 누명을 씌우는 겁니다. 속지 마십시오.”


“흐흥!”


퉁명스런 콧소리를 낸 여인은 못마땅한 얼굴로 나와 진하를 번갈아 살피더니, 급기야 여소천의 품안으로 뛰어들었다. 그 뜻밖의 상황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엇?”


끌어안는 두 팔의 가늘고 여린 감촉이 허리를 감싸왔다. 그리고 오밀조밀 인형과 같은 여인의 얼굴이 시야를 메웠다. 순간 나는 넋을 잃고 말았다.


그녀가 일순 미소를 지었다. 붉은 입술 사이로 하얀 이를 드러내어 웃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환하여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메말랐다고 생각했던 내 가슴속으로도 여소천이 느끼는 아내에 대한 벅찬 사랑이 밀려들어왔다. 웃는 얼굴도, 뾰족하게 토라진 그 모습도 어여쁘고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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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제3장] 임시 대리가주로 취임하다-02 +1 21.04.09 626 13 12쪽
8 [제3장] 임시 대리가주로 취임하다-01 21.04.08 647 13 13쪽
7 [제2장] 가문의 현실은 암담하다-02 21.04.08 689 13 13쪽
6 [제2장] 가문의 현실은 암담하다-01 21.04.06 795 13 12쪽
5 [제1장] 300년 만에 깨어나는 자-04 21.04.06 903 12 11쪽
4 [제1장] 300년 만에 깨어나는 자-03 21.04.06 950 13 12쪽
» [제1장] 300년 만에 깨어나는 자-02 21.04.05 1,186 15 12쪽
2 [제1장] 300년 만에 깨어나는 자-01 21.04.05 1,519 1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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