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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아자아자!

아그네스 건국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Aree88
작품등록일 :
2019.05.14 01:28
최근연재일 :
2019.06.12 10:05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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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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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42
글자수 :
237,471

작성
19.05.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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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아그네스 건국사 - 20

DUMMY

마라두스 공국의 인근에는 마이네 산맥의 지배권을 두고 벌어진 영지전의 결과를 주의깊게 살피는 시선들의 수가 적지 않았다.

그렇기에 영 신뢰가 가질않는 이야기와 함께 실려온 영지전의 결과는 많은 권력자들을 실망시켰다.


그러나 소수의 인간들은 달리 생각했다.

그들은 몇몇 허황스러운 이야기들을 빼놓고 분석해볼때 드러나는 중요한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바로, 마장기의 전쟁병기로의 전용 가능성.

오우거 대적용 결전병기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기실 마장기가 인간을 상대로 할 때 무적에 가까운 위용을 자랑할 것이라는 예측은 누구나 쉽사리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드러난 결과도 자명했다.

양 귀족의 군세는 마장기를 상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심지어 기사들마저도.

진정한 마스터가 나타났다는 어이없는 소식도 있었지만 가볍게 무시되었다.



이 마장기라는 이름의 결전병기가 개발된 이후로도 200년 가까이 널리 사용되지 않았던 까닭은 총 세가지다.


첫번째는, 기대했던 만큼의 성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 그 이유.

초기의 마장기는 골렘에 가까운 형태였으며 기사들에게 움직이는 관이라고 불리고는 했다.

마장기의 오작동으로 인해 탑승자가 사망하는 어이없는 사고도 여럿.

더구나 외형 설계부분에서 비롯되는 많은 결함을 갖고있었기에 작정한 기사가 목숨을 포기하고 파고들 경우 대책이 없었다.

하지만 지속되는 개발로 인하여 최근들어 마탑이 세상에 모습을 공개하는 마장기들의 출력은 1OP에 근접한 상태였으며 무수한 설계변경 끝에 약점의 외부노출은 사라졌다.


두번째는, 막대한 유지비용이다.

위력은 분명할테지만 전장에 마장기를 투입했을시의 예상비용이 감당불가였다.

약탈을 전제로 깔아도 이러한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한대 당 2만 마르크에 해당하는 가격에, 본격적으로 운용할시 한번의 전투마다 2천 마르크 상당의 외장갑을 갈아주어야만 한다.

2천 마르크는 열명의 기사를 풀플레이트 메일로 도배하고서도 남는 돈이다.

고로, 단순하게 생각하자면 2만 마르크 상당이면 기사 100명을 유지할수 있다는 계산이다.


세번째는, 마탑의 정책 때문이었다.

크게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마장기의 원 개발자이며 판매자이기도 한 대륙 유수의 명문 마탑들은 담합으로 각 국의 권력자들이 전장에 마장기를 투입하는 것을 방해했다.

마탑의 콧대높은 마도사들은 마장기를 판매하면서도 마장기가 본래의 목적에 부합하게끔만 사용되어야 한다는 제약을 걸었다.



하여, 마장기가 가진 전쟁병기로써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던 몇몇 권력자들은 꽤나 오랬동안 아쉬움을 숨기고 있었다.

여러 복합적 이유로인해 전장에서 마장기의 모습을 볼수는 없었지만 그 가능성만큼은 너무나 매력적이었던 탓.


그리고 그런 이들에게 이번 영지전에서 미친척 튀어나와버린 마장기의 존재는 큰 호재였다.

선례가 생긴 것이다.


야망이 넘치는 권력자들은 작은 공국의 영지전 배경에 대해서는 굳이 깊게 파고들려하지도 않았다.

그들에게 중요한 사실은 전장에서 마장기가 사용되었다는 사실이며, 그동안 꾸준히 매입해온 마장기의 숫자가 상당량이라는 것.

또한 일부 마장기가 파괴되었을 시에 긴급수리를 할 정도의 준비가 되어있었다는 점이다.

무수한 전비가 소모될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전쟁을 끌지않고서 최대한 빨리 끝내면 된다는 계산을 마쳤다.

이쯤되자 마탑의 반발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들에게 지금 보이는 것은 거대한 제국과 제국을 다스리는 자신의 모습이었으니.

권력이 이성을 마비시켰다.


그런 이유로 야망에 불타는 눈동자들이 최종적으로 향한 곳은 주변의 소국들이 되었다.



시대의 정복자가 되고 싶었던 이들에게 더없는 호기로 작용한 사실이 하나 더 있었다.

이 중요한 시기, 대륙 마탑의 수뇌부가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있던 바람에 작은 영지전에서 마장기가 투입된 '작은 사고'를 미처 수습하지 못하고 수수방관했던 것이다.


꽤나 오랜만에 소강상태에 빠져있던 대륙의 전화가 다가오는 전란의 시기를 맞이하기위해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쉬이익-


샥-



화르륵-


두 청년이 서로를 향해 검을 휘두를 때마다 바람결 갈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잔향을 남기고, 흘러간 검의 잔영은 옷깃을 스치며 불티를 날렸다.

팽팽한 긴장감이 얼굴에 흐르는 진땀마저 느끼지 못하게하는 가운데 서로를 마주보는 청년들은 진지함 일색.


그리고 이러한 진지함은 연무장 구석에서 숨소리조차 내지않고서 지켜보는 세 아이에게도 전염되어 시종일관 긴장을 늦추질 못하게 만들었다.

10살 남짓의 여아와 5살 가량되어 보이는 젖살 통통한 두 사내아이는 두 주먹을 꼭 쥐고서 청년들의 움직임을 눈에 담고 있었다.


오늘도 대련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쨍-


퍽-


팽팽하던 것처럼 보이던 것에 비해 파국은 순식간.

시종일관 편한 신색을 유지하고 있던 청년이 맞댄 검을 비틀어 흘려내면서 상대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을 때, 지켜보던 아이들의 얼굴에는 흐릿한 기쁨의 감정이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그리고 이러한 아이들의 태도는 생각지도 못하게 허를 찔리며 연무장 바닥으로 넘어져버린 덩치 큰 청년에게도 읽힌 모양이다.


" 이런, 내 편은 아무도 없는거냐? "



넘어진 충격은 아랑곳하지 않으며 몸을 일으켜세우던 청년이 투덜거리지만 아이들은 미안해하는 기색도 없이 자기 할일을 위해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어린 사내아이들이 종종걸음으로 수건과 물통을 챙겨서는 대련에서 승리한 청년에게 다가갔다.

이후 선망의 시선과 함께 자신들의 노고를 입증하기 위를 애를 쓰는 모습은 가상하기만 해서 이를 바라보며 입술을 씰룩이던 덩치 청년은 결국 웃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 하하하, 이 쪼그만 녀석들아. 너희들이 시종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른단 말이냐? "


하지만 꼬맹이들은 청년에게 시선 한번을 주지 않았고, 예상외의 목소리가 답했을 때 그가 보일 반응은 정해져 있었다.



" 시브리오. "


" 아, 아가씨. "



황급히 예의를 차리는 채로 수건과 물통을 받아드는 덩치 청년의 얼굴에 송구한 기색이 어릴 때, 플로렌은 그런 시브리오를 향해 싱긋 웃음지었다.


너무 숫기가 없던 탓일까?

상큼한 어린 여아의 미소를 보고서 시브리오가 얼굴을 붉히는데, 그 모습이 플로렌은 귀엽게만 보이는 모양이다.



제라드가 초원의 후예들을 이끌고 남작령에 도착한 이후 지나간 5년의 시간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우선, 두 소년기사가 더이상 어리게만 봐줄수 없게 성장했다.

앳된 얼굴에 목소리마저 여리여리하던 소년들은 더이상 찾아볼 수가 없어졌다.

지금도 앳된 티가 살짝 남아있긴 했지만 우람하게 자라난 덩치에 수염까지 기르는 그들의 얼굴에는 관록이 생겨나는 중이었다.


플로렌은 5살배기 울보에서 조숙한 숙녀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었으며, 초원의 후예들은 아그네스 남작령에 무사히 정착하는데 성공했으니 시브리오써는 더이상 바랄게 없는 상황이 되어버려 흡족한 마음이 되기도 했고.


물론 그 과정에서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은 아니어서 대지에 스며든 혈흔이 적지않았다는 사실은 접어두어야겠지만 말이다.



플로렌은 시브리오가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물까지 마시는 것을 지켜본 뒤에야 발걸음을 옮겨 자신의 오라비에게 향했다.

10살이 된 그녀의 눈에 들어오는 오라비의 모습은 굉장히 많이 변해버려 무심코 의식하고나면 어색하게 느껴질 지경에 다다랐다.


우람한 덩치, 형형한 갈색의 두눈 아래로 굳게 다물린 입술.

날카로운 턱선을 따라 잘 관리된 수염이 도드라져 보이는 모습은 도저히 17세 청년의 얼굴이라고는 봐줄수 없을 지경이니,


가족인 그녀에게도 때때로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일 것이다.


" 오라버니. "


그래도 변하지 않은 것 하나를 꼽는다면 바로 이것.



" 무슨 일이냐. "


언제나 냉막한 표정을 유지하면서도 플로렌에게만큼은 보여주는 따뜻한 미소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짧은 단답에 불과함에도 플로렌은 그 안에서 동기간의 정을 역력히 느끼며 자신에 대한 오라비의 배려를 설핏 느끼고는 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오라비를 속상하게 만들 소식을 전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허나 그렇다고해서 영지의 지배자에게 도착한 소식을 전달하지 않을수도 없는 일이었다.

한숨을 폭 내쉰 플로렌이 더는 주저하지 않고서 자신이 들은 소식을 제라드에게 전달했다.


" 수도에서 사절이 오고 있다고해요. 그리고 사절의 이름은... 세이럼, 세이럼 혹스빌이라네요. "



순간, 플로렌은 오라비의 두눈에서 불꽃이 튀는 환상을 본것만 같았다.

안그래도 형형한 눈에서 쏟아져나오는 눈빛이 한순간 더 강렬해졌던 탓이었다.

허나 그 시간은 매우 짧았고, 다음으로 내뱉어진 오라비의 목소리는 부드럽기만 했기에 플로렌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이러한 소식은 플로렌에게는 매우 다행한 일이기도 했음이다.

10살이라는 어린 나이로 조숙한 숙녀를 꿈꾸는 소녀는 짙은 혈향과는 결코 어울리질 않았으니.


당분간 플로렌은 앞으로 맞이하게될 새로운 가족과의 관계에 대하여 꿈꾸고 고민하는 것이 어울리는 나이였다.



" 플로렌, 다리우스와 메이햄을 데리고 가거라. 나는 시브리오와 함께 나눌 얘기가 있어서 이만 나가봐야겠다. "


다리우스와 메이햄이란 이름을 가진 두 소년은 제라드가 남작령의 주인이 된 이후로 받아들인 두 아이의 이름이다.

어딘가의 몰락한 명문 자제인듯한 다리우스와 자유민 가정 출신인 메이햄은 출신은 서로 상반되나, 기사라는 같은 꿈을 꾸면서 서로에게 경쟁심을 갖고 있는 어린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야말로 덩치 큰 사내들밖에 보이질 않는 남작가에서 플로렌이 유일하게 귀여워해줄수 있는 상대이기도 했기에, 플로렌은 별 불만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연무장을 떠났다.





저벅- 저벅-


제라드는 세 아이들이 떠나 휑해진 연무장을 성큼성큼 가로질러 내성의 성벽으로 향했다.

조용히 뒤를따르는 시브리오와 그의 사이에는 여전히 침묵만이 감돌았지만 두사람 다 그러한 사실에는 신경쓰지 않았다.

거의 붙어 살다시피하며 함께 한 세월이 깊어진만큼, 깊은 유대감이 그들을 묶어주고 있음이니 불필요한 말은 굳이 필요없음을 서로가 알고 있었다.



오가며 마주치는 여러 사람들이 화급히 예를 취하는 것도 무시하면서 쭉 내달린 발걸음은 내성의 계단으로 이어져 끝에는 성루에 도착하고서야 멈췄다.


탁트인 시야 가득 보이는 황금 밀밭의 풍경이 제라드의 시선 가득 들어찬다.



5년이란 시간속에서 제라드가 변한만큼 남작령의 모습도 변해 있었다.

주먹구구식으로 개간되던 농지는 구획별로 깔끔하게 정리된데다 개울이 흐르는 곳 옆으로는 바람을 맞아 돌아가는 풍차가 자리했다.


처음 제라드가 남작령에 도착했을때, 5만에 달했던 남작령의 인구는 현재 수천명이 더 불어난 상태다.


남작령에 도착했던 그는 뒤늦게 현황을 파악하고나서야 백작의 선물이 더 있었음을 깨달았다.

본래의 마린돌프 영지 크기의 반에 해당하는 영역을 덤으로 붙여주었던 것이다.


5만에 달하는 영지의 인구는 이후 제라드가 일을 벌이는데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평범한 남작령이었다면 그가 뭔가를 하려할 때마다 적임자를 찾기위해 고생했을 터인데, 아그네스 남작령에는 숙련이 부족해도 수박 겉핥기나마 할줄아는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풍경이다.

제라드의 기억속에만 존재하던 몇몇 물건들이 만들어졌고 짧은 지식에 입각하여 전보다는 효율적인 관리상태를 보이게 되었다.



" 시브리오. "


" 예스, 마이로드. "


등돌린 제라드의 부름에 아그네스 남작령의 유일한 정식 기사는 무릎을 꿇으며 정중한 예를 갖췄다.

이는 처음 만났을때는 대장과 부하였던 관계가 영주와 가신으로 바뀌며 따라온 자연스러운 변화였다.


" 지금까지 몇개의 랜스가 편성을 마쳤지? "


랜스란 곧 이 시기의 최소 부대 단위를 뜻하는 명칭이었다.

한명의 기사는 20~50명으로 이루어진 모병된 병사들을 이끈다.

이러한 최소 단위 편제가 바로 1랜스였다.


" 완편된 20개의 랜스가 준비되었습니다. "


즉, 1000에 가까운 병력이 준비되었다는 말이었다.

일반적인 남작이 동원할수 있는 최대치를 가볍게 넘어서는 숫자였다.


오러를 발현하지 못하여 정식으로 서임받지 못한 수많은 자들이 유랑하며 기사를 자처하는 시대다.

남작령의 부는 이러한 자들을 끌어모아 군세를 편성할 자금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20명에 달하는 재능만큼은 모자라지 않을 기사와 1000의 병력을 준비했음에도 제라드는 부족함을 느꼈다.


때문에 한박자 늦게 흘러나오는 씁쓸한 어조는 반쯤은 회의감에 젖고, 나머지 반쯤은 아쉬움에 잠겨 있었던건지도 모른다.



" 시브리오, 나는 할아버지의 유고를 따라 '지키는 자'가 되고 싶었건만, 어리석게도 미망에 사로잡힌 내 마음은 그 전에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어. 할아버지의 죽음에 관계된 자들을 징벌하고, 내 어머니가 남겼던 땅을 되찾아오라고 말이야. "


" ... "


" 때문에 이 땅에 임한 뒤로도 생각이 뒤바뀌길 수십여번이었다. 근래에는 플로렌의 성장하는 모습에 당분간만이라도 안주하려는 방향으로 마음이 굳어가고 있었건만, 절제를 모르는 인간들의 욕심이 나를 흔들다못해 등을 떠미는구나. "


들을 귀 없는 곳에서 한탄이 섞여 흘러나오는 음성은 평대로 바뀌어있었다.

시브리오는 혼잣말하듯 흘러나오는 그 모든 말들을 가만히 들어주었다.


" 하여, 나는 그 멍청한 작자들이 나를 부르는 호칭처럼 도살자가 되려고 해. 짐승이 되어 나에게 속한 것들을 위협하는 모든 것들을 물어뜯고, 감히 사자를 몰라본 두눈을 뽑아버리고, 빼앗긴 모든 것들을 되찾아올거야. 목표를 취하지 않는 이상, 결코 멈추지 않을거야. 너에게는 미안할 뿐이다. "


지금 이 순간에만 털어놓을수 있는 제라드의 진심이었다.



출신이 명확하지 않은 제라드가 3년전, 성인이 되어 정식으로 남작위에 오른 이후 말하기 좋아하는 자들은 아그네스 영지의 어린 지배자를 두고서 험담하기를 즐겼다.


그때만 해도 떠들어대는 수준은 그리 심각하지만은 않았다.

어린 지배자의 위엄이 과연 영지 전역에 미칠수 있을지, 낄낄대곤 하는 수준.

허나, 지배자의 위엄이란 함부로 떠들어대도 상관없는 종류가 아니다.


제라드는 이 소식이 귀에 들어온 직후곧장 시브리오와 초원출신 정예병들을 이끌고 발본색원에 나섰다.


그리하여 찾아낸 이들은 다름아닌 전대 남작이었던 마린돌프가에 빌붙어 살아가던 자유민들 무리였다.


대륙을 주유한 경험으로 제라드가 알고 있는 것은 간단한 진리였다.

이 야만의 대륙에서 얕보이는 것은 곧 굶주린 짐승 앞에서 목덜미를 드러내는 것과 같다는 사실.

때문에 제라드는 망설이지 않았고, 자비를 보이지도 않았다.


그 일 뒤로 소문이 더욱 퍼져나갔다.

아그네스 남작령 인근에 접하고 있는 영지의 지배계층인 귀족과 기사들은 사실의 진위를 알고 있음에도 굳이 소문을 막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더욱 부채질했다.


결과적으로 남작령부터 백작령까지 적잖은 소문들이 사실인마냥 퍼져있었고, 그중에 가장 유명한 소문은 이 어린 망나니 지배자가 사람 목따는 것을 매우 좋아하며 직접 따버리는 솜씨 하나만은 최고라는 허황된 소문이었다.


주변 귀족들이 이러한 소문을 퍼트린 의도는 짐작하기 쉬웠다.

질나쁜 소문을 퍼트려 다가오는 제라드의 결혼을 막고자 함이었다.

그들은 공국 남부방면의 패자인 백작이 이번 결혼식에 대한 명확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면서 헛된 노력을 그치지 않았다.


그렇게 지치지않고 흔들어대던 그들의 노력은 다른 방향으로 성과를 거두었다.

백작의 거듭되는 요구에도 침묵하고 있던 제라드가 움직일 마음을 먹게함으로써 말이다.

그런 그들의 노력에 보답하기 위해 제라드가 선물해 줄수있는 것은 단 하나뿐이다.

빠른 죽음.


제라드는 자신을 두고 운좋은 망종 정도로 여기는 이들에게 이번 기회에 똑똑히 각인시켜줄 마음을 품었다.

새끼 사자가 다 성장했음을, 또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했음을 널리 알릴 것이다.



그가 마침내 결단을 내리고서 백작과의 사이에 서신이 오간 끝에 결정된 신호가 바로 새로운 공왕의 즉위식 사절이다.


다만 염려되는 것이 있다.

시브리오가 그를 따라온다면 절대 혼자는 아닐 것이다.

분명 친지와 같은 이들을 대동할 것이고 그들중 적잖은 이들이 목숨을 잃게될 것이었다.



" 어때? 지금이라도 네가 원한다면 적당한 장원을 하나 떼어줄수있어. "


한번 달리기 시작하면, 절대 멈추지 않을 요량이었다.

그렇기에 이 물음은 시브리오에게 있어선 삶의 기로라고 보아도 좋았다.


숨겨왔던 속마음을 이렇게 모두 털어낸 제라드는 그제서야 돌아섰다.

그리고 어느새 몸을 일으켜 자신을 바라보며 씩 웃고있는 시브리오의 얼굴과 마주쳤다.


제라드의 허심탄회한 고백에 답을 들려주는 시브리오의 음성은 어느새 5년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 대장, 이 놈은 대장에게 속했던 그날부터 언젠가 숨이 끊어질 날까지 함께하기로 맹세한 몸입니다. 설마 이제와서 제가 귀찮아지신 것은 아니겠지요? "


점점 나이를 먹어가며 좀처럼 보기 힘들어졌던 유들유들한 반응이 차갑게 식어가는 제라드의 속을 조금이나마 풀어내었다.

그에 제라드의 얼굴에서도 잠시간 미소가 번져갔다.


제라드는 한순간 얼굴위로 떠올랐던 감정을 지우고서 다시 뒤돌아섰다.

이윽고 내려지는 지시는 군주의 비정함이 물씬 풍겨나왔다.


" 하임러에게 전달하도록. 남작군은 준비태세를 마친 뒤 일주일 후에 출발한다. 목표는... "


다시 돌아선 제라드의 시선에 빼곡히 열린 밀알이 가득달린 평야는 더이상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훨씬 더 먼 곳을 향해 있었다.



" 백작령의 중심도시인 '메인즈'다. "


" 예스, 마이로드! "


기사는 자신의 군주에게 더없는 공경을 표하며 다시 예를 차렸다.

잠시지간 시브리오게서도 잠깐 내비쳤던 소년의 얼굴은 사라진 뒤였고, 굵은 목소리는 신뢰의 표상으로 의지를 더했다.


시브리오의 힘찬 대답을 뒤로한 제라드의 눈에 저멀리 가도의 끝에서 뿌옇게 일어나는 흙먼지가 보였다.

분명 새로운 공왕의 즉위식에 참석하라는 명령서를 들고있는 근위기사 나부랭이일 터이다.



이름은 세이럼 혹스빌.


제라드가 절대 잊어버릴 수없는 족속의 성을 지닌 자였다.

지금 세이럼이라는 자가 어떤 생각을 품고 있을지 훤하다못해 머리속에 그려지는 제라드의 시선은 차갑기만했다.


얽히고 섥힌게 많은 사이.

맺힌게 많은 만큼 공왕의 권위를 빌어 제라드를 직접 망신주기 위해 로비까지 벌였을지도 모를 일.


안타깝지만 그들이 그린 모든 계획은 얄짤없이 쓸모없어질 예정이다.

지금 제라드에게는 바로 코앞으로 다가온 결혼식 예물이 필요하던 참이었으니까 말이다.


작가의말

선작, 추천, 댓글은 글쟁이에게 큰 힘이됩니다.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일찍 업로드합니다.

조카님, 뇌활단님, g3451_namgd0502님, Vivere님 모두 사랑해요♥.

그리고 Vivere님, 항상 남겨주시는 댓글 꼭꼭 읽어보고 있어요 ㅋㅋ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다만 제 손가락이 모자란 녀석이라 매번 저도 속이 타네요 ㅠㅠ.

앞으로는 더욱 단련하겠습니다! 


아참, 오늘은 연참할수 있도록 혼신을 다해볼게요. 

증말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6

  • 작성자
    Lv.99 조카
    작성일
    19.05.24 10:07
    No. 1

    건투를!!!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Vivere
    작성일
    19.05.24 23:23
    No. 2

    이야기의 전개가 확확 넘어가서 시원하고 재밌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아쉬운점이 있습니다. 이 소설이 영지 발전물이 중심소재는 아닐지라도 영지를 받았는데 그후 5년이 지났다고 몇줄로 그냥 쓱 영지의 그간 발전 상황이 짧게 지나친게 너무 너무 아쉽습니다. 대개 중세 판타지가 배경이 소설에서 거기다 주인공이 현대의 기억을 지니고 있다면 영지를 얻고 발전시키는 그 과정이 빼놓을수 없는 재미와 몰입 요소라고 생각하는데 그냥 또 훅 지나가버려서 너무너무 아쉽습니다. 거기다 플로렌의 귀여운 아기? 아이 시절까지 덤으로 훅 지나가버리다니 너무너무 아까운 재미 소재와 요소들이 그냥 훅 사라져서 안타까울뿐입니다. 그렇다고 작가님의 이야기 흐름을 이러쿵 저러쿵 제 개인적인 취향으로 뭐라고 할수는 없으나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나중에라도 외전 몇편씩해서 영지 발전상을 다른 등장인물 영지민등의 시선으로 보여준다던지 여동생 플로렌의 5세 부터 성장 과정이라던지 이런 외전을 보고 싶습니다. ㅎㅎ

    찬성: 3 | 반대: 1

  • 작성자
    Lv.78 wwwnnn
    작성일
    19.05.31 11:38
    No. 3

    외면서>외면하면서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1 Aree88
    작성일
    19.06.01 01:10
    No. 4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8 제인수
    작성일
    19.05.31 23:45
    No. 5

    애들은 금방 큼.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2 knf
    작성일
    19.06.01 12:40
    No. 6

    영지물의 큰 재미가 발전모습남기는건데 그걸 다 ㅋㅋㅋ

    찬성: 1 | 반대: 2

  • 작성자
    Lv.64 로얄푸딩
    작성일
    19.06.01 19:29
    No. 7

    20살짜리가 자신의 절반 산 10살 보고 얼굴을 붉히다니....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4 로얄푸딩
    작성일
    19.06.01 19:34
    No. 8

    동기간의 정 - 혈육간의 정?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4 로얄푸딩
    작성일
    19.06.01 19:35
    No. 9

    메이햄이란 가진 - 메이햄이란 이름을 가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1 JHa
    작성일
    19.06.02 11:27
    No. 10

    중간에 마장기와 기사의 유지비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2만을 5만으로 잘못 표기하셨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1 Aree88
    작성일
    19.06.04 02:04
    No. 11

    오류지적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오무새
    작성일
    19.06.09 10:49
    No. 12

    세이럼이 뭐하는 애들이었지?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6 고독비
    작성일
    19.06.24 01:04
    No. 13

    잘보고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아그룬타
    작성일
    19.06.24 07:51
    No. 14

    솔직히 묘사된 수준이면 쇠사슬이나 철사 등으로 함정을 파거나 땅에 함정을 파면 충분히 구동 불가능으로 만들 수 있는 무기라고 생각되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2 흙색불사조
    작성일
    19.08.31 16:01
    No. 15

    93% 잠시지간 시브리오게서도
    많이 어색하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19.11.17 00:18
    No. 16

    잘 봤어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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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아그네스 건국사 - 29 +25 19.06.02 8,026 261 15쪽
29 아그네스 건국사 - 28 +15 19.06.01 7,908 257 13쪽
28 아그네스 건국사 - 27 +17 19.05.31 8,120 280 16쪽
27 아그네스 건국사 - 26 +23 19.05.30 8,266 265 15쪽
26 아그네스 건국사 - 25 +21 19.05.28 8,070 259 14쪽
25 아그네스 건국사 - 24 +16 19.05.27 8,119 244 15쪽
24 아그네스 건국사 - 23 +15 19.05.26 8,634 247 18쪽
23 아그네스 건국사 - 22 +15 19.05.26 8,307 235 14쪽
22 아그네스 건국사 - 21 +9 19.05.25 8,619 228 16쪽
» 아그네스 건국사 - 20 +16 19.05.24 8,930 262 19쪽
20 아그네스 건국사 - 19 +20 19.05.23 8,922 308 15쪽
19 아그네스 건국사 - 18 +14 19.05.22 8,706 227 14쪽
18 아그네스 건국사 - 17 +13 19.05.21 8,631 221 14쪽
17 아그네스 건국사 - 16 +22 19.05.21 8,589 246 14쪽
16 아그네스 건국사 - 15 +7 19.05.20 8,816 248 13쪽
15 아그네스 건국사 - 14 +18 19.05.19 9,037 243 15쪽
14 아그네스 건국사 - 13 +11 19.05.19 9,197 267 14쪽
13 아그네스 건국사 - 12 +9 19.05.18 9,490 263 16쪽
12 아그네스 건국사 - 11 +11 19.05.18 9,737 287 17쪽
11 아그네스 건국사 - 10 +13 19.05.17 9,990 250 17쪽
10 아그네스 건국사 - 09 +12 19.05.17 10,552 250 15쪽
9 아그네스 건국사 - 08 +11 19.05.16 11,064 286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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