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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우스K 님의 서재입니다.

크라이 오브 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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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우스K
작품등록일 :
2021.04.05 20:25
최근연재일 :
2021.05.20 21:51
연재수 :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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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4
추천수 :
383
글자수 :
230,487

작성
21.04.06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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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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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제1장] 300년 만에 깨어나는 자-04

DUMMY

단조롭기 그지없는 검격과 검로, 따로 노는 스텝. 가끔 볼만한 변화를 보이기도 했지만 일부 검로가 실전된 것인지 빈틈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아니, 오히려 몬스터들이 녀석을 둘러싼 채 가지고 노는 것 같을 정도다.


비록 실력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기사단장이라고 해서 약간은 기대했거늘······. 저 무모하고 무식한 동작들은 뭔가? 이래서야 다시 옛날로 돌아간 느낌이군. 가문이 검술을 대부분 잃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현 시대의 검술이 퇴보한 건지 알 수가 없어. 아무리 오러 섀도라 해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소용이 없지.


어디서 난 건지 품속에서 마법 스크롤 몇 장을 사용하면서 근근히 버티고 있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할꺼란 건 누가 봐도 자명했다.


이대로라면 몇 수 안에 죽음에 이를 터. 위태로운 것을 더 이상 지켜만 볼 수 없군.


가볍게 혀를 찬 나는 발걸음을 내디디며 나직이 말했다.


“물러서라.”


하지만 나의 부름에도 카마트는 좀처럼 물러나지 못했다. 그만큼 자이언트 스콜피언들이 맹렬하게 잡아두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녀석의 실력 부족이 더욱 큰 이유였다.


물리치는 거야 그렇다 쳐도 고작 저 정도 공세를 피해 물러서질 못하다니, 설마 가문의 스텝마저 사라진 건가?


허참, 가면 갈수록 몰락한 가문의 현실을 뼈저리게 절감케 하는구나.


나는 가볍게 손을 내뻗었다. 그 목표는 카마트에게 결정적 일격을 그려내는 자이언트 스콜피언. 곧게 펴진 내 손바닥에서 밀려나온 무형의 마나가 놈을 거세게 후려친다.


에어리얼 오러(Aerial Aura, 장풍掌風).


흔히 말해 익스퍼트의 오러 섀도와 비슷한 거지만 맨몸을 무기로 사용하는 라운드 파이터들의 상위 기술로서 단순히 부수고 내부를 으깨는 것은 으뜸이다. 지금처럼 외골격이 단단한 자이언트 스콜피언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지.


쾅!


거센 폭음과 함께 거체를 바닥에 누이는 자이언트 스콜피언. 겉보기에는 멀쩡한 것 같지만 그 내부는 아마도 곤죽이 되어 있을 거다.


덕분에 카마트는 놀라 넋을 잃고 있고, 자이언트 스콜피언들도 뜻밖의 사태에 당황한 듯 일시 멈춰 서 있었다.


“뭘 멍청하게 서 있나? 어서 물러나!”


그제야 슬금슬금 멀찌감치 물러나 레나딘 옆으로 돌아온 카마트.


하아, 이런 어리버리한 놈들을 데리고 가문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니 암담하다 못해 눈물이 앞을 가리는군.


키에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건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자이언트 스콜피언들. 그런 놈들을 향해 나는 천천히 검을 뽑아 든다. 300년 만에 잡는 검이건만 어색함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우우웅!


손아귀 안에서 작게 진동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려오는 애검 레일그라프.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조금도 낡지 않은 검날이 시리게 시선을 사로잡는다.


사실 저런 것들을 상대로 검을 꺼낼 것까지도 없지만 300년 만에 잡는 검이다. 한 번쯤 몸을 푸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본디 소드 마스터란 검술의 지배자임과 동시에 마나의 지배자이고, 또한 육신의 지배자다. 모든 것을 하나로 융화하여 삼위일체가 될 때, 비로소 마스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거다.


지금부터 그 진면목을 보여주지.


고오오오오!


순식간에 주변이 공동화되어간다. 그만큼 내가 이끌어내는 기세는 강렬하다. 물론 지금의 기세는 마나의 양에 따라 좌우되는 건 아니다. 마나양은 고작 카마트와 같은 수준이니까. 다만 그것을 얼마나 잘 운용하고, 또한 강한 의념을 담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거다.


3페킷(3미터) 가까이 치솟는 검푸른 빛깔의 오러 섀도. 비록 같은 마나양이지만 간신히 검을 감싸던 카마트와는 차원이 다르다.


검 끝에 어린 무형의 예기를 느낀 것일까? 자이언트 스콜피언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이런 좋은 시범 대상들을 이대로 놔줄 수야 없지.


이윽고 기세가 폭발하고, 공간에 짙은 선이 그어진다. 검로를 타고 그려지는 오러 섀도의 향연. 그것은 무한한 변화의 시작이었고, 벗어날 수 없는 뇌옥이었다.


“아아!”


카마트의 경탄성이 음률처럼 흐른다. 그만큼 지금 내가 보여주는 경지는 그의 의식을 깊게 일깨우고 있었다. 하지만 레나딘은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이해하긴 어려운지, 그저 놀랍다는 표정이 전부였지만.


촘촘하게 짜인 오러 섀도의 그물이 번뜩이는 순간, 자이언트 크랩 세 마리는 셀 수 없는 토막들이 되어 무너져 내렸다.


남은 것은 한 마리. 용케도 위기를 감지했는지 처음부터 도주하고 있던 놈이었다.


검이 닿을 거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굳이 쫓을 필요도 없다. 나는 무심히 검 끝으로 놈을 겨누었다. 그러자 오러 섀도는 더욱더 짙어져가더니 검신 위에 마나의 응집체를 이루며 또 다른 검 형상을 이루었다.


이것이 바로 소드 마스터의 상징인 오러 블레이드(Aura Blade, 검강劍罡)!


그리고 파괴하지 못하고, 베지 못하는 것이 없다는 절대 에너지의 일부가 떨어져 나와 눈부신 속도로 공간을 가로질렀다.


콰아앙!


당연한 말이지만 지축을 뒤흔드는 대폭발과 함께 오러 덩어리에 직격된 자이언트 스콜피언은 그대로 육편이 되어 흩어졌다. 익스퍼트 상급은 되어야 상대할 수 있다는 놈들이 순식간에 도륙된 것이다.


“크헛, 블랭크(Blank, 탄강彈罡)! 여, 역시 소드 마스터!”


역시나, 이 광경에 카마트는 또다시 경탄성의 탈을 쓴 호들갑을 떨어댔다.


아아, 처음에는 그런대로 충실하고 진중해 보이던 녀석이었는데, 저렇게 무너진 모습을 보일 줄이야. 역시 사람은 사귀고 볼 일인가.


하지만 더더욱 의문인 것은 저런 실력으로 조카를 대동한 채 나를 찾아왔는가 하는 거다. 하라한의 황야는 죽음의 대지로서 몬스터가 없다곤 해도 여기까지 도달할 때까지 수없는 몬스터를 만나야 했을 터인데 말이다.


“그런 실력으로 여기까지 대체 어찌 찾아온 건가?”


낮게 깔린 내 물음에 카마트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한다.


“그건··· 가문에 남은 자금을 동원해 구입한 마법 스크롤 덕분에······.”


“허··· 한심하군.”


“면목이 없습니다.”


고개를 푹 숙이는 그 모습에 나는 검을 거두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나하나 기초부터 잡아줘야 한다는 사실에 절망감마저 들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이거 기사들부터 이 모양이라면 가문으로 돌아가게 되면 전반에 걸쳐 손써야 할 곳이 한두 곳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영지로 돌아갈 때까지 특별수련이네. 도착할 때까지 기초를 잡아두지. 레나딘, 그건 너도 마찬가지다. 그 정도로는 아직 소가주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걸 알고 있겠지?”


“예. 시켜만 주신다면 얼마든지 하겠어요.”


과연 어려서부터 심적 고난을 안고 살아온 덕분인지, 결단 어린 답변을 내놓는 녀석의 눈동자는 맑으면서도 굳건하다. 저런 마음이라면 좋은 성취를 얻을 수 있겠지.


“좋다! 오늘부터 시작하지. 다만 중도에 포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만약 그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나는 무조건 발걸음을 돌려 다시 봉인지로 되돌아갈 거다.”


이렇게 엄포를 늘어놓았으니 포기하진 못할 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럼 처음은 체력단련부터 시작하지. 흔히 공포의 ‘지옥마차’라 명명된 300년 전의 훈련 코스지. 물론, 걱정은 말게. 이미 옛날 내 기사단들을 통해 검증된 단련법이니까 말이야.”


“······.”


“······.”


나는 한쪽 입가를 비틀며 웃어 보였다. 그 모습이 꽤 사악하게 비쳐졌을까? 순간 두 녀석의 어깨가 부르르 떨려오고 있었다.


뭐, 떨 건 없잖아. 잡아먹을 것도 아닌데. 몸이 좀 고단하겠지만 그만한 대가는 돌아온다고. 후후후.


아직도 뇌리에 선연히 남아 있는, 고행에 가까운 수련법들을 다양하게 떠올리며 홀로 키득거리고 말았다.


* * *


그날 이후부터 녀석들에게 이어진 것은 처절한 고행이었다. 어디까지나 훈련이기에 마나는 봉쇄했다. 그리고 훈련의 효과를 최대한 이끌어내기 위해 인크리즈 웨이트(Increase Weight, 무게 증가) 마법으로 몸무게를 늘이고, 가벼운 커스(Curse, 저주)로 체력을 줄였다.


기사급의 존재들이니 이 정도 핸디캡은 되어야 제대로 훈련이 가능하지.


기사 주제에 어떻게 마법이 가능하냐고 묻겠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인간이 아니다. 본디 기사였지만 죽은 자였고, 다시 언데드로서 부활했다.


흠, 굳이 부류를 나누자면 데스 나이트와 비슷하지만, 정확히는 좀 다른 경우다. 언데드이지만 피와 살을 가지고 있고, 또한 죽음의 기운도 내부로 갈무리한 채 마나 로드를 통해 대기 중의 마나와 융화되어 순화의 과정을 거쳤기에 어두운 느낌은 있을지언정 중도에 해당하는 속성을 가진다. 그렇기에 오러도 검푸른 색일지언정, 완전히 칠흑빛은 아니었고, 신관이라 할지라도 내가 언데드란 사실을 눈치 챌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언데드로 제작될 당시 데스 나이트 제작법과 함께 사용된 대법 때문이었는데, 초대 가주 시절부터 우리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던 것으로서 전에 보지 못했던 언어로 되어 있었다. 제목에는 天魔人靈疆屍라 적혀 있었는데, 네크로맨서이자 흑마법사였던 나의 친우 덕분에 완벽히 해석해냈다.


그 내용은 매우 기기묘묘했는데 지금의 나와 비슷한 생전의 육신과 완전한 인성을 가진 언데드 제작법이 적혀 있었다는 게 당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그런 고로 나는 살아 있는 인간과 흡사하기도 했지만, 데스 나이트의 특성도 포함되었기에 그 특징마저도 모두 가지고 있었다.


필요할 때는 팬텀 스티드를 소환할 수 있었고, 5클래스에 해당하는 마법도 구현 가능해진 것이다. 나의 검술에 비해서는 그리 위력적이진 않지만 여러 가지로 유용하기 때문에 그 편리함을 지금처럼 잘 써먹고 있는 중이다.


“허억, 허억!”


“크허···허헉!”


거친 숨소리가 감미롭게 들린다. 체력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의미하는 숨결은 아마도 나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차 있겠지.


하지만 봐줄 수는 없는 법이다. 다소 방법이 사악(?)하다 해도 나중에는 뼈가 되고 살이 되는 훈련이니까.


이미 5일이란 시일이 흘렀다. 하라한의 황야는 제법 넓은 터라 수면을 제외하고는 거의 쉬지 않고 걸어 겨우 그 경계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만한 넓이의 땅이 그냥 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아깝긴 하지만 생명력이 존재하지 않는 바에야 도리가 없지.


어쨌든 카마트와 레나딘은 새로 가르쳐준 스텝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새로운 스텝을 익히는 이유는 모든 무예의 기본은 바로 하체인데다, 그들이 익힌 스텝이 너무나 형편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기존의 스텝을 계속 익혀봐야 절름발이 검술밖에는 될 수 없겠지.


“오늘은 이쯤이면 되었다. 그만 쉬도록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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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제4장] 거슬리는 놈은 마음 가는 대로 벤다-01 21.04.12 549 13 11쪽
10 [제3장] 임시 대리가주로 취임하다-03 21.04.09 600 12 14쪽
9 [제3장] 임시 대리가주로 취임하다-02 +1 21.04.09 626 13 12쪽
8 [제3장] 임시 대리가주로 취임하다-01 21.04.08 647 13 13쪽
7 [제2장] 가문의 현실은 암담하다-02 21.04.08 689 13 13쪽
6 [제2장] 가문의 현실은 암담하다-01 21.04.06 796 13 12쪽
» [제1장] 300년 만에 깨어나는 자-04 21.04.06 904 12 11쪽
4 [제1장] 300년 만에 깨어나는 자-03 21.04.06 950 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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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1장] 300년 만에 깨어나는 자-01 21.04.05 1,520 18 11쪽
1 서장. 21.04.05 1,601 23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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