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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우스K 님의 서재입니다.

크라이 오브 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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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우스K
작품등록일 :
2021.04.05 20:25
최근연재일 :
2021.05.20 21:51
연재수 :
44 회
조회수 :
19,412
추천수 :
383
글자수 :
230,487

작성
21.04.06 22:51
조회
795
추천
13
글자
12쪽

[제2장] 가문의 현실은 암담하다-01

DUMMY

훈련을 끝낸다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말없이 바닥에 주저앉는 카마크와 레나딘.

대답할 기운도 없는 모양이군.


나는 손가락을 튕기며 해주의 주언(呪言)으로 녀석들에게 걸린 마법을 해제했다.


“캔슬레이션(Cancellation, 해제)!”


그제야 살 것 같다는 표정으로 흐물흐물 늘어져버리는 기사 양반과 그 소주인 씨. 이래서야 저녁도 내가 해결해줘야 할 것 같군.


“기다리고 있거라. 내 먹을거리를 구해 오마.”


나는 주변에 간단한 결계를 펼친 다음, 기다리란 말을 남기고 이미 어둑어둑해져가는 숲 속으로 쏘아졌다. 이미 나의 감각은 전 숲속에 퍼져 있어 사냥감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드넓게 펼쳐진 마나 그물에 걸려든 건 멧돼지 한 마리.


나는 가볍게 손을 뻗어 인비지블 핑거(Invisible Finger, 지풍)를 튕겨 멧돼지의 급소를 두들겼다.


꽥!


그러자 급살 맞듯 짧은 괴성을 내지르며 바로 쓰러져 버리는 멧돼지.


사실 그리 어려운 방법은 아니다. 마나가 흐르는 마나 로드 중에는 죽음에 이르는 여러 급소가 있기에 그것만 잘 짚으면 상처 없이 잡을 수 있다.


물론 손끝으로 마나를 쏘아내는 인비저블 핑거는 익스퍼트 상급 정도 되지 않으면 거의 불가능한 수법이긴 하지만.


둥실!


멧돼지가 허공에 떠오른다. 가벼운 텔레키네시스(Telekinesis, 염력)의 마법이다. 물론 마나만으로도 물체를 드는 것은 가능하지만 텔레키네시스에 비해서는 마나 소모 효율이 나쁘다.


다시 녀석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 후, 나는 나무막대를 꿰어 통돼지 바비큐를 만들었다. 물론 기사가 음식을 한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지만 생전에는 자급자족 훈련도 겪어봤기에 내 음식 솜씨는 그런대로 수준급이다.


구수한 냄새가 풍기자 훈련에 지친 카마트와 레나딘이 멧돼지 고기에 황홀한 눈빛을 마구 던져대고 있었다.


휴우, 자네들 알고 있나? 나를 만나고 나서 참 많이도 망가진 모습을 보인다는 걸. 어쩌면 나라는 기댈 만한 존재를 만나 몰락해가는 가문의 짐을 덜게 되어 본래 심성이 드러난 것일지도 모르지.


“잘 먹겠습니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크허헝!”


내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야수처럼 달려드는 두 아귀들.


하지만 내 몫의 저녁은 없다. 나는 어디까지나 죽은 자, 언데드다. 죽은 놈이 음식을 섭취할 이유 따위 없지 않은가. 그저 대자연의 마나를 받아들이는 정도로도 충분히 육신을 유지할 수 있지. 하지만 가끔은 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한 음식 섭취는 가능하다.


그러나··· 저 꼴을 보니, 굳이 저 아귀다툼에 끼고 싶은 마음이 생기질 않는군.


“그 다리, 제 거라고요!”


“아니, 소가주님! 그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이미 침 발라놨다고요.”


“크헥! 치사합니다! 그럼 나도!”


“으악! 정말 이럴 거예요?”


“정 드시고 싶으시면 제 침 발라진 고기라도 드시든가, 후후.”


젠장. 밤하늘이 참으로 맑기도 하구나! 저놈들 머리 위에 비라도 좍좍 왔으면······.


그리 보고 싶지 않던 둘의 추태를 본의아니게 감상하며 내심 한탄하고 말았다.





* * *




그날 밤, 나는 거나하게 식사를 마친 녀석들을 데리고 검법 시연을 시켰다. 일단 가문의 검술이 얼마나 실전된 건지 알아야 보완을 하든, 내가 나름대로 채워 넣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연은 두 사람 중 그나마 검술 수준이 낫다는 카마트가 나섰다. 뭐 내가 보기엔 둘 다 오십보백보였지만.


“우선 현재 남은 가문의 검술은 제레단 검법과 클로머스 검법(육합검(六合劍))입니다. 실전되고 남은 것은 3할 정도고 나머지는 대륙의 검술들을 취합해 채워 넣은 상태입니다.”


3할?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거나 다를 바 없군. 거기다 다른 검술들을 뒤섞었다는 건······.


“결국 잡종이란 말이군.”


“에?”


내 혹독한 평가에 놀랐는지 얼빠진 소리를 내는 카마트. 나는 한숨지으며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아니다. 한번 펼쳐보거라.”


“아, 예. 제라딘 검법부터 시연하겠습니다.”


결국 카마트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검을 펼치기 시작했다.


본디 제레단 검법은 가주와 그 직계만이 익히던 검법이었고, 클로머스 검법은 가문의 가신들과 기사들이 배우는 검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상당 부분이 실전되면서 그런 구분의 의미가 사라져버려 이젠 가문의 인물이라면 아무나 익힐 수 있게 된 모양이다.


그 외에도 몇 가지 검법이 있었지만 언급이 없는 걸로 보아 아예 잔재조차 남지 않은 것 같다.


카마트는 천천히 검으로 허공을 그어나갔다.


본디 제라딘 검법은 변화와 장중함에 중점을 둔 검법이다. 그만큼 터득하기 어려우며 오랜 세월을 연마해야 진수를 맛볼 수 있다. 그에 반해 클로머스 검법은 쾌와 강에 중점을 두어 빠르게 터득하여 실전에 써먹을 수 있게 만드는 데 중점이 있다. 물론 이것도 나름대로 진수를 맛보려면 꽤 오래 연마해야 한다.


나는 두 눈의 시야를 개방했다. 일반적인 시야가 아닌, 본질을 꿰뚫고 그 내면을 읽어내는 눈. 이것이 언데드가 되면서 얻게 된 나의 능력이다. 이것을 펼치면 체내의 마나 순환은 물론, 대기 중의 마나의 흐름과 마법의 구성까지 읽어낼 수 있을 정도이다.


“으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가관이 되어가는 그 시연에 내 입에서 절로 침음성이 튀어나왔다.


이건··· 대체 뭐냐? 무슨 종자인지도 알 수 없게 된 이것이 정말로 제라딘 검법이란 말인가?


말로는 3할이라고 했지만 뒤섞을 당시 뭔가 잘못되었는지 남은 건 채 1할도 안 되어 보였다.


“흐헛! 헛!”


이리 뒤뚱 저리 뒤뚱. 허와 실을 찾을 수 없었던 변화는 온데간데없고 마치 장작 패듯 도끼질을 하는 듯한 동작들이 길게도 나열된다.


하아, 차라리 내 눈을 불로 지져버리고 싶은 심정이구먼.


심심할 때마다 한 번씩 변화 비슷한 게 나오긴 하지만 눈에 차지도 않는다.


이어지는 클로머스 검법은 더더욱 기가 찼다. 그나마 약간이나마 변초나 환초가 드문드문 깃든 제라딘 검법과는 달리, 남은 것은 그야말로 처절한 무식함과 힘으로 때우겠다는 의념뿐.


이거 도대체 누가 만든 검법인 게냐?


“어떻습니까?”


“······.”


검법의 시연을 마치고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묻는 카마트의 모습에 나는 그저 침묵을 고수했다. 아니, 답변할 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지금 묻고 싶은 건 단 하나뿐이었다.


“이거··· 어느 나라 검법이냐?”


“······.”


그 말에 담긴 절망감을 읽었는지 카마트와 레나딘은 조용히 침몰했다.


“호흡은 제멋대로고, 눈곱만큼 있는 검로의 변화는 엉망인데다가, 자세의 중심은 이리저리 뒤틀리거나 가볍기까지 하니······.”


나는 작게 한탄했다.


무식한 동작이나 어설픈 변화는 그렇다 치자. 그 중 가장 문제는 체내에 흐르는 마나다.


본디 검법은 겉으로 드러나는 형태도 중요하지만, 그 동작들을 통해 마나를 축적하고 순환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기에 검법은 마나 소드, 마나 집적 소드, 마나 연공 소드 등으로 불리며 마나를 축적하는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아닌 한 기사는 마나를 운용할 수도, 오러 섀도나 오러 블레이드를 발현할 수 없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문제였다.


동작과 일치된 호흡은 마나를 끌어들이고, 각 동작은 근육을 풀고 체내의 마나 로드를 활성화시키며, 신체 곳곳으로 마나를 순환, 축적시킨다. 그것이 제대로 된 마나 소드다.


그런데 지금 카마트가 보여준 마나 소드는 너무나 불순하고, 그 흐름이 잘못되었다. 흐르지 말아야 할 곳으로 마나가 흘렀으며, 잘못된 호흡은 불순한 마나까지 끌어들이고 있었다.


저렇게 되면 마나양은 비대할 정도로 많이 모을 수 있지만 경지에 들기 어렵고, 자칫 심령이 흔들리면 심마에 빠져들 위험이 컸다.


“그야말로 자살, 아니 자폭 검법이군. 미쳐버리면 저 혼자 죽는 게 아니니까.”


손댈 곳이 한두 곳이 아닐 거라 짐작은 했지만, 이 지경이라고는 생각도 했는데······.

아무래도 다시 봉인지로 돌아갈 때까지 내 앞날도 결코 평탄치 못할 모양이다.



[제2장] 가문의 현실은 암담하다





어찌된 건지 문제를 발견하는 것은 아주 쉬웠다. 혹독한 훈련 과제를 제공하며 긴 시간을 두고 카마트와 레나딘을 취조(?)한 끝에 나는 왜 그런 엉터리 검법이 탄생되었는지 전말을 알아챘다.


그리고 난 충격을 감출 수 없었다.


세상에! 지금 가문에 남은 검술만이 아니라 현 대륙의 모든 검술이 다 그 모양이라니!


내가 살던 시대만 하더라도 대륙의 검술은 우리 가문에는 못 미치더라도 제대로 된 길을 걷고 있었다. 좀 진척은 느렸지만 오랜 고련이 따르면 제대로 된 마나의 운용이 가능하고, 또한 경지에 들 수도 있었다.


한데 지금은 다들 엉터리 검술이란다.


이거야 원,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직접 보지 못했으니 확실하진 않지만 그렇다면 이 세상에는 마스터란 존재할 수 없는 상태라 할 수 있었다.


현재 마나 소드에는 세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마나의 흐름이다. 마나는 정해진 통로를 통해 흘러야 하는 법. 그게 정상적인 경로를 벗어나면 마나의 운용이 어려워지고, 마나의 응집이나 오러의 발출이 불가능해진다. 마나양은 비대한데 마나 로드는 엉망이니 소화불량이나 다름없는 거다. 카마트가 나와 같은 마나양을 사용해도 오러 섀도의 길이나 운용이 그토록 차이가 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더군다나 두 번째로 정제하지 않고 모아들인 불순한 마나는 심성을 난폭하게 만들고 자칫 심마에 빠져들게 만든다. 물론 마나의 운용 자체도 불순물로 인해 흐트러지지만, 많은 마나를 모을수록 피에 미친 마귀가 될 수 있음이니······.


세 번째는 말할 것도 없이, 엉망인 검술의 형태다. 이건 카마트의 경우를 봤으니 굳이 설명할 것도 없겠군.


하여간 저런 마나 소드를 가지고서는 절대 소드 마스터가 되지 못한다. 마나양은 옛날보다 방대하겠지만 그런 불완전한 마나 가지고는 미치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런데도 소드 마스터라 불리는 놈들이 있다는 걸 보면, 아마도 그냥 무식한 마나양을 검에 때려 넣어 압축한 오러 섀도임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순수 미스릴제 검이 아니면 오러를 견디지 못해 오러 블레이드를 구현 못한다는 반쪽짜리 소드 마스터가 나올 리 없다.


오러 섀도는 가능해도 마나 더스트(Mana Dust, 탄검기彈劍氣)가 불가능하다니 얼마나 비논리적인 상황이란 말인가.


하긴 현 소드 마스터들이 블랭크를 구사할 수 있는 것도 기적에 가깝다. 다만 마나를 포화상태로 밀어 넣어 저절로 튕겨 나가게 만드는 억지성 블랭크이기에 한 번에 많아야 예닐곱이 한계이겠지만.


내가 보기엔 현 시대는 오러나 오러 섀도를 그저 저항 없이 벨 수 있는 날카로운 무기, 그 이상으로는 보지 않는 모양이다. 그런고로 검술이 퇴보한 이유를 추측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사람들은 보다 많은 마나를 축적하기 위해 그에 대해서만 효율적인 방법을 찾았을 것이고, 잘못된 마나 로드를 기본으로 했을 거다. 그 후에는 잘못된 경로나 불순한 마나 덕분에 예전과 같은 다양한 변화나 형태는 어렵지만 반쪽짜리일망정 소드 마스터가 쉽게 만들어졌을 것이고, 그것이 보편화되어 지금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소드 마스터는 아무리 많아도 진 마스터인 내 상대는 될 수 없다.


“이거··· 생각보다 가문의 재건이 쉬워질지도 모르겠군.”


내 작은 읊조림에 카마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그저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려줄 뿐이다. 이제 영지까지의 여정은 그리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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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제3장] 임시 대리가주로 취임하다-03 21.04.09 600 12 14쪽
9 [제3장] 임시 대리가주로 취임하다-02 +1 21.04.09 626 13 12쪽
8 [제3장] 임시 대리가주로 취임하다-01 21.04.08 647 13 13쪽
7 [제2장] 가문의 현실은 암담하다-02 21.04.08 689 13 13쪽
» [제2장] 가문의 현실은 암담하다-01 21.04.06 796 13 12쪽
5 [제1장] 300년 만에 깨어나는 자-04 21.04.06 903 12 11쪽
4 [제1장] 300년 만에 깨어나는 자-03 21.04.06 950 13 12쪽
3 [제1장] 300년 만에 깨어나는 자-02 21.04.05 1,186 15 12쪽
2 [제1장] 300년 만에 깨어나는 자-01 21.04.05 1,520 18 11쪽
1 서장. 21.04.05 1,601 23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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