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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기순덕님의 서재입니다.

마법 웨딩홀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중·단편

공모전참가작

에리카짱
그림/삽화
에리카
작품등록일 :
2024.05.22 16:44
최근연재일 :
2024.06.29 00:26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277
추천수 :
20
글자수 :
97,170

작성
24.06.21 18:29
조회
10
추천
1
글자
10쪽

도둑질

DUMMY

“일어나!”


밝은 빛에 눈이 부셨다.

온몸에 한기가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는 송곳처럼 상희의 머리를 찔렀다.

지독한 두통에 바로 일어나기 힘들었다.

누운 상태에서 옆으로 기어 올라오듯 간신히 몸을 일으킨 상희는 낯선 주변 환경에 당황했다.


“여긴 어디죠?”


바로 전에 이사장실에서 차를 마셨고, 그 이후의 기억이 사라졌다.

누군가에게 당했다는 생각이 들자 울컥하고 화가 치밀었다.


“도대체 뭘 먹인 거야?”


순간 지금 누워있는 곳이 수술대 위라는 것을 인지하고 입을 다물었다.


하얀 벽, 차가운 공기, 심장박동 소리처럼 규칙적으로 들리는 기계음.


먼저 몸이 묶인 것은 아니라는 것에 안도한 후 눈알을 사방으로 돌리며 도망갈 구멍을 찾았다.


“앉아!”


벽과 천장과 침대를 때리며 울리는 목소리는 무겁고 엄숙했다.


‘굴복해라!’


무언의 메시지가 담긴 것처럼 느껴졌다.


“누구세요?”


마음을 다 잡았지만 염소처럼 떨리는 목소리는 어쩌지 못했다.


“원하는 게 뭐야?”


“그건 제가 해야 할 질문 같은데요.”


하얀 벽 속에서 이사장이 몸을 드러냈다.

뭐지? 인간이 아니었나?


“왜 주변을 자꾸 멤도는 거야?”


“누구세요?”


“몰라서 묻는 거야?”


“네, 정말 몰라서 묻는 거예요. 누구세요?”


“재밌네.”


잘생긴 이사장은 상희 옆에 앉았다.

좁은 1인용 침대에 몸을 맞대고 앉으니 더 숨이 막혔다.

뭐야. 이 인간, 아니 인간인지도 모르겠고, 지금 나한테 원하는 게 뭐지?


상희의 얼굴을 곁에서 보며 웃는 이사장은 심각하게 잘생겼다.


상희의 마음이 스르르 녹을 정도로.


“어머님이 돌아가셨다고?”


“네? 네.”


“아직 어린데... 아버님은?”


“안 계세요.”


“형제는?”


지금 호구 조사하는 건가?

다 알고 있는데 다시 묻는 이유가 뭐지?

머릿속의 생각들이 회오리처럼 마구 돌았다.


“... 없어요.”


“사는 데는?”


뭐 하자는 거야? 사는 데는 왜 물어보지?

상희의 머리로는 더 이상의 상상은 불가능했다.

에이 모르겠다 싶어서


“그냥 살아요.”


사춘기 소녀를 대하듯 이사장의 말은 조심스럽고 부드러우면서 무심했다.


“형편은?”


아, 진짜.


“왜 그러는데요? 저 어디다 팔아넘길 건가요?”


이사장은 애초에 표정 따위는 없었던 것처럼 AI 로봇같이 같은 톤에 같은 템포로 이어서 질문했다.


“돈 필요해?”


뭐야? 필요하다면 줄 건가?


“필요해요.”


당차게 말했다.

왠지 줄 것 같아서.


“재단에서 준비하도록 할게. 일어나서 같이 나가지. 배도 많이 고플 텐데. 같이 저녁이나 해.”


부자에 잘생긴 독신남인 이사장이 이런 제안을 하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혹시 알아?

스시 먹으러 전용기 타고 일본 가자고 할지.

아니면 파스타 먹으러 이탈리아로.

아님 햄버거 먹으러 미국 가자고 할지.


애초에 그럴 거면 여기로 왜 끌고 온 거지?

혹시 싫다고 할까 봐 무리수를 둔 건가?

수능 점수 50점 상희에게 더 이상의 스토리 전개는 불가했다.

물론 성적과 사회 적응도는 별개지만 상희의 이해력은 여기까지였다.


“가요.”


상희는 자신 있었다.


미모와 가식은 상희에게 있어서 타고난 재주라 우아하게 보이는 아름다운 부인의 역할은 누구보다 잘 해낼 수 있다는.


겁도 없이 속으로 다짐했다.


‘꼬시자!!’

DALL·E 2024-06-21 17.41.51 - A 20-year-old woman with long straight hair waking up in shock on an operating table. The operating room walls are white, and she is wearing a typical.jpg

“오늘은 특별한 이벤트가 없었어?”


“오늘은 결혼 정보 회사에서 만나 조건 보고 바로 결혼한 커플이었어요.”


상희가 이사장의 말투를 흉내 내며 말했다.


“그럼 충천은 많이 못 했겠는데”


의자에 고쳐앉은 상희는 오늘 있었던 예식을 떠올리며 하나하나 보고했다.


“아뇨. 남자와 여자의 욕구가 아주 잘 맞아떨어져 행복 가득이었어요. 신랑은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신부가 미인이라 행복했고, 신부는 남자의 권력과 돈에 행복해서 결혼식 분위기 좋았어요.”


“인간들은 참 특이해. 사랑과 행복의 경계선이 모호하다니까.”


이사장의 집으로 들어온 상희는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처음 상상한 대로 이사장의 우아한 부인은 되지 못했지만 '심복', 혹은 '스파이?' 어찌 되었던 이사장은 약속한 대로 상희가 원하는 만큼 많은 돈을 주었다.


자신에게 이성으로 관심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건 차차 해결하면 될 일.

일단 이사장에게 여자가 없는 것은 확인했고, 남자가 없는 것도 확인했다.


돈은 무지무지 많은데 딱히 쓰는 곳은 없어 보이고,


상희의 눈이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거실에는 소파와 티브이 그리고 넓은 창이 다였다.

이럴 거면 넓은 평수는 왜 했는지 깡통 하나를 굴리면 소리가 울리며 떼굴떼굴 굴러갈 것 같은 빈 창고처럼 텅 빈 곳이었다.

그나마 주방에는 상희 덕분에 사람 냄새가 났다.

마른 싱크대에 물이 떨어지고 가스레인지에서는 달걀 프라이가 익고 있었다. 아니 타고 있었다.


“이사장님!”


“아이고”


이사장이 얼른 갈색으로 변한 달걀 프라이를 뒤집었다.

이럴 때 보면 나름 귀여운 면이 있었다.


“토마토 어디 있어요?”


냉장고로 다가간 상희가 묻자 이사장이 머리를 긁적였다.


“깜빡했네.”


“아이, 나 토마토 먹고 싶었는데... 올리브유에 소금 후추 넣고 살짝 버무린 토마토”


상희가 아기 소리를 내었지만 이사장은 딱히 싫은 표정이 아니었다.


한집에 같이 살게 된 것은 이사장의 청이었다.


명령이 아닌 말 그대로 요청, 부탁.


시작은 좀 그랬지만 예의 바르게 대하는 이사장과의 동거는 나름 괜찮았다.

상희의 방은 상희가 원하는 대로 꾸밀 수 있었고, 욕실과 드레스룸까지 딸려 있어서 생활이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다만 이사장이 상희에게 요구한 것은 딱 하나!


웨딩홀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달라고 했다.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하나하나 보고해 달라고.


깊은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뭔가 있다는 것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사장님 우리 외식하러 갈까요?”


갈색으로 딱딱해진 달걀 프라이를 접시에 담아오던 이사장이 당황했다.


“달걀 프라이 먹고 싶다며?”


“마음이 바뀌었어요. 우리 롯데리아 햄버거 먹으러 갈까요?”


이사장은 햄버거를 좋아한다.


특히 롯데리아에서 파는 새우버거를 취향도 참... 이왕이면 근사한 레스토랑의 수제버거나 와인을 좋아하지.


“오늘은 제가 쏠게요.”


롯데리아 새우버거 정도야 사줄 수 있지.


“그래? 그럼 63빌딩으로 갈까?”


“아니! 거긴 안돼요.”


“후후후”


상희 놀리는 게 재미있는 듯 이사장이 장난을 걸었다.


“오늘 네가 사준다며.”


“거기 말고 다른 데로 가요.”


“다른데 어디?”


“롯데리아”


“하하하하하”


상희의 꿈은 부자였다.

예쁘고 화려하게 살다가 일찍 죽고 싶었다.

철없는 얘기 같지만 뭐, 지금 시대의 유행 같은 거기도 했다.

지긋지긋한 세기말 유행.

끝을 예고하고 있지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


“상희야, 마지막으로 하나만 해주면 이제 자유야!”


상희의 얼굴이 굳었다.


“자유? 뭐로부터? 누구로부터?”


상희는 이제 이사장 없이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꼬시기는커녕 완전히 넘어가 버렸다.


“뭔데요?”


그렇다고 이사장에게 푹 빠졌다는 티를 낼 수는 없었다.

남자는 쉬운 여자, 특히 자신에게 온전히 마음을 준 여자에게는 매력을 못 느낀다는 게 상희의 생각이었다.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상희는 끝까지 아닌 척할 거였다.

그냥 고백했으면 됐을 것을.

나중에 후회해도 지나가 버린 과거는 되돌릴 수 없었다.


“과장 방으로 들어가면 비밀의 방이 하나 있어.....”


이사장은 미리 계획한 듯 아주 자세하게 위치와 시간을 설명했다.


“그게 왜 필요한데요?”


“거기까지야. 네 할 일은”


“그래서 저 거기에 취직시킨 거예요?”


“응”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가져다주면 나가라고 내칠 것을 눈치챘기 때문에.


“저 좋아하지 않으세요?”


“좋아하지. 그래서 널 선택한 거고.”


“다른 사람이어도 상관이 없었을 것 같은데요.”


“아니. 너여야만 했어.”


“왜요?”


“너한테는 뭔가 있거든. 인간 같지 않은 뭔가가.”


“인간 같지 않다는 말 욕 아니에요?”


“그게 왜?”


상희가 벌떡 일어났다.


“갖다주면 될 거 아니에요. 갖다 준다고요.”


조금 더 앉아 있다가는 고백할 것 같았다.


‘사랑하게 됐다고.'


----------------------------------------------


과장은 지금 식사 중이다.


지금이 가장 길게 사무실이 비어 있는 시간이다.


상희의 심장이 방망이질을 했다.


도둑질은 상희도 처음이었다.


이사장이 알려 준대로 과장의 방 안에는 비밀의 방이 있었다.


문을 열자 붉은빛과 푸른빛이 수직으로 만나고 있었다.

빛에 쏘이면 제명에 못 살 것만 같아 안으로 들어가기가 망설여졌다


도대체 저게 뭐지? 뭔지 몰라도 값어치가 상당히 나가는 고가의 것이 틀림없었다.


’이러다 방사능 피폭되는 거 아냐?‘


속으로 별생각이 다 떠올랐지만 이사장과 하도 연습을 많이 해서인지 팔이 저절로 움직여 준비한 통에 그대로 흡수시켰다.

1분 남짓 한 시간이 하루 종일처럼 길게 느껴졌다.


상희의 손에서 텀블러 크기의 원통이 빛나며 따뜻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DALL·E 2024-06-21 17.45.48 - A scene in anime style where Sang-hee, a young woman with her hair neatly tied back in an updo, is nervously entering a secret room within a manager's.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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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혼례식 +2 24.06.18 10 1 9쪽
15 미안함 / 못다한 결혼식 –기억할 수 있을 때 +2 24.06.17 11 1 9쪽
14 땡땡이!! +2 24.06.14 11 1 10쪽
13 저승사자 맞네! +2 24.06.12 11 1 10쪽
12 능력자 +10 24.06.10 22 1 9쪽
11 와이파이 존 +2 24.06.06 11 1 10쪽
10 잃어버린 시간 +2 24.06.05 13 1 10쪽
9 옆집 오빠 +2 24.06.04 11 1 10쪽
8 소원을 이뤄드립니다. +6 24.06.03 8 1 10쪽
7 행복한 야구선수 +4 24.05.31 15 1 9쪽
6 에리다누스 +2 24.05.30 12 1 9쪽
5 행복한 부부 +2 24.05.29 11 1 9쪽
4 이래서 돈을 버는 구나~ 알아버린 돈의 맛 +4 24.05.27 15 1 9쪽
3 아르바이트 24.05.24 12 1 10쪽
2 마법 웨딩홀 24.05.23 18 1 9쪽
1 마법 웨딩홀을 소개합니다. +2 24.05.22 31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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