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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아자아자!

아그네스 건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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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e88
작품등록일 :
2019.05.14 01:28
최근연재일 :
2019.06.12 10:05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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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325
추천수 :
8,942
글자수 :
237,471

작성
19.05.18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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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아그네스 건국사 - 11

DUMMY

혹스빌 영지 소속 제이드(비취) 기사단의 총원은 100명이다.

소속된 정식 기사 숫자는 20명이고 이를 종자 80명이 뒷받침하는 구조로, 기사단 돌격시에는 20명의 기사가 꼭짓점을 이루어 돌파력을 극대화하여 적의 진형을 찢어버리면 뒤따르는 종자들이 흩어진 적병들의 수급을 수확하는 방식에 최적화되어 있다.


비취 기사단의 구조는 별 특별한 구성이 아니다.

이러한 기사단의 구조는 대륙 대부분의 기사단들이 채택하고 있는 기본적인 기사단 운용 방식이다.

어느 국가이던지 가장 많은 기사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 중앙기사단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기사단들은 현실적인 여건 때문이라도 취할 수밖에 없는 방식이었다.



칼 하트만은 바로 얼마전까지 이러한 비취 기사단의 편제에서도 밑바닥인 종자 생활을 해왔었다.

종자 생활이 길어진 이유로는 아직 오러 소드를 만들어내지 못한 까닭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연줄이 없어서가 가장 정확하리라.


템릿 자작의 가신단 자제중에 칼 자신보다 부족한 실력으로도 정식 기사로 편성된 이들도 있었던 것을 보아하면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보아도 좋았다.


나이 서른 다섯.

칼 하트만은 간신히 검에 오러의 불꽃을 피워올렸으나 비취 기사단의 정기사 정원은 가득 차 있었다.


심지어 자신을 제외하고서도 자격을 갖추고 정식 기사로의 승급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의 숫자가 열.


더이상 보이지 않는 미래에 하트만은 기사의 길을 포기하려 했다.

그랬는데,



- ... 그리하여 대륙력 1364년, 혹스빌의 정당한 지배자 템릿의 이름으로 종자 칼에게 하트만의 성을 내리며, 기사로 서임한다.


꿈만같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주군께서 이 늙은 종자에게 기사의 맹세를 받아주셨다.

이번 영지전이 끝나면 장원까지 내려주신다고 했다.



- 나이트 칼. 이번 영지전의 승리를 위해 그대가 해주어야만 하는 일이 있네.


' 오, 신이시여.

기사로 서임해준 주군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기꺼이 하겠나이다. '


작게는 임신한 채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아내를 위하여.

크게는 주군의 승리를 위하여!


가슴에 불이 붙은 나이트 칼 하트만은 영지 최정예 병사 스물을 이끌고서 마이네 산맥으로 향했다.

영지전이 개시되기 이틀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100년전 마이네 산맥에서 살았던 바바리안들이 건설했다는 가도에서는 연신 비명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쇄애애애액- 퍼억!


" 크억, "



나이트 칼 하트만의 눈에서 불똥이 튀겼다.

저 빌어먹을 유목민의 후예가 쏘아낸 화살에 맞고서 낙마하여 비탈길 아래로 사라진 병사들의 숫자가 다섯.

정찰 보낸 숫자가 다섯이니 당장 나이트 칼이 운용할수 있는 병력의 수는 달랑 10명.


나이트 칼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급히 자리를 뜨려다 바보같이 꽁무니를 물려버리고 말다니.


만약 서로를 마주본 채로 마주쳤더라면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하기만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위치마저도 나이트 칼의 혹스빌 영지군이 높은 언덕 방향이다.

아래에서 쫓고있는 마이네 영지의 정찰기병들과 정면으로 부딪혔다면 압살했을터인데.


쐐애애애액- 뻐어억-!


호로로로로로로-!



또 한번 저주받을 기성이 다시 터져나올때 였다.

나이트 칼은 시야가 탁 트이는 것을 느꼈다.

좁은 가도를 벗어나 분지 지형으로 들어선 것이다.


드디어 반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고양이에게 쫓기는 쥐새끼처럼 몰리는 상황을 뒤집어야만 했다.

나이트 칼이 휘하 병력에게 지시를 내렸다.


" 반전하라! 저 개같은 마이네 졸자들을 전부 쓸어버리겠다. 서둘러! "


히히힝-!


거칠게 말고삐를 잡아채는 손길에 애마가 투정을 부렸지만 주인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나이트 칼의 신경은 온통 뒤에서 쫓아오던 초원 출신 야만인에게 쏠려 있었다.

계속 쫓아오면 그대로 돌격하여 목을 따버리려는 심산이었다.

허나 그의 의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 개자식! "


분통터지게도 약삭빠른 야만인 꼬마가 분지의 입구에서 말을 멈춰세우고 뻔히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자신을 약올리는 것만 같아 꼭지가 돌아버릴것 같은 분노에 휩싸이는 나이트 칼이었다.


순간 지금이라도 말을 달려 저 야만인 꼬마의 목을 따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나이트 칼은 애써 내리눌렀다.

연이어서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가 있었던 탓이다.


두두두두-


가도의 저쪽편에서 9기의 기병들이 새로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마이네 산맥의 이름모를 분지에서는 마이네 영지와 혹스빌 영지의 기병들이 대치를 이루게 되었다.






" 시브리오! "


" 옙, 대장님! "


한시간에 걸친 추적끝에 분지에서 혹스빌 영지 기병들과 대치한 제라드는 편한 마음으로 그의 어린 부하와 눈을 맞출 수 있었다.

넙데데한 얼굴 가득 흥분으로 발갛게 달아오른 소년을 바라보는 제라드의 얼굴은 아직도 경탄의 감정이 머물러 있었는데 눈빛만 보아도 진심이 가득 담겨있음을 모를수가 없었다.


" 잘했다. "


" 오오! "


제라드의 칭찬 한마디에 주먹 쥔 손을 하늘을 향해 내지르며 기뻐하는 모습은 천상 순진무구한 소년의 모습이지만, 시브리오가 추격전의 과정동안 보여준 기예들은 하나같이 상식외의 것들이었다.


이제서야 제라드는 자신에게 시브리오를 맡기던 바스카크 우두머리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 대전사시여, 염려하지 마십시오. 시브리오님이 이어받은 혈맥에는 위대한 초원 늑대의 령이 흐르고 있습니다. 앞으로 대전사께서 걸어갈 길을 초원의 대정령이 보우하실겝니다.



바스카크 우두머리의 말대로였다.

실질적으로 말에서 내려 진검승부를 하게된다면, 시브리오 정도의 전사는 무맥을 이은 제라드의 한합을 버틸수 있으면 다행인 수준일 것이다.


허나 말에 올라타면 상황이 달라진다.

아무리 무맥의 가르침을 깊게 수련한 무부라 하여도 종횡무진하는 초원의 기수를 잡을 방도가 없다.


죽지는 않겠지만 상대를 죽일수도 없으며, 계속해서 방어만 하게되는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그리고 상대를 양껏 괴롭힌 초원의 기수는 만족스레 도주할 것이고.

초원의 유목민들에게 기승, 기마에서는 대륙 제일이라는 위명이 거저생긴게 아니다.


그러한 유목 기병의 가능성을 방금 15세의 시브리오가 역력히 증명해낸 것이다.


' 아차! '


제라드는 15세 소년의 전과를 보며 흐뭇하게 웃다가 자신이 또 고질적인 실수를 범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듭 말하지만, 13세 소년이 성인식까지 치른 15세를 보고 흐뭇해하는게 정상적인 상황은 아닌 것이다.


허나 제라드의 민망함이 길어지기 전에 그의 신경을 건드리는 자가 있었다.



다그닥- 다그닥-


분지의 반대편에 도열해있던 혹스빌 기병들 가운데에서 가장 단단히 차려입은 한 사내가 분지의 중앙으로 나선 것이다.

흉갑의 심장 부근, 검 손잡이에 박힌 빛나는 비취의 문양이 그려진 사내였다.


" 나이트 도렌의 아들이자 하트만 공에게서 검을 사사받은 비취 기사단의 나이트 바첼러, 칼이다. "


퉁-


아밍 소드를 들어 왼손에 들고있는 방패에 부딪혀 전장의 의례에 따른 예를 취하는 상대 기사를 바라보면서 제라드는 살짝 고민에 빠졌다.

이오닌 백작군에서 기사 대우를 받고있기는 했지만 실상 그는 아그네스 경의 종자에 불과한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를 갖추는 상대를 향해 함부로 자기 소개를 했다가는 차후에 어떤 소문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다.


더구나 야전 상황에서 자신을 소개하면서 결투라니?

뭔가 언밸런스한 느낌이다.

제라드도 실전은 처음이다보니 전장의 상식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당장 돌격하여 적들을 주살하라는 명령을 내리려던 제라드는 잠시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나이트 칼의 다음 말을 듣고서 굳이 지금 자신이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거기, 너! 초원의 개종자야. 너에게도 명예가 있다면 나서거라. 나와 명예를 걸고서 생사의 결투를 벌이자. "


상대 기사가 대체 무슨 생각인지 제라드가 아니라 시브리오를 상대로 결투를 청해온 것이다.




제라드는 순간 머리속이 띵해졌다.

지금 그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는 인간성이 사라진 시대다.


아그네스 경이 들려주기를, 대륙에서도 학문의 요람이라 불리우는 마탑 도시에서 거주하는 대학자들 또한 지금을 '야만의 시대'라 부르길 주저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죽했으면 대륙 곳곳에서 대학자라는 양반들이 '인간성의 회복'을 기치로 내걸고서 봉기하겠는가.


300년전 통일 제국 이베리안이 무너진 이래로 수많은 지식들이 실전되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기사단 교리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다.

현 시점에서 대륙인들이 생각하는 '기사'라는 존재의 의의를 21세기 지구식으로 표현하자면 국가 공인 '조폭'정도가 가장 알맞은 단어일 것이다.


고로 정의를 내리자면, 칼이라 이름을 밝힌 저 기사는 흔치않게 존재한다는 낭만주의 기사인듯했다.



제라드가 슬쩍 고개를 돌려 시브리오를 확인하니 아니나다를까 벙찐 모습이 역력했다.

하긴 마탑 도시에서 양을치며 살아가던 소년에게 낭만주의라는 것은 너무 어려운 개념일지도 모른다.


제라드는 곧 쓸데없는 생각을 지우고서는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 지금 싸움의 결과를 보고서 이제껏 너희가 저질러온 항명들을 어찌 처분할지 결정하겠다. 싸워라! 죽여라! 돌격! "


이 명령은 지금 제라드의 부하들에게 가장 절실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들도 지난 며칠간 짝귀에 동조하여 소년 기사의 비위를 거슬린 적이 여러번이었기에 똥줄타는 심정을 느끼고 있었던 까닭이다.


마침 떨어진 제라드의 명령은 이러한 그들의 불안을 확 씻어주었다.


" 죽여라! "


" 가자! "


마이네 영지 소속 정찰기병들은 제라드의 명령에 거센 호응을 보내며 두패로 나뉘어서는 혹스빌 기병들에게 달려들었다.

헌데 기세좋게 각자의 무기들을 한껏 들어올린 것과는 달리 돌격 방향이 중앙에 나선 나이트 칼을 살짝 돌아가는 형태였다.


" 쯧. "


어차피 제라드도 저들에게 큰 기대 따위는 하지 않았다.

지금으로써는 대놓고 항명하지 않는 정도면 된다는 생각을 품은 그가 애마에 박차를 가했다.


" 이익! 이것들이? "


분지 중앙에서 홀로 얼굴을 붉히고 있던 혹스빌 영지 소속 비취기사단원인 나이트 칼의 앞으로 나선 것이다.

제라드는 뒤편에서 쏟아지는 시브리오의 강렬한 시선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 나이트 칼. 마스터 도노반의 제자, 제라드다. 당신의 상대는 내가 맡도록 하지. "


" 오냐. 내 너에게 진정한 기사도를 알려주마. "


챙-


나이트 칼이 아밍 소드를 뽑아든 채로 허리춤에 있던 검집을 풀어서는 제라드에게로 던졌다.

날아오던 검집은 제라드가 뽑아들어 휘두른 롱소드에 부딪혀 분지의 한구석으로 날아갔다.


제라드는 자신의 이 한수에 진중해지는 나이트 칼의 얼굴을 살펴보다 가슴이 뛰어오는 것을 느꼈다.

낭만주의에 물들은, 정신상태가 살짝 의심스러워 보이는 기사이기는 했어도 어느정도 실력은 있는 모양이었다.

적어도 자신과 비슷한 수준은 되는듯 했다.


서로를 주시하기 시작한 두 기사의 주위로는 묵직한 분위기가 흘렀다.



챙- 챙- 챙-



- 죽어!


- 끄아악-


- 도와줘!



어느새 접전을 펼치고 있는 양 영지의 기병들이 서로를 향해 무기를 휘두르며 발생하는 소음들이 분지 전체로 퍼져나갔지만 대치하고 있는 두 기사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듯, 서로를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나이트 칼은 오랜 견습기사 생활끝에 정식으로 서임받은 터라 기사대전의 경험이 있었다.

다만 지금 상대하게된 제라드의 실력이 미지수이기에 어떤 식으로 공격해야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반대로 제라드는 아그네스 경을 제외한 기사와의 대전이 처음이다.

어떻게 풀어나가야할지 그가 고민하고 있을 때, 나이트 칼이 선공을 취했다.


두두두-


스악-


말의 박차를 가해 달리며 고삐를 놓은다음 오른손에 쥔 검을 휘둘러온 것이다.

지난 25년에 달하는 시간동안 나이트 칼이 연마해온 하트만식의 검초였다.

공기조차 갈라버리는 날카로운 검세가 마주 달리기 시작한 제라드에게로 날아왔다.


하지만 제라드는 미묘하게 거슬리는 느낌을 받았다.

나이트 칼의 검격이 날카롭기는 해도 어쩐지 자신을 무시하는듯한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는 나이트 칼의 검격에서 전심전력을 다한 기세를 느끼지 못했다.

찰나의 고민끝에 제라드는 상대에게 교훈을 내려주기로 했다.

실전에서 배우는 값비싼 교훈을 말이다.



부우웅-


제라드의 롱소드가 붉게 달아오르며 공명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검손잡이에서 시작된 시뻘건 불꽃의 기운이 검날을 타고 흐르더니 마침내 검신 전체를 휘감은 것은 삽시간.

단 몇초도 안되는 시간만에 오러 소드가 완벽한 형상을 갖추었다.



이제와 사실을 고백하자면, 짝귀 녀석은 제라드에게 의도치 않게 큰 도움을 주고 이승을 떠났다.


로벤티아 대륙에서 다시 태어난 이래로, 제라드는 지난 13년의 시간동안 강한 압박을 받아왔다.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난 자에게는 주위 모든 환경이 적대적이다.

심지어 그의 생물학적 아비조차도.


걸음마를 시작한 이래로 제라드는 어미를 지켜야만 했고, 어미가 죽은 이후로는 동생인 플로렌을 지켜야만 한다는 의무를 떨쳐내지 못했다.

가족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불행한 사실은 다시 태어난 그의 머리가 지나치게 기억력이 좋았다는 점이다.


전생부터 현생까지, 경험한 모든 것들을 바로 방금전에 겪은 일처럼 생생하게 구현하는 그의 두뇌가 큰 두통을 선사한 것이다.


때때로 떠오르는 모진 기억들과 현실의 불합리들은 애써 잊으려해도 슬그머니 그를 괴롭히기 일쑤였다.

더해서, 인권으로 대변할수 있는 21세기 지구와 야만 그 자체인 대륙의 삶이 부딪힐때마다 그는 큰 심화를 겪어야만 했다.


이렇게 가슴속에서 타오르는 심화는 아그네스 경에게 거두어진 이후로도 여전했다.


결코 반갑지 않은 일이었고, 최근에 들어서는 아그네스 경에게서 전수받은 오러 브레스-'생명의 불꽃'마저 벽에 부딪히며 심란함을 더했다.



그런 어려움을 겪고 있던 제라드에게 짝귀 녀석이 심란함을 더욱 부채질한 것이다.

한칼도 안되는 녀석이 깐죽거릴때마다 참는 것은 실로 큰 인내를 요구했다.

제라드는 조금씩 자신이 쌓아온 기운들이 통제불능에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어디로든지 맹렬하게 터져나가려는 기운을 붙들고 있는 것은 고욕이다.


그런데 1시간전쯤,

제라드가 마침내 더이상 참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서 짝귀의 목을 쳐버리던 순간, 코어에 저장되어 있던 마그마같은 기운이 전신을 돌며 달군 다음에 돌아오더니 잠잠해진 것이다.


깊은 청량감을 남기고서.

심지어 계속해서 그를 괴롭혀온 두통마저 날려버려 머리속이 깔끔해졌다.


짝귀의 목을 날려버리고서 제라드는 태어난 이후 처음으로 맑은 머리로 자문했다.


' 강태산인가, 제라드인가? 나는 제라드다. '


강태산의 기억을 지닌 제라드일 뿐인 것이다.


짧은 깨달음이 퍼져나가며 태어난 이후 계속해서 흔들렸던 그의 정신이 똑바르고 단단하게 뿌리를 내렸다.


하여 앞으로 제라드로서 보낼 자신의 인생관도 명확히 결정할 수 있었다.


전생에 그가 들은 유명한 격언이 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


간단하기 짝이 없는 진리다.

그런고로 제라드도 그가 지금 살아가는 로벤티아 대륙의 법을 따르면 그만이다.






스거걱-


삽시간에 불꽃을 피워올린 제라드의 롱소드가 나이트 칼과 교차하는 순간 원을 그리며 깊은 금속성을 남겼다.


소리는 하나.

그러나 베어낸 것은 셋.



제라드는 똑똑히 봤다.

자신의 롱소드가 소드 오러로 뒤덮이던 순간 나이트 칼의 눈이 화등잔만해지던 모습을 말이다.



털썩-


묵직한 무엇이 지면으로 넘어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푸화악-


두줄기의 피분수가 터졌다.

돌아선 그의 시야로 황망한 표정인 나이트 칼의 얼굴이 똑똑히 보였다.


나이트 칼은 지면에 내려선 채였는데,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머리를 잃은 말을 계속 타고 있을수는 없었을 것이다.

방패를 들고있던 왼팔을 잃은 쇼크도 만만치 않을테고.


그렇게 큰 충격에 빠진 나이트 칼을 향해 제라드가 오연히 내려보며 단언했다.


" 나이트 칼. 자만의 대가는 왼팔로 받았다. 다음은 당신의 목이다. "



휘이잉-


잦아들었던 바람이 다시금 불어왔다.

소란스럽던 분지는 어느새 조용해진 상태였다.

일반 기병들끼리 서로의 목숨을 내걸고 처절하게 벌이던 생존투쟁도 끝난버린 것.


척-


나이트 칼에 맞춰 제라드는 애마에서 내려섰다.

그리고 두손으로 검을 쥔채로 들어올려 나이트 칼에게 향했다.


두번은 없다.


계속해서 방심한다면 이대로 천국으로 보내주면 된다고 생각한 제라드가 가장 익숙한 검로를 그리려 할 때였다.



꼬로록-


털썩.


나이트 칼의 핏기가신 얼굴에서 눈동자가 돌아가더니 뒤로 쓰러져버렸다.



휘이이이잉-


어디선가 또 한번 불어오는 산바람이 제라드의 황망함을 부채질하고 있었다.


작가의말

선작, 추천, 댓글은 글쟁이에게 큰 힘이 됩니다...



사죄의 말씀 올리겠습니다.

노트북 붙들고 있기를 5시간.

아무리 고쳐도 어떻게 더 퀄리티를 올릴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습니다.

뭔가 마음에 안드는데 뭐가 마음에 안드는지도 모르겠어서 답답함만 더해지지만 더 늦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지금이라도 업로드합니다.


어제도 댓글을 남겨주신 뇌활단님, 조카님께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글쟁이 Aree88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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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아그네스 건국사 - 13 +11 19.05.19 9,196 267 14쪽
13 아그네스 건국사 - 12 +9 19.05.18 9,489 263 16쪽
» 아그네스 건국사 - 11 +11 19.05.18 9,735 287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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